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령 해녀와 최연소 해녀, 그들만의 사연
[독립예술영화 개봉신작 리뷰] <물꽃의 전설>
고희영 감독은 전작 <물숨>에서 제주 우도 해녀들의 삶을 7년에 걸쳐 기록해 공개한 바 있다. 그런 감독의 두 번째 해녀 영화라면 기대와 동시에 우려도 함께일 수밖에 없다. 즉슨, 동어반복 혹은 답습의 그림자 여부를 의식하면서 영화를 보게 될 것을 피할 수 없다는 문제다. 그런 걱정 속에서 영화를 접했다. 다행히 걱정은 노파심으로 그쳤다.
제주 성산읍 삼달리, 해녀들이 있다
이번 영화의 주 무대는 제주 성산읍 삼달리다. 이곳에는 87년 물질 경력의 현순직 해녀와 마을에서 가장 젊은 채지애 해녀가 있다. 영화는 이 둘 각자의 내력을 소개하고 그들을 둘러싼 변화의 흐름, 그리고 둘이 혈연관계인 것처럼 의미심장한 그들만의 의례를 치르는 순서로 큰 흐름을 이어나간다.
현순직 해녀는 그야말로 삼달리 해녀들의 상징이자 정신적 지주 같은 존재다. 96세에 이르기까지 87년이라는 해녀 경력은 듣기만 해도 아찔할 정도다. 해녀의 등급을 구분할 때 '상군'-'중군'-'하군'으로 나뉘는데, 현순직 해녀는 상군 중에도 '대 상군'-'고래상군'으로 꼽히기에 모자람이 없다. 마치 그의 한 몸에 해녀의 역사가 압축된 느낌이다. 실제로 제주 해녀들은 외지에서 초빙을 받아 몇 년씩 원정을 다니기도 하는데 현순직 해녀 역시 안 가본 데가 없을 정도다.
반면, 다년간의 제작기간 덕분에 촬영이 막바지에 도달했을 땐 나이가 제법 찼지만 영화 초반에는 30대 초반에 불과했던 막내 채지애 해녀는 현순직 해녀와 비교하면 증손녀라 해도 될 정도로 앳되다. 그의 엄마도 마을 해녀였지만 자식에겐 일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딸을 육지로 내보내 대학도 마치게 하고 다른 일자리를 얻어 정착시켰다.
하지만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해녀 일을 하겠다는 딸이 영 마뜩찮았다. 환갑 줄에 들어선 채지애 해녀의 엄마도 현역 해녀다. 그는 스파르타식으로 딸을 가르치며 복잡한 심경을 드러낸다. 이 땅 어머니라면 누구라도 동감할 내용이다. 그런 엄마의 시선은 이 영화에서 세 번째 주인공에 가까운 역할을 선보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반부는 그렇게 극명히 대비되는 두 해녀 각각의 삶을 묘사하는데 주력한다. 현순직 해녀의 다사다난한 물질 경력은 제주를 넘어 독도까지, 동해와 남해를 모두 아우른다. 그렇게 하루하루 생과 사의 갈림길을 넘나들며 물질을 해 가족을 부양했다는 것을, 문안전화로 이제 물에 좀 그만 들어가시라고 타박하는 막내아들의 염려가 증언한다. 산전수전 베테랑이라지만 '숨비소리'의 교차 사이로 언제든 삶과 죽음이 결정되는 고된 일이 수월할 리 없다. 동료 해녀들의 죽음과 자신이 숱하게 겪어온 생사의 갈림길을 그는 담담히 증언하곤 한다. 자식들 모두 집 한 채씩 사주고 번듯하게 독립시켰다는, 실로 심금을 울리는 독백과 함께 눈이 펑펑 쏟아지는 사이로 노쇠한 몸을 이끌고 물질에 도전하는 순간이 교차한다.
반대로 채지애 해녀는 자식들은 이 일을 안 했으면 바랐을 선배 해녀들의 어쩔 수 없는 소망을 배반한 존재다. 하지만 그와 함께 대견하고 기특한 후계자 노릇이다. 전성기에 비해 1/6 이하로 줄어든 제주 해녀의 명맥을 잇는 몇 안 되는 희망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그가 하나씩 배워나가는 해녀로서의 기본기는 그저 아련하게 사라져가는 전통을 넘어 영화 전체에 계승과 복원의 생동감을 부여한다.
