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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밤, 광장에서 펼쳐진 음악과 댄스의 열기

[카프카스 기행, 카스피해 바쿠에서 흑해 바투미까지 (20)] 트빌리시 야경

등록|2023.10.18 16:54 수정|2023.10.18 16:55

▲ 고르가살리 광장의 젊은이들 ⓒ 이상기


유럽광장에서 메테키 다리를 건너면 고르가살리 광장이 나온다. 꽈리강변으로는 나이트클럽과 바 같은 술집이 있어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다. 고르가살리 광장에는 술보다는 음악과 춤을 즐기는 젊은이들이 모여 있다. 세 명의 악사가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른다. 기본이 되는 세 가지 악기로는 현악기, 타악기, 건반악기가 있다. 줄이 세 개인 현악기 판두리(panduri)가 멜로디를 담당한다. 타악기로는 작은 북이 리듬과 박자를 담당한다. 아코디언은 멜로디와 반주를 담당한다. 이들 세 악기의 연주에 맞춰 젊은이들이 춤을 춘다.

먼저 젊은 여자가 나와 상당히 역동적인 몸짓으로 춤을 춘다. 그러자 거기에 맞춰 젊은 남자가 나와 보조를 맞춘다. 둘은 비교적 좁은 공간에서 긴 원을 그리며 춤으로 호응한다. 이 춤에서 둘은 손을 잡거나 몸을 밀착하지 않는다. 중간에 다른 젊은 남자가 손짓으로 교대를 요청한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첫 번째 남자가 빠지고 여자가 새로운 파트너를 맞이한다. 남자는 다른 춤사위로 여자의 호감을 사려 노력한다. 잠시 후 둘은 음악에 맞춰 함께 강렬하게 팔을 움직이며 스텝을 밟는다. 둘의 춤은 그렇게 한동안 이어진다.
 

▲ 나리칼라 요새 야경 ⓒ 이상기


이들의 춤이 끝난 후 다른 남녀 파트너가 나와 춤을 춘다. 춤을 마치면 남자들의 단독무가 이어진다. 남자 혼자 추는 춤이라서 그런지 짧으면서도 역동적이다. 두 사람 정도 춤을 춘 후 여자 파트너가 나와 호응하며 함께 춤을 춘다. 이들 춤에 맞춰 빠르고 역동적인 음악이 계속 이어진다. 이곳에서 연주되는 음악은 아주 빠르고 춤은 현란하다. 이들이 연주하는 광장 뒤로는 'I♥Tbilisi'라는 사인 간판이 보인다. 주변은 호텔과 레스토랑이 밀집한 구시가지로, 밤에 최고로 혼잡한 지역이다.

이곳에서 길을 따라 남쪽으로 올라가면 나리칼라 요새가 나온다. 그리고 성채로 올라가기 전, 트빌리시 도시의 출발점인 온천을 만날 수 있다. 이 지역을 아바노투바니(Abanotubani)라 부른다. 고르가살리왕이 사냥한 매가 떨어진 곳에서 유황온천을 발견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트빌리시가 이베리아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고 한다. 온천 뒤 언덕에는 나리칼라 요새가 있다. 이 요새는 트빌리시 도시가 커지면서 방어용으로 만들어졌다. 나리칼라 요새는 밤에도 조명을 해서 화려한 모습이다. 그 때문인지 밤늦도록 그곳으로 올라가는 케이블카가 운행된다.

밤에 평화의 다리를 지나 자유광장으로
 

▲ 평화의 다리 야경 ⓒ 이상기


이제 고르가살리 광장의 열기를 뒤로 하고 꽈리강 서안을 따라 평화의 다리 쪽으로 올라간다. 꽈리강에서는 야간에도 보트와 유람선을 타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평화의 다리에 가까이 갈수록 다리를 덮은 지붕의 LED 조명이 밝아진다. 그리고 불빛이 물에 반사되어 반짝인다. 평화의 다리는 2010년 이탈리아 건축가 루치(Michele De Lucchi)의 설계로 만들어졌다. 그런데 재료와 디자인이 너무나 현대적이어서 올드타운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많은 비판을 받았다. 일부 비평가들은 물고기 모양의 덮개를 여성 생리대에 비유하며 공격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트빌리시 여행객들이 반드시 찾아 건너가는 관광명소가 되었다.

이곳에서는 다리 남쪽으로 야간 조명이 들어온 시온 성당, 나리칼라 요새, 고르가살리왕 동상과 메테키 성당을 볼 수 있다. 동쪽으로는 리케공원에 있는 콘서트홀이 보이고, 그 너머 대통령궁의 모습 위에 돔 야경이 선명하게 보인다. 다리에는 시원한 강바람을 쏘이며 야경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 다리에서 다시 서쪽 강변을 따라 올라가면서 조지아 정교회 건물이 보인다. 그리고 일부 지하통로 벽에는 사회비판적인 내용의 그래피티 벽화를 볼 수 있다.
 

