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조지아에서 가장 크고 높은 성당에 들어가다

[카프카스 기행, 카스피해 바쿠에서 흑해 바투미까지 (21)] 성삼위일체 대성당

등록|2023.10.22 11:20 수정|2023.10.22 11:20
조지아,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기독교 국가가 되다
 

▲ 성 삼위일체 대성당의 성녀 니노 ⓒ 이상기


조지아정교의 역사는 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조지아는 서쪽의 콜키스와 동쪽의 이베리아로 나눠져 있었다. 콜키스는 콘스탄티노플 교구에, 이베리아는 카파도키아 교구에 속해 있었다.

320년경 카파도키아 출신의 수녀 니노(Nino)가 이베리아 왕국 남부지역에서 기독교 사상을 전파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324년경 왕국의 수도인 므츠헤타(Mtskheta)에 이르러 왕비인 나나(Nana)를 만나 기독교 사상을 전파하게 되었다. 그러나 미리안(Mirian) 왕은 기독교를 인정하지 않고, 왕비가 기독교를 버리지 않으면 이혼하겠다고 위협한다.

전승에 따르면 326년경 왕은 숲으로 사냥을 나간다. 그런데 갑자기 숲이 어두워졌고 왕은 길을 잃는다. 절망적인 상황에 당황한 왕은 나나가 믿는 신에게 기도했다. 그러자 갑자기 세상이 밝아지면서 길이 나타났다. 므츠헤타의 왕궁으로 돌아온 미리안은 니노에게 세례를 받고 기독교인이 된다.

기독교 사상은 왕족과 관리들은 물론 국민들에게까지 전파되어 갔다. 그리고 마침내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하게 되었다. 이베리아 왕국은 아르메니아에 이어 두 번째 기독교 국가가 되었다.
 

▲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 ⓒ 이상기


미리안 왕은 334년 기독교 교회를 세울 것을 명령한다. 45년 후인 379년 므츠헤타의 스베티츠호벨리(Svetitskhoveli) 대성당 자리에 이베리아 왕국 최초의 교회가 세워진다. 5세기 후반 므츠헤타 대교구가 설정되고, 이것이 조지아 정교의 출발점이 된다.

1008년 바그라트(Bagrat) 3세에 의해 동서로 분열되었던 카르틀리와 콜키스기 통일되어 조지아 왕국을 이룬다. 1010년 조지아 교회는 조지아 정교회로 독립하고 멜히제덱(Melchizedek)을 정교회 수장인 총대주교로 임명한다.

성 삼위일체 대성당은 조지아 정교회 총대주교좌 성당이다
 

▲ 성 삼위일체 대성당 ⓒ 이상기


1000년 넘게 조지아 정교회의 중심은 므츠헤타에 있는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이었다. 조지아가 소련연방에 속해 있던 1989년 조지아 정교회를 대표하는 새로운 성당을 세우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국제적인 설계공모를 거쳐 1995년 11월 트빌리시에 성 삼위일체 성당 건축이 시작되었고, 2004년 11월 23일 성 조지(George)의 날 축성되었다. 이때부터 조지아 정교회의 총대주교좌가 스베티츠호벨리 대성당에서 트빌리시 성 삼위일체 대성당으로 넘어오게 되었다. 성 삼위일체에 해당하는 조지아어가 츠민다 사메바(Tsminda Sameba)여서 츠민다 사메바 대성당으로도 불린다.

츠민다 사메바 대성당은 아르메니아 사도교회의 호자수도원(Khojavank)이 있던 자리에 세워졌다. 수도원에는 아르메니아계 유명인사들의 무덤이 있었다. 이 수도원과 묘지는 종교탄압이 심했던 1930년대 대부분 파괴되었고, 츠민다 사메바 성당이 세워지면서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사메바 대성당이 있는 곳을 엘리아(Elia) 언덕이라 부른다. 엘리아는 기원전 9세기 아합왕 통치시기 이스라엘 북부에 살았던 선지자다.
 

▲ 장미정원에서 바라 본 성 삼위일체 대성당 ⓒ 이상기


성 삼위일체 대성당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좋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것은 건물이 지나치게 수직적이고 위압적일 뿐 아니라, 아르메니아 수도원과 묘지의 파괴 위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츠민다 사메바 대성당은 길이가 70m, 폭이 65m, 높이가 87m에 이른다. 지하층의 깊이가 13m이니, 지하로부터 따지면 높이가 100m나 된다. 외관으로 볼 때 성당은 4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당 안에는 9개의 경당이 있으며, 그 중 성녀 니노와 성 조지에게 바쳐진 경당이 조지아 정교와 직접 관련된 인물이다. 경당은 지하에 5개, 1층에 4개가 있다.