해녀들만 접근 가능하다는 비밀의 정원을 찾아서
중반부부터 영화는 해녀들이 작금에 처한 위기에 대해 조심스레 언급하기 시작한다. 물론 제작진은 사회고발 영화로 분위기를 급반전할 의도가 없다. 어디까지나 <물꽃의 전설>은 자연의 압도적인 풍광과 그 속에 일체화된 전문가들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데 주안점을 둔다. 하지만 카메라에 담는 대상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위해 보여줄 건 보여줘야 한다는 태도다. 막내 해녀가 진두지휘해 해녀들이 함께 양식장 폐수 방류에 항의하는 장면은 격렬한 시위 묘사와는 거리가 멀지만 평범한 일반인은 알 수 없는 해녀들의 시련을 충실히 전한다. 비단 양식장뿐만 아니라 난개발에 휩싸인 제주의 현실은 국가로부터 도움은커녕, 수탈에 희생당해온 해녀의 역사가 현재형임을 떠올리게 만든다.
보다 본격적으로는 해양생태계 파괴가 가속화되는 실상을 미사여구 없이 오직 '팩트'로 관객에게 보여주는 일군의 수중촬영 영상이 역할을 떠맡는다(그래서인지 이 영화의 오프닝에는 다른 이들에 앞서 촬영감독들의 이름이 맨 처음 소개된다. 그 만큼 공로와 비중을 존중하는 태도일 테다). 장기간의 촬영기간 덕분에 매년 단위로 동일한 해저를 촬영해 일지처럼 배열한 이미지는 굳이 복잡한 설명 없이도 해양생태계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음을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알린다.
바다 속 생태계 또한 육상의 그것과 별반 다를 바 없이 식물 같은 기반생물군이 융성해야 그곳을 터전 삼아 다양한 생물군이 유지될 수 있다. 감태같은 해조류가 숲을 이뤄야 소라나 전복이 보호받고 먹이를 구할 수 있다. 하지만 해양오염과 기후변화의 파괴적 작용은 우리가 외면하는 사이에 오랫동안 자체순환으로 이어져온 생태계를 급격하게 무너뜨리고 있었다.
어쩌면 자신은 물에서 최후를 맞고 싶지 않았을까 괜한 상상이 들 정도로 (미리 한 땀씩 바느질해 자신의 수의를 준비할 만큼) 바다에 애착을 가졌던 현순직 해녀는 2020년 10월부로 물질을 그만두었다. 물질을 그만둔 이후로 급속도로 머리가 새고 침울해진 그를 채지애 해녀가 마치 손녀가 할머니 챙기듯 돌본다. 훈훈하지만 슬픈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영화는 최고령 해녀와 최연소 해녀의 교류를 통해 해녀와 해녀의 우애, 문화의 전승을 묘사할 절호의 찰나를 포착하고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태도가 역력하다.
현순직 해녀를 비롯한 '대 상군' 해녀들은 구전으로만 전해지는 물속 지도를 갖고 있다고 한다. 마치 <해저 2만리>에서 네모 선장을 포함해 노틸러스 호의 승무원들만이 알고 있는 비밀의 해저지도처럼 말이다. 해녀들은 등급별로 물질이 가능한 영역이 전해져 있는데 다년간의 경험과 함께 타고난 폐활량이 뒷받침해야 접근 가능한 수심 조건에 의거한다. 그만큼 상군 해녀의 영역은 깊고 위험하지만 동시에 풍부한 수확을 가능케 하는 구역이다. 이제 가장 젊은 상군해녀가 된 채지애 해녀에게 현순직 해녀는 자신만이 제대로 접근 가능했던 환상의 영역, '들물여'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한다. 그곳에는 '물꽃'이 어우러진 비밀의 정원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채지애 해녀를 통해 자신은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는 그곳을 대리 체험하고픈 눈치다. 그렇게 채지애 해녀는 현순직 해녀의 길잡이로 만만찮은 모험에 도전한다. 그리고 도전의 결과는 영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영화는 의도치 않지만 관객은 떠올릴 쟁점들
'전설'이란 단어는 속물화된 'LEGEND'에 그치지 않는다. 리처드 매드슨의 소설 <나는 전설이다>는 역설적인 '전설'에 대해 정의한다. 세상 모든 인류가 죽거나 돌연변이가 된 상태에서 오직 유일하게 자신만 구시대의 인간으로 남았다면 정상성의 기준은 무엇이고 자신은 어떤 존재로 남게 될까에 대한 존재론적 회의가 좀비 공포장르의 효시라는 타이틀과 함께 해당 작품의 돋보이는 매력으로 작용한다. 소설에서 주인공이 자신이 '전설'이 되었음을 깨닫는 순간에 느끼는 전율이 오히려 더 '전설'의 본질적 의미에 적합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해녀 역시 어쩌면 후자에 더 부합되는 존재들일 테다.
