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교육부 '중징계' 협박? 아무렇지도 않다" 연차쓰고 서울 올라온 교사들

[현장] 서이초 사망교사 추모집회 앞둔 국회앞... "존중받기 위해 나왔다, 마지막 집회 아냐"

등록|2023.09.04 16:54 수정|2023.09.04 16:54

▲ '고 서이초 교사 49재 추모집회'가 4일 오후 4시 30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렸다. ⓒ 복건우

  

▲ '고 서이초 교사 49재 추모집회'가 4일 오후 4시 30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렸다. ⓒ 복건우


충북에서 초등교사로 일하는 황아무개(38)씨는 4일 오늘 하루 연가를 내고 서울로 올라왔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황씨의 학교는 당초 연가·병가를 사용하겠다는 대다수 교사들을 고려해 재량휴업 참여 의사를 밝혔으나, 교육부의 강경대응 방침에 이를 철회했다.

그럼에도 황씨는 연가 신청을 회수하지 않았다. 그는 "오늘이 마지막 집회라고 생각하지 않고 우리의 교실을 바꿔나가기 위해 함께하겠다. 흩어지지 않고 함께 목소리를 내겠다"라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의 한 초등학교 교사로 일한다는 이아무개(50)씨도 이날 하루 병가를 쓰고 일찍부터 국회 앞 집회에 합류했다. 27년차 경력의 이씨는 올해 3월 처음으로 교권침해 사례를 겪었다. 동료 교사들의 반복되는 죽음에 무기력함과 공포를 느꼈지만, 그는 거리로 나와 목소리를 내기로 했다.

이씨는 "오늘 집회에 나오기 전 교장선생님이 '여러분을 보호해주지 못하는 찢어진 우산밖에 되어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셨는데, 더는 교육부의 선의에 기대어 내 인생을 맡길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교육부 장관이 중징계를 내리겠다고 하지만 그건 우리들에게 아무런 협박이 안 된다. 우리가 처한 현실이 고쳐질 수 있도록 끝까지 함께하겠다"라고 말했다.

서이초 사망 교사의 49재 날인 4일 오후 국회의사당 앞. 황씨와 이씨처럼 '공교육 멈춤의 날'에 참여하려는 교사들이 이곳으로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교육부가 이들의 집단행동을 불법행위로 규정하고 엄정대응에 나선다고 했지만, 교사들은 연가·병가를 내는 것을 택했다. 주최 측은 평일임에도 "1만여 명이 모일 것"으로 내다봤다.

"진상규명이 추모다", "교권보호합의안 의결하라"
 

▲ '고 서이초 교사 49재 추모집회' 주최 측이 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 마련된 집회 장소에 국화를 내려놓고 있다. ⓒ 복건우

 

▲ '고 서이초 교사 49재 추모집회' 주최 측이 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집회를 준비하며 "진상규명이 추모다"라고 적힌 피켓을 바닥에 놓고 있다. ⓒ 복건우


집회 2시간 전인 오후 2시 30분부터 국회의사당 주변에는 검은 옷을 입은 교사들이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주최 측은 400m에 이르는 집회 구역을 차도와 인도로 나누기 위해 붉은색 노끈과 청테이프를 아스팔트 바닥에 붙이고 있었다. 참가자들에게 나눠준 손팻말에는 큰 글씨로 "진상규명이 추모다", "교권보호합의안 의결하라" 등의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교사들은 추모와 분노의 감정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동료 교사들의 반복되는 죽음에 대한 안타까움과 정부를 향한 비판과 질책이 대부분이었다.

전남의 초등학교 교사 안아무개씨는 "서이초를 기점으로 너무 많은 동료의 죽음을 목격했다. 재량휴업을 실시한 학교라 아침 일찍 국회로 나왔는데, 방금 제주도 한 선생님의 죽음을 전해 듣고 또 반복되는 상실감과 분노를 느꼈다"며 "서이초 선생님에 대한 추모와 진상규명, 저희가 학생들을 잘 가르칠 수 있는 안전하고 존중받는 교육환경을 위해 목소리를 내겠다"라고 말했다.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에서 일하는 40대 특수교사는 "집회를 시작한 지 7주가 지났는데 진상규명을 비롯해 아무런 변화가 없다. 더 이상 집에만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지난주 집회부터 참석하고 있다"며 "선생님들의 죽음은 당장 내일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학교 책임자와 교육청이 책임을 전가하는 시스템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건 어렵겠지만, 교사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도록 제대로 안심하고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었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 교사 주아무개(36)씨는 "저는 병가를 내고 집회에 참석하긴 했지만, 학교가 재량휴업을 하기로 했다가 (교육부가 징계하겠단 공문을 보고) 이를 철회하면서 흔들린 동료 교사들도 많다"며 "우리의 연가·병가 사용은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루빨리 교육 현장에 변화가 만들어져서 동료 선생님들의 마음이 덜 아팠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교육부 행태 개탄... 오히려 현장 혼란 부추겨"
 

▲ '고 서이초 교사 49재 추모집회'가 4일 오후 4시 30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렸다. ⓒ 복건우


이날 전국 초등학교 중 30곳이 재량휴업을 결정하고(1일 오후 5시 기준), 여러 교사들이 연가·병가를 사용해 이날 추모집회에 참석 의사를 밝혔다. 교육부 관계자는 이날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정례 브리핑에서 "기존 원칙이 바뀌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천경호 실천교육교사모임 회장은 "많은 교사들이 연가·병가를 낸 사실을 교육부가 사전에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고, 학교장 재량으로 임시휴업을 안내한 학교도 많았는데 이들을 징계하겠다는 건 오히려 현장의 혼란을 부추기는 행동"이라며 "민주적인 학교 문화를 존중하지 않는 교육부의 행태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장대진 서울교사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연가·병가 사용은 교원의 정당한 권한이고, 임시휴업 결정 권한 역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라 교육부가 아닌 교장에게 있다"라며 "교사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지는 추모 집회에 대해 교육부가 위법하다고 몰아가는 것은 교사를 겁박하는 행태에 불과하며 즉각 시정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집회를 주최한 교사 모임 '한마음으로 함께하는 모두'는 이날 성명을 내어 "교육부는 9월 4일 '공교육 멈춤의 날'에 참여하면 징계, 해임, 파면한다며 법적 근거도 없이 교사들을 협박했다"며 "교육부는 교사와 교장을 향한 징계 협박을 당장 철회하고 본분에 맞게 교사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교사들은 같은 시각 열리는 전국 지역별 집회에서도 목소리를 낼 예정이며, 저녁 7시부터는 교대생들이 지역별 교대를 중심으로 교사의 교육활동 보장을 촉구하는 추모제를 연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