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권리가 침해 당했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노키즈존 논란] 공존하기 위한 책무, 누구도 피하지 않았으면
지난번에 작성한 유아 동반 비행에 대한 기사 '이젠 비행기까지... '노키즈존'이 가져올 위험한 미래 https://omn.kr/25pxy'의 '뜨거운 반응'을 눈으로 확인했다. 오마이뉴스에 보낸 글 가운데 가장 단시간 내에 가장 많은 댓글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과연 노키즈존이 대한민국의 핫이슈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보다 확실하게 느낀 것은 사람들의 불편함에 대한 역치가 낮아졌다는 것, 그리고 불편함을 마주했을 때 마땅히 보장받아야 할, 이를테면 권리가 침해된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이었다. 조금 더 얘기를 풀어나가기 전에 일단 몇 가지 오해는 짚고 넘어가려고 한다.
첫째. 공공장소에서 예절을 지키지 않는 아이를 방치하는 '어른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를 데리고 공공장소에 간 어른에게는 통제를 벗어난 아이에게 주의를 주고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고, 보호자가 그런 책임과 의무를 방기한다면 비판받고 제재받아야 마땅하다.
둘째. 그렇지만 내가 경험했던 양육자들 대부분은 '맘충'이라는 혐오표현에 동의할 수 없으면서도 공공장소에서 혹여 '맘충'이 되지는 않을까 스스로를 감시하는 사람들이었다. 나의 경험을 일반화할 수 없듯 '민폐 부모'가 대부분이라는 전제에도 동의할 수 없다.
셋째. 부모가 아이에게 신경을 쓰고 주의를 줘도 아이가 있는 공간과 그렇지 않은 공간이 같을 수는 없다. 그건 노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젊은 시절 때와 같은 청력을 가질 수 없는 것이나 근육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가 스스로 몸을 통제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현재 유아 동반이 문제가 되고 있는 카페나 식당, 비행기 안처럼 무작위의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은 공공장소로 간주된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드는 공간인 만큼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는 공공예절, 에티켓이 중요해진다.
다른 사람의 대화에 방해가 될 정도로 큰 소리 내지 않기, 뛰어다니지 않기, 화장실 깨끗이 사용하기, 자리에 남은 쓰레기는 스스로 처리하기, 종업원들을 무례하게 대하지 않기와 같은 것들.
법의 영역 vs 자율의 영역
그런데 이런 공공예절이란 것은 세부적인 경우로 들어갔을 때 기준이 명확하지 않을 때가 많다. 예를 들면 카페에서 나에게는 휴식을 방해하는 소리가 다른 사람에게는 그저 일반적인 친목 도모의 광경인 경우도 있다.
이런 애매한 기준으로 공공예절은 법의 영역이 아닌 시민의 자율영역에 맡겨져 지속적인 논의의 대상이 되고, 시대와 문화에 따라 그 내용도 변하게 된다. 이런 특성으로 인해 공공예절에 대한 논란이 발생하는 건 필연적인 현상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공공예절의 영역에서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양해가 중요해진다. 그러나 아쉽게도 노키즈존 논쟁에서도 그렇지만 '권리가 침해당했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개인으로서, 또 시민으로서의 권리가 억압당했던 이전 권위주의 시대와 비교한다면 상전벽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권리'라는 단어가 오용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들 때도 있다.
바로 공공예절의 영역에 '권리'라는 단어가 들어올 때다. 권리는 엄밀히 따지면 법적인 용어이다. 국어사전에도 법률 용어로 '어떤 일을 행하거나 타인에 대하여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힘이나 자격'이라 설명되어 있다.
권리와 권리가 충돌한다고 할 때 그것이 법정에서 다툴 수 있는 법적 권리인지 판단하는 것, 그리고 비교형량을 통해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지 최종적으로 판단할 권한은 법원에 있다. 법정에서의 판단을 받지 않은 '권리 침해'는 정확히 말하면 '권리가 침해되었다는 주장'에 불과하다.
-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면서 자신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다.
- 그렇다면 공공장소에서 방해받지 않을 권리가 불가침의 절대적 권리인가? 아니다.
- 마지막으로 소유주가 가진 영업의 자유(직업의 자유)는 다른 헌법상 권리에 우선하는 권리인가? 그렇지 않다.
노키즈존에 관련한 판례는 없지만 재판 중인 사안에 대해 법원이나 헌법재판소에 의견을 제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대한민국 국가인권위원회는 2017년과 2023년, 두 차례에 걸쳐 각각 식당과 백화점에 대해 노키즈존을 해제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무례한 행동을 할 수 있는 주체는 비단 아동뿐이 아닌 데에도 불구하고 아동만을 일반화 하여 출입을 금지한 조치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사유가 없다고 보았다.
