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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에 다시 한번... 80년간 사랑받은 책의 비결

<생텍쥐페리의 문장들>에서 추억의 '어린 왕자'를 다시 만나다

등록|2023.09.30 19:18 수정|2023.09.30 19:18
책을 통해 책 너머의 세상을 봅니다. 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 3기입니다.[편집자말]
올해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출간 80주년이다. <어린 왕자>는 프랑스어로 쓰인 작품 중 전 세계에 가장 많이 번역된 책,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많이 팔린 책으로 소개된다. <어린 왕자>가 80년 동안 사랑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생텍쥐페리의 작품과 편지 등에서 문장을 고르고 엮은 <생텍쥐페리의 문장들>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80년이 지나도 유효한 이야기
 

▲ <생텍쥐페리의 문장들> 겉표지. ⓒ 마음산책


<생텍쥐페리의 문장들>은 '사랑과 우정과 연대', '인생의 의미', '자기만의 별을 찾아서', '석양이 질 때' 4개의 장으로 구성되었다. 첫 장 '사랑과 우정과 연대'는 잊고 있던 나의 젊은 날을 소환했다.

친구와 편지, 펜팔, 연애편지 등 손 편지를 썼던 1980~1990년대에 생텍쥐페리를 인용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너와 만나기로 한 1시간 전부터 행복하리라고, 수많은 장미 중에 소중한 꽃 한 송이가 된 것은 시간을 내줬기 때문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이다.

그뿐인가 "사랑은 서로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둘이 함께 같은 방향을 보는 거야 (30쪽)"라며 카페에서 남자친구 옆자리로 슬쩍 옮겨 앉기도 했었다. 노트나 다이어리 등 문구류에도 <어린 왕자> 그림이 많아서 따라 그렸던 기억이 난다. 당시 미소년 연예인들에게는 어김없이 <어린 왕자>란 수식어가 붙었다. 지금은 모두 나처럼 중년이 되었겠지.

2장 '인생의 의미'는 제목처럼 문장마다 삶에 대한 그의 진중한 통찰력이 배어있다. 그는 비행기 조종사로 하늘과 땅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치열하게 삶의 의미를 찾았다. 위험이 큰 직업 때문일까? 아니면 비행기 사고로 불시착한 사막에서 죽음을 직면한 경험 때문일까? 생텍쥐페리는 미래보다 현재에 더 무게를 두었다. 미래를 위한 행동일지라도 지금 그 자체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그 불변성이 내 기쁨을 빼앗아 가지는 않으며, 내가 손에 쥐고 있는 이 오렌지 반쪽이야말로 삶에 가장 큰 기쁨을 안겨준다고 생각한다. 나는 등을 대고 누워 오렌지를 빨아 먹으며 별똥별을 센다. 자, 나는 잠시 무한한 행복을 누린다. (93쪽)"

밤하늘을 날아도 땅에 누워도 그는 늘 별을 헤아렸나 보다. 3장 제목도 '자기만의 별을 찾아서'이다. 자연스럽게 '어린 왕자'가 살았던 별이 떠오른다. 양 한 마리와 바오밥나무, 화산 3개 그리고 가시를 4개 가진 장미가 있는 별 B612.

마침 '천왕산 책 쉼터'에서 2주간 (9월 13일, 20일) <어린 왕자> 낭독회가 열렸다. 참가한 5명이 한 쪽씩 돌아가며 읽었다. 20여 년 만에 다른 이의 목소리로 만난 <어린 왕자>는 유명하고 익숙한 문장도 새롭게 다가왔다. 내 차례가 아닐 때는 문장을 들으면서 그림도 그리고 메모도 했다.

어릴 때 나는 어린 왕자 편에 서서 '어른들은 이상해!'라고 생각했다. 이제 나이가 들어 50대에 다시 읽으니 각각 별에 혼자 사는 어른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본다. 명령하기 좋아하는 왕, 칭찬만 듣는 허영심에 빠진 사람, 창피함을 잊어버리기 위해 술 마시는 술꾼, 평생 재산을 계산만 하며 사업가, 일 분에 한 번씩 가로등을 켰다 껐다 하며 쉬는 것이 소원인 사람. 내가 삶에서 놓치고 있었던 것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 천왕산 책쉼터에서 열린 <어린왕자> 낭독회 ⓒ 전윤정


나이와 상관없이 언제 읽어도 새로운 감동을 주는 작품이기에 오랫동안 꾸준히 사랑받지 않았을까? 1943년 초판이 출간된 당시의 광고문구는 80년이 지난 지금도 유효하다.
 
"<어린 왕자>를 읽은 독자의 50%는 어린이를 위한 책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나머지 50%는 어른을 위한 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독자의 99%가 그들을 위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 4장 '석양이 질 때'는 전쟁의 암울한 기운이 가득하다. 전투기 조종사로 다시 입대한 그는 동료의 죽음을 통해 전쟁에서는 누구의 승리도 없다고 깨닫는다. 젊음에서 노년을 향해 가는 길목에 있는 쓸쓸함과 언제나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시간의 허무함 또한 더해진다.

그의 문장을 더 음미하고 싶다

생텍쥐페리는 모든 것이 파괴되는 전쟁 안에서도 평안과 희망을 찾았다. 작은 나무를 만나면 잎 몇 장을 뜯어 주머니에 넣고 부대로 돌아와 잎을 뒤집어 보며 행복을 느낀다. 지금쯤 초록이 무성해졌을 고국(어머니)의 품으로 돌아가기를 기도한다.

하지만 그는 1944년 7월 31일 비행을 마지막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미스터리한 그의 죽음에 대해 논란 있지만 그마저도 생텍쥐페리답다는 생각이 든다. '나뭇잎이 떨어지고 꽃이 시들지만, 모든 것이 죽고 재구성되기에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다(98쪽)'라고 말한 것처럼 그는 의연하게 비행기에 오르고, 지는 석양을 향해 날아갔으리라.

나도 그가 나뭇잎을 옷 주머니에서 꺼내 보듯 <생텍쥐페리의 문장들>을 가까이 놓고 자주 읽을 생각이다. 그가 나뭇잎 뒷면을 보듯 문장 뒤에 숨겨진 뜻을 더 찬찬히 음미하고 싶다. 비행기 조종석에 홀로 앉아 비바람과 고독을 견디며 벼린 단단한 그의 문장은 막막한 인생의 사막에서 우리는 결코 혼자 걷고 있지 않다고 말해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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