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전 고문에 지금도 무릎 아파... 그 경찰 살아 있다는데"
진홍근, 진실화해위 '국가보안법 위반 고문.가혹행위 인권침해사건' 조사개시 통보 받아
▲ 진홍근 (사)경남유월민주항쟁정신계승시민연대 이사 ⓒ 뉴스사천
"40년도 훨씬 이전에 당했던 고문 때문에 지금도 무릎이 아프다. 당시 저를 고문했던 공안경찰의 이름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재판을 받는 법정에 그들이 왔길래, 교도관들을 물리치고 포승줄에 묶인 채 기어가서 그들을 향해 말했다. 대대손손 자식들도 편하지 못할 거라고. 그 고문경찰이 지금도 살아 있다고 하니 무어라고 말하는지 알고 싶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아래 진실화해위)로부터 '국가보안법 위반 고문·가혹행위 인권침해사건' 조사개시 통보를 받은 진홍근(58) (사)경남유월민주항쟁정신계승시민연대 이사가 17일에 한 말이다.
진 이사는 지난해 12월 진실화해위에 진실규명 신청을 했고, 이후 진실화해위 조사관이 그를 찾아와 기초조사를 하기도 했으며, 이번에 조사개시 결정이 나온 것이다.
'남도주체사상연구회 수괴'로 지목돼 비녀꽂이 고문까지 당해
경상국립대학교 의과대학에 다니던 그는 1989년 1월, 어느날 새벽에 진주시 주약동에 있었던 자취방에서 경찰관들한테 끌려갔다. 당시 진주경찰서 대공과로 잡혀간 그는 온갖 고문을 당고 검찰에 송치되었고, 재판에서 집행유예를 받아 풀려났다. 그가 구속되어 있던 기간은 80여 일 정도였다.
경상국립대 동아리 '풀무회' 회원이었던 그는 '남도주체사상연구회'의 수괴로 지목되었고,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았다. 그는 "당시 경찰·검찰은 녹두출판사에서 펴냈던 책 <세계철학사Ⅱ> 외 1점의 출판물을 소지하였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을 적용하였다"라고 말했다.
당시는 노태우정부 때였다. 그는 "당시 노태우정부가 정권유지의 수단으로 민주주의를 탄압한 것이고, 이른바 '공안탄압'이 되었던 때였다"라며 "정권은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을 심각하게 침해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지금 다시 기억해 보니, 당시 경찰관이 저를 끌고 가면서 영장도 제시하지 않았던 것 같다"라며 "자취방에 있다가 새벽에 영문도 모른 채 체포되어 경찰서 대공과로 끌려갔다"라고 했다.
진 이사는 거기서 온갖 고문을 받았다. 그는 경찰로부터 '각목 구타'를 물론 '잠 안재우기'에다 손과 발을 뒤로 묶어 작대기를 끼워 놓는 이른바 '비녀꽂이' 고문을 당했다고 했다. 그때 당했던 고문으로 인해 지금도 오른쪽 발목과 무릎이 좋지 않다.
그는 "검찰로 넘겨졌을 때는 고문은 없었지만 하루 종일 가두어 놓았고, 할 일이 없어 수갑으로 '조국통일 만세'라는 글자를 시멘트 벽에 팠던 기억이 난다"라고 말했다.
그는 "경찰은 온갖 고문을 가하면서 제가 '남도주체사상연구회'의 수괴이고 사상교양의 내용과 조직체계의 전말에 대한 자백을 하라고 강요했다"라며 "거의 보름에 걸친 고문수사가 견디기 힘들어 경찰서 건물 5층 옥상에서 뛰어내리기를 시도했으나 대공수사관에게 다리가 붙들리는 바람에 실패했다"고 술회했다.
그는 "당시 대학 내 합법적인 동아리인 풀무회 지도교수 고 손학모 교수는 물론이고, 노점상 아버지를 비롯한 가족들이 생업을 제쳐두고 구명활동을 하였다"라며 "당시 지역 국회의원이던 고 조만후씨가 진주경찰서를 방문하여 나를 만났으며 조사를 다짐하고 위로하기도 했다"라고 밝혔다.
"그 책을 펴낸 사람은 지금 장관이 됐고, 소지한 사람은 고문당하고..."
▲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는 진홍근씨에 대해 '국가보안법 위반 고문·가혹행위 인권침해사건’ 조사개시 통보를 했다. ⓒ 윤성효
진홍근 이사가 당시 소지하고 있었던 책인 <세계철학사Ⅱ>는 당시 녹두출판사에서 펴냈다. 이는 진주 출신으로, 현재 김영호 통일부 장관이 1980년대 말에 발행인으로 있었던 녹두출판사에서 펴냈던 책이다. 김영호 장관은 당시 녹두출판사 운영으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실형을 치르기도 했고, 지금은 대북 강경론으로 바뀌었다.
이 책과 관련해 진 이사는 "그때 책을 펴냈던 사람은 지금 장관이 되어 있고, 그 책을 소지했던 사람은 고문을 당하고 유죄를 받았다는 게 말이 되느냐"라고 했다.
진 이사는 "'남도주체사상연구회' 수괴라는 엄청난 혐의를 들씌운 채 체포하여, 합법 서적 2권 소지 등의 죄 아닌 죄목으로 국가보안법을 남용하여 구속하였다. 당시 법정 최후진술에서 밝혔거니와, 이와 같은 이현령비현령의 법적용이야말로 국가보안법이 모법인 헌법을 잡아먹는 살모사법이 되는 차고 넘치는 이유가 되었다. 마구잡이로 잡아들이면 무조건 남는 장사가 되었으니, 바로 이것이 당시 대공수사의 관행이었다"라고 했다.
그는 "당시 저는 의대(본과) 재학생이었으므로, 그 이후 인생 전반에 걸친 피해는 실로 막심했다. 마땅히 국가는 저처럼 민주주의를 외치다가 반헌법적인 정권 유지의 볼모로 잡힌 피해자들에게 진실화해위의 재조사와 재심, 그리고 그에 따른 국가배상으로 양심과 청춘을 돌려 줘야 할 것"이라고 했다.
진 이사는 "민주주의를 주장한 청춘과 양심에, 국가가 보안법 위반의 굴레를 씌운, 오욕의 20세기 역사를, 21세기의 22번째 해가 저무는 이 마당에도, 바로잡지 못하는 민족에게, 어떤 민주적 미래를 기대하겠는가"라고 했다.
그는 "신청서에 대해 확인하기 위해 진실화해위 조사관이 찾아와서 이야기를 나누었다"라며 "그때 저를 고문했던 경찰관의 이름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고, 그 이름을 조사관한테 알려주었더니, 그 사람이 아직 살아 있다고 하더라"라고 했다.
진홍근 이사는 1983년 경상국립대 의과대학 의학과에 수석 입학했고, 민주화운동을 이유로 1990년에 유급 제적되었고, 2021년 2월 25일 대학으로부터 '명예학사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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