▲ 자유광장의 용을 퇴치하는 성 조지상 ⓒ 이상기


이 길을 따라가면 오른쪽으로 바라타슈빌리(Baratashvili) 다리가 나온다. 다리 동쪽으로는 조지아정교의 본산인 성삼위일체 대성당의 야경이 보인다. 조지아어로는 츠민다 사메바(Tsminda Sameba) 대성당이다. 그리고 왼쪽으로 이어진 바라타슈빌리 대로를 따라가면 자유광장이 나온다. 자유광장에는 트빌리시 시의회, 행정부, 은행, 쇼핑몰 등이 있어 행정과 상업의 중심지다. 자유광장이라는 이름은 러시아 제국이 무너지고 조지아 공화국이 수립된 1918년 처음 생겨났다. 그 후 한때 레닌광장이 되었다가 1991년 레닌 동상이 철거되면서 다시 자유광장으로 되살아나게 되었다.

현재 자유광장에는 용을 퇴치하는 성 조지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성 조지 동상은 조지아의 독립과 자유의 상징으로 2006년 건립되었다. 35m 높이의 석주 위에 5.6m 크기의 금동상으로 만들어졌다. 광장의 북쪽에는 푸시킨의 흉상도 있다고 하는데 밤이라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이곳 광장에서는 2005년 제2차세계대전 종전 60주년을 기념하는 대규모 행사가 열렸는데, 10만 군중이 모였다고 한다. 이곳 자유광장에서 북쪽으로 루스타벨리(Shota Rustaveli) 역까지 이어진 길이 루스타벨리 대로다.

청동기시대부터 20세기까지, 인류 역사 담고 있는 박물관
 

▲ 조지아 의회 건물 ⓒ 이상기


루스타벨리 대로에는 조지아 의회, 국립박물관과 미술관, 오페라 극장 등이 위치하고 있어 역사와 문화예술의 거리로 불린다. 도로 이름도 중세 조지아의 대표 시인 쇼타 루스타벨리(1160~1220)에서 따왔다. 그는 조지아 역사, 기독교 신앙, 플라톤적 사고, 동서양의 문화교류, 조지아 사람들의 사상과 정서를 잘 표현한 작가로 유명하다. 그의 대표작은 민족 서사시인 '표범가죽을 입은 기사'다. 아라비아와 인도 출신 영웅들이 펼치는 우정과 사랑을 통해 동시대 사회와 문화를 그려낸 작품이다. 루스타벨리는 타마린 여왕시대 재무부장관을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젊은 시절 모습이 100라리 지폐에 초상화로 표현되어 있다.

자유광장에서 루스타벨리역 방향으로 가면서 만나는 큰 건물이 국립역사박물관이다. 청동기시대부터 20세기까지 조지아와 카프카스 지역의 고고학과 인류학을 망라하는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다음에는 국립현대미술관을 만날 수 있다. 2013년에 지어지기 시작해 2018년에 완성된 첨단의 현대식 건물이다. 5층으로 되어 있으며, 3층에서 5층까지가 전시실로 사용된다. 이곳에는 100명이 넘는 예술가의 작품 3,500여점이 전시되어 있다. 한 블록 옆에는 국립미술관이 있다. 그곳에서는 시그나기 박물관에서 보았던 피로스마니의 그림을 더 많이 볼 수 있다.
 

▲ 오페라와 발레극장 ⓒ 이상기


현대미술관 건너편으로는 조지아 입법부의 상징인 의회 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 1930년대와 40년대 지어진 건물로 처음에는 조지아 소비에트 정부 청사로 사용되었다. 1991년 소련이 무너지고 조지아가 독립국가를 건설하려고 하던 혼란기에 군사쿠데타가 일어나 건물이 크게 손상되기도 했다. 그 후 5년 동안 건물을 재건했고, 1997년부터 조지아 의회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루스타벨리 대로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물은 누가 뭐래도 오페라와 발레극장이다. 건물의 외관도 특이하지만, 야간에 공연이 열려 많은 사람들이 출입하고 있기 때문이다. 1851년 오페라하우스로 처음 지어졌고, 1896년 동양적인 무어양식의 극장으로 재탄생되었다. 이 극장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예술인으로는 작곡가 팔리아슈빌리 (Zacharia Paliashvili)와 발레리나 아나니아슈빌리(Nina Ananiashvili)가 있다. 몽세라 카바예, 호세 카레라스 같은 에스파냐 성악가들이 오페라 극장에 출연한 적도 있다고 한다. 이 극장은 6년간의 리모델링을 거쳐 2016년 1월 재개관했다.
 

▲ 자전거 조형물 ⓒ 이상기


오페라와 발레극장을 지나면 트빌리시에서 아주 오래된 빌트모어 호텔을 만난다. 그리고 루스타벨리역 쪽으로 더 올라가 장미혁명(Rose revolution) 광장에 이르면, 하얀 조명을 한 고리형 조형물과 대형 자전거 조형물이 나온다. 이들은 낮보다는 밤에 더 강렬한 인상을 준다. 그것은 주변에 건물이 없기 때문이다. 이날 트빌리시 야경감상은 꽈리강 서쪽 구시가지를 따라 이루어졌다. 상당히 먼 거리로 일부는 혼자, 그리고 일부는 단체로 걸어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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