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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선수들의 부진, 한국야구 미래도 암울

국대 에이스 후보 보이지 않아, 국제경쟁력 하락에도 영향

등록|2023.09.23 11:59 수정|2023.09.23 11:59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있는 야구대표팀이 결국 엔트리 일부 교체를 단행했다. 투타의 핵심 선수들이 이탈하며 전력누수에 대한 우려도 크지만, 매끄럽지 않은 교체 과정과 절차 문제를 놓고 야구계가 시끄러웠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KBSA) 경기력향상위원회와 KBO 전력강화위원회는 지난 9월 21일과 22일, 이틀에 걸쳐 야구대표팀 최종명단 교체를 발표했다. 발목 수술로 시즌 아웃된 외야수 이정후(키움) 자리에 김성윤(삼성)을, 왼팔 척골 피로골절 여파로 정상 구위를 회복하지 못한 투수 구창모(NC) 대신 김영규(NC)를 발탁했다. 이어 투수 이의리(KIA)도 제외하면서 외야수 윤동희(롯데)가 막차로 대표팀에 승선하게 됐다.

부상에 시달린 이정후와 구창모의 교체는 불가피한 결정이었다. 김성윤은 올시즌 98경기에서 타율 .313 73안타 2홈런 27타점 38득점 19도루 OPS 0.763을 기록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장타력은 떨어지지만 대신 컨택과 주루 능력이 출중하고 좌타에 코너 외야수를 맡을 수 있다는 게 이정후의 대체자로 발탁된 배경이다.

구창모의 팀동료이기도 한 김영규는 선발이 아닌 좌완 불펜 자원이다. 올 시즌 59경기에 2승4패 21홀드 평균자책점 3.34를 기록하며 NC 불펜진의 핵심으로 활약했다. 시속 140km 중후반의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스플리터 구위가 출중하다는 평가다.

다만 이의리의 탈락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이의리는 9월들어 선발로 나온 3경기에서 8.2이닝 평균자책점 11.42로 매우 부진했다. 지난 9월 9일 LG전에서 역시 손에 물집이 잡혀 4.1이닝만 던지고 강판됐다. 이후 물집을 회복하고 21일 대전 한화전에 나섰지만 1.2이닝 동안 제구 불안을 드러내며 2안타 3볼넷 3탈삼진 5실점(4자책)으로 무너졌다. 류중일 감독도 현장을 방문하여 이의리의 투구를 직접 지켜봤고, 하루 뒤에 이의리를 전격 교체하는 결정을 내렸다.

논란이 된 것은 교체사유와 이의리의 몸상태였다. 국가대표 소집을 불과 하루 앞두고 선수를 교체하는 것은 다소 이례적이다. 대표팀은 '이의리가 부상에서 회복 중이나, 대회 기간 최상의 경기력을 보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교체 사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선수와 KIA 구단 측은 물집은 이미 아물었고 몸 상태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항변하고 있다.

한편으로 류중일 감독의 고뇌도 이해해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대표팀은 항상 최상의 결과를 이끌어내야 하는 부담이 크고, 특히 병역혜택이 걸린 아시안게임은 무조건 금메달이 아니면 실패로 치부되는 대회다. 성적이 나지않을 경우 가장 먼저 모든 결과를 책임지는 것은 감독이다.

류중일 감독으로서는 당연히 컨디션만 좋다면 누구보다 최고의 선수들을 데려가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감독 입장에서 확신이 들지 않는다면 이름값이 높은 선수이거나 억지로 데려간다고 해도 제대로 활용하기 어렵다.

대표팀은 이의리의 대체자로 투수가 아닌 야수 윤동희를 선택했다. 올시즌 신인왕 후보로 꼽히는 윤동희는 100경기에 출전하여 타율 .296, 106안타 2홈런 39타점 41득점 2도루 OPS .701를 기록중이다.

윤동희의 발탁은 우타자와 외야수 보강을 위한 선택이다. 류중일호에 우타자는 노시환(한화), 김형준(NC), 김동헌(키움)에 스위치 타자인 김주원(NC)을 포함해도 4명뿐이었다. 전문 외야수도 이정후가 부상으로 낙마하면서 최지훈(SSG), 최원준(KIA)이 전부였다. 대체로 좌타자인 김성윤과 윤동희가 가세하게 되면서 대표팀은 외야진 운영에도 다소 여유가 생기게 됐다.

하지만 대표팀은 보강된 타선에 비하아여 그만큼 마운드 운영에 있어서는 부담이 더 커지게 됐다. 최종확정된 대표팀 투수 엔트리는 11명이다. 여기서 좌완 선발 자원이었던 구창모와 이의리가 모두 낙마하면서 문동주(한화), 원태인(삼성), 박세웅, 나균안(이상 롯데), 곽빈(두산)까지 우완 선발투수들만으로 대회를 소화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가뜩이나 연령제한 등으로 이전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비하여 전력이 약해졌다는 평가를 받는 류중일호로서는 국제대회에서 가장 중요한 투수력에 불안감을 안고 대회에 나서야 한다.

한국야구가 2000년대 후반 중흥기에 베이징올림픽,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프리미어 12, 아시안게임 등 국제대회에서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원동력은 투수력이었다. 특히 류현진-김광현-윤석민-양현종 등으로 대표되는 80년대생 투수 '빅4'는 국제대회에서 한국이 가장 믿을수 있는 에이스들이었다.

역대 최고의 투수로 꼽히는 류현진은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로는 더 이상 대표팀에 참여하지 못했지만 출전한 대회마다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윤석민은 선발과 불펜을 넘나드는 전천후 요원으로 오히려 국내보다 국제전에서 더 빛을 발한 투수였다. 김광현과 양현종은 야구대표팀 최다이닝 1,3위, 최다 경기 출전 등을 기록하며 30대 중반까지 태극마크를 달고 꾸준히 대표팀에 기여한 소나무같은 선수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한국야구에서는 '류·김·윤·양'의 계보를 이을 확실한 국대 에이스 후보가 보이지 않는 실정이다. 현재 KBO리그 최고의 국내 선발투수로 꼽히는 안우진은 학폭 논란으로 국가대표로 발탁될 수 있는 길이 막혔고 올시즌에는 팔꿈치 부상으로 수술대까지 올랐다. 구창모는 기량은 출중하지만 벌써 몇 년째 부상에 발목이 잡히며 내구성에 심각한 물음표가 붙고 있다. 이의리도 탈락하면서 귀중한 국제경험을 쌓고 한 단계 스텝업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국대 에이스에 걸맞은 무게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실력은 기본이고, 건강과 멘탈, 자기관리 같은 여러 가지 요소들이 충족되어야 한다. '류·김·윤·양'은 이미 20대 초반의 나이에 모든 검증을 마치고 국제무대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투수로 찬란하게 빛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한창 다양한 커리어를 쌓아야 할 젊은 투수들이 부상-부진-개인사 등으로 국제대회 출전조차 좌절되는 양상이 반복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최근 한국야구의 거듭된 국제경쟁력 하락과도 맞물려 더 안타깝게 느껴지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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