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고흐가 사랑한 도시를 직접 걸었습니다
[인문학자와 함께하는 말랑말랑 유럽여행 1] 37년 짧은 시간 동안 그가 거쳐간 도시들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37년 짧은 생애 동안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벨기에 4개국의 21개 도시와 시골을 넘나들며 우리가 사랑하는 많은 그림을 남겼습니다. 마침 올해는 그가 태어난 지 1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의 흔적을 찾아 지난 1월 3주간 유럽의 여러 도시와 시골을 둘러보았습니다. 그 이야기를 기록한 여행기를 연재하여 독자들과 나누고자 합니다.[기자말]
우리가 사랑한 고흐, 영혼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는 네덜란드 남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 프랑스 파리 근교의 작은 마을에서 생을 마쳤다. 37년 짧은 삶을 사는 동안 네덜란드, 영국, 벨기에, 프랑스 등 4개국의 21개 도시와 시골을 30여 차례나 넘나들며 살았다. 성인이 되고는 어떤 도시에서도 2년 이상을 머무르지 않았다.
▲ 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 프랑스 파리 오르세 미술관 ⓒ 김윤주
평생 어느 한 곳에도 안주하지 못하고 수많은 장소들을 떠돌아다녔지만, 머물렀던 그 어느 곳도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사람들은 흔히 그를 세상과 화합하지 못한 비극적인 화가, 일평생 단 한 점의 그림밖에 팔지 못한 불운의 화가 정도로 기억하지만, 실은 그 누구보다 세상과 그림과 삶을 사랑한 성실하고 열정적인 한 인간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 모든 것을 자신의 그림과 편지에 담아냈다.
아침이면 화구를 들고 나가 저녁 해 질 무렵까지 그림을 그리고, 밤에는 길고도 긴 편지를 쓰고 또 썼다.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린 기간이 10년도 되지 않지만 2천 점이 넘는 작품을 남겼다. 이제 막 스무 살을 앞두고 쓰기 시작했던 첫 편지로부터 삶을 끝내던 서른일곱 살 여름의 마지막 편지까지, 그가 쓴 편지는 지금 남아 있는 것만 해도 900통이 넘는다. 그 중 820통이 동생 테오에게 쓴 것이다. 모든 쓰는 사람이 그러하듯 엄청난 독서가이기도 했다.
▲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반고흐 미술관이 있는 곳 ⓒ 김윤주
올해는 마침 그가 태어난 지 170주년이 되는 해이다. 유럽의 여러 미술관에서는 이를 기념하는 다채로운 행사들이 기획되고 있다. 그가 머물렀던 유럽의 곳곳을 그의 자취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오래도록 마음에 품고 있었다. 때마침 우연처럼 필연처럼 지난 1월 3주간 여행을 떠날 기회가 생겼다.
지도를 펼쳐 놓고 그가 살았던 곳들을 표시했다. 고흐에 관한 수많은 책들을 다시 읽고 자료를 정리했다. 마음은 이미 그곳에 가 있었지만 몸을 그리로 옮겨 놓는 일은 생각보다 도전이었다.
오래전 배낭 메고 유럽을 헤맸던 스무 살 언저리의 젊은 내가 여행을 기획하고 있었지만, 막상 그리로 데려가야 하는 현실의 나는 그보다 두 배의 세월을 더 떠안은 느린 몸을 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어설프고 어수선했다.
바쁜 일상 중에 여행 기간을 확보하는 일부터가 큰 난관이었고, 일단 기간을 확보하고 항공권을 구입한 이후로도 넘어야 할 산들은 끝도 없었다. 유럽의 여러 나라와 도시들을 이어줄 유레일 패스 구입, 육지와 섬나라 영국을 연결해 줄 유로스타 예약, 각국의 도시와 시골 마을에 얼마간씩 머물 숙소 예약,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입장이 자유롭지만은 않은 각 도시의 미술관 예약, 게다가 도착한 곳마다 매번 다른 시스템의 버스와 지하철과 시내 교통편 티켓 구입까지, 떠나기 전 준비 단계부터 여행에서 돌아온 지금까지 대체 몇 권의 노트를 채웠나 모른다.
▲ 고흐를 찾아 가는 길, 프랑스 아를 근교 생레미 드 프로방스. ⓒ 김윤주
그림과 편지에 담겨져 있는, 그가 머물렀던 장소들, 그가 읽었던 책들, 그가 그린 꽃과 풍경과 수많은 사람들, 이야기로 가득찬 그의 삶의 흔적은, 그가 그린 밤하늘의 별처럼 아름답고 슬프고 신비로웠다.
고흐처럼 우리도 기차를 탔다. 나라와 나라, 도시와 도시를 이동했다. 골목과 골목을 걸었다. 하루에 버스가 두어 번밖에 들락이지 않아 마음을 태워야 했던 곳도 있었다. 고흐처럼 무거운 가방을 들고 시골 들판을 걸었다. 낯선 카페와 미술관을 기웃거렸다. 곳곳에서 오래도록 기억될 잔잔한 친절과 작은 환대를 받았다.
준데르트, 암스테르담, 런던, 헤이그, 보리나주...
▲ 고흐처럼 열차를 기다리는 유럽 어느 기차역의 풍경 ⓒ 김윤주
네덜란드 작은 마을 준데르트, 반고흐 미술관이 있는 암스테르담, 스무 살 첫사랑에 빠졌던 도시 런던, 열여섯 어린 나이 화랑에서 그림을 팔고, 몇 년 후엔 어설프게 가정을 꾸리기도 했던 헤이그, 벨기에 국경지방 보리나주, 신학교를 다녔던 브뤼셀, 그림 수업을 들었던 안트베르펜, 인상주의 미술이 만개한 화려한 도시 파리와 저 아래 남프랑스 지방 아를, 생의 마지막 70일을 보냈던 오베르 쉬르 우아즈까지,
자, 이제 다시 떠나 보기로 하자. 고흐처럼 큰 가방 하나 둘러 메고, 운동화 끈 질끈 동여매고, 노란 물감, 파란 물감, 파레트 대신 카메라와 스마트폰과 노트 하나 챙겨 들고 돈 맥클린의 다정한 노래 < Vincent >, "Starry starry night~"을 흥얼거리며!
▲ 오베르 쉬르 우아즈, 프랑스 파리 근교, ⓒ 김윤주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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