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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시 참변 책임론까지 꺼낸 여당... "언제까지 홍범도 모욕할 건가"

[대정부질문-정치] 거듭된 흉상 철거 논란에 합리화만... 연구자들 "무지한 언동"

등록|2023.09.05 18:08 수정|2023.09.05 18:08

▲ 국방부가 육군사관학교 교내뿐 아니라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 홍범도 장군 흉상에 대해서도 필요시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힌 28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 앞에 설치된 고 홍범도 장군 흉상 모습. ⓒ 연합뉴스


육군사관학교 내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와 관련해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는 여권이 이번에는 '자유시 참변 책임론'으로 반격을 시도하고 나섰다. 급기야 국회 본회의장에선 "언제까지 홍범도 장군을 모욕할 건가"라는 항의가 터져나왔다.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은 5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홍범도 장군의 육사 흉상을 둘러싼 논란이 있는데 약간 맥락을 잘못들 이해하고 계신 것 같다"며 "일본이 만주를 석권하자 수많은 독립군이 불가피하게 소련 영토로 들어갔더니 소련이 독립군 무장해제를 요구했다. 그때 홍범도 장군이 무슨 입장인지 아는가? 볼셰비키의 무장해제를 받아들였다"라고 했다. 이어 "김좌진 장군 등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며 "(소련군이 그들을) 전차로 학살했다"고 말했다.

여당, '홍범도는 육사 생도 귀감 못된다'는 논리만 계속

최 의원은 "육사 생도들은 장래 우리 대한민국 군대를 이끌 사람들"이라며 "아마도 홍범도 장군 같은 딜레마에 처할지 모른다. 불가피한 상황에서 남의 나라 영토에 들어갔더니 무장해제를 요구한다. 볼셰비키 군에서 복무하길 요구한다. 그때 육사 생도라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라고 물었다. 김영호 통일부장관은 "우리 생도라고 한다면 당연히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답변했다.

그러자 최 의원은 "홍범도 장군 논란이라는 것은 홍범도 장군의 공산당 입당 이력 논란이 아니다"라며 "바로 육사생도가, 장차 육군을 이끌 장군으로 클 사람들이 그런 상황에서, 무장해제를 요구받는 상황에서..."라고 발언했다.

이때 한 야당 의원이 "홍범도 장군을 모욕하지 마십쇼! 무슨 말입니까, 이게!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대한민국의 근본을 생각하십쇼!"라고 소리쳤다. 최 의원은 "홍범도 장군이 그런 무장해제를 거부했나"라며 "역사를 공부 제대로 하시고"라고 반박했다.

최 의원은 거듭 "홍범도 장군은 무장해제를 받아들였다"며 "그래서 홍범도 장군의 독립행적을 우리가 부인하는 게 아니라 육사 생도에게 어떤 리더십을 가르칠 것인가(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야당 의원들은 계속 항의를 이어갔다.

"무슨 얘기를 하는 겁니까? 지금 말장난 하는 거 아닙니까?"
"언제까지 홍범도 장군을 그렇게 모욕할 겁니까?"


최 의원은 "역사 공부 좀 하시라. 자유시 참변도 모르면서"라고 쏘아붙였다. 그의 주장은 8월 28일 국방부가 배포한 '육사의 홍범도 장군 흉상 관련 입장' 자료와 동일하다. 당시 국방부는 "공산주의 이력이 있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육사에 설치하여 기념하는 것은 육사의 정체성을 고려 시 적절하지 않다"고 했을 뿐 아니라 "홍 장군은 1921년 6월 러시아 공산당 극동공화국 군대가 자유시에 있던 독립군을 몰살시켰던 참변과 연관돼 있다는 의혹이 있다"고 했다.
 
구체적으로, 1991년 한·소 수교 직후 발굴한 소련 측 정부문서에 따르면, 홍범도 장군이 1930년대에 소련 정부로부터 연금을 받기 위해 작성한 이력서에 "자유시 유혈사태에 대해 보고하기 위해 한인 빨치산 지대 대표단원 자격으로 레닌 동지를 만나러 모스크바로 갔다"로 되어 있다는 것임.

자유시 참변사태는 1921년 6월에 자유시에서 무장해제를 거부한 독립군이 공격당한 사건을 말하는데, 홍범도 장군은 순순히 무장해제하는 편에 섰다는 평가임. 이때 독립군측이 400명에서 600명까지 사망하였고, 약 500명이 재판에 회부되었다고 하는데, 당시 홍범도 장군이 독립군을 재판하는 위원으로 참가한 것임. 따라서, 홍범도 장군은 청산리 전투에서 같이 싸웠으나 무장해제를 거부하고 만주로 돌아간 김좌진, 이범석 장군 등과는 다른 길을 간 것임.

"홍범도가 재판관 된 이유? 독립군 석방 노력"

하지만 연구자들은 자유시 참변과 홍범도 장군은 무관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홍범도 평전> 저자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은 지난 8월 30일 YTN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 인터뷰에서 "우리 독립군끼리 자유시 참변이 일어났는데, 왜 홍범도 장군이 재판장을 맡았느냐. 독립군,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는 '공정한 장군'이어서 맡았고 엄청난 비극사태였는데도 단 몇 사람에게만 유죄 판결을 내렸다"라고 반론을 폈다.

"홍범도 장군을 왜곡하고 욕하는 사람들, 어떤 사람은 마치 홍범도 장군이 그 재판과정에서 수백 명을 유죄판결해서 죽인 걸로 얘기하는데 그것은 우리 독립군을 도와줬다고 해서 민간인들을 학살한 일본군을 죽인 것이다. 참 무지한 언동이다."

같은 날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한 <민족의 장군 홍범도> 저자 이동순 영남대학교 명예교수 역시 "제가 국방부 문서를 봤는데 너무 유치찬란했다"며 "어떻게 한 정부의 부서를 대표하는 기관이 이렇게 치졸한 문장을 쓰고 있는지 굉장히 의문이 간다"고 평했다. 또 "홍범도 장군은 자유시 참변이 일어났던 그 당시에는 이르쿠츠크로, 잠깐 무슨 회의에 참석한다고 떠났는데 바로 그날 사태가 일어났다"며 "(참변 당시) 거기 계시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그 소식을 듣고 황급히 와보니까 길가에 시신이 널브러져 있고 어마어마한 동족상쟁이 타국에서 펼쳐졌다"며 "통곡하면서 시신을 땅에 묻고, 현장을 정리하고 나중에 재판관이 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홍 장군이 재판관을 자청한 이유 또한 "어떻게든지 (생포된 독립군을) 석방시키려는 혼신의 노력을 당신이 하시겠다고 했고, 최종적으로 한 30명이 감옥에 갇히고 나머지는 다 석방됐다"고 덧붙였다.

[관련 기사]
윤석열 정권이 생각하는 홍범도의 '죄목' 살펴보니 https://omn.kr/25ey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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