해녀라는 집단의 출발은 후대에 덧붙여진 낭만적인 것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 제주는 봉건왕조 시절 온갖 특산품 공납 부역 때문에 시달리던 장소였다. 귤은 워낙 귀해서 일일이 나무마다 달린 숫자를 세어가며 통제했고, 부역에 지친 이들이 귤나무를 베려다 처벌을 당하는 사례가 허다했다고 한다. 하지만 공납에서도 가장 착취가 극심했던 건 섬이라는 특성상 풍부한 해산물이었다. '포작선'이라 불리는 작은 거룻배에 속박된 장정들은 수군 군선의 격군이자 온갖 해물 채취에 동원되었다. 수군이 '천역'이라 불리며 회피대상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계층이던 셈이다.
이들이 온갖 수단을 사용해 천역에서 탈출하거나 숫제 야반도주하는 등 '포작인'이 남아나지 않자 수령들은 꼼수를 써 여인들이 부역을 전담하도록 한 게 해녀의 출발인 것이다. 그렇게 제주 전역엔 전성기 기준 2만 명의 해녀가 활동했다고 전한다. 그들은 열심히 일해 가족을 먹여 살리고 그들만의 문화를 형성했다. 생사를 오가며 일하던 해녀들의 노동요는 '이어도 사나'였다. 노동요 치고는 흥겨움과는 아득히 거리가 먼 생과 사의 갈림길 묘사다. 그만큼 피할 수 없는 고된 노동의 곁에 항상 죽음이 도사리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해녀들 사이의 엄중한 위계와 협동의 강조는 자신들 외에는 구조 받을 수단이 없기에 필연적이었다. 근대 이후 잠수복이 도입되기 전까지는 거의 나체로 겨울에도 바다에 뛰어들던 작업방식은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개탄과 함께 허례허식을 초월하는 여성들만의 공동체문화로 양면성을 띄게 된다. '인어'의 전설은 적어도 동북아시아에선 듀공이나 매너티 같은 해양포유류가 아니라 해녀들의 목격담에서 비롯되었을 게 분명하다.
그런 해녀들의 여성공동체 문화는 이제 그 수명을 다 하고 서서히 사라져가는 중이다. 영화는 굳이 그런 쇠락에 대한 울분이나 항의를 소리 높여 웅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화면 속에서 내내 등장하는 초고령 해녀들만 봐도 쇠퇴에 대한 애잔한 정서는 감출 수 없다. 영화는 굳이 해녀의 역사와 기원에 대해 서술하진 않지만 관객은 자연스럽게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낭만적 대상이 아닌 지난한 삶을 품은 존재로 해녀를 재 정의하게 될 테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에선 유독 남정네들 보기가 힘들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천형 같은 고단한 물질을 요즘 식 표현이라면 '분유 값이라도 벌기 위해' 나섰던 강인한 여인들의 연대기이기 에 자연스런 귀결일 테다. 그리고 그렇게 전설이 된 직업군과 문화가 해양오염 때문에 소멸해가는 위험을 목도하게 만드는 결말부는 이 영화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자연스럽게 오염수 논란을 상기하게 만든다. '전설'을 끝장내는 건 현세의 탐욕이다. 그런 직무유기와 환경파괴를 막지 못한다면, 유래를 찾기 힘든 자생적인 지역/여성/노동문화의 진혼곡처럼 <물꽃의 전설>은 슬픈 전설로 끝날지도 모른다.
