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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는 볼 수 없는, '선진국 한국'의 섬뜩한 광고

3년 만에 방문한 한국... 이 사회는 '전체주의'로 가고 있는가

등록|2023.09.07 11:45 수정|2023.09.07 15:17

▲ 경복궁, 광화문, 정부서울청사가 보이는 서울 도심 야경. ⓒ 권우성


선진국이 '앞서가는 나라'를 지칭한다면 한국은 명실공히 선진국이다. 3년 만에 돌아본 나의 조국에서 절실히 느낀 바다. 여기가 고지라고, 이쪽이 대세라고 깃발이 나부끼면 우린 전속력을 다해 그리로 달려가는 데 최적화된 5천만의 공동체다. 그곳이 유토피아든 디스토피아든.

인간을 소외시키는 터치스크린

제법 규모가 있는 카페에서부터 고속도로 휴게소의 호두과자 판매점까지 이젠 터치스크린 주문이 대세가 됐다. 사람들은 빠르게 이 새로운 문화에 적응해 가는 분위기다. 한 브런치 카페, 카운터에 있는 직원에게 주문을 하려고 입을 떼니 턱으로 뒤에 있는 스크린을 가리키며 카드가 있으면 주문은 손으로 하시란다. 감정이 소거된 기계적 언어로.

어차피 기계가 주문받는 일을 떠맡기 전, 전국의 카페 직원들은 '주문받는 직원 앱'이 깔린 인조인간처럼 같은 톤, 같은 어휘, 같은 표정으로 말했었다. 기계를 흉내 내던 인간은 결국 기계에 의해 대체됐다.

직원은 현금으로 계산하는 극소수 손님이 사라지는 날 함께 사라질 자신의 역할을 여전히 기계를 흉내 내며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음식에 대해 자세히 물을 수도, 세트 메뉴에 변화를 줄 수도 없다. 철저히 변수를 차단하는 방식이다. 실수하면 원점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이런 방식이 업주에게 얼마나 큰 이득을 안기는지 모르겠으나, 인간은 한 걸음 더 인간들의 삶에서 소외되었다.    
 

무인주문기 앞 시각장애인시각장애인들이 12일 서울의 한 패스트푸드점을 찾아 무인주문기(키오스크)에서 실제 주문을 해보는 '내돈내산 권리찾기 캠페인'을 하고 있다. 사진은 한 참가자가 직원의 도움으로 메뉴를 고르는 모습. ⓒ 연합뉴스


일제히 선팅, 일제히 '한국식 스포츠웨어'

온 나라에 굴러다니는 승용차들의 창문이 까매졌다. 버스도, 택시도 없어서 경복궁 후문에서 결국 인사동까지 걸어가야 했던 상황. 약속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지나가는 승용차를 세워볼까 하다가, 모든 차들이 일제히 선팅을 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차 안에 사람이 보여야 인상 봐가며, 자리가 비어있는지 봐가며 시도해 볼 것 아닌가. 전혀 속이 보이지 않는 차들을 향해 차마 손이 올라가질 않았다. 검은 창은 세상의 시선을 차단한다는 신호. 사람들은 이렇게 다시 한번, 서로 간에 벽을 쳤다. 또 다른 차단의 도구가 일제히 확산됐다.

바닷가. 전통적 개념의 수영복을 입은 사람은 나와 딸 뿐이었다. 남녀노소 모두 대동단결, 허벅지와 팔을 덮는 기다란 스포츠웨어를 입고 있었다. 바다에는 왔지만 햇볕은 사양한다는 의미일까? 등산객들이 일제히 블랙야크식 유니폼을 입고 산에 오르듯, 마치 더 이상 바다에선 전통적인 수영복은 안 입기로 투표로 결의한 듯한 모습에 절망한 건 딸이었다.

비키니를 입고, 그 위에 이모가 사준 한국식 스포츠웨어를 걸쳤던 아이는, 이미 혼혈의 외모가 시선을 끄는 중에 지나치게 이목을 끌 것이 싫어 현지적응을 택했다. 아이에게 불과 몇 년 전까진 한국에서도 전통적인 수영복을 입는 문화가 있었다고 말해주었다. 두 가지 중 무엇이 낫다고 말할 순 없다. 다만 왜 일제히 모두 한가지 선택을 했는지가 의문일 뿐.

