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드게임 승리에도 '채찍질 여론', 야구팀에 이러진 말자
[주장] 국가대표 야구팀 향한 과도한 비난, '노 메달'보다 부끄러운 것
▲ 기뻐하는 한국 야구 대표팀3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인근 사오싱 야구·소프트볼 스포츠센터 제2구장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야구 조별리그 B조 대한민국과 태국의 경기.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이 태국을 꺾은 뒤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Win or Nothing', 이기지 않는다면 모든 건 무의미하다. JTBC <최강야구>의 슬로건이지만, 야구 외에 모든 스포츠에 통용되는 말이다. 특히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처럼 다른 나라와 맞붙는 국제 대회에서 스포츠란 더욱 '결과론'이 된다. 세계인의 화합을 위한다는 대회 명목은 사라지고 결국 우리나라가 몇 개의 메달을 땄는지, 한국 스포츠가 국제 경쟁력이 있는지 논하기 바쁘다.
물론 스포츠의 힘을 고려한다면 메달 개수도 국력이다. 하지만 스포츠의 본질은 실패와 승리를 오가며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 패배 너머 누군가의 노력에 기꺼이 찬사를 보내는 일이다. 그래도 스포츠는 이겨야만 웃을 수 있다고? 여기 콜드 패하였어도 웃으면서 경기를 치른 야구 국가대표팀이 있다.
지난 3일 한국 야구 대표팀이 태국을 상대로 17-0, 5회 만에 콜드게임으로 승리를 거뒀다. 태국은 아시안게임에서 언제나 약체로 평가받았다.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일본에게 0-18 콜드 패를 당했고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선 일본에게 0-24, 중국에게 0-15 콜드 패를 당했다. WBSC 랭킹 4순위인 한국이 70위인 태국을 꺾고 조 2위로 슈퍼라운드에 진출하는 건 모두의 예상 대로 당연했다.
그러나 경기에서 활짝 웃은 건 한국이 아닌 태국 팀. 삼구삼진에 더그아웃으로 돌아와도, 어렵지 않은 타구를 놓치는 수비 실책을 범해도 태국 선수들은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이미 콜드 패를 확정한 순간에도 즐기면서 경기하는 모습은 한국 선수들과 확연히 다른 면모. 승리가 확정된 순간에도 긴장감을 놓지 않는 한국 선수들의 모습은 단지 프로페셔널하기 때문이라 볼 수 없다.
지난 1일 한국 야구 대표팀은 홍콩과의 첫 경기에서 10-0으로 8회 콜드게임 승리를 거뒀다. 한국 팀의 압도적인 승리였으나, 여론은 반대였다. 홍콩을 '최약체' 팀이라 칭하거나 한국 팀의 승리에 대해 '진땀승', '간신히 승리' 등 콜드게임이란 결과와 맞지 않은 평이 따라왔다. '졌지만 잘 싸웠다'가 아닌 '이겼지만 못 싸웠다'는 식의 부정적인 이야기가 오고 갔다.
한편, 한국 대표팀은 지난 2일 대만과의 경기에서 0-4로 졌다. 대만은 2019년 제29회 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선수들과 미국 마이너리그 출신 선수 등으로 꾸렸다. 만만치 않은 전력에 한국 대표팀은 한 점도 내지 못하고 영봉패를 당했다. 아쉬운 결과에 더그아웃이 차갑게 식었다. 강백호 선수는 그라운드를 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인 모습까지 잡혔다.
모두가 아쉬웠던 경기. 이에 부정적인 평가는 더욱 거세졌다. '무기력하게 패배', '참패', '4연패 먹구름' 등 경기력에 대한 지나친 평가와 화면에 잡힌 선수들의 표정을 부정적으로 추측하는 여론이 일었다. 특히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선수단과 스태프진을 향한 과도한 비난이 쏟아졌다.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대표팀은 와일드 카드를 제외하고 만 25세 이하 또는 입단 4년 차 이하 선수들로 꾸려졌다. 지난 3월 WBC 패배 이후 아시안게임은 유망주들이 국제 대회 경험을 쌓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 현 대표팀의 평균연령은 23세,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이후 역대 두 번째로 어린 대표팀이다. 국가대표 세대교체가 이뤄지는 타이밍에 선수들에게 필요한 건 경험. 그렇기에 그들을 향한 과도한 비난은 성장할 기회를 빼앗는 것과 마찬가지다.
선수와 팬 모두에게 필요한 '스포츠맨십'
▲ 2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인근 사오싱 야구·소프트볼 스포츠센터 제1구장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조별리그 B조 대만과 대한민국의 야구경기가 0-4 대한민국의 패배로 끝났다. 경기 종료 뒤 대한민국 선수들이 관중석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국가 대표 야구팀을 향한 과도한 비난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한국 국가 대표팀은 3연패를 달성했지만, 어두운 표정으로 귀국했다. 선수단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미필 선수들이 대표팀 최종 엔트리에 포함되며 '병역 혜택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었던 것.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타 국가들은 대부분 사회인 야구 혹은 2군 전력을 내보내기에 메달 확보가 유리하다는 이유였다. 이에 선동열 감독은 선수 선발 관련하여 국정감사를 치르기도 했다.
그러나 선발된 선수들이 부상을 당하고 부진에 빠지자, 비판의 움직임은 비난으로 바뀌었다. 대표팀 관련 기사에는 '은메달을 기원한다', '한국에 돌아오지 말라' 등 조롱 섞인 댓글이 이어졌고 선수와 선수 가족의 SNS에 찾아가 과도한 악플과 인신공격까지 일삼았다.
끝내 금메달을 따냈지만, 금의환향은 없었다. <스톡킹>에 출연한 황재균은 '공항에서 금메달을 넣으라고 했다'고 밝혔고 양현종 또한 귀국 당시 '우승하지 못했다면 얼마나 더 큰 비판이 있었을지 무서운 상상도 해봤다'고 답했다. 병역 문제와 '국가대표' 타이틀이 걸린 만큼 대표팀 구성은 민감한 사안. 하지만 선수들을 향한 도 넘은 비난은 사안의 중대성과 무관하게 용인될 수 없다.
국가 대표 야구팀의 지난한 역사를 인식해서일까. 국가 대표 야구팀 선수들은 아시안게임에서 경직된 모습으로 타석에 올랐고 해설위원들은 '미리 결과에 대한 반응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반복했다. 실패를 통해 배워갈 선수들이지만, 그들에겐 실패할 기회, 그리고 승리에 기뻐할 기회조차 없다.
승패와 무관하게 최선을 다하고 예의를 지키는 것. '스포츠맨십'은 경기장을 뛰는 선수만이 아닌 관중도 가져야 할 태도이다. 최선을 다한 선수들의 열정을 '국가대표니까 엄격해야 한다'는 명목하에 깎아내릴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모두가 즐겨야 하는 세계인의 축제에서 얼어붙은 한국 선수들, 'NO 메달'보다 'NO 미소'가 더 부끄럽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