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속은 것같다" 대법원 늑장판결에 93세 강제동원 피해자 울분
김정주 할머니와 지원단체 기자회견... "피해자들 어서 죽길 비는 건가, 대법원 직무유기"
▲ 일제 후지코시 강제동원 피해자 김정주 할머니와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2018년 대법원 강제동원 소송 대리인단·지원단체 관계자들이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위한변호사모임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강제동원 소송의 대법원 판결 지연을 규탄하며 신속한 판결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김정주 할머니 “사죄도 못 받고, 윤석열 대통령에게 속은 것 같다” ⓒ 유성호
"몇 개월이 지나도, 또 몇 개월이 지나도 후지코시에 대해서는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우리나라 정부에서도 말 한마디도 없고, 법원에서도 재판에 대해 말 한마디가 없어요. 너무나 억울해서 내가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 일본 군수업체 '후지코시' 근로정신대 피해자 김정주 할머니(93)
"대법원에 묻고 싶습니다. 재판 왜 안 하는 것입니까? 판결하기 어려운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것입니까? 아니면 한쪽에서 정안수 떠 놓고 피해자들 어서 죽기를 빌고 있는 것입니까?" -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
"대법원 계류, 피해자들에게 '어서 죽으라'고 하는 것"
▲ 일제 후지코시 강제동원 피해자 김정주 할머니가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위한변호사모임 대회의실에서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2018년 대법원 강제동원 소송 대리인단·지원단체 주최로 열린 강제동원 소송 대법원 신속 판결 촉구 기자회견에 참석한 뒤 조영선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회장의 부축을 받으며 자리를 나서고 있다. ⓒ 유성호
김 할머니와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아래 평화행동), 2018년 대법원 강제동원 소송 대리인단 및 지원단체는 29일 오후 1시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아래 민변) 대회의실에서 열린 '대법원 직무유기 규탄 기자회견'에서 "100세 안팎에 있는 피해자들을 보고도 판결을 미루는 것은 일제 전범 기업의 파렴치한 행태에 동조하는 것이자, 대법원만 바라보고 학수고대해 온 피해자들에게 '차라리 어서 죽으라'고 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현재 대법원에 계류된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 현황을 피고별로 살펴보면 ▲ 일본제철 2건 ▲ 미쓰비시중공업 3건 ▲ 후지코시 3건 ▲ 히다치조센 1건이다. 해당 9건의 사건은 최소 4년 1개월에서 길게는 4년 8개월째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2018년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한 양금덕 할머니와 이춘식 할아버지의 경우 특별 현금화 명령 소송을 제기했는데 이 역시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앞서 윤석열 정부는 일본기업이 아닌 한국 정부가 배상금을 지급하는 '제3자 변제안'을 발표했으나, 전주·광주·수원·안산·서울북부지법 등이 '제3자 변제 관련 공탁 불수리' 결정을 내려 제동을 걸었다.
"사법살인 대법원, '지연된 정의' 넘어 '직무유기' 수준"
▲ 일제 후지코시 강제동원 피해자 김정주 할머니(왼쪽 세번째)와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2018년 대법원 강제동원 소송 대리인단·지원단체 관계자들이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위한변호사모임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강제동원 소송의 대법원 판결 지연을 규탄하며 신속한 판결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 일제 후지코시 강제동원 피해자 김정주 할머니(오른쪽)와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2018년 대법원 강제동원 소송 대리인단·지원단체 관계자들이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위한변호사모임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강제동원 소송의 대법원 판결 지연을 규탄하며 신속한 판결을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박석운 평화행동 공동대표는 "1심·2심을 이겨서 대법원 판결만 기다리는 분들이 9명이나 있다"면서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말이 있는데, 대법원은 지연된 정의 수준이 아니라 직무유기를 하는 수준"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김명수 대법원장의 임기가 얼마 안 남았는데, 퇴임 전에 해당 사건들을 마무리하는 것이 도리에 맞다"고 덧붙였다.
조영선 민변 회장도 "(해당 사건들은) 2018년 전원합의체 판결과 비교해 쟁점이 바뀌거나 새로운 사정이 있는 게 아니기에 선행 전원합의체 판결에 따라 판결하면 된다"며 "대법원은 선행 판결도 있는 항소 기각 판결에 대해 4~5년을 지연시키는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지적했다.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은 "김재림, 심선애, 양영수 할머니 등 판결을 기다리다가 대법원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무수히 많은 피해자들이 속수무책으로 돌아가셨다"면서 "이건 사법부가 피해자에게 가한 사법 살인"이라고 분노했다.
떨리는 목소리로 발언을 한 김정주 할머니는 "나이가 이렇게 먹었으니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른다"면서 "아무 결과도 보지 못했고, 사죄도 못 받았고, 일본에 아무 말도 못 들었다. 우리나라에 배신당한 것 같고 또 속은 것 같다"고 전했다.
▲ 박석운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공동대표가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민주사회위한변호사모임 대회의실에서 열린 강제동원 소송 대법원 신속 판결 촉구 기자회견에서 일제 후지코시 강제동원 피해자 김정주 할머니의 건강을 걱정하며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유성호
기자회견문을 낭독한 정의기억연대 임지영 국내연대팀장과 겨레하나 정은주 국제평화부장은 "미쓰비시중공업으로 동원된 김재림 할머니는 2018년 12월 광주고등법원에서 승소한 뒤 대법원의 마지막 판결을 기다린 지 4년 7개월째에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며 "현재 대법원에 계류돼 있는 양금덕·이춘식 사건의 경우 채무자(일본기업)가 고의로 법원의 배상 명령을 거부하고 있는 상태다. 강제집행을 통해서라도 피해자의 채권을 확보하자는 것이 이 사건의 처음이자 끝"이라고 발표했다.
한편, 대법원에 계류된 강제동원 피해자 소송의 원고는 생존 피해자와 유족을 합쳐 모두 50명이었다. 소를 제기할 당시 생존 피해자는 31명이었으나 그중 21명이 유명을 달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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