<작품정보>
물꽃의 전설 Legend of the Waterflowers
2022|한국|휴먼 다큐멘터리
2023.08.30. 개봉|92분|전체관람가
감독 고희영
출연 현순직, 채지애
촬영/사진 김형선
수중촬영 김원국
드론촬영 김주완, 고대로
음악 예민
기획/제작 영화사 숨비
배급/투자 ㈜영화사 진진
2022 27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
2023 20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한국경쟁
2023 33회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 공식초청
제주 성산읍 삼달리, 해녀들이 있다
▲ "물꽃의 전설" 스틸영화 스틸 이미지 ⓒ ㈜영화사 진진
이번 영화의 주 무대는 제주 성산읍 삼달리다. 이곳에는 87년 물질 경력의 현순직 해녀와 마을에서 가장 젊은 채지애 해녀가 있다. 영화는 이 둘 각자의 내력을 소개하고 그들을 둘러싼 변화의 흐름, 그리고 둘이 혈연관계인 것처럼 의미심장한 그들만의 의례를 치르는 순서로 큰 흐름을 이어나간다.
반면, 다년간의 제작기간 덕분에 촬영이 막바지에 도달했을 땐 나이가 제법 찼지만 영화 초반에는 30대 초반에 불과했던 막내 채지애 해녀는 현순직 해녀와 비교하면 증손녀라 해도 될 정도로 앳되다. 그의 엄마도 마을 해녀였지만 자식에겐 일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딸을 육지로 내보내 대학도 마치게 하고 다른 일자리를 얻어 정착시켰다.
하지만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와 해녀 일을 하겠다는 딸이 영 마뜩찮았다. 환갑 줄에 들어선 채지애 해녀의 엄마도 현역 해녀다. 그는 스파르타식으로 딸을 가르치며 복잡한 심경을 드러낸다. 이 땅 어머니라면 누구라도 동감할 내용이다. 그런 엄마의 시선은 이 영화에서 세 번째 주인공에 가까운 역할을 선보인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반부는 그렇게 극명히 대비되는 두 해녀 각각의 삶을 묘사하는데 주력한다. 현순직 해녀의 다사다난한 물질 경력은 제주를 넘어 독도까지, 동해와 남해를 모두 아우른다. 그렇게 하루하루 생과 사의 갈림길을 넘나들며 물질을 해 가족을 부양했다는 것을, 문안전화로 이제 물에 좀 그만 들어가시라고 타박하는 막내아들의 염려가 증언한다. 산전수전 베테랑이라지만 '숨비소리'의 교차 사이로 언제든 삶과 죽음이 결정되는 고된 일이 수월할 리 없다. 동료 해녀들의 죽음과 자신이 숱하게 겪어온 생사의 갈림길을 그는 담담히 증언하곤 한다. 자식들 모두 집 한 채씩 사주고 번듯하게 독립시켰다는, 실로 심금을 울리는 독백과 함께 눈이 펑펑 쏟아지는 사이로 노쇠한 몸을 이끌고 물질에 도전하는 순간이 교차한다.
반대로 채지애 해녀는 자식들은 이 일을 안 했으면 바랐을 선배 해녀들의 어쩔 수 없는 소망을 배반한 존재다. 하지만 그와 함께 대견하고 기특한 후계자 노릇이다. 전성기에 비해 1/6 이하로 줄어든 제주 해녀의 명맥을 잇는 몇 안 되는 희망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그가 하나씩 배워나가는 해녀로서의 기본기는 그저 아련하게 사라져가는 전통을 넘어 영화 전체에 계승과 복원의 생동감을 부여한다.
해녀들만 접근 가능하다는 비밀의 정원을 찾아서
▲ "물꽃의 전설" 스틸영화 스틸 이미지 ⓒ ㈜영화사 진진
중반부부터 영화는 해녀들이 작금에 처한 위기에 대해 조심스레 언급하기 시작한다. 물론 제작진은 사회고발 영화로 분위기를 급반전할 의도가 없다. 어디까지나 <물꽃의 전설>은 자연의 압도적인 풍광과 그 속에 일체화된 전문가들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데 주안점을 둔다. 하지만 카메라에 담는 대상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위해 보여줄 건 보여줘야 한다는 태도다. 막내 해녀가 진두지휘해 해녀들이 함께 양식장 폐수 방류에 항의하는 장면은 격렬한 시위 묘사와는 거리가 멀지만 평범한 일반인은 알 수 없는 해녀들의 시련을 충실히 전한다. 비단 양식장뿐만 아니라 난개발에 휩싸인 제주의 현실은 국가로부터 도움은커녕, 수탈에 희생당해온 해녀의 역사가 현재형임을 떠올리게 만든다.
