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부친 물고 늘어지는 보훈부장관의 우문, 놀랍다
[김종성의 히,스토리] 문용형과 백선엽의 서로 다른 길
▲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이 6일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에 출석, 의원 질의에 답한 뒤 숨을 돌리고 있다. ⓒ 연합뉴스
문재인 전 대통령이 12일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을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경남 양산경찰서에 고소했다. 박민식 장관이 문 전 대통령의 아버지인 고 문용형을 친일파 백선엽과 같은 부류로 평가해 망자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이유다.
박 장관은 지난 6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백선엽이 스물 몇 살 때 친일파라고 한다면, 문재인 대통령의 부친인 문용형 그분도 거의 나이가 똑같다. 그 당시 흥남시 농업계장을 했다"라며 "흥남시 농업계장은 친일파가 아니고, 고 백선엽 만주군관학교 소위는 친일파냐?"라고 물었다. 그런 뒤 "어떤 근거로 그렇게 한쪽은 친일파가 되어야 하고 한쪽은 친일파가 안 되어야 하느냐?"라고 발언했다.
지난 7월 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백선엽에 대해 "공부할수록 친일파가 아니다"고 말한 박 장관이 백선엽을 '만주군관학교 소위'로 지칭하는 것 역시 어색하다. 2년제인 만주국 중앙육군훈련처(봉천군관학교)를 졸업한 뒤 소위가 되고 중위가 된 친일파를 '만주군관학교 소위'로 불러 학생 이미지를 부여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
문 전 대통령 측은 박 장관의 발언에 담긴 또 다른 오류를 지적했다. "부친이 흥남시청 농업계장을 하신 것은 일제 치하가 아니라 해방 후의 일"이라고 설명했다. 박 장관이 의도한 게 아니었을지라도, 백선엽의 계급은 낮추고 문용형의 직급은 높인 것은 보기가 좋지 않다.
문용형이 계장이 된 것은 해방 이후라는 지적에 대해 '그게 그거 아니냐'는 식의 반론이 국민의힘에서 나왔다. 보도에 따르면,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국회 정무위원회 간사)는 12일 원내대책회의에서 "각종 자료를 검토해보면 흥남농고는 1936년 입학, 1940년 졸업하면서 일제시대에 보통문관시험에 합격했다고 나온다"라고 발언했다.
그런 뒤 "시험에 합격하고 5년 동안 일제시대에 이미 하급 직원이었든 주임이었든 거기까지 갔으니 해방 이후에 농업계장이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민식 장관이 사전에 팩트 체크를 하지 않은 사실을 간접적으로 인정하면서도, 농업계장이 되는 데 필요한 여건이 일제 때 이미 충족된 것 아니냐는 식의 엉터리 반론을 제기한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의 고소 사실이 알려지자 박민식 장관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고소에 대한 입장문'을 통해 반격에 나섰다. 12일 페이스북에 실린 이 글에서 그는 "저는 문 전 대통령 부친 문용형씨를 친일파로 일방적으로 몰아가거나 비판을 한 바 없습니다"라고 항변했다. 그런 뒤 발언의 취지를 이렇게 해명했다.
"'백선엽 장군이든 문재인 전 대통령 부친이든 그 삶을 함부로 규정지어선 안 된다. 일제강점기라는 아픔의 시대를 살았던 모든 사람들에게는 같은 기준, 같은 잣대가 적용되어야 한다'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친일청산을 훼방하는 방법
▲ 지난 12일 박민식 장관이 페이스북에 올린 '문재인 전 대통령의 고소에 대한 입장문' ⓒ 페이스북
친일파냐 아니냐를 판단할 때 일관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지난 6일 국회에서 그런 발언을 했다는 해명이다. 여기에 깔린 전제가 하나 있다. 백선엽의 행위와 문용형의 행위가 별 차이가 없다는 시각이 그것이다. 둘 다 비슷한데 왜 한쪽만 친일파로 규정하느냐는 항변이 발언에 묻어 있다.
일본제국주의를 위해 무엇 하나라도 도움을 준 일이 있다면, 그런 사람은 친일파로 규정돼야 할까? 만약 그렇게 한다면, 일제강점기를 살았던 모든 사람이 친일파로 규정될 것이다. 자발적이건 아니건 조선총독부에 세금 한 푼이라도 낸 일이 있는 사람은 전부 다 친일파의 오명을 쓰게 될 것이다.
우리 사회의 친일청산 수준이 미흡한 것은 사실이지만, 친일파의 범주를 무한정 확대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이는 친일 문제의 책임 소재를 불분명하게 만들고 친일청산의 동력을 떨어트린다. 청산 주체보다 청산 대상이 다수가 되게 만드는 것도 친일청산을 훼방하는 방법 중 하나다.
백선엽은 명명백백한 친일파다. 일본 괴뢰국인 만주국에서 항일투사 잡는 간도특설대의 장교로 부역했다. 그는 1993년 일본에서 펴낸 <대게릴라전, 아메리카는 왜 졌는가>에서 자신의 부대가 "소규모이면서도 군기가 잡혀 있는 부대였기에 게릴라를 상대로 커다란 전과를 올렸던 것"이라며 "우리들이 추격했던 게릴라 중에는 많은 조선인이 섞여 있었다"고 회고했다.
백선엽은 자신이 독립군을 상대로 "커다란 전과"를 올린 사실을 회고록에 직접 썼다. 이래서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친일파가 됐다. 1993년 회고록을 쓸 당시에 심신미약이었음이 입증되지 않는 한, 그는 친일반민족행위자임을 부인할 수 없는 인물이다.