공공성을 잃은 교육과 의료
 

▲ 사진은 서울 신사역 안에 설치된 성형외과 광고. ⓒ 연합뉴스

여름 내내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다니며, 대한민국 광고 시장을 두 업종이 양분하고 있는 걸 보았다. 학원과 병원, 즉 교육와 의료다. 약 20년 전 '무상교육', '무상의료'를 내걸고 최초로 원내 진출에 성공했던 진보정당이 떠올랐다. 적어도 돈 없어 치료 못 받는 세상, 학교 못 가는 세상은 탈피하자는 주장이 그땐 제법 먹혀서, 10명의 의원을 당선시켰다. 그런데 20년 뒤, 이 둘은 한국에서 가장 장사가 잘되는 업종이 된 모양이다.

잘나가는 1타 강사의 소득세가 100억 원이 넘는 시대, 아이비리그 대학을 나와서, 한국 학원 강사를 하는 시대에 공교육은 만신창이가 됐다. 한국에 오자마자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이 터졌다. 강연장에서 만난 한 초등학교 교사는 학교가 완전히 무기력해졌다는 사실을 토로한다. 국어 시간에 작문 수업을 했더니, 다음날 학부모로부터 "교과서 진도나 나가시죠"라는 문자가 날아왔다. 동료 교사는 "당신이 그러면 우리만 괜히 비교당해" 튀지 말라 종용한다. 사건이 터지면 교장은 교사에게 모든 것을 떠넘기고 뒤로 숨는다. 그 상황에서 용기를 내는 건 무모한 자해행위다.

모든 학생은 결국 수험생의 정체성을 갖는다. 그들의 공통된 목표는 의대에 가거나, 그게 안 되면 스카이대학의 다른 과에 가는 것. 그런 와중에 "쓸데없이" 전인교육 따위 시키지 말라 학부모가 요구한다. 이 판의 승자들, 그래서 결국 의사가 된 사람들은 버스에, 지하철 전동차에, 역에, 스크린 도어에, 버스에, 심지어 대형마트 카트에, 아파트 엘리베이터까지 최신 장비로 시술과 수술을 한다며 학원 강사들과 같은 표정, 같은 포즈로 광고를 한다.

의사가 가장 확실하게 돈 잘 버는 직업이어서, 서울대 물리학과보다 부산의대가 더 인기 있어진 상황이니, 그들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려 모객에 열심인 것은 자연스럽다. 다만 구분하기 힘들 정도의 비슷한 표정, 비슷한 분위기로 학원 강사와 의사들이 광고지면을 도배하는 현상은 거부감을 안겼다.

20년간 프랑스에 살며 병원이 광고를 하는 걸 본 적은 없었다. 의사들은 자신의 이름과 업종이 새겨진 A4 크기 금속 패널을 병원 건물 입구에 간판처럼 붙일 뿐이다. 여기도 남부럽지 않은 울트라 자본주의 사회지만, 의료와 교육은 기본적으로 공공 서비스의 영역이란 인식이 있는 것이다. 돈다발을 흔들면 서비스 속도가 빨라지는 민간 병원이란 트랙이 공존할 뿐.

한국 사회 고도성장의 원동력이 높은 교육열에 있다지만, 가장 병든 지점도 교육인 것을 우린 잘 알고 있다. 아이들이 서로를 해하고 목숨을 던지던 학교에서 이젠 교사들이 그 뒤를 잇는다. 수능 고득점을 책임지지 못하는 학교는 시대가 요구하는 쓸모를 상실했고, 학원이 할 수 없는 보편적 교육의 역할도 하지 못한다.

수능에서 킬러 문항을 없애라는 지시를 대통령이 했을 때, 언론은 학교 교사가 아니라, 1타 강사들을 인터뷰했다. 학원의 힘이 비대해질수록, 한국 교육은 수렁에 빠졌고, 아이들은 그 속에서 독을 빨아야 했다. 이 아수라판에서 1타 강사들의 도움으로 킬러문항을 돌파하고 마침내 승리의 고지에 도달한 자들. 의료 기술을 가진 자영업자들이 재주껏 마케팅하며 고객을 유혹하는 사회의 보건 의료는 어떤 모습인가?

엄마를 모시고 한국 오자마자 병원을 들락거리며 관찰한바, 병원의 최대 관심사는 비싼 시술을 받겠다는 고객님의 사인을 신속하게 받아내는 데 있는 걸로 보였다. 종종 직업윤리를 잊지 않은 단단한 양심의 의사들이 있을 뿐. 그들의 과도한 욕심을 자제시키는 제도적 장치는 전무했다. 요란한 광고들과 더불어, 별도로 마련된 사무실에서 숙련된 어휘로 고객의 계약서 사인을 유도하는 상담 전문 직원의 태도가 병원의 속내를 웅변해 줬다.