보다 본격적으로는 해양생태계 파괴가 가속화되는 실상을 미사여구 없이 오직 '팩트'로 관객에게 보여주는 일군의 수중촬영 영상이 역할을 떠맡는다(그래서인지 이 영화의 오프닝에는 다른 이들에 앞서 촬영감독들의 이름이 맨 처음 소개된다. 그 만큼 공로와 비중을 존중하는 태도일 테다). 장기간의 촬영기간 덕분에 매년 단위로 동일한 해저를 촬영해 일지처럼 배열한 이미지는 굳이 복잡한 설명 없이도 해양생태계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음을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알린다.
바다 속 생태계 또한 육상의 그것과 별반 다를 바 없이 식물 같은 기반생물군이 융성해야 그곳을 터전 삼아 다양한 생물군이 유지될 수 있다. 감태같은 해조류가 숲을 이뤄야 소라나 전복이 보호받고 먹이를 구할 수 있다. 하지만 해양오염과 기후변화의 파괴적 작용은 우리가 외면하는 사이에 오랫동안 자체순환으로 이어져온 생태계를 급격하게 무너뜨리고 있었다.
어쩌면 자신은 물에서 최후를 맞고 싶지 않았을까 괜한 상상이 들 정도로 (미리 한 땀씩 바느질해 자신의 수의를 준비할 만큼) 바다에 애착을 가졌던 현순직 해녀는 2020년 10월부로 물질을 그만두었다. 물질을 그만둔 이후로 급속도로 머리가 새고 침울해진 그를 채지애 해녀가 마치 손녀가 할머니 챙기듯 돌본다. 훈훈하지만 슬픈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영화는 최고령 해녀와 최연소 해녀의 교류를 통해 해녀와 해녀의 우애, 문화의 전승을 묘사할 절호의 찰나를 포착하고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태도가 역력하다.
현순직 해녀를 비롯한 '대 상군' 해녀들은 구전으로만 전해지는 물속 지도를 갖고 있다고 한다. 마치 <해저 2만리>에서 네모 선장을 포함해 노틸러스 호의 승무원들만이 알고 있는 비밀의 해저지도처럼 말이다. 해녀들은 등급별로 물질이 가능한 영역이 전해져 있는데 다년간의 경험과 함께 타고난 폐활량이 뒷받침해야 접근 가능한 수심 조건에 의거한다. 그만큼 상군 해녀의 영역은 깊고 위험하지만 동시에 풍부한 수확을 가능케 하는 구역이다. 이제 가장 젊은 상군해녀가 된 채지애 해녀에게 현순직 해녀는 자신만이 제대로 접근 가능했던 환상의 영역, '들물여'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한다. 그곳에는 '물꽃'이 어우러진 비밀의 정원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채지애 해녀를 통해 자신은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는 그곳을 대리 체험하고픈 눈치다. 그렇게 채지애 해녀는 현순직 해녀의 길잡이로 만만찮은 모험에 도전한다. 그리고 도전의 결과는 영화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영화는 의도치 않지만 관객은 떠올릴 쟁점들
▲ "물꽃의 전설" 스틸영화 스틸 이미지 ⓒ ㈜영화사 진진
'전설'이란 단어는 속물화된 'LEGEND'에 그치지 않는다. 리처드 매드슨의 소설 <나는 전설이다>는 역설적인 '전설'에 대해 정의한다. 세상 모든 인류가 죽거나 돌연변이가 된 상태에서 오직 유일하게 자신만 구시대의 인간으로 남았다면 정상성의 기준은 무엇이고 자신은 어떤 존재로 남게 될까에 대한 존재론적 회의가 좀비 공포장르의 효시라는 타이틀과 함께 해당 작품의 돋보이는 매력으로 작용한다. 소설에서 주인공이 자신이 '전설'이 되었음을 깨닫는 순간에 느끼는 전율이 오히려 더 '전설'의 본질적 의미에 적합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해녀 역시 어쩌면 후자에 더 부합되는 존재들일 테다.
