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가사노동자가 저출생 해결? 싱가포르 현지서 확인한 사실
서울시, 육아-돌봄 비용 낮출 방안으로 언급... 싱가포르는 공적 돌봄체제 열악, 한국과 달라
▲ 오세훈 서울시장 ⓒ 연합뉴스
인구 560만 명, 면적은 서울의 1.2배인 도시국가 싱가포르는 다문화·다인종 사회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한국, 대만, 홍콩과 함께 빠른 경제성장으로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라고 불린 작지만 강한 나라 싱가포르. 이 작지만 강한 나라 싱가포르가 요즘 화제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대한민국의 저출생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외국인 가사노동자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싱가포르 사례를 계속 언급했기 때문이다.
오 시장의 논리는 단순하다. 요즘 젊은 부부들이 육아-돌봄 비용 부담이 너무 비싸서 아이를 낳지 않는 선택을 하고 있으니, 육아-돌봄 비용을 낮추어서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만들자는 것이다. 육아-돌봄 비용을 낮출 수 있는 방안은 바로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저렴하게 '수입'해오자는 것이다.
싱가포르의 외국인 가사노동자 제도를 둘러싼 오해와 진실 그리고 한국 사회가 싱가포르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을 것인가를 탐구하기 위해 지난 6월 나는 싱가포르에 현지조사를 다녀왔다.
싱가포르는 1978년부터 인근 국가 출신의 여성들을 외국인 가사노동자로 고용하기 시작하였다. 이 당시 활발한 경제성장 시기에, 여성들의 육아 및 가사노동에 대한 부담을 줄여 여성의 경제 활동참여를 높이기 위한 목적이 가장 컸다고 한다.
싱가포르 인력부 Ministry of Manpower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싱가포르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가사노동자는 총 24민6300명이다. 싱가포르에서는 소비자가 직접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고용하고, 고객의 가정에서 함께 거주하는 입주형을 기본 원칙으로 한다.
싱가포르는 정부에서 지정한 12개 송출국(방글라데시, 홍콩, 인도, 인도네시아, 마카오, 말레이시아, 미얀마, 필리핀, 한국, 스리랑카, 대만, 한국) 출신 여성만 외국인 가사노동자로 취업할 수 있으며, 연령 제한(23세~50세), 학력 제한 (최소 8년의 정규교육 이수자)이 존재한다.
싱가포르에서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고용하려는 자는 21세 이상, 파산자가 아닐 것, 고용주로서의 책임과 관련 규정을 이해하고 수행할 정신적 능력이 있는 사람일 것, 가족 구성원 중 돌봄이 필요한 구성원(노인 또는 아동)이 있을 경우이며, 가사노동자가 이용 가능한 숙소 공간 및 재정적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싱가포르 외국인 가사노동자의 임금 수준
과연 싱가포르에서 38만 원에서 76만 원이면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을까? 이미 여러 언론보도에서 밝혀졌듯이, 오세훈 시장이 말한 월 38만 원~76만 원 사이의 비용은 단순히 외국인 가사노동자가 수령하는 월급만을 의미할 뿐이었다. 가구 내 고용 방식으로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고용하는 싱가포르에서는 외국인 고용 보증금, 고용안정비 및 각종 보험 및 외국인 가사노동자의 왕복 교통비 및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고용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에이전시 비용 등을 고려하면, 고용주가 부담해야 할 비용은 결코 적지 않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싱가포르에서 일하는 외국인 가사노동자의 임금은 싱가포르의 1인당 GDP 약 USD 7만3000에 비해 매우 낮다. 싱가포르는 국가 수준의 최저임금제도가 없을 뿐만 아니라, 외국인 가사노동자에 대한 공식적인 임금 가이드라인 등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싱가포르 주재 송출국 대사관에서 싱가포르 에이전시들에게 자국 출신 가사노동자의 최저임금 수준을 권고하고 있으며, 이 수준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본국에서 해외취업허가를 내주지 않는 방식으로 시장임금이 결정되고 있다.
