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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해가는 세월 속 명절풍경을 따라가야

해외여행 떠난 소녀, 추석 맞이가 달라졌다

등록|2023.09.28 17:45 수정|2023.09.28 17:45
며칠 전 저녁 무렵, 갑자기 화상전화 소리가 들린다. 화상전화야 늘 손녀하고 하는 것이 고작인데, 먼 나라 체코 프라하에서 걸려온 손녀소식이다.

새벽시간 체코 프라하에 도착한 딸과 함께 손녀의 얼굴이 보였다. 오래전부터 해외여행을 경험했기에 이번에도 거뜬히 도착했다고 한다. 비행기 타는 것을 좋아해 열 시간도 거뜬히 버텨내는 초등학교 4학년 손녀다. 추석 연휴를 이용해 딸네 가족이 체코와 크로아티아 여행을 떠났다.

추억 속의 추석
 

굴뚝에서 연기가 오른다.골짜기에 자리잡고 살아가는 전원에서 만난 풍경이다. 오래전의 기억을 되살려주는 굴뚝에서 나는 연기, 여기에 초가지붕이었으면 하는 어리석은 아쉬움을 갖기도 한다. ⓒ 박희종


한 무리 사람들이 마을 앞을 지나간다. 두루마기를 입고 10여 명이 이웃집으로 차례를 지내러 가는 모습이다. 같은 성씨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는 동네의 명절 풍경이었다. 며칠 전부터 동네에서 볼 수 있는 명절 분위기, 어른들은 음식을 준비했고 타지로 나간 사람들이 고향을 찾았다. 가끔 오가는 노선버스가 한 무더기의 사람을 쏟아 놓으면 갈길 바쁜 사람들이 서둘러 발길을 옮겼다. 번듯한 옷차림에 양손에는 선물 꾸러미가 들려 있었다.

맨발로 뛰어나와 자식들을 반기던 부모들이 초가지붕을 맞대고 살아가는 시골집이다. 초가지붕을 뚫고 올라온 굴뚝에선 며칠 전부터 연기가 피어올랐다. 추석을 맞이하기 위한 어머니들의 손길이 바빠서다. 송편을 빚어야 했고, 씨암탉닭을 잡아야 했으며 갖가지 제물을 준비해야 했다. 손님을 위한 술을 빚어야 했고 든든한 안주거리도 만들어야 했다. 오일장엔 피와 땀이 절은 고추를 팔아 자식들 옷가지도 준 해 놓았다.

세월 따라 명절이 변했다

한참의 세월이 흘렀고 삶의 방식이 변한 추석, 긴 연휴기간에 인천 공항은 발 디딜 틈이 없다. 전국 유명지의 펜션과 호텔 예약은 이미 끝났고, 긴 추석연휴는 휴식을 위한 기간으로 변했다. 가족단위의 해외여행이 오래전에 계획되었고, 해외여행 대열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들은 국내 여행지에 잠자리를 마련한 지 오래되었다. 차례상도 펜션에서 간단하게 차려지고 성묘는 벌초를 하면서 벌써 한지 오래됐다.

언론에서 듣기만 하던 일을 딸네가 감행한 것이다. 추석 연휴를 이용해 해외여행을 떠난 것이다. 벌써부터 여행을 계획했고 아내는 용돈도 건넸다는 말에 그러려니 했다. 힘들게 살아온 사람들이 찾아온 연휴를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해외를 여행하고 국내 유명관광지로 떠나 일상에 찌든 찌꺼기를 씻어 낸다는데 누구 뭐라 할 수 있을까? 오래전의 이야기는 소리 없이 사라졌고, 다른 세대가 같이 어울릴 수 없는 세월이 되었다. 조율이시가 어떻고, 좌포우혜가 이런 것이라는 말은 꺼내기도 어려운 시절이 되었다.
 

영그는 가을가을 들판에 수수가 익어가고 있다. 풍성한 가을을 알려주는 오곡백과, 언제나 풍요와 그리움을 주는 가을이다. ⓒ 박희종



뒷산에는 알밤이 영글었고, 울안에는 붉은 홍시가 너울 거린다. 차례상에 올릴 밤을 깎아야 했고 붉은 홍시를 정성스레 준비해야 했다. 가족이 둘러앉아 송편을 빚어냈다. 뒷산 솔잎을 깐 가마솥엔 송편 익는 냄새가 동네를 진동했다. 동네로 이어지는 길은 돈벌이를 위해 외지로 나갔던 아들과 딸들 발걸음이 이어지던 추석이었다. 어렵게 마련한 용돈으로 부모님을 훈훈하게 했던 오래 전의 기억들이다. 은퇴를 하면서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골짜기엔 산밤이 제법 영글었다.

