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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을 세울 때 붙이는 부적, 유니테크 스티커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아, 나는 아니까

등록|2023.11.03 20:09 수정|2023.11.03 20:09

도날드덕과 데이지덕 유니테크 스티커친구의 입시 합격을 기원하며 장식한 도날드덕과 데이지덕 유니테크 스티커 ⓒ 박유정


나는 중요한 일을 하기 전, 혹은 내가 잘 됐으면 하는 일을 시작할 때 그 계획을 세운 노트나 파일에 스티커를 붙인다. 일종의 나의 부적인 셈이다. 스티커는 언제나 유니테크 스티커이다.

이렇게 말하면 감이 안 올 수도 있지만 유니테크사에서 만든 스티커는 띠부띠부씰과 비슷한 소재로 풀 같은 끈적임 대신 매끈한 소재로 플라스틱 등에 잘 달라붙는 '그' 스티커이다.

누군가는 스티커를 붙이는 게 무슨 도움이 되냐고 물을 수도 있지만 그 스티커를 볼 때마다 나의 마음가짐을 다잡을 수 있다는 점에서 나는 큰 도움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힘든 일을 이겨낼 때 사용할 구피 스티커힘든 일을 이겨낼 때 사용할 구피 스티커 ⓒ 박유정


고등학교 시절, 우리 학교에는 자신을 선생님이라는 호칭 대신 '수석교사님'이라고 불러달라고 요청하시던 수석교사님이 계셨다. 수석교사님께서는 진도를 나가는 것보다 우리에게 그림 그리기 등 특별 활동을 시키고 그것을 복도에 전시해 학교에 오시는 손님분들께 자랑하기를 좋아하셨다.

그건 나쁜 일이 아니었지만 문제는 보기에 예쁜 것들을 주로 전시하셨다는 것이다.  학년이 올라 수석교사님의 수업을 듣지 않게 되었을 무렵, 학교 중앙 통로에는 또 전시가 열렸다. 그리고 그곳에는 '장애인'들은 몸이 아프기 때문에 불쌍하고 '정상인'들이 도와주어야 한다는 취지의 예쁜 만화가 그려져 있었다.

눈살이 찌푸려졌다. 1학년인 학생은 모르고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다른 과목도 아니고 사회과 과목 담당인 수석교사님이 잘못된 용어, 잘못된 생각을 가진 작품을 보기에 예쁘다는 이유로 모두가 지나다니는 복도에 전시해 두었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건 그냥 복도에 걸린 한 장의 그림일 뿐이었기 때문에 무시하고 지나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나는 너무 신경이 쓰였고, 어떻게 하면 그림을 그린 아이가 무안하지 않게 그 그림을 내리거나 수정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고민 끝에, 나는 수석교사님을 찾아가 1학년 학생들에게 그림을 그리게 하실 때, 설명으로 '비장애인'이라는 올바른 용어와 왜 우리가 그들을 존중해야하는지에 대해 설명해주면 더 좋을 것 같다고 조심스레 말씀드렸고, 반응은 충격적이었다. 선생님은 웃으며 말씀하셨다.

"니가 신경 쓸 필요 없는 문제 같은데, 사람들 그림 자세히 안 볼 거야."

자세히 보지도 않을 그림을 전시하고, 또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내용을 가르쳐 주지도 않은 채 보여주기식 작품만을 만들게 하는 선생님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며칠 뒤 그림은 또 다른 그림으로 바뀌었고 그 일은 잊혔다.

그러다 또 하나 새로운 일이 생겼다. 수석교사님께서 학교 엘리베이터에 떡하니 '정상인 사용금지'라는 팻말을 붙여둔 것이다. 그것도 엘리베이터 안쪽에. 사용금지 표지판을 안쪽에 붙여두면 애초에 탄 학생들밖에 볼 수 없고,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수밖에 없어 그 팻말을 보게 될 장애인 학생들이 상처를 받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팀을 꾸려 문제를 해결해보고자 했다. 수석교사님께 몇 명이서 찾아가 팻말을 수정해주실 수 없냐고 요청드려 보았다. 결과는 이전과 같았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팻말을 만들었다. 왜 엘리베이터의 팻말이 잘못되었는지, 어떤 용어가 바른 용어인지, 뭐가 개선되어야 하는지 우드락에 종이를 붙여 팻말을 만들었다. 그리고 학교에 일찍 와 아무도 모르게 학교의 모든 엘리베이터 앞에 팻말을 전시해 두었다.

이 계획을 세울 때도 나는 나의 계획 파일 앞면에 미키마우스 유니테크 스티커를 붙여두었다.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롤러 스케이트를 탄 미키. 나의 바람을 함께 이루어주길 바랐다. 그리고 결과는?
 

롤러스케이트를 탄 미키롤러스케이트를 탄 미키 유니테크스티커 ⓒ 박유정


성공이었다. 많은 학생들이 지나가면서 팻말을 보았고, 엘리베이터 안쪽의 잘못된 팻말은 결국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팻말은 그대로 남은 채였다.

선생님들께서는 전체 조회시간에 칭찬을 하려고 한다면서 팻말을 만든 사람들을 찾았다. 하지만 우리는 나서지 않았다. 굳이 나설 필요가 없었다. 누군가는 칭찬도 못 받을 일을 뭐하러 하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상관없다.

바뀐 걸 내가 알고, 내가 노력한 걸 내가 알기 때문이다. 난 이미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었고, 바보같이 보일진 몰라도 그 이상은 필요없었다. 스티커를 볼 때마다 내가 성취한 걸 알 수 있었으므로 충분했다.
 

멋진 성취를 보여주는 트위티 스포츠 스티커멋진 성취를 보여주는 트위티 스포츠 스티커 ⓒ 박유정


어른이 된 지금도 내 노력과 성취를 상징하는 스티커들은 내 물건 곳곳에 남아있다. 그 의미를 아무도 몰라도 좋다. 나만이 나를 알아준다면 그걸로 족하다. 이 글을 보는 분들도 자신의 노력을 알아줄 수 있는 것들을 주위에 하나씩 두어보는 것은 어떨까. 제안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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