해녀라는 집단의 출발은 후대에 덧붙여진 낭만적인 것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다. 제주는 봉건왕조 시절 온갖 특산품 공납 부역 때문에 시달리던 장소였다. 귤은 워낙 귀해서 일일이 나무마다 달린 숫자를 세어가며 통제했고, 부역에 지친 이들이 귤나무를 베려다 처벌을 당하는 사례가 허다했다고 한다. 하지만 공납에서도 가장 착취가 극심했던 건 섬이라는 특성상 풍부한 해산물이었다. '포작선'이라 불리는 작은 거룻배에 속박된 장정들은 수군 군선의 격군이자 온갖 해물 채취에 동원되었다. 수군이 '천역'이라 불리며 회피대상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계층이던 셈이다.
이들이 온갖 수단을 사용해 천역에서 탈출하거나 숫제 야반도주하는 등 '포작인'이 남아나지 않자 수령들은 꼼수를 써 여인들이 부역을 전담하도록 한 게 해녀의 출발인 것이다. 그렇게 제주 전역엔 전성기 기준 2만 명의 해녀가 활동했다고 전한다. 그들은 열심히 일해 가족을 먹여 살리고 그들만의 문화를 형성했다. 생사를 오가며 일하던 해녀들의 노동요는 '이어도 사나'였다. 노동요 치고는 흥겨움과는 아득히 거리가 먼 생과 사의 갈림길 묘사다. 그만큼 피할 수 없는 고된 노동의 곁에 항상 죽음이 도사리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해녀들 사이의 엄중한 위계와 협동의 강조는 자신들 외에는 구조 받을 수단이 없기에 필연적이었다. 근대 이후 잠수복이 도입되기 전까지는 거의 나체로 겨울에도 바다에 뛰어들던 작업방식은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개탄과 함께 허례허식을 초월하는 여성들만의 공동체문화로 양면성을 띄게 된다. '인어'의 전설은 적어도 동북아시아에선 듀공이나 매너티 같은 해양포유류가 아니라 해녀들의 목격담에서 비롯되었을 게 분명하다.
그런 해녀들의 여성공동체 문화는 이제 그 수명을 다 하고 서서히 사라져가는 중이다. 영화는 굳이 그런 쇠락에 대한 울분이나 항의를 소리 높여 웅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화면 속에서 내내 등장하는 초고령 해녀들만 봐도 쇠퇴에 대한 애잔한 정서는 감출 수 없다. 영화는 굳이 해녀의 역사와 기원에 대해 서술하진 않지만 관객은 자연스럽게 이 영화를 보고 나면 낭만적 대상이 아닌 지난한 삶을 품은 존재로 해녀를 재 정의하게 될 테다.
그래서인지 이 영화에선 유독 남정네들 보기가 힘들다. 자신들에게 주어진 천형 같은 고단한 물질을 요즘 식 표현이라면 '분유 값이라도 벌기 위해' 나섰던 강인한 여인들의 연대기이기 에 자연스런 귀결일 테다. 그리고 그렇게 전설이 된 직업군과 문화가 해양오염 때문에 소멸해가는 위험을 목도하게 만드는 결말부는 이 영화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자연스럽게 오염수 논란을 상기하게 만든다. '전설'을 끝장내는 건 현세의 탐욕이다. 그런 직무유기와 환경파괴를 막지 못한다면, 유래를 찾기 힘든 자생적인 지역/여성/노동문화의 진혼곡처럼 <물꽃의 전설>은 슬픈 전설로 끝날지도 모른다.
<작품정보>
물꽃의 전설 Legend of the Waterflowers
2022|한국|휴먼 다큐멘터리
2023.08.30. 개봉|92분|전체관람가
감독 고희영
출연 현순직, 채지애
촬영/사진 김형선
수중촬영 김원국
드론촬영 김주완, 고대로
음악 예민
기획/제작 영화사 숨비
배급/투자 ㈜영화사 진진
2022 27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
2023 20회 서울국제환경영화제 한국경쟁
2023 33회 유바리국제판타스틱영화제 공식초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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