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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도 역응원당했는데... 묻지도 않고 '댓글 국적제' 몰고가는 국힘

타국 개입증거 아직 없고 상대팀 응원 사례 흔한 일... "국민에겐 신기한 현상일뿐인데"

등록|2023.10.05 09:51 수정|2023.10.05 10:51
정부여당이 포털 '다음' 축구 응원 클릭 부풀리기 논란을 계기로 댓글 국적 표기 의무화, 댓글창 폐지 등 인터넷 여론 옥죄기에 나섰다. 하지만 아직 구체적적 사실관계가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 사건을 빌미로 인터넷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려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여당, '중국 축구 역응원' 논란 빌미로 인터넷 여론 옥죄기
 

▲ 지난 1일 오후 10시 40분경 다음 스포츠 한국-중국 8강전 응원 상황. 한국이 166만 건으로 중국 132만 건을 앞서고 있다. ⓒ 다음



지난 1일 열린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8강전 관련 '다음 스포츠'의 클릭 응원에서 나타난 중국 역응원 현상이 발단이었다. 한국이 중국을 2대 0으로 이긴 직후인 이날 오후 10시 40분쯤 한국 응원 수는 약 160만 건으로, 130만 정도인 중국을 앞섰다. 하지만 다음날(2일) 새벽 중국 응원 수가 2천만 건 이상 급증, '클릭 응원' 약 3130만 건 가운데 한국 응원은 211만건(6.8%)인 반면 중국 응원은 2919만 건(93.2%)에 달했다.

2015년 3월 처음 등장한 다음 스포츠 '클릭 응원'은 로그인도 필요 없고 응원 횟수 제한도 없다. 때문에 매크로(자동 입력 반복) 프로그램을 이용한 '어뷰징(부정 클릭)' 가능성이 제기됐다.

포털 '다음' 서비스를 운영하는 카카오도 4일 오전 "이용자가 적은 심야 시간대 2개 IP가 매크로 프로그램을 활용해 만들어낸 이례적인 현상으로 파악하고 있다"면서 "서비스 취지를 훼손시키는 중대한 업무방해 행위로 간주, 경찰에 수사를 의뢰할 예정"이라 밝혔다.

또 카카오는 "클릭 응원이 로그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횟수 제한 없이 클릭할 수 있어 특정팀에 대한 클릭 응원숫자가 과도하게 부풀려질 수 있는 점을 감안해 10월 2일 해당 서비스를 중단했다"고 알렸다.

키르기스스탄 16강 전도 '역응원'... 네이버도 한국보다 사우디 응원 더 많아
 

▲ 9월 13일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가대표 평가전 네이버 응원 페이지. 사우디 응원 수(114만건)가 한국(107만 건)을 앞섰다. ⓒ 네이버



사실 스포츠 응원 페이지에서 한국 팀보다 상대 팀 응원 비율이 높은 건 이례적인 일이 아니다. 지난달 28일 한국과 키르기스스탄의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16강전 때도 다음 스포츠의 키르기스스탄 팀 클릭 응원 비율이 한때 85%에 달했다.

다음과 달리 네이버 응원 페이지는 로그인해야 참여할 수 있지만, 역시 응원 횟수 제한은 없다. 지난 9월 13일 한국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가대표 평가전에선 네이버도 사우디 응원 수(약 114만 건)가 한국(약 107만 건)을 앞서기도 했다.

카카오 관계자는 4일 <오마이뉴스>에 "스포츠 경기의 경우 (한국 팀보다 상대 팀을 더 응원하는) '역응원' 사례가 많이 있다"면서 "한국인이지만 한국 팀의 경기 내용에 불만인 경우 다른 팀을 응원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밝혔다.

다만 이날 오후 10시까지만 해도 한국-중국 합산 220만 건 정도이던 응원 건수가 경기가 끝난 다음날 새벽 0시 30분 이후 수천만 건이 갑자기 늘어난 일은 이례적으로 보인다.

인터넷 커뮤니티인 '디시인사이드'의 한 유저는 지난 2일 새벽 자신이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해 중국 응원 수를 부풀리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이날 오전 0시 38분부터 게시판에 매크로 프로그램 실행 화면과 함께 "중국 쪽에 몰표 넣는 중이다"라고 주장했는데, 카카오에서 공개한 중국 응원 클릭 급증 시간대와 겹친다. 그는 이날 오전 5시쯤 "중국 정부가 할 짓이 그렇게 없어도 고작 ** ** 포털사이트 투표를 주작하겠냐고"라고 다른 이용자들의 중국 정부 개입 의혹을 조롱하기도 했다.

카카오 관계자는 "해당 글을 올린 디사인사이드 유저가 '클릭 응원' 어뷰징 당사자인지는 확정할 수 없다"면서 "해당 글의 진위 여부와 위법성 여부는 경찰 수사를 통해 밝혀질 것"이라고 밝혔다.

'댓글 국적 표기제' 띄우는 국힘... 오픈넷 "표현의 자유, 과도하게 억제"

이렇듯 중국이나 북한 등 외부 세력이 응원 수 조작에 개입했다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김기현 대표는 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포털 '다음'이 여론조작의 숙주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는 대목"이라면서 "(김 대표 본인이 지난 1월 대표발의한) 댓글 국적표기법안도 이번 정기국회 내 반드시 통과될 수 있도록 하여, 댓글 조작이나 여론조작 세력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법적·제도적 장치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사단법인 오픈넷은 지난 2월 포털 등 정보통신사업자가 인터넷 댓글 작성자의 국적, 국가명, 우회접속 여부 등 표기하도록 한 '댓글 국적 표기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헌법상 개인정보자기결정권, 통신과 비밀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을 과도하게 위축시킨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오픈넷 이사인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4일 <오마이뉴스>에 "댓글 국적제는 국가후견주의적 관음증일 뿐"이라면서 "국민은 그런 댓글(응원 수) 치우침 현상을 신기해할 뿐인데 국가가 나서서 국민의 자존심을 세워주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노인연금에 대해 찬반 클릭이 있으면 참가자들 나이를 알고 싶을 테고 '노란봉투법' 찬반 클릭은 참가자들이 노동자인지 알고 싶을 것"이라면서 "플랫폼과 참가자들이 자발적으로 IP 주소를 공개하는 건 몰라도 강제로 IP 주소 위치를 공개하게 하는 건 효과도 없고 표현의 자유도 과도하게 억제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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