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교사의 연대 "선생님들 이렇게 모인 건 처음 봐... 나도 힘 싣겠다"
[현장] 서이초 교사 49재, 공교육 멈춤의 날... 부산 2500여명 교사들 추모집회
▲ 서이초 교사 49재인 4일, 부산시교육청에 열린 부산 교사 추모집회에서 한 참가자가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 김보성
"1900여 명이 모였습니다."
"2500여 명이 모였습니다."
4일 오후 5시 30분. 마이크를 든 사회자가 1900여 명이 모였다고 참가자 집계 결과를 발표했다. 애초 예상했던 1000여 명을 훌쩍 뛰어넘는 숫자였다. 그러나 검은 점들은 끝이 없었다. 이로부터 20분이 지나 인원 조정이 또 이루어졌다. 사회자는 250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고 다시 공지했다. 건물을 제외하면 부산시교육청 안이 검은 옷의 교사들로 가득 채워지는 순간이었다.
"교육부와 교육청은 현장의 목소리 들어라"
묵념이 끝나고 숨진 교사를 추모하는 영상과 함께 이하이의 '한숨' 노래가 흘러나오자, 현장의 분위기가 엄숙해졌다. 일부는 끝내 슬픔을 참지 못하고 쉴 새 없이 눈물을 훔쳤다. 고개를 숙인 한 교사는 한참 동안 얼굴을 들지 못했다.
그러나 목소리는 선명했다. 갓 부임한 신규 교사부터 수십 년 차 고참 교사까지 이들이 가장 크게 외친 구호는 '진상규명'과 '교육할 권리'였다. 서이초 교사를 비롯해 학교 현장에서 고통에 시달리다 숨진 동료들을 대신해 이들은 "억울한 죽음의 진상을 파악하고, 교권보호법 법안을 제정해야 한다"라고 강하게 요구했다.
현장에는 젊은 교사들이 상당수 눈에 띄었다. 참가 이유를 묻자 2년차 초등교사인 A씨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두 달째인데 왜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느냐. 결국 또 다른 선생님들이 죽어 나가고 있다"라고 답답함을 표출했다.
▲ 서이초 교사 49재인 4일, 부산시교육청에 교사 25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부산 교사 추모집회가 열리고 있다. ⓒ 김보성
▲ 서이초 교사 49재인 4일, 부산시교육청에 교사 25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부산 교사 추모집회가 열리고 있다. ⓒ 김보성
"때린 아이 학부모님께 전화로 상황을 설명해 드렸더니 처음엔 모두 자녀의 잘못이라고 하셨으나 맞은 아이의 학부모님과 통화한 이후로 태도를 바꾸어 중재하던 저에게 화살이 돌아왔습니다."
마이크를 잡고 발언에 나섰던 13년차 초등교사 B씨는 "부담스럽지만 두려움의 한복판으로 들어가려 한다"라며 자신이 겪고 있는 현장의 어려움을 생생하게 설명했다. 그는 일부 학부모들의 압박에 "겁이 나고 두려움을 느꼈다"라며 "그래도 동료들이 있어 버티고 있다"라고 말했다.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들도 발언을 보탰다. 숨진 교사와 같은 2년차인 D씨는 "서이초 사건을 지켜보며 많이 공감할 수밖에 없었고, 이렇게 느끼는 저의 모습에 대한 절망감도 가졌다"라며 "이는 우리나라 교육현장 실태에서 오는 감정이었다. 고인도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또 다른 2년차 교사인 E씨는 "견디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개선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라며 참았던 말을 어렵사리 꺼냈다. 이어 그는 "교사들이 마음 놓고 교육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달라"라고 호소했다.
차례대로 말이 끝나자 "살인적인 악성민원 교육청과 교육부가 책임져라"라는 구호가 메아리처럼 뒤따랐다. 사회자의 선창에 참가자들은 격렬한 호응을 보였다. 이들은 부적절한 악성 민원으로부터 교사를 보호해 죽음의 행렬을 끝내야 하지만 안일한 교육당국이 되레 강경대응에 나서고 있다고 규탄했다.
▲ 서이초 교사 49재인 4일, 부산시교육청에 교사 25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부산 교사 추모집회가 열리고 있다. ⓒ 김보성
▲ 서이초 교사 49재인 4일, 부산시교육청에 교사 25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부산 교사 추모집회가 열리고 있다. ⓒ 김보성
연대도 이어졌다. 현장에는 공교육 멈춤의 날 지지선언을 호소한 두 아이의 엄마인 학부모와 부산시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새로운학교부산네트워크, 실천교육교사모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부산지부 등 4대 교원단체도 힘을 보탰다. 이들은 "끝까지 같이 하겠다"며 교사들을 응원했다.
주위에 어둠이 내리자 LED 촛불이 등장했다. 참가자들은 스마트폰 카메라 불빛으로 주변을 밝히며 하윤수 부산시교육감과 교육당국에 바라는 점을 적어 다 함께 들었다. 그리고 행사는 준비한 성명서 낭독으로 마무리됐다.
"9월 4일 고 서이초 선생님의 48재인 오늘까지도 우리는 누가 무엇이 선생님을 죽음으로 내몰았는지 여전히 아는 바가 없습니다. 서이초 선생님의 비극은 결코 한 개인의 탓이 아닙니다. 무엇이 이런 사태를 만들었는지 최소한의 인권조차 보호받지 못했는지 한 점 의심없이 밝혀야 합니다."
이번 집회에 대해 올해 초 퇴임한 교사라고 밝힌 한 참가자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힘을 주려고 나왔다는 그는 "부산교육청에서 선생님들이 이렇게 많이 모여 구호를 외치고 변화를 요구한 것을 처음 본다"라고 말했다. 중요한 건 이날 집회가 시작이라고 봤다. 그는 "이런 기세라면 추가 행동이 계속될 것"이라며 "주최 측도 멈추지 않겠다고 했고, 징계 운운하거나 법개정을 통해 사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나 또한 시민으로 힘을 실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서이초 교사 49재인 4일, 부산시교육청에 교사 25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부산 교사 추모집회가 열리고 있다. ⓒ 김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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