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역 돌아다니지마" 엄마의 카톡에 딸은 영영 답하지 못했다
[고 김혜빈씨 이야기] 꿈 많던 미술학도... "네게 엄마로 불려 행복했어"
▲ 30일 오전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 장례식장 2층에 마련된 서현역 흉기난동 피해자 고 김혜빈씨 빈소 영정. ⓒ 복건우
스무살, 고 김혜빈.
엄마와 아빠는 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기로 했다. 지난 28일 딸이 숨진 뒤 빈소에 있는 동안 수십 명의 기자가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부부는 힘든 마음을 토로하며 인터뷰를 정중히 거절해왔다.
30일 오전 9시 경기 수원시 아주대학교 장례식장. 지하 1층 입관실에 들어간 가족·친지·친구 15명이 고 김혜빈(20)씨의 마지막 길을 지켰다. 친구들은 그의 이름을 계속 부르며 목놓아 울었고 가족들도 따라 오열했다.
장례식장 2층에 마련된 빈소에는 혜빈씨를 기억하는 대학 동기들이 손수 쓴 편지들이 놓여 있었다. 혜빈씨가 생전 좋아했던 너구리 인형과 포켓몬 카드 도감도 보였다. 엄마는 딸의 영정을 보며 "결혼을 늦게 해서 혜빈이 하나만 바라보며 살았는데... 워낙에 예쁜 외동딸이라 한번도 떨어져 본 적이 없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꿈도 욕심도 많았던 외동딸
▲ 30일 오전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 장례식장 2층에 마련된 서현역 흉기난동 피해자 고 김혜빈씨 빈소. ⓒ 복건우
혜빈씨는 2003년 7월 9일에 태어났다. 올해 스무살이 된 혜빈씨는 어릴 때부터 에너지와 사랑이 넘치는 아이였다. 유치원에 다닐 적엔 반가움에 친구들에게 달려들 만큼 활발했고, 그 특유의 활기참은 성인이 되어서도 이어졌다.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에서 나고 자라 서울의 한 미대에 진학한 혜빈씨는 새로 만난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다. 늘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잃지 않았던 혜빈씨를 친구들은 좋아했다.
넘치는 에너지만큼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그림 작가가 되어 엄마가 쓴 글을 함께 묶어 책을 내고 싶었고, 뮤지컬과 연기도 배워보고 싶었다.
혜빈씨는 무엇보다 그림 그리기를 가장 좋아했다. 유치원 때부터 벽에 걸어둔 작품들은 집 안을 하나의 갤러리처럼 만들었다. 돌고래, 공룡, 사자 같은 동물을 주로 그리다가 한번은 엄마와 아빠의 얼굴을 그려 선물했는데, 엄마는 그때의 행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고등학생이 된 혜빈씨는 "미대에 지원해보고 싶다"며 입시 미술을 준비했다. 그러나 수시와 정시에서 모두 떨어졌다. 1년간의 힘든 재수 생활이 시작됐다.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이 신경을 써주지 못했지만, 혜빈씨는 좋은 성적을 얻고자 꿋꿋하게 버티며 공부했다.
지난 2월 초 혜빈씨는 가고 싶었던 대학으로부터 합격 소식을 들었다. 영상디자인과 애니메이션, 영화를 같이 배울 수 있는 곳이었다. "내 꿈의 대학이야. 거기 꼭 들어가서 공부하고 싶어"라며 간절히 바라왔던 혜빈씨였기에, 온 가족은 부둥켜안고 울며 혜빈씨의 입학을 진심으로 기뻐했다.
합격 이후 그동안 못했던 '버킷리스트'를 가족들과 하나씩 지워나갔다. 미술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시간을 내어 부모님과 뮤지컬을 관람하고 전시회를 보러 다녔다. 부모님이 출근할 때면 가지 말라고 발을 동동 구르고, 약속이 있다고 하면 꼭 차로 바래다줘야 하는 아이 같았던 혜빈씨는 어느덧 꿈과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어엿한 성인이 돼 있었다.