예를 들어, 외국에서 가사노동자로 취업하고자 하는 필리핀 국민은 월급 기준 USD 400 이상으로 체결된 계약서를 제출해야만 해외취업 허가서가 발행된다. 따라서, 싱가포르 내 에이전시들은 이 금액 이상을 기준으로 계약서를 작성해야만, 필리핀 출신 가사노동자를 싱가포르에 데려올 수 있다.
이러한 송출국 대사관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고용주와 외국인 가사노동자 간 협의로 임금을 결정하는데, 주목할 점은 출신국 및 경력에 따라서 시장임금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싱가포르에서 가장 월 임금 수준이 높은 외국인 가사노동자는 필리핀 출신(최저 SGD 570)이며, 그 이유는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영어로 의사소통이 어려운 미얀마 출신의 경우 월 임금 수준은 SGD 450 정도라고 한다. 또한 싱가포르에서 일한 경력이 많은 가사노동자의 경우 그 경력을 급여에 인정받기도 하는데, 6년 이상의 싱가포르 내 근무경력이 있는 외국인 가사노동자의 월 급여는 대략 SGD 700에서 850 사이라고 한다.
한국, 싱가포르 가사노동자 제도를 따라가야 하는가?
싱가포르는 5가구 당 1가구 정도가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다.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중개하는 에이전시에 따르면,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고용하는 사람들의 수요는 주로 아이돌봄이라고 한다. 부모가 맞벌이인 경우가 많은 상황 속에서 아이를 돌봐주면서, 집안일을 함께 해주기 원하는 수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수요에는 싱가포르의 공적 돌봄체제의 열악함 역시 중요한 지점이라고 한다. 싱가포르에는 어린이집이 많지 않고, 어린이집 이용 가능 시간이 길지 않은 데다가, 비용도 비싸다고 한다. 이른바 영아반 이용 비용이 최소 월 SGD 1300 가량 들고, 유아반이라 하더라도 최소 월 SGD 720 가량 비용이 드는 상황에서, 싱가포르의 맞벌이 부부들은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이 더 저렴하기 때문에,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고용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번 싱가포르 현지조사에서 외국인 가사노동자 제도가 저출생 해결에 도움이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이를 만나보지 못했다.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중개하는 에이전시도, 이주민 지원센터 활동가도, 관련 문제를 연구하는 연구자도,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고용하는 소비자도 모두 싱가포르의 외국인 가사노동자 제도와 저출생 문제 해결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답했다. 통계를 보더라도, 싱가포르의 출생률은 매우 낮은 수준이고, 그 누구도 저출생 해결을 기대하면서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정책을 추진할 때, 해외 사례를 면밀히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그 맥락과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살피지 않은 채, 단순히 피상적인 사실의 나열만으로는 우리 사회에 적합한 제도를 설계하고 정책을 추진하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은 싱가포르와는 다르게 어린이집 무상보육 및 국-공립 어린이집 확대를 통해 공적 돌봄 체제를 강화해오고 있는 현실 속에서, 공적 돌봄 체제가 약한 국가에서 공적 책임 대신 개인의 책임을 강조해왔던 싱가포르의 제도를 우리가 따라할 필요가 있을까? 그리고, 외국인 가사노동자가 저출생이라는 한국 사회의 중차대한 문제를 해결해줄 것으로 기대한다는 사람들은 이 중요한 문제를 해결해주러 오는 외국인에게 최저임금 적용 제외가 아니라, 최저임금보다 훨씬 더 많은 임금을 주자고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번에 싱가포르 현지조사에서 나는 외국인 가사노동자 제도가 저출생 해결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외국인에 대한 착취와 인권 침해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여러 이해관계 당사자들로부터 직접 현장에서 확인했다. 설사, 외국인 가사노동자 제도가 저출생 해결에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도, 외국인에 대한 착취에 기반하여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가 과연 건강한 사회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그래서, 작금의 외국인 가사노동자 제도 도입을 둘러싼 논의는 우리 사회가 돌봄 노동의 가치를 얼마나 낮게 평가하고 있는지, 그리고 외국인을 얼마나 도구적으로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한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낸 '국제적으로 망신스러운 일'인 것 같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조혁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입니다. 이 글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9,10월호 '특집' 꼭지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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