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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자의 시선으로 본 김환기 작가의 점화

오늘이라는 점을 찍어 완성하는 인생 화폭, 멀리서 보고 예술을 만든다

등록|2023.10.17 10:21 수정|2023.10.17 10:21
연예인 덕질도 안 해봤는데 '과학자 덕질'을 하는 중이다. 미디어와 저서를 통해 본 김상욱 경희대학교 물리학과 교수는 따뜻한 시선과 흥미로운 인사이트를 전파해서 좋다. 그리고 얼마 전 김상욱 교수가 10월 7일 <물리의 공간, 김환기의 공간> 강연을 한다기에 재빨리 신청했다. 인간 김상욱의 관점에서 미술 작품은 어떤 메시지로 다가오는지, 물리학자에게 공간은 어떤 의미인지 듣고 싶었다.

"내 작품은 공간의 세계다." 김환기 작가의 일기 한 구절. 여기서 김상욱 교수의 강연이 성사됐다. 이렇게 한 사람의 언행은 만남의 시발점이 된다. 빅뱅이 한 '점'에서 시작했듯이 말이다.

나와 김환기 작가의 연결도 이번 강연이 시작점이 됐다. 필자는 미술 문외한이라 김환기 작가(1913~1974)에 대해선 국내 현대미술 경매 최고가 10점 중 9점을 차지하는 '비싼 작가'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이번 기회로 작가의 시기별 작품들과 시대 상황, 그리고 그간 쓴 일기를 통합적으로 바라보며 그 가치를 이해할 수 있었다. 
 

▲ 2022년 10월 13일 오전 글로벌세아그룹이 운영하는 서울 강남구 '에스투에이' 갤러리에 2019년 경매 당시 약 132억 원에 낙찰돼 한국 미술품 경매 사상 최고가 낙찰 기록을 세운 김환기의 '우주'(Universe 5-IV-71 #200)가 전시돼 있다. ⓒ 연합뉴스


요약하자면, 김환기 작가는 한국 현대추상회화의 선구자다. 작품을 보면 초기에는 달항아리를 비롯해 한국 정서가 담긴 정물화와 풍경화를 그리다가 점점 추상화로 화풍이 변했고, 마침내 점화(點畵)로 완성되는 양상을 보인다. 한 사람의 예술과 인생이 무르익어 가며 세상을 이해하는 관점과 사유가 변하는 과정이 작품에 투영된 것이리라. 결국 우리는 모두 원자로 돌아가고, 세상은 점들로 이뤄져 있다는 메시지가 작품을 통해 들리는 것만 같다.

이날 아이보리 빛 강연장에 빨간색 카디건을 입고 온 김상욱 교수는 기대만큼이나 재밌게 작품들을 바라봤다. 그리고 과학자의 겸손한 화법을 보여줬다. 강연 내용 중 "언제나"라는 표현을 쓰다가 잠깐 멈추더니 "대부분"이라고 정정했고, "이유일 거라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가 "이유 중 하나 일거라 생각합니다"라고 바꿔 표현했다. 과학자는 늘 예외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세상을 본다는 인상을 받았다.

1. 미술은 과학이 아니었던 적이 없다

김 교수의 인상 깊었던 해설 중 하나는 미술과 과학의 관계였다. "미술은 과학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다"는 과학자의 말은 학창 시절 "소실점"을 배우며 미술과 과학의 연결고리를 찾았던 기억을 소환했다. 그리고 점화를 보며 다시 미술과 과학의 관계를 생각했다.

점묘는 빛을 그리는 인상주의 화법으로 색을 섞어서 표현하지 않고, 색들의 인접표현(병치)을 통해 멀리서 보았을 때 섞여 보이게 하는 기법이다. 카메라가 발명돼 사실적 묘사의 가치가 떨어지고 광학이 발전하던 당시 시대상이 미술에 영향을 준 결과물인 것이다.

신인상주의(인상파) 화가들은 빛과 색채에 광학이론과 색채론을 더해 좀 더 과학적이고 분석적으로 미술에 접근했다. 인상파 대표 화가인 조르주 쇠라 역시 화학자 셰브뢸의 색채 대조이론과 물리학자 루드의 현대색채론을 공부했다고 하니 미술과 과학의 연결고리를 확인할 수 있다.