에어컨의 최대치 가동
 

▲ 무더위에 여름철 최대전력수요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7월 23일 오전 서울 중구의 한 건물에 에어컨 실외기가 걸려있다 ⓒ 연합뉴스


어디를 가도, 최대치로 틀어 놓는 에어컨 때문에 가는 곳마다 실내에선 추웠고, 밖으로 나오면 따뜻해지는 탓에 더위를 감사히 여길 수 있었다. 에어컨은 역설적으로 더위를 고맙게 느끼게 해주는 기계였다. 국가 전체가 기후변화를 걱정하면서도, 거기에 적극 기여하는 에어컨의 최대치 가동에 대해선 한마음으로 무시한다.

실내 온도는 온전히 인간의 통제 하에 놓여야 한다고 믿고, 에어컨이든 난방기든 뭔가를 틀어줘야 한다고 부지불식간에 느끼는 걸까? 실내와 실외 온도 차가 극심할 때, 그것을 견뎌야 하는 인체의 면역력은 약화된다는 건강 상식은 끼어들 자리가 없다. 마치 문명의 이기를 최대치로 누려야만 '선진국'이라고 누군가 단단히 주입한 것처럼.

크루아상의 놀라운 가격

전국 구석구석에 일제히 고급 빵집들이 들어섰다. 서울 한복판뿐 아니라, 전남 벌교에, 경기도 시흥에, 부산 남천동에… 이 많은 제빵 장인들은 어디서 갑자기 나타나셨을까? 빵이라면 언제나 애틋한 내겐 반가운 소식이다. 이 개성 넘치는 고급 빵집들의 등장으로 파리바게뜨나 뚜레쥬르의 시대는 머잖아 저물 듯했다. 문제는 가격이다. 어차피 강남에 집은 못 사니, 빵에서라도 럭셔리한 삶을 구현하고픈 욕망의 저격일까?

경기도 부천에 있는 큰 규모의 빵집, 프랑스 밀가루로 만든다는 크루아상 1개에 5000원에 팔고 있었다. 파리의 평범한 빵집 크루아상 가격의 3배다. 그런데도 잘 팔린다. 빵만 그런 것이 아니다. 동네 대형마트에서 파는, 유기농도 아닌 풋사과 2kg에 1만 6000원을 줬다. 파리로 돌아와 유기농 가게에서 산 사과 2kg는 3.5유로(5000원)였다. 프랑스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이후, 에너지가의 상승으로 물가가 두루 올랐지만, 이렇게 미친듯 널을 뛴 적은 없다. 그동안 GDP도 상승했지만, 전반적 소비자 물가는 2배로 뛴듯했다. 불과 3년 만에.

또한 지난 10년, 서울 아파트값이 평균 224% 상승(2011~2021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기준, 다방 통계) 하는 동안, 파리 부동산 가격은 29.9% 올랐을 뿐(2013~2023, 프랑스공증인협회 통계)이다. 


녹색 공간에서의 여유

종종  마실을 다녔다. 가장 달콤했던 시간이다. 언니, 엄마와 함께. 때론 이 조합에 딸이나 근처 사시는 이모가 함께 했다. 언니는 하루도 빠짐없이 퇴근 후, 편찮으신 엄마와의 밤 산책을 위해 차를 몰고 왔다. 함께 '푸른수목원'에도 가고, 너른 정원이 있는 카페에도 갔다. 비가 올 땐 인근 쇼핑몰을 돌았다. 늘상 눕길 원하는 엄마도, 언니가 오면 기꺼이 몸을 일으켰다.

이모와 언니, 나, 이제 막 성인이 된 딸은 88세의 엄마를 부축하고 산책 시켜드려야 한다는 명분 하에, 달빛 아래 산책을 하는 여유를 누렸다. 여전히 끈적한 밤공기, 달라드는 모기떼에도, 그저 밍밍한 대화를 나누며 두런두런 걷는 것만으로 즐거웠다. 넓은 정원과 테라스를 가진 카페가 인근에 있고, 서울시가 조성한 광활한 녹색 공간 '푸른수목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시간이다. 수목원 곳곳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연꽃들의 존재가 우리가 누린 '럭셔리'한 시간의 정점에 있었다.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고, 소비하지 않는 시간, 함께 숲이 뿜어내는 청량한 공기를 마시고, 흙을 함께 밟으며 고운 시선을 주고받는 것으로 충만해지는 시간이었다.

