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관용입니다" 김행 장관 후보자가 꼭 봐야 할 영화
[OTT로 시사 읽기] 넷플릭스 <베이비 피버>
무엇이든 내가 발 디딘 현실과 연결된다고 믿습니다. 마침표로 끝나는 OTT 시청 말고, 물음표로 이어내고자 합니다.[편집자말]
▲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베이비 피버(Skruk)>는 덴마크의 인공수정 클리닉을 배경으로 한다. ⓒ 넷플릭스
"정자은행 카탈로그에서 남자를 골라요. 우리가 매일 돕는 싱글맘들을 봐요. 해내잖아요."
아이를 낳을지 고민하는 주인공에게 직장 동료가 건네는 조언이다. 덴마크 드라마 <베이비 피버>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관용(寬容)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직장 동료 시몬은 나나에게 "정자은행에서 남자를 고르라"고 권한다. 가디언지 보도에 따르면 덴마크에서 정자은행을 통해 출생한 아기 10명 중 1명은 파트너 없는 여성에게서 태어난다. 2007년부터 레즈비언 부부와 비혼 여성도 기증된 정자로 인공수정을 할 수 있도록 법을 제정했다. 나나를 연기한 배우 요세피네 파크도 여성 파트너와 결혼 후 아들을 낳았다.
'마이 바디, 마이 초이스'를 방해하는 건 없다. 나나는 결정만 하면 된다. 그런데 원하거나, 원하지 않거나, 언제나 선명하게 알 수 있는 걸까? 선지(選支)가 많을수록 문제는 어려워지는 법이다. 심난한 나나는 술에 취해 그만 큰 '사고'를 치고 만다.
'가임기 6개월 시한부', 정자은행에서 정자를 훔치다
▲ <베이비 피버> 주인공 나나와 친구 시몬은 인공수정 클리닉에서 몰래 술을 마시다 큰 사고를 치고 만다. ⓒ 넷플릭스
보통 '사고를 쳤다'는 건 미혼 남녀가 하룻밤 성관계로 임신하게 된 일을 뜻한다. 하지만 나나가 저지른 사고는 단독 범행이다. 정자은행에서 전 남자친구의 정자를 훔치고 직접 자기 몸에 인공수정을 한 것이다.
운 좋게도, 혹은 운 나쁘게도 이 '취중시술'은 한 번에 성공한다. 낳아도, 안 낳아도 문제다. 나나는 진짜 자신의 마음을 알 수 없었다. 그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충동적으로 행동한다. 전 남자친구에게 무작정 매달리는가 하면, 아이 아빠는 다른 남자라고 거짓말한다. 그렇게 스스로 불러온 재앙은 눈덩이처럼 커져 있었다.
"이제 뭘 해야 할까요?"
"솔직해져야죠. 모두에게 진실을 고백하는 거예요."
모든 인간관계를 망친 후에야 나나는 결심한다. 스스로 불러온 이 거대한 재앙을 마주하기로. 모든 잘못과 거짓말을 고백하고자 한다. 일생일대의 결정을 앞두고 부담감에 휘청이던 나나가 자세를 바로잡는 순간이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다.
<베이비 피버>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다루면서 그 '결정'이 무엇인지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보는 사람을 활짝 열린 결말로 초대한다.
극 중 인공수정 클리닉에서 나나는 레즈비언 부부, 비혼 여성, 난임 여성, 이혼 가정 등 다양한 여성들과 상담한다. 하지만 그들 모두 엄마가 되어 떠나는 건 아니다. 고민 끝에 결정을 유예하거나 번복하기도 한다. 개인의 결정은 언제든 변할 수 있다. 다만 그 결정을 관용해야 한다는 원칙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어떻게 해서든 아이를 키운다"는 '닫힌 결말'을 거부한다
▲ <베이비 피버>에는 난임 여성 뿐 아니라 레즈비언 부부, 이혼 가정, 비혼 여성 등 다양한 사연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한다. ⓒ 넷플릭스
"너무 가난하거나 남자가 도망가거나 강간당하는 어떤 경우라도 우리가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똘레랑스(관용)'가 있으면 여자가 어떻게 해서든 키울 수 있다고 본다. 필리핀은 여자가 뭘 해서라도 키운다고 한다."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2012년 9월 자신이 창간한 매체 <위키트리> 유튜브 채널에서 발언한 내용이다. '관용(tolérence)'이란 다른 신념, 의견, 종교, 사상 등을 억압하지 않고 인정하는 자세를 뜻한다.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은 낙태죄를 징역 최대 6년으로 정하고 있다. '임신-출산-육아' 외 다른 선택을 불관용 하는 대표적 사례다.
해당 발언은 최근 김 후보자의 인터뷰로 인해 더욱 논란이 되고 있다. 김 후보자는 지난 15일 출근길에서 '임신 중단에 대한 후보자 의견이 궁금하다'는 취재진 질문에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워서, 미혼모여서, 또는 청소년이어서 어쩔 수 없이 낙태할 수밖에 없는 경우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넣을 수 없다고 본다"고 답했다.
이 경우는 넣고, 이 경우는 빼고. 김 후보자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가치 판단에 따라 여닫을 수 있는 문제로 생각한다. 하지만 사회는 '열린 결말'에 들어섰다. 2019년 4월 헌법재판소는 임신 중지를 처벌하는 형법 조항이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단했다.
그러니 이제 '닫힌 결말' 밖으로 나와야 할 때다. 정 혼자 아이 키우는 여성들을 관용하고 싶다면 여성가족부가 '정자은행 카탈로그'를 만드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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