"헤빈아, 집 가서 같이 밥 먹자"
▲ 고 김혜빈 씨 어머니가 서현역 사고 당일(8월 3일) 김씨와 주고받 보낸 카카오톡 일부. 김씨는 낮 12시 37분 '일하러 가세'라고 적힌 이모티콘을 보냈고, 엄마는 "힘을 내요"라고 답했다. 오후 5시 56분 서현역 흉기난동 소식을 들은 엄마는 "돌아다니지 마"라는 메시지를 보냈지만 딸은 영영 답을 할 수 없었다. ⓒ 복건우
8월 3일 목요일, 그날도 혜빈씨는 아르바이트를 하러 미술학원에 갔다. 낮 12시 37분 '일하러 가세'라는 이모티콘을 엄마한테 보냈고 엄마는 "힘을 내요"라고 답했다. 오후 5시 56분 엄마는 서현역에서 흉기난동이 일어난 소식을 들었지만 '혜빈이는 오후 1시부터 밤 10시까지 학원에 있으니까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며 "돌아다니지 마"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런데 저녁을 먹던 도중 미술학원 원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혜빈이가 학원을 잠깐 나갔는데 아직 소식이 없어요." 그길로 엄마와 아빠는 차를 타고 서현역으로 향했다. 차에서 본 분당구청 잔디밭에는 닥터헬기가 떠 있었고, 엄마는 '이제 학원으로 복귀했겠지', '어디서 커피 한잔 마시고 있겠지'라고 생각하며 딸을 찾아다녔다.
서현역은 아수라장이었다. 한 남성이 시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14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범죄가 발생한 서현역 1층을 찾은 두 사람은 분당경찰서에서 온 전화를 받고 아주대병원으로 향했다.
그곳에 있는 집중치료실에 혜빈씨가 누워 있었다. 앞서 분당구청을 지나며 본 닥터헬기에 사실 혜빈씨가 타고 있었고, 그때부터 뇌사가 진행돼 손을 쓸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의사로부터 들었다. 피의자가 휘두른 칼이 아닌, 그가 사람들을 향해 몬 차량에 치였다는 사실도 그때 알았다. 연명치료를 이어가던 혜빈씨는 28일 오후 9시 52분 끝내 숨을 거뒀다.
▲ 서현역 흉기난동 피해자 고 김혜빈씨가 생전 다니던 미술학원에서 주최한 전국연합평가에 참여한 모습 ⓒ 김혜빈씨 유족
사고 이후 아빠는 CCTV를 확인했다. 혜빈씨는 서현역 AK플라자의 한 편의점에서 카드결제를 하고 나오면서 사고를 당했다. 병원으로 옮겨졌는데도 외상 하나 없이 멀끔한 상태였다. 사고가 발생한 지 27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엄마는 딸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다.
"상처 난 데도 없고 멍든 데도 없었어요. 어쩜 그렇게 깨끗한지... 병원에 있을 때도 그냥 잠자는 애 같았어요. 병원에서는 일주일을 못 버틸 거라고 했는데, 저 어린애가 그래도 잘 버텨줬어요. 바라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아무것도 해준 게 없어서 미안해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냐고 물었을 때, 엄마는 딸에게 말편지를 부쳤다.
"미안해 그리고 많이 사랑해. 혜빈이 덕분에 사랑 많이 받았어. 혜빈이한테 엄마로 불리게 돼서 너무 행복했어. 병원에 있는 동안 밥도 잘 못 먹었는데... 혜빈아 집에 가서 같이 밥 먹자."
혜빈씨의 발인은 오는 31일 오전 8시 엄수된다.
▲ 30일 오전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 장례식장 2층에 마련된 서현역 흉기난동 피해자 고 김혜빈씨 빈소 앞에 친구들이 손수 쓴 편지들이 빼곡하게 놓여 있다. ⓒ 복건우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