사업주가 다른 방식, 예컨대 보호자에게 안전사고 유의를 위한 주의 안내, 영업에 방해가 되는 행위 안내, 실제 행위 발생시 이용제한 또는 퇴장요구 등 다른 조치를 취할 수 있음에도 아동을 일률적으로 입장을 금지하는 것은 차별이라 판단했다.
이어 영유아의 출입을 전면적으로 금지한 백화점 VIP라운지에 대해서는 영업의 자유는 무제한적으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며 공익을 크게 해칠 정도의 사익 추구까지 인정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해석을 덧붙였다.
논쟁과 협의, 이해와 양해가 필요한 일
지난 5월 제주도의회에서는 노키즈존을 운영하는 사업자를 제재하고 처벌하는 내용을 담은 조례안이 발의되었는데, 소관 위원회에서 심사가 보류된 적이 있다(최종적으로 노키즈존을 운영하는 사업주에 대한 제재 및 처벌조항이 삭제된 수정안이 통과되었다).
노키즈존의 취지에 공감하는지 여부를 떠나 노키즈존을 법적으로 제한하고 금지하는 것이 적절한지, 법적 제재가 약자를 배제하는 문화를 바꾸는 데에 유효한지,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나 역시 제주도의회의 고민에 공감한다. 노키즈존 문제는 법적인 영역에서 제한하거나 금지할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같은 맥락에서 사업주의 재량으로 유아와 그 보호자의 출입을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것 역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이것은 공공의 영역에서 시민들의 논쟁과 협의, 이해와 양해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회구성원 모두가 공공예절을 습득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다. 다양한 사람들이 한 공간에 공존하기 위하여.
그것이 이유이자 대전제여야 하기에 나는 여전히 아이와 양육자를 일률적으로 차단하는 노키즈존을 반대한다. 분명히 다른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시민들의 자율성과 공감능력, 집단지성을 믿는다.
보호자들에게는 공공장소에서 최선을 다해 아이의 안전을 보장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자신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의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불편을 끼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아이를 방치하거나 잘못된 행동을 오히려 옹호하는 사람들은 다른 무례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제재를 받아야 한다.
여기에 덧붙여 아이를 동반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아이와 보호자들을 이해하고 양해하는 노력을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유아와 보호자뿐만 아니라 장애인, 노인, 그리고 이해와 양해를 받아야 하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하나의 사회를 공유하며 공존하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야 할 우리의 책무라고 생각한다.
보다 확실하게 느낀 것은 사람들의 불편함에 대한 역치가 낮아졌다는 것, 그리고 불편함을 마주했을 때 마땅히 보장받아야 할, 이를테면 권리가 침해된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이었다. 조금 더 얘기를 풀어나가기 전에 일단 몇 가지 오해는 짚고 넘어가려고 한다.
둘째. 그렇지만 내가 경험했던 양육자들 대부분은 '맘충'이라는 혐오표현에 동의할 수 없으면서도 공공장소에서 혹여 '맘충'이 되지는 않을까 스스로를 감시하는 사람들이었다. 나의 경험을 일반화할 수 없듯 '민폐 부모'가 대부분이라는 전제에도 동의할 수 없다.
셋째. 부모가 아이에게 신경을 쓰고 주의를 줘도 아이가 있는 공간과 그렇지 않은 공간이 같을 수는 없다. 그건 노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젊은 시절 때와 같은 청력을 가질 수 없는 것이나 근육 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가 스스로 몸을 통제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현재 유아 동반이 문제가 되고 있는 카페나 식당, 비행기 안처럼 무작위의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은 공공장소로 간주된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드는 공간인 만큼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는 공공예절, 에티켓이 중요해진다.
다른 사람의 대화에 방해가 될 정도로 큰 소리 내지 않기, 뛰어다니지 않기, 화장실 깨끗이 사용하기, 자리에 남은 쓰레기는 스스로 처리하기, 종업원들을 무례하게 대하지 않기와 같은 것들.
법의 영역 vs 자율의 영역
그런데 이런 공공예절이란 것은 세부적인 경우로 들어갔을 때 기준이 명확하지 않을 때가 많다. 예를 들면 카페에서 나에게는 휴식을 방해하는 소리가 다른 사람에게는 그저 일반적인 친목 도모의 광경인 경우도 있다.
