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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염수 방출 다음날, 미역을 주문했습니다

등록|2023.08.29 15:32 수정|2023.08.29 15:32
오늘 아침에는 미역국을 끓였다. 그런데 미역이 평소 먹던 것과 달라 보였다. 길이가 짧고 얇다. 식감도 다르다. 어느 행사에서 사은품으로 받았던 미역인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이제 미역이 다 떨어졌네. 주문해야겠다.

미니멀라이프다, 냉털(냉장고 털어먹기) 하자, 다짐하면서 남은 식재료를 다 소진하고 나서야 주문하겠다고 연초부터 독한 마음을 먹은 터다. 그러다 이제 와서 오염수 방출된 후에 해산물을 사야 하니 이 노릇을 어떡하면 좋은가.
 

▲ 2023년 8월 24일 후쿠시마현 나미에의 우케도 어항에서 바라본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시설(뒷면)의 전경. ⓒ AFP=연합뉴스


온 나라가 들끓고 있다. 일본 후쿠시마에서 오염수를 방출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맘카페에 들어가 봤다.

지금이라도 좀 쟁여두는 게 좀 낫지 않을까요?
몇 개 샀다고 영원히 먹을 수도 없지만 속 편히 먹으려면 몇 개 정도는 구매해야-
내 아이 몸에 잘못된 식재료로 방사능이 쌓여가는 상황을 최대한 늦춰야 해요-
집에서는 안 먹는다 치지만 급식은 어쩌나요-
우리 아이들이 너무 불쌍해요.
내폭 돼서 평생 방사능 쬐고 있을 걸 생각하면 끔찍해요-
넘 걱정돼요, 검사한다는 거도 못 믿겠어요-
태풍 오면 더 빨리 올 겁니다-
방사선 영향 있는 물고기는 아무 때나 가고 싶은 곳 가는 거 아닌가요-
우리의 바다를 제발 살려주세요-
인류의 안전 문제인데 너무 화나요-


염려와 분노의 목소리로 소란스럽다. 일단 주부들이 제일 걱정인 것은 안전한 식재료 수급이다.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일단 발등의 불부터 꺼야 한다. 비상 걸린 급식 이야기는 따로 하자. 우선 미역 주문부터 해보며 사태파악을 해보고자 한다.

어디서 어떤 미역을 사야 할까. 뉴스에서 후쿠시마 오염수가 바닷물의 흐름에 따라 북태평양을 돌아 일본 남해, 우리나라는 제주에서 부산으로, 동해로 올라온다는 그래픽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 해안까지 오려면 며칠 또는 몇 년이 걸린다는 보도도 있다.

판매자들이 직접 생산해서 판매하는 인터넷 쇼핑홈을 뒤적이다가 동해 연안에 거주하는 지인이 생각나 전화를 했다.

그쪽 바닷가 분위기는 어떠냐는 질문에, 어민들이 이제 다 죽었다고 한탄하고 있다고 한다. 대부분 어선이며 집기류들을 대출받아 샀는데 모두 파산하게 생겼다는 것이다. 점잖던 지인의 입에서도 욕이 뿜어져 나온다. 어쨌든 나는 미역에 집중했다. 오염수가 맨 나중에 도착하는 그 지역 미역은 아직 오염되지 않은 거죠?라고 묻자 말한다.

오염수의 흐름이니, 우리 해안에 오염수가 도착하는 날짜 등이 중요한 게 아니란다. 이미 후쿠시마 인근에서 그 물을 먹고 자란 물고기들이 서로 잡아먹고 잡아먹혀 살아남아 세계 어느 바다든 흘러 다니고 있다는 것이다. 또 태평양을 오가는 대형 선박이 내려놓는 평행수 이야기도 언급하며 이미 어디에도 안전한 건 없다는 지인.


나만 잘 먹고 잘살자고 지금부터라도 사재기라도 할까? 그것을 다 먹고 나면 어쩔 수 없이 또 구입해야 하는데, 그땐 어쩔 것인가. 만약 피치못해 오염된 해산물을 먹는다면 우리 몸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까? 어느 정도의 해산물 섭취까지를 허용하면 괜찮다고 할 수 있을까?

방사선이 우리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굳이 열거하지 않아도 어렴풋이 알고 있다. 그러니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은 우리에게 매우 위협적인 상황이다. 아무것도 안 먹을 수도 없고, 공포를 안은 채 먹을 수도 없다.

알아낼 수만 있다면 알아내서 피폭원을 피해야 한다. 혹자는 부산 앞바다에 잉크 한방울 떨어뜨린다고 표가 나냐고 한다. 이것 빼고 저것 빼면 먹을 게 없으니 마음이라도 편하게 먹자 한다. 그래도 내 몸에 관한한 그것이 '팩트'인지 '막연한 공포'인지는 최소한 구별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후쿠시마 오염수 분석 자료가 발표되고 있다. 수치가 그렇다는 얘기다. 우리의 공포와 불안감과 트라우마는 단기간 해결되지 않을 듯하다. 국가는 국민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 저질렀으면 팩트든 심리적이든 국민을 안심시켜 줘야 한다. 일관된 언행으로 신뢰를 주길 바란다.

심사숙고 끝에 미역을 주문했다. 몇 개를 주문할까 했던 고민을 불식시키고, 1인 1포만 주문 가능했다. 세상이 이렇게나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주문하면서 알게 된 또 하나는, 사은품으로 받았던 미역이 손으로 채취한 최상품이었다는 것. 최상품을 사은품으로 받는 일은 앞으론 절대 없을 거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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