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옛적 이야기에 눈물이 자동으로 흐르는 이유
[리뷰] 영화 <1947 보스톤>
▲ 영화 <1947 보스톤> 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해외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곁에 있어 잘 몰랐는데 떨어져 봐야 소중함을 깨닫는 알 수 없는 마음이 < 1947 보스톤 >을 통해 되살아났다. 뭉칠 기회가 자주 없었을 뿐 잠재된 애국심은 언제든지 발휘될 수 있었다. 강제규 감독의 주특기인 신파와 국뽕이 제대로 마음을 저격한다. 아는 맛이라 더 무서운 익숙한 눈물, 실화를 바탕으로 한 감동과 애국심을 한껏 끌어모은다.
영화는 광복 이후 손기정 감독(하정우), 남승룡 코치(배성우), 서윤복 선수(임시완)가 엮이게 되는 과정을 충분히 설명하는 데 시간을 할애한다. 처음부터 힘을 쏟으면 페이스 조절에 실패하는 마라톤처럼 구성했다. 전반부는 다소 지루할 수 있으나 후반부 보스톤 마라톤 경기부터 뒷심을 발휘하게 된다.
국민 영웅 손기정의 마라토너 육성 스토리
▲ 영화 <1947 보스톤> 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손기정과 남승룡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나란히 1위와 3위로 시상대에 섰다. 치욕스럽게도 일장기를 달고 기미가요가 울려 퍼지는 상황을 경험했다. 그들이 겪은 나라 없는 설움이 대를 이어 반복하길 원하지 않았다. 반드시 차세대를 위한 방편을 마련하겠다고 다짐 했다.
그로부터 10년 후, 해방을 맞이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손기정은 화분으로 일장기를 가렸다는 이유로 선수 자격을 박탈당해 더 이상 달릴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제2의 손기정을 찾기 위한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난민으로 취급받던 대한, 나라의 독립을 알리기 위해 국제 대회에 참가하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청년들에게 먹고살기 힘든 상황, 마라톤은 먼 나라 이야기였다. 두 사람은 재능과 열정은 있지만 하루하루가 고된 청춘을 붙들고 달려야만 하는 이유를 만들어 준다. 생활고로 운동을 포기한 서윤복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과거를 딛고 미래로 나아가야 할 명문을 부여한다. 자신들은 일장기를 달았지만 후배들은 자기 이름과 국기를 달고 뛰게 해주겠다는 일념 하나로 고군분투한다.
지금도..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 영화 <1947 보스톤> 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왜 하필 70년도 넘은 옛날이야기를 지금 꺼내든 이유가 설명된다. 대한민국 선수단이 보스톤 마라톤 대회를 선택한 것과 맞물린다. 보스톤 마라톤 대회는 1775년 4월 19일 영국군의 공격에 맞선 투쟁을 기린 애국자의 날 행사 중 하나다. 1897년 1회를 개최하며 올림픽 다음으로 오래된 상징적인 대회이기에 뜻깊음이 배가된다. 조선과 미국의 기념비적 독립 투쟁 현장이 새겨진 의미 있는 상황과 자연스럽게 겹친다.
또한 몇 년간 힘들었던 팬데믹과 경제 불황을 겪은 국민들에게 용기와 위로를 전하려 의도된 밑그림이다. 혼란스러웠던 시절에도 목표를 향해 전력 질주한 승리자가 있었고, 과거가 쌓여 미래가 만들어진다는 게 공통점이다.
흔히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한다. 오르막과 내리막, 장애물을 넘나드는 긴 여정을 자기와의 싸움으로 이겨내야만 한다. 특별한 준비 없이 인내심과 지구력만 있으면 누구나 시작할 수 있는 운동이다. 나 혼자 달리는 거 같아도 코스와 작전을 상의할 감독과 코치, 응원하는 관중이 있어 완벽해진다. 인생도 혼자 태어난 것 같으나 부모, 가족, 친구, 타인을 만나 완주하는 동행인 셈이다.
특히 싱크로율 높은 인물 설정은 관객을 스크린 안으로 친절히 안내한다. 생계를 위해 인왕산과 무악재 고개를 타고 다녔던 서윤복의 경험이 밑거름 되어 스토리에 힘을 더한다. 잔잔하던 분위기가 전환되는 분기점은 보스톤 마라톤 대회 상심의 언덕을 넘으면서부터다. 나도 모르게 그들을 응원하게 되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다만 MZ 세대의 선택을 받을지는 의문이다. '나라가 개인을 위해 해 준 게 뭐가 있냐'던 영화 속 교민 백남현(김상호)의 대사가 떠오른다. 사골처럼 우려먹는 해방과 한국전쟁이란 소재가 고리타분하게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부모님과 함께 긴 연휴를 보낼 영화로 꼽는다면 괜찮은 선택이 될 수 있겠다. 확실한 부분에서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고 뭉클한 순간에 눈시울은 어쩔 수 없이 붉어질 테니까.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장혜령 시민기자의 개인 브런치(https://brunch.co.kr/@doona90)에도 게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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