여유로워진 마음의 사치를 누리는 건 우리 가족뿐이 아니었다. 커다란 호수를 낀 수목원을 거니는 모든 사람, 자연으로 둘러싸인 카페테라스에 앉은 모든 이들에게서 같은 표정이 읽혔다. 내려 놓고 쉬어가는 사람의 맑은 표정. 경의선 숲길에서도 같은 것을 보았다. 일터에서의 가면을 벗어놓고 긴장의 근육을 놓은 사람들의 편한 얼굴들을. 한 사회가 도시민들에게 선사할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이런 넉넉한 녹색공간이라 생각했다. 라디오에서 들은, 전국 곳곳의 지자체들의 황토 흙길 조성사업이 붐처럼 번진다는 소식은 듣던 중 반가운 얘기였다.

터치스크린 대신, '사람'이 있었네
 

▲ 헬싱키 공항 카페에서 발견한 100% 자연산 꿀 ⓒ 목수정


파리로 돌아오는 길, 헬싱키를 경유했다. 오전 7시, 인적 드문 카페에서 아침 식사를 주문했다. 공항답지 않은 착한 가격보다 심쿵했던 건, 온전히 인간의 태도로 여유있게 말하는 종업원이었다. '카페 알바생'모드로 작동하는 AI처럼이 아니라, 흔한 40대 아줌마처럼 웃고 말하는, 특별히 친절하지도 냉담하지도 않은 직원은 마땅히 인간이 또 다른 인간에게 건넬 수 있는 온기를 자기 방식으로 건넸다.

모종의 안도감이 밀려왔다. 커피에 첨가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정무역 설탕 옆에는 100% 자연산 꿀이 함께 놓여 있었다. 두번째 심쿵. 상술이기보다 만인을 위한 배려로 읽혔다.

당시 헬싱키 기온 12도. 5시간 동안 머물러야 했던 공항에서, 반팔로 버티기엔 추웠다. 즐비한 명품 매장들 사이로 중고 옷 가게가 눈에 보였다. 3유로짜리 재킷을 사서 얼른 주워 입었다. 더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해 모두 바쁘게 힘겹게 돌진하는 세상에서, 주어진 오늘을 제 속도로 살아가는 인간들의 세상으로 내려온 기분. 그것이 내 나라를 떠나 헬싱키 공항 카페에서 맞이했던 안도감의 실체였다.

출산율 0.7... 이젠 다른 길로 가보자
 

▲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6월 인구동향'에 따르면 올해 2분기 합계출산율은 0.7명이다. ⓒ 픽사베이


효율과 속도, 편리, 부에 모든 가치를 부여하며 달려온 결과, 우린 많은 것을 얻었고, 또 잃었다. 40일 동안 다시 발견한 한국 사회는 올더스 헉슬리가 <멋진 신세계>라는 역설적 이름으로 그려낸 디스토피아를 향해 누구보다 앞서 도달하겠다고 돌진하는 사회로 보였다.

기계 앞에서 커피를 주문해야 하듯, 기계 앞에서 단 2분 만에 필요한 서류를 뗄 수 있는 편리함을 우리 사회는 갖췄다. 웬만한 강의들은 인강으로 이뤄지고, 기계가 시험을 채점을 하여 승자를 결정한다. 그리고 그 한 줌의 허무한 승자들을 위해 모두가 고통의 들러리를 선다. 말 그대로 경이로운 세상이다.

'편리'함으로 가장된 이 비정한 세상에 저항없이 빨려드는 사이, 우리 사회는 한층 더 전체주의에 다가섰다. 전체주의는 집단의 이해를 위해 작동하는 듯하나 실질적 수혜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우린 손에 쥘 수도 없는 누군가의 이득을 위해 일치단결하여 서로를 소외시키고, 스스로를 삶에서 소외시킨다. 한 개인, 한 집단이 전체주의를 주창할 순 있지만, 그것은 다수의 암묵적 동의에 의해서만 완성된다. 우리는 북한과는 또 다른 방향의 전체주의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이 방향에 문제가 있다는 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2분기 대한민국 합계출산율은 0.7을 찍었다. 곧 0.6으로 달려갈 전망이란다. 생명체가 태어나길 거부하는 세상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이 길이 대세라고 하면 좀 의심해 보고, 게으름도 펴보고, 딴청도 피면서 딴 길로 좀 가보면 어떨까? 기껏 가면 쓰고 기계처럼 일했더니, 다가오는 결과는 기계에 의해 대체되는 것이라면 말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기를 쓰고 직진할 것인가. 누구 좋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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