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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입주자대표의 '갑질', 법원은 이런 결론을 내렸다

[광장에 나온 판결] 아파트 안내사원에 대해 갑질한 입주자대표의 손배 책임 인정한 판결

등록|2023.08.31 10:01 수정|2023.08.31 10:01
갑질, 누구에게든 당했다면 크나큰 상처와 피해로 남을 수밖에 없는데요. 최근에는 경비원이나 아파트 관리인에 대한 갑질이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기도 했죠. 하지만 지금까지 법원은 묵시적 근로계약 관계가 인정되지 않으면 입주자대표회의 등의 사용자 책임은 부정해 왔습니다. <BR> <BR>그러나 지난 7월, 아파트 안내사원에게 갑질을 한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판결이 나왔습니다. 위탁계약으로 고용되어 직접적인 고용책임이 없는 사람에게도 '갑질'하면 안 된다는 점을 분명히 한 판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직장갑질119 권남표 노무사가 비평했습니다.[기자말]

▲ 재판. ⓒ unsplash

 
1심 서울중앙지방법원 류일건 판사 2023.07.21. 선고. 2021가단5062146

'사장이 예민한 거 아니야? 직원이 이겨 먹으려고 든 거 아니야? 서로 사이가 안 좋은가?'라며 관계의 상태나 성격에서 이유를 찾아서는 반복되는 갑질의 고리를 끊기 어렵다. 흠집을 찾아내 누군가를 악당으로 만들어 내쫓았더니, 비슷한 사람이 같은 자리를 꿰차 유사한 일이 반복된다. 갑질이 그렇다.

갑질의 갑은 '사회·경제적 관계에서 우월한 지위에 있는 사람'을 말하고, 질은 '직업이나 직책에 비하하는 뜻을 더한 접미사'다. 과거에 비슷한 말은 '완장질' 정도가 있다. 배타적인 소유관계에서 물질적·정신적 부와 사회적 관계망을 바탕으로 선점된 우월한 지위이고, 모두가 동일하게 가질 수 없기에 희귀해 보이는 지위는 갑을 군림하는 자리에 앉히고 질서인마냥 여기도록 했다.

갑이 차곡차곡 쌓아 온 주옥같은 사건들은 한 때 관행이라고 불렸지만, 이제는 비하이자 조롱의 단어인 갑질이 됐다. 여러 갑질의 면면은 이렇다. 계약서에 적지도 않은 업무를 은근슬쩍 미루는 원청사의 갑질 "A사는 회식하던데 당신네는 일만 하나 봐?", 팔리지 않는 물건을 덤핑으로 주겠다며 대리점에 밀어내는 본사의 갑질 "이번 달 신제품이에요. 대리점에서 팔아주셔야죠", 초등학교, 유치원, 어린이집 교사에게 학부모가 하는 갑질 "우리 애 방임하는 거예요? 잘 좀 챙겨요", 직장에서 사장이 업무 범위를 넘어서 괴롭히거나 불이익을 주는 갑질 "사장보다 먼저 가냐? 너 말고도 할 사람 많아" 등등.

갑의 요구 사이에는 욕설과 모욕적인 언사 역시 빠지지 않고 가미된다. 그 양상은 무례하고 약탈적이기 짝이 없어서, 나도 당했다고 고발하는 하나의 흐름이 만들어졌다. 대한항공 땅콩회항 사건, 양진호 갑질 폭행 사건, 신협 댄스 강요 등등 개인의 일탈로 삼기에 갑질은 한국 사회의 문화를 토양으로 만들어진 악습의 하나로 개선돼야 하는 시스템의 결함이다.

이러한 문제가 일터에서도 노골적이다. 현재까지의 판결에서도 크게 드러났다. 이윤을 낸 자가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은 침이 마르게 외쳤고,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지경인데, 정작 일터에는 사회적 책임은커녕 어떤 일은 핵심 분야가 아니라며 외주를 줘서 벌어지는 균열이 있다. 균열을 낸 효과는 톡톡하다. 수많은 아웃소싱 업체들이 일감을 달라며 줄지어 서 있고, 아웃소싱 업체의 노동자는 원청을 위해 일을 하고, 원청은 고용·해고·안전·보건·보상 등의 책임을 손쉽게 나 몰라라 한다. 늘 주인공이 셋이 되면 과정이 지난해진다. 해당 판결도 마찬가지다.