그런데 문용형 같은 하급 행정관료는 사정이 다르다. 일본제국주의하에서 공직을 지낸 것이 칭찬받을 만한 일은 물론 아니지만, 해방 이후의 한국 사회가 일제하의 모든 관료를 친일파로 규정한 사례가 없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친일청산이 거의 이뤄지지 않아 친일청산 요구가 항상 높았던 이 나라에서도 친일파의 범주를 그렇게 무한정 확장한 적은 없었다.
친일청산 열기가 가장 뜨거웠던 1948년 9월 22일에 제정된 반민족행위처벌법(반민법) 제4조는 "칙임관 이상의 관리되었던 자"(제3호)와 "관공리되었던 자로서 그 직위를 악용하여 민족에게 해를 가한 악질적 죄적이 현저한 자"를 친일 행정관료로 규정했다. 일왕이 직접 임명하는 칙임관 같은 고등관, 악질적 죄적이 현저한 그 외의 관리나 공공기관 직원을 친일파로 한정했던 것이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3월 22일 제정된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반민족규명법) 제2조 제16호는 "고등문관 이상의 관리 또는 군경의 헌병분대장 이상 또는 경찰 간부로서 주로 무고한 우리 민족 구성원의 감금·고문·학대 등 탄압에 압장선 행위"를 행정관료의 친일로 규정했다.
2009년에 발행된 <친일인명사전>은 2004년 반민족규명법보다는 1948년 반민법에 좀 더 가깝다. <친일인명사전> 부록인 <금단의 역사를 쓰다, 18년의 대장정> 내의 '친일인명사전 수록 선정 기준'은 "고등관 이상의 관리로 재직한 자와 친일행위가 뚜렷한 일반 관공리"를 친일파로 규정했다.
국가보훈부 장관의 우문
▲ 지난 7월 5일 경북 칠곡 다부동 전적 기념관에서 열린 고 백선엽 장군의 동상 제막식에서 박민식 보훈부 장관, 백선엽 장군의 장녀 백남희 여사, 이철우 경북도지사, 이종섭 국방부 장관 등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문용형은 고등관이 아니었다. 2007년에 <역사와 현실> 제63호에 실린 장신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의 논문 '일제하 조선인 고등관료의 형성과 정체성'은 "통상 고등관은 군수, 도청의 과장급인 이사관 또는 도경시로 시작한다"고 말한다. 군수나 도청 과장은 돼야 고등관이라고 했다. 시청 계장보다 하급이었던 문용형은 이 범주에 들지 않는다.
문용형 같은 하급 관료의 경우에는 "악질적 죄적이 현저"(반민법)하거나 "친일행위가 뚜렷"(친일인명사전)하다는 증거가 나와야 친일파로 규정될 수 있다. 문용형의 경우에는 그런 물증이 나오지 않았다. 국민의힘이 제시한 것은 고등문관시험이 아닌 보통문관시험에 합격한 이력뿐이다. 이를 두고 '악질적 죄적이 현저"하거나 '친일행위가 뚜렷"하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박민식 장관은 백선엽과 문용형에 대해 "같은 기준, 같은 잣대"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말은 두 사람이 똑같이 친일파이거나 똑같이 친일파가 아닐 때에나 해야 한다. 한쪽은 명백한 친일파이고 한쪽은 증거가 없는 이런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박민식 장관은 '1920년생 만주국군 중위 백선엽'과 '1920년생 흥남시 농업계장 문용형'을 비슷한 지위의 인물로 간주하고 두 사람에 대해 동일한 기준을 적용할 것을 촉구했다. 백선엽은 실제로는 중위였고 문용형은 실제로는 계장이 아니었지만, 박 장관은 백선엽은 소위이고 문용형은 계장이었다는 전제하에 그런 주장을 했다.
20대 초반의 위관급 장교와 20대 초반의 시청 계장은 지위 차이가 그리 크지 않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일본군국주의하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군부와 정우회가 정권을 장악한 1927년 이후의 일본은 고도의 군국주의 국가였다.
군대의 위상이 크게 고조된 그런 상황에서는 장교의 권한이 동급 행정관료보다 훨씬 강력할 수밖에 없다. 문용형이 설령 농업계장이었다 할지라도, 그 위상은 중위 백선엽보다 한참 낮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지위 차이에 더해, 행위 측면에서도 두 사람은 판이했다. 백선엽은 항일 게릴라를 소탕한 무용담을 회고록에 기록함으로써 자신이 친일 지위에 있었을 뿐 아니라 친일행위까지 저질렀음을 스스로 노출했다. 반면, 문용형은 계장보다 낮은 지위에 있었다는 점 외에는 친일행위가 드러나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백선엽은 친일파로 규정되고 문용형은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은 아무 문제도 없는 일이다. 이는 두 사람에 대해 이중 잣대를 적용한 결과가 아니다. 두 사람이 서로 다른 길을 걸은 것이지, 동일한 길을 걸은 두 사람에게 서로 다른 잣대를 적용한 결과가 아니다.
박민식 장관은 "어떤 근거로 그렇게 한쪽은 친일파가 되어야 하고 한쪽은 친일파가 안 되어야 하느냐?"고 물었다. 이런 물음은 이 시대의 상식에 어울리지 않는, 특히 국가보훈부 장관에게는 더욱 어울리지 않는 우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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