오래전 추억 속에 알밤을 주워 전국 친구들에게 보내준다. 너무나 반가워하는 친구들이 고마운 것은 왜일까? 아이들에게 재미 삼아 먹으라 알밤을 내놓는다. 나에겐 귀한 알밤이지만 아이들은 별로 관심이 없다. 붉은 홍시에도 관심이 없고, 알밤과 홍시의 맛과 멋을 알지 못한다. 아비의 고단한 발걸음을 알리 없으니 그러려니 해야 하는 오늘이다. 힘들여 송편을 빚을 필요 없이 시장에서 적당한 양을 사면 된다. 시장에서 사는 것도 어려우면 집까지 배달하는 서비스를 이용하면 된다.

세월 따라 삶을 바꾸어야 했다

정성으로 차례를 지낸 후, 온 식구가 둘러앉아 식사를 했다. 어른들을 따라 선산을 올라 조상님께 성묘를 했다. 이것은 누구의 묘이고 저것은 누구의 묘인지 어르신은 오늘도 바쁘다. 일 년에 한두 번 알려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지만, 아이들은 관심이 없다. 어른들은 이내 머쓱해지며 가족의 의례적인 행사가 되어갔고, 같이 하는 일 년의 행사에 불과했다. 세월이 흘러 부모님은 돌아가셨고, 조카가 제사와 차례상을 차리고 있다.
 

가을 들판의 아름다운 풍경들판을 가득 메운 누런 벼가 출렁인다. 가을을 알리는 풍성함이 추석이 왔음을 알려주고 있다. ⓒ 박희종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고나서는 길, 추석엔 산소에 성묘나 간다 한다. 부모님 산소에 성묘만 하고 추석을 보낸 지가 오래되었다는 친구다. 차례상을 차리고 음식을 해도 찾아 올 사람도 없고, 아내와 며칠 동안 제사음식을 먹어야 하는 것도 힘겹다는 친구다. 기껏해야 아침에 찾아와 절만 꾸뻑하고 마는 세월, 고생하며 강요할 필요 없는 듯해 산소에만 가기로 했단다. 식구들이 모여 정성껏 성묘를 하며 인사를 나누는 것이 훨씬 값지단다. 고개가 끄떡여지기에 어렵게 어르신들 의견을 물었지만 아무 말씀이 없다. 전례 대로 하라는 뜻이라 생각하면서도 점차 망설여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부모가 떠난 후에 호화스러운 묘를 쓰고 수선 떨어야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 평소 지론이다. 살아 계실 때 한 번이라도 더 찾아보는 것이 참 사람이지, 죽어서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생각이다. 추석즈음에 묘소를 다듬으며 성묘를 하고, 편안한 추석을 보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평소에 자주 찾아와 삶의 이야기를 나누며 살아가면 되겠다는 의도다. 반드시 명절 때 찾아오며 고생을 하고, 부담스러운 명절이 아닌 편안한 추석을 보낼 수는 없을까? 여행 떠난 딸 소식이 없는 것은 가족이 떠난 여행이 재미있기 때문이리라.

아비의 강요로 할 수 없는 세월의 흐름임을 벌써 감지하며 살고 있다. 추석이 온다고는 하지만 골짜기의 아침은 조용하다. 색동저고리도 볼 수 없고, 넥타이에 차려입은 모습도 얼씬하지 않는다.

휘날리는 두루마기로 치장을 하고, 색동저고리로 꾸며 입었던 시절은 오간데 없고, 삶의 편리와 형편에 따라 살아가는 세월이 되었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고 따라야 하는 흐르는 삶의 방식을 이젠, 받아들여야 살아갈 수 있는 세월이다. 서운할리도 없고, 섭섭해 할 수도 없는 추석이다. 기억 속에만 꾹, 눌러 놓고 아이들과 어우러지는 삶의 명절을 보내야겠다. 밝은 햇살이 찾아온 골짜기가 한참 아름다운 명절즈음 풍경이다.
 
덧붙이는 글 오마이 뉴스에 처음으로 게재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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