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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석진과 대척점... '데블스 플랜' 궤도가 꿈꾸는 세상

[리뷰] 넷플릭스 <데블스 플랜>

등록|2023.10.09 12:42 수정|2023.10.09 12:42

▲ 넷플릭스 <데블스 플랜>의 한 장면. ⓒ 넷플릭스


자고로 두뇌 서바이벌은 탈락자의 눈물을 자양분 삼아 성장해왔다. 매 게임마다 탈락자가 발생하기에, 플레이어들은 각자 생존을 도모해야 한다. 내가 탈락하지 않으려면 다른 누군가 희생되어야 한다. 생존을 위해서는 다수 연합이 월등히 유리하지만, 소수 연합이라 해도 개인 능력에 따라 생존이 가능했다. 탈락자를 가리는 과정은 중요했고, 그만큼 흥미롭게 그려졌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데블스 플랜>의 과학 유투버 궤도가 꿈꾸는 세상은 좀 다르다. 그는 '약자들을 돕는다'는 인도주의적 기치를 내걸고 최대한 많은 플레이어들을 '살리는 데' 주력한다. 생존이라는 절대 가치 아래 경쟁과 견제, 음모와 배신이 상수였던 기존의 두뇌 서바이벌의 취지와는 완전히 다른 결이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이것이 궤도의 '공리주의'이다.

어떻게 궤도의 공리주의, 최대한 많은 플레이어를 살리는 게임 플랜이 성립될 수 있었던 걸까. 물론 탈락하고 싶은 플레이어는 없을 테니 궤도의 주장이 힘을 얻는 건 자연스러웠으리라. 하지만 그보다 더 현실적인 이유는 게임의 승패가 아니라 피스의 보유 여부로 생존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렇다, <데블스 플랜>에는 두뇌 서바이벌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데스 매치'가 없다.

공격받는 궤도의 공리주의
 

▲ 넷플릭스 <데블스 플랜>의 한 장면. ⓒ 넷플릭스


초반에는 다수 연합을 형성하는 기제로 작용했던 궤도의 공리주의는 시간이 지나면서 안팎으로 공격받기 시작한다. 밖에서는 궤도의 다수 연합과 대척점에 있는 하석진과 이시원이 불만을 제기했다. 하석진은 곽준빈에게 '빌붙는 플레이를 하지 말라'며 균열을 유도했고, 궤도가 조연우를 지키느라 승관의 감옥행을 용인하자 "복지 모델의 최후구만"이라며 비아냥냈다.

둘도 없는 동맹이었던 동재를 잃은 이시원의 불만은 좀더 노골적이다. 이시원은 궤도가 약자들을 돕는다는 허울좋은 명분을 내세워 결국 유력한 경쟁자를 제거하는 것 아니냐고 따져 물었다. 또, 지금의 기조를 언제까지 지킬 수 있겠냐고 몰아세웠다. 감옥에 들어간 후에는 승관에게 타인을 (장기판의) 말로 사용하는 게 싫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궤도를 저격하는 발언이었다.

안에서는 서동주의 불만이 쌓이고 있다. 모든 플레이어를 안고 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우승과 거리가 먼 플레이어가 게임의 자연스러운 결과에 따라 탈락하더라도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아무래도 우승에 대한 의지가 강한 서동주이기에 충분히 제기할 수 있는 불만이다. '떨어질 사람은 떨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곽준빈도 이 상황이 불편하긴 마찬가지다.

궤도 역시 혼란에 빠진다. 초반에는 피스가 적은 플레이어를 지킨다는 입장을 고수했던 그는 점차 모든 플레이어를 챙기기 어렵다는 걸 실감하게 됐다. 이는 다수 연합의 필연적 딜레마이기도 하다. 또, 안팎에서 불만 민원이 접수되니 스스로도 괴로웠으리라. 반드시 탈락시킬 필요가 없었던 혜성을 떨어뜨렸다는 점에서 그의 공리주의는 심대한 타격을 입은 후였다.
 

▲ 넷플릭스 <데블스 플랜>의 한 장면. ⓒ 넷플릭스


시청자 중에서도 궤도의 공리주의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이 상당수일 것이다. 두뇌 서바이벌의 취지와 맞지 않다는 이유이다. 그러나 <데블스 플랜>은 애당초 기존의 두뇌 서바이벌과 다른 구조로 설정되어 있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곤란하다. 결정적으로 '데스 매치'가 없다.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피스만 확보한다면 탈락자가 없는 그림도 그릴 수 있다는 뜻이다.

<데블스 플랜>에는 메인 매치 후 상금 매치가 이어진다. 최대 상금 5억 원을 만들기 위해서는 플레이어 간의 협동이 필수이다. 메인 매치에서 살벌하게 경쟁했던 플레이어들이 상금 매치에서는 한 팀이 되어야 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상금 매치 '그림 기억'에서 서동주가 10문제를 모두 맞히며 올킬을 달성해 영웅이 됐지만, 암기 과정에서 집단지성이 발휘된 점을 잊어선 안 된다.

한편, 최약체로 지목됐던, 그러니까 곽준빈이나 하석진이 말하는 소위 '떨어질 사람'으로 지목된 플레이어가 정말 최약체일까. 초반에 별다른 활약을 못했던 유민은 상금 매치 '양팔 저울'에서 궤도와 한 조를 이뤄 든든한 활약을 펼쳤다. 서동주와 하석진은 각 조에서 에이스로 나섰지만, 결과적으로 계산에 실패했다. 차라리 유민이 저들을 대신했다면 상금이 추가됐을 것이다.

가장 많은 눈총을 받고 있는 연우도 활약이 미약하다. 감옥에 두 차례나 다녀왔을 정도로 게임 내 존재감이 없다. 일반적인 두뇌 서바이벌이었다면 초반 탈락이 유력한 플레이어이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생존했다면 그것조차도 하나의 능력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혹시 후반부에 전문 분야인 바둑과 유사한 게임('나인 멘스 모리스', '4인 3목')으로 대활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궤도가 꿈꾸는 세상은 예외적이다. 안팎의 불만이 쌓이며 위태롭기까지 하다. 탈락자가 적어서, 경쟁 구도가 또렷하지 않아서 <데블스 플랜>이 심심하다는 항의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그건 애당초 데스 매치를 없애고 새로운 그림을 그릴 공간을 마련한 제작진의 몫이지, 그 안에서 자신만의 답을 제시한 궤도의 책임이라 할 수 없다. 그것이 불만이라면 게임 내에서 궤도의 연합을 파훼하면 될 일이다.

모두를 살리겠다는 궤도의 공리주의는 선하지만 완전하지 않다. 언젠가는 어려움에 봉착할 수밖에 없었다. 궤도는 고뇌한다. 자신의 입장을 고수할지 변경할지 고민한다. 아직까지 결과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경쟁과 탈락이 판치는 두뇌 서바이벌에 새로운 구도를 제시한 건 분명하다. 궤도가 꿈꾸는 세상을 응원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종성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 '버락킴, 너의 길을 가라'(https://wanderingpoet.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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