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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만에 '좌경교육' 누명 벗은 교사들 "수사당국 사과하라"

12일 서울중앙지법 재심, 무죄 선고... "가혹 행위로 만든 수사기록, 증거능력 없다"

등록|2023.10.12 18:27 수정|2023.10.12 18:27

▲ 12일, 무죄 판결 이후 민교투 사건 관련 교사와 가족들이 서울중앙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수사 당국 사과와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했다. @교육언론[창] ⓒ 교육언론창


1986년 9월 19일 비 오는 밤 11시. 윤병선(당시 28세·관악고) 교사는 서울시 영등포구 신길동 자취집에서 영장도 없이 들이닥친 경찰에 끌려 동대문구 장안동에 있는 서울시경 대공분실로 끌려갔다.

경찰은 윤 교사를 다짜고짜 손과 발로 폭행하기 시작했다. 여러 날 동안 진행된 진술과정에서 경찰은 폭행뿐만 아니라 물고문까지 자행했다. 윤 교사는 '살기 위해서' 경찰의 요구대로 진술할 수밖에 없었다.

1986년 대공분실로 끌려간 교사

당시 전두환 정권은 고등학생이 시위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강제로 보충수업과 야간자율학습을 시행했다. 학생들이 이에 반대하며 집단행동을 하자 학교는 학생들을 퇴학 조치하는 등 강경 대응했다.

윤 교사와 동료 교사들은 비교육적인 현실과 징계의 부당성을 알리기 위해 유인물을 만들어 배포했다. 경찰과 검찰은 이들을 "학생의 좌경의식화교육을 목적으로 '민족민주교육쟁취투쟁위원회'(아래 민교투)라는 이적단체 조직을 예비음모했다"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1987년 1심 재판에서 윤 교사는 징역 1년 6월, 노현설(당시 양화중)·이장원(당시 봉화중)·이상대(당시 당산중) 교사는 징역 1년의 실형을, 송원재 교사(당시 당곡고)는 1년 6개월에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그런데, 이른바 '민교투 사건'으로 알려진 경찰의 교사 용공조작으로 인해 '이적행위자'라는 딱지를 떼지 못했던 교사들이 법원의 재심을 통해 37년만에 누명을 벗었다.

"국보법 위반자, 이적행위자란 누명을 벗게 돼 기쁘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12일 윤 교사 등 교사 6명의 용공조작 사건에 대한 재심 재판에서 "모든 수사기록은 불법 연행과 가혹 행위로 인한 것이기 때문에 증거 능력이 없다"면서 무죄를 선고했다. 지난 2021년 경찰의 불법연행, 불법구금, 고문에 의해 조작된 사건이라며 재심 신청한 것이 마침내 결실을 본 것.

무죄 판결이후 '민교투 사건' 관련 교사들과 가족 20여 명은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권의 사건 조작으로 관련 교사들은 물론 온 가족이 오랫동안 고통을 받아 왔는데 37년 만에 '국가보안법 위반자' '이적행위자'란 누명을 벗게 돼 기쁘다"며 당시 수사당국 사과와 국가보안법 폐지를 촉구했다.

윤 교사는 "당시 수많은 교사의 소모임이 있었는데, 유인물을 복사하다 걸렸다는 이유로 강제로 없는 죄를 만든 것"이라며 "부당한 국가 권력이 개인에게 엄청난 고통을 준 만큼 경찰, 검찰, 판사 등 사건조작에 나선 이들의 진심어린 사과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 12일 무죄 판결이후 꽃다발을 받고 환히 웃고 있는 민교투 사건 관련 교사들. @교육언론[창] ⓒ 교육언론창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교육전문언론 교육언론[창](www.educhang.co.kr)에서 제공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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