전형적인 갑질 사례, 그 이후 

한 아파트에서 10년간 일한 두 명의 노동자ⒶⒷ는 안내사원으로 일했다. 두 사람ⒶⒷ은 관리회사Ⓒ와 계약을 체결했고, 관리회사Ⓒ는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와 위탁계약을 체결해 아파트 관리의 전반을 위임받았다. 위탁을 준 입주자대표회의는 두 명의 노동자ⒶⒷ의 고용에 대해서는 책임져야 할 게 없었다. 그 책임을 관리회사Ⓒ에게 다 위임했기 때문이다. 일터의 균열은 그렇게 깊다.

이 판결은 갑질을 한 원청의 대표에게 책임을 지게 해 균열을 다소나마 메꾼다는 의미가 있다. 사건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노동자ⒶⒷ가 일한 만큼 돈을 못 받아서 법을 지키라고 요구하고, 신고하자 회사Ⓒ는 인사권을 꺼내 들어 고용상의 불이익을 가한 전형적인 갑질 사례다.

그 경과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러하다. 강남의 한 아파트에서 두 명의 노동자ⒶⒷ가 안내 사원으로 일을 무려 10년간 했다. 하루 8시간 넘게 일했는데 받은 기본급은 7시간 치다. 뭔가 잘못된 것을 깨달은 두 노동자는 월급을 올려달라고 회사Ⓒ에 바른 소리 했다가 묵살당한 뒤, 약 6개월이 지나 고용노동부 지청에 관리회사Ⓒ가 임금을 안 줬다고 신고를 했다.

이 정도면 돈을 줄 법도 한데 웬걸 회사Ⓒ는 '괘씸하다'며 다른 아파트로 전배발령을 냈고, 언제 돌아오라는 기약 없는 대기발령을 했다고 한다. 여기까지 관리회사Ⓒ가 잘못했네 라고 판단하고 사건을 접으려 할 때,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의 또 다른 갑질이 등장한다. 회장Ⓓ은 직원ⒶⒷ에 대한 전배와 대기발령 처분을 강력하게 요구했고, 관리회사Ⓒ는 두 사람ⒶⒷ이 원치 않는 처분을 했다.

근로기준법 제104조는 "사용자는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사람을 신고했다고 불리한 처우를 하지 말라"는 취지의 규정을 뒀다. 회사는 신고를 한 원고들에게 고용상 불이익을 주는 갑질을 했으니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할 것인데, 문제는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다. 회장과 노동자 사이에 근로계약서나 고용계약서라는 문서가 없기 때문이고, 회장은 관리회사와 위탁계약서에 아파트 관리와 사무의 내용에 관해서만 남겨두기 때문이다. 이미 이 사건의 노동자에 대한 관리보호 책임의 대부분을 떠넘긴 덕에, 회장은 근로기준법 준수 의무가 있는 사장이 아니다.

입주자대표회의 등의 사용자 책임을 인정한 법원

그간 법원은 묵시적 근로계약관계가 인정되지 않으면 입주자대표회의 등의 사용자 책임을 부정해 왔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법원은 회장의 영향력과, 직접적인 요구 등을 이유로 종전과 다른 결정을 했다.

법원은 "이 사건 아파트의 관리업무를 위탁한 입주자대표회의의 회장 지위에서 원고들이 단지 이 사건 진정을 제기하였다는 이유만으로 피고 회사에 원고들에게 불이익한 인사처분에 해당하는 대기발령 또는 전배발령을 내릴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다고 봤다. 이어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은 관리회사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위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조장하는 등의 방법으로 관여"했다고 하여 종전과 달리 "공동하여 정신적 손해를 배상하라"는 희망찬 판결을 남겼다.

이 사건에서 법원이 인정한 사실관계에는 하나가 더 있다. 두 노동자가 공짜로 일한 대신 임금 인상을 요구하자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의 반대 등으로 묵살"됐다는 사실이 인정됐다. 직접 계약도 체결하지 않은 어찌 보면 남인 원청이 돈줄을 쥐고 한 간접고용에서 흔한 갑질의 유형이다.

이 사건과 동일한 사안은 아니지만, 현재 시민사회는 시스템의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원청이 함께 책임을 지도록 하는 법을 통과시키려는 노력이 한창이다. 거대 기업의 외주화로 일어난 균열을 메우기 위한 노란봉투법(하청 노동자에 대한 원청사의 책임과 과도한 손해배상 청구 금지)은 지난 8월에 국회를 통과할 거라 예상됐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9월 정기국회로 미뤄졌고, 통과하더라도 대통령 거부권 행사가 관측된다. 더 큰 감시와 관심이 필요한 때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블로그와 인터넷언론 슬로우뉴스에도 중복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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