성당 안 경당 들어가 보고 나오기
 

▲ 돔 아래 성령, 예수, 성모 마리아와 12사도 ⓒ 이상기


우리는 먼저 1층의 남쪽 문을 통해 성당 안으로 들어간다. 바닥에는 대리석이 깔렸고 일부는 기하학적 무늬의 모자이크로 이루어져 있다. 사방에는 벽화와 조각 그리고 장식이 있다. 성당의 중심은 돔으로 사방 창문에서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그런데 돔의 천장에 하느님이 없다. 아직 그려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돔 아래 제단 안쪽 반원형 벽에는 예수가 의자에 앉아 있다. 오른손을 들어 신도들을 축복하고, 왼손에는 성경을 들어 가르침을 보여준다. 조지아어 성경 구절에는 올바른, 학교 같은 글자가 보인다. 예수의 머리 위로는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가 그려져 있다.

예수 좌상 아래에는 성모 마리아를 중심으로 12사도가 반원형으로 둘러싸고 있다. 이들 성인의 두광 양쪽으로 이름이 적혀 있다. 이 12사도 아래에는 그 이후 성인으로 추대된 위대한 인물들의 초상이 그려져 있다. 성직자들이 있는 제대와 신자들이 있는 예배실을 구분하는 이코노스타시스(Iconostasis)는, 가운데 출입문이 있고 양쪽으로 두 개씩 성화가 그려져 있다.

성화 속의 인물로는 성모 마리아, 성녀 니노 같은 여성도 있고, 조지아 정교에서 중시하는 사도 성 안드레아와 성 조지 같은 남성도 있다. 성녀 니노를 그린 성화가 많은데, 그것은 그녀가 조지아에 기독교를 전파했기 때문이다.
 

▲ 성 삼위일체 대성당 지하층 벽화 ⓒ 이상기


계단을 따라 지하층으로 내려가면 경당을 만나는데, 지하 경당에는 조지아 정교회의 주교들 무덤에 해당하는 석관이 함께 있다. 이곳 역시 성직자 공간과 신자 공간을 이코노스타시스로 구분하고 있다. 지하에는 또 대형벽화가 걸려 있다.

이 그림에는 저 높은 곳에 있는 하느님이 성모 마리아와 예수 그리고 천사들을 통해 모든 성인들에게 축복을 내리고 있다. 이들 가운데로 이교도의 칼날에 목이 떨어진 성인들이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고 있다. 동방정교의 이콘화풍으로 그려져 그림이 어둡지만 성스럽고 진지하다.

이곳에는 조지아 정교 총대주교인 일리아(Ilia) 2세(1933~)의 말씀과 사진도 있다. 일리아 2세는 북오세티아 출신으로 1960년 모스크바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바투미에서 신부로서의 사목을 시작했다. 1963년 바투미 주교가 되었고, 1963년부터 1972년까지 므츠헤타 신학대학 학장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1977년 12월 다비드 5세의 뒤를 이어 조지아 정교회 최고수장인 총대주교가 되었다. 그는 개혁을 추구했고, 소련시대 실추된 교회의 권위를 회복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2002년에는 정부와 협약을 맺어 정교회의 재산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받았다. 그리고 조지아의 역사에서 정교회가 한 역할과 권위를 인정받았다.
 

▲ 일리아 2세 사진 ⓒ 이상기


2008년 러시아와 조지아 전쟁시에는 러시아 정치가와 교회 지도자들에게 전쟁을 멈출 것을 호소했다. 그리고 러시아군에 의해 점령된 조지아 도시를 돌며 구호활동을 벌였다. 더 나가서는 '스톱 러시아' 데모에도 참가해 시민들과 함께 인간띠를 만들었다.

그해 12월에는 러시아 대통령 메드베데프를 만나 양국에 긍정적인 합의를 이끌어내는 외교적인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2010년 CNN은 일리아 2세를 조지아에서 가장 신뢰받는 인물로 선정했다. 2023년 3월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성당을 나와서는 동쪽과 북쪽을 한 바퀴 돌아본다. 성당 주변으로 종탑, 주교관, 신학대학, 세미나실, 휴게소 등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남쪽과 동쪽에 정원이 잘 가꿔져 있다. 장미정원이 있고, 라벤더 정원이 있다. 라벤더는 마지막 추수를 하는지 일꾼들이 바쁜 손을 놀리고 있었다. 또 정원 사이사이로는 왕들의 흉상도 보인다. 타이무라즈(Teimuraz) 1세는 확인이 되는데, 다른 한 인물은 설명판이 없어 확인이 어렵다.
 

▲ 타이무라즈 1세 흉상 ⓒ 이상기


타이무라즈 1세는 1605년부터 1648년까지 바그라티의 왕으로, 이란의 사파비 제국으로부터 조지아의 독립을 쟁취하기 노력하다 1663년 죽었다. 그는 조지아 정교가 이슬람세력에 의해 유린되는 것을 막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했으나, 사파비 제국의 수도인 이스파한으로 끌려가 감옥에서 생을 마쳤다.

그는 또한 시인으로 명성이 높다. 그는 페르시아 시를 조지아어로 번역하면서 시작 능력을 키웠고, 1625년 자신의 어머니 케테반(Ketevan) 왕비의 수난과 순교를 시로 완성했다. 이 작품 속에서 시인은 삼위일체 신에게 바치는 어머니의 기도를 인용하고 있다. 그 때문에 성 삼위일체 대성당 정원에 그의 흉상이 모셔진 것 같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