점화(點畵)는 그냥 수많은 점을 찍은 게 아니다. 김환기 작가의 점화들을 보면 정돈된 리듬감이 느껴진다. 쇠라가 <그랑드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를 그리기 위해 2년간 40여 점의 스케치와 20여 점의 소묘를 그렸듯이, 김환기 작가도 매일 치열하게 사유의 과정이자 결과인 점들을 그려나갔다. 우리는 작품이라는 결과물을 보지만 작가의 세심한 붓터치와 계획된 구도를 보며 작품의 과정을 유추할 수 있다.

해석을 듣고 작품을 보며 점화가 이렇게 과학적이고 철학적인 미술이었음에 감탄한다. 화폭을 메우는 하나하나의 점들은 무엇인지 정의할 수 없다(do not define). 별인지 세포인지 그냥 떨어진 물감인지 캔버스 가까이에 서서 바라보면 판단할 수 없다. 그러나 거리를 두고 멀리서 본다면 그 연결성이 보이고 작품이 완결된다. 이것이 인생이라는 메시지를 점화가 주는 듯하다.   2. 점은 과정이다

"I do not define time, space, place, motion" 뉴튼이 한 말이다. 물리학은 형이상학적인 걸 정의하지 않는다. 측정가능하고 답할 수 있는 것만을 과학의 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도 말했다. 시간과 공간은 사람의 창작물이라고. 아인슈타인에게 시간은 과학의 대상이 아니라 단지 두 눈금의 차이, 즉 수식일 뿐이다. 그 숫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설명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공간 역시 길이와 거리, 그리고 좌표계를 활용한 위치로 설명될 뿐이다.

그렇다면 점은 어떨까. 점은 물리학의 대상이 아니라 수학 개념인 것부터 흥미로웠다. 부분이 없는 것, 크기가 없는 것, 즉 존재하지 않는 것. 우리가 고등학교 때 배운 리미트(limit), 0에 무한히 근접한다는 개념이 점이라고 한다. 따라서 점은 존재도 아니고 고정된 명사도 아니며 움직이는 과정이라는 설명을 들으며 마치 우주의 먼지, 점과 같은 우리 존재가 떠올랐다.

이렇게 점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면 선 역시 재정의 할 수 있다. "선은 점이 시간화된 형태(선=운동)다." 즉, 물리학자가 보는 선은 점들의 집합이 아니라 과정이며, 이렇게 시간 개념이 들어가면서부터 물리학의 범주에 들어오게 된다. 일례로 일기예보에서 보이는 태풍의 이동경로는 태풍의 눈이 이동하는 것을 관측한 데이터로, 예측 경로가 선처럼 보인다.

물리학에서 보는 점과 선, 그리고 연속성.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가능성이 삶에 들어온다. 점화 캔버스를 이루는 점들처럼 세상은 수많은 원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가 보는 스크린도 다 픽셀로 이뤄져 있고 우리 몸도 수많은 세포들로 구성돼 있다. 우리의 망막이 세상을 연속적으로 보여주지만 사실은 연속이 아닌 개개의 점이라는 사실. 우리의 인생도 가까이서 보면 아무것도 아닌 허무의 점 같을 수 있지만 멀리서 봤을 때는 연속성을 갖는 (희극) 작품이 된다.

3. 부재함으로써 존재를 만들어낸다

역설이 갖는 아름다움이 있다. 그릇은 비어있음으로써 그 쓸모를 갖는다. '가득하다, 차있다'가 긍정 표현일 때가 많은 물질주의 사회에서 없음으로써 그 가치를 발휘하는 그릇의 매력.

김환기 작가의 점화 속 선을 표현하는 방식에서도 그 역설의 미를 찾을 수 있다. 작가는 경계선을 직접 그리지 않고 점들의 이동방향을 달리해 그 경계를 만들거나, 점으로 가득 찬 캔버스에 일부 공간을 비워둠으로써 선을 만들어냈다. 후자의 방법, 부재함으로써 선의 존재를 만들어내는 것.    사고의 전환이다. 우리가 존재하는 방법, 무언가를 성취하는 방법, 무언가를 표현하는 방법은 한 가지만 있는 게 아니다. 삶을 대하는 자세로서 작가가 선을 만들어낸 방법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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