이런 애매한 기준으로 공공예절은 법의 영역이 아닌 시민의 자율영역에 맡겨져 지속적인 논의의 대상이 되고, 시대와 문화에 따라 그 내용도 변하게 된다. 이런 특성으로 인해 공공예절에 대한 논란이 발생하는 건 필연적인 현상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공공예절의 영역에서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양해가 중요해진다. 그러나 아쉽게도 노키즈존 논쟁에서도 그렇지만 '권리가 침해당했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개인으로서, 또 시민으로서의 권리가 억압당했던 이전 권위주의 시대와 비교한다면 상전벽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권리'라는 단어가 오용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들 때도 있다.
바로 공공예절의 영역에 '권리'라는 단어가 들어올 때다. 권리는 엄밀히 따지면 법적인 용어이다. 국어사전에도 법률 용어로 '어떤 일을 행하거나 타인에 대하여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힘이나 자격'이라 설명되어 있다.
권리와 권리가 충돌한다고 할 때 그것이 법정에서 다툴 수 있는 법적 권리인지 판단하는 것, 그리고 비교형량을 통해 어느 쪽의 손을 들어줄지 최종적으로 판단할 권한은 법원에 있다. 법정에서의 판단을 받지 않은 '권리 침해'는 정확히 말하면 '권리가 침해되었다는 주장'에 불과하다.
-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면서 자신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 옳은가? 아니다.
- 그렇다면 공공장소에서 방해받지 않을 권리가 불가침의 절대적 권리인가? 아니다.
- 마지막으로 소유주가 가진 영업의 자유(직업의 자유)는 다른 헌법상 권리에 우선하는 권리인가? 그렇지 않다.
노키즈존에 관련한 판례는 없지만 재판 중인 사안에 대해 법원이나 헌법재판소에 의견을 제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대한민국 국가인권위원회는 2017년과 2023년, 두 차례에 걸쳐 각각 식당과 백화점에 대해 노키즈존을 해제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무례한 행동을 할 수 있는 주체는 비단 아동뿐이 아닌 데에도 불구하고 아동만을 일반화 하여 출입을 금지한 조치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사유가 없다고 보았다.
사업주가 다른 방식, 예컨대 보호자에게 안전사고 유의를 위한 주의 안내, 영업에 방해가 되는 행위 안내, 실제 행위 발생시 이용제한 또는 퇴장요구 등 다른 조치를 취할 수 있음에도 아동을 일률적으로 입장을 금지하는 것은 차별이라 판단했다.
이어 영유아의 출입을 전면적으로 금지한 백화점 VIP라운지에 대해서는 영업의 자유는 무제한적으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며 공익을 크게 해칠 정도의 사익 추구까지 인정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해석을 덧붙였다.
논쟁과 협의, 이해와 양해가 필요한 일
지난 5월 제주도의회에서는 노키즈존을 운영하는 사업자를 제재하고 처벌하는 내용을 담은 조례안이 발의되었는데, 소관 위원회에서 심사가 보류된 적이 있다(최종적으로 노키즈존을 운영하는 사업주에 대한 제재 및 처벌조항이 삭제된 수정안이 통과되었다).
노키즈존의 취지에 공감하는지 여부를 떠나 노키즈존을 법적으로 제한하고 금지하는 것이 적절한지, 법적 제재가 약자를 배제하는 문화를 바꾸는 데에 유효한지,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나 역시 제주도의회의 고민에 공감한다. 노키즈존 문제는 법적인 영역에서 제한하거나 금지할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같은 맥락에서 사업주의 재량으로 유아와 그 보호자의 출입을 일률적으로 제한하는 것 역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이것은 공공의 영역에서 시민들의 논쟁과 협의, 이해와 양해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회구성원 모두가 공공예절을 습득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다. 다양한 사람들이 한 공간에 공존하기 위하여.
그것이 이유이자 대전제여야 하기에 나는 여전히 아이와 양육자를 일률적으로 차단하는 노키즈존을 반대한다. 분명히 다른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시민들의 자율성과 공감능력, 집단지성을 믿는다.
보호자들에게는 공공장소에서 최선을 다해 아이의 안전을 보장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자신에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이의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불편을 끼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아이를 방치하거나 잘못된 행동을 오히려 옹호하는 사람들은 다른 무례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제재를 받아야 한다.
여기에 덧붙여 아이를 동반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아이와 보호자들을 이해하고 양해하는 노력을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한다. 유아와 보호자뿐만 아니라 장애인, 노인, 그리고 이해와 양해를 받아야 하는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하나의 사회를 공유하며 공존하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야 할 우리의 책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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