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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기일에 제사를 지내지 않습니다

추모공원에서 성묘하고 고향 방문해 일가친척 뵙고... 아버지, 어머니도 기뻐하지 않으실까

등록|2023.10.22 17:25 수정|2023.10.23 17:04
며칠 전,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8년째 되는 기일이었다. 우리 가족은 부모님 기일에 집에서 하는 전통적인 방식의 제사는 지내지 않는다. 대신에 형제들이 모여 부모님이 잠들어 계시는 추모공원을 찾아서 성묘를 한다. 고향 마을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누나가 간단하게 음식을 준비한다.

나는 부산에 살고 있는 형님을 모시고 아내와 함께 고향으로 내려간다. 가족들은 형편에 따라 참석하기도 하고, 다른 볼일이 있을 때는 빠지기도 한다. 가능한 부모님의 직계자녀인 우리 삼형제는 일정을 맞추어서 만난다. 기일이 평일인 경우가 많아, 직장에 다닐 때는 기일이 속한 직전의 주말에 성묘를 간 경우가 많았다.
 

▲ 부모님과 큰형님의 유골이 모셔져 있는 추모공원이다. ⓒ 곽규현


가족 만남의 시간을 가지다

올해는 삼형제 모두가 다니던 직장에서 은퇴를 하여 기일에 맞추어 성묘를 갔다. 먼저 형님과 나는 읍내에서 기다리고 있는 누나를 만나 추모공원으로 함께 이동한다. 추모공원에 도착하여 부모님 납골묘에 바칠 조화도 준비하는데, 이제 그럴 필요는 없어졌다.

조화가 처리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와 미세플라스틱으로 환경이 오염되어 사용을 금한다는 현수막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그동안 그것도 모르고 갈 때마다 색깔이 예쁘고 고와 보이는 조화를 골라 헌화했었는데... 진작에 금지할 것이지, 돌아가신 부모님께 뭔가 죄송하고, 왠지 모르게 씁쓸하다.

묘지 주변을 살핀 다음, 누나가 장만해 온 음식을 간단하게 차려놓고 부모님 묘에 절을 올린다.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술을 따라 올리고, 몇 차례 절을 드린 이후에 아버지 어머니께 "그동안 잘 계셨습니까. 저희들 모두 의좋게 잘 살고 있습니다. 걱정 마시고 편히 계십시오. 다음에 또 오겠습니다"와 같은 인사말로 생시처럼 안부를 여쭙고 안심시켜 드린다.

부모님 성묘를 마치고 교통사고로 일찍 돌아가신 큰형님의 납골묘도 찾아 뵙는다. 부모님과 큰형님 모두 같은 장소에 모셔져 있어서 마음이 편하다. 이렇게 어머니 기일을 맞아 부모님과 큰형님은 하늘에서, 우리 삼형제 가족은 땅에서, 있는 공간은 다르지만 서로 만남의 시간을 가진다.
 

▲ 어릴 때 부모님과 함께했던 고향 마을 전경이다. ⓒ 곽규현

 
고향 마을을 방문하다

성묘가 모두 끝나면 인근에 있는 고향 마을로 이동한다. 고향 동네에 있었던 본가는 사정상 팔리고 없어졌지만, 아직 우리 가족이 살았던 본가의 집터와 골목길은 그대로 남아있다.

골목길을 따라 걷는 동안 예전 본가의 모습, 어릴 적 부모님과 함께했던 지난날들이 떠오른다. 형편이 넉넉지는 않았지만 이웃 간에 정이 넘치는 삶이었다. 그때는 골목길도 아이들로 시끌벅적하고 활기가 넘쳤는데... 잠시나마 다시 돌아오지 못할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하며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고향에는 여전히 생활하시는 친척들도 계셔서 부모님 기일에 찾아뵙는다. 숙모님도 계시고, 사촌, 육촌 형제들도 생업에 종사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집성촌이라 동네 분들이 모두 먼 친척이다.

혼자 계시는 숙모님은 낮시간에 읍내에 있는 복지관에 가셔서 만나뵙지를 못했다. 종갓집 육촌 형님과 형수님도 들에 나가고 계시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다. 그래도 친가의 친척들은 동네에 올 때마다 자주 찾아봬서 다음에 또 뵈면 된다.
 

▲ 일가친척이 모여 사는 마을 모습이다. ⓒ 곽규현

 
외가 마을의 외삼촌댁들을 방문하다

이번에는 마음먹고 이웃 동네에 있는 외가를 방문했다. 외가를 찾은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어릴 적에는 어머니를 따라 자주 갔지만, 성장한 이후로는 가지를 못했다. 기억을 더듬어 큰외삼촌댁을 찾았다. 큰외삼촌은 몇 년 전에 돌아가시고, 외숙모님은 살아계시는 줄 알고 갔는데, 집이 비어 있었다.

영문을 몰라 외사촌 누나에게 전화를 했더니 코로나19로 외숙모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시기에 미처 연락을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어릴 때 외가에 갈 때마다 따뜻하게 대해 주셨는데... 허탈한 마음을 뭐라고 해야 할지 착잡했다.

발길을 돌려 둘째 외삼촌댁으로 갔다. 거기도 대문이 잠겨 있었다. 이번에도 외지에 살고 있는 둘째 외삼촌의 장녀, 외사촌 누나에게 전화를 하니 둘째 외삼촌이 건강이 좋지 않아서 자기 집으로 모셔갔다는 거다. 가끔 집안 경조사 때 뵙기는 했지만, 그동안 너무 무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간다.

마지막으로 막내 외삼촌댁으로 갔다. 또 문이 잠겨있었다. 막내 외삼촌은 무슨 이상이 있으실까... 집안을 요리조리 살펴보니 대문은 노끈으로 감겨 있었지만 인기척이 느껴졌다.

노끈을 풀고 집안으로 들어가서 방문을 열어보니 막내 외삼촌이 누워계시다가 일어나셨다. 바람이 불어 대문이 흔들리지 않도록 묶어놨다며 기대치 않은 조카들의 방문에 무척이나 반가워하셨다. 외삼촌의 건강도 확인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준비해서 가져간 선물도 드렸다.
  

▲ 부모님과 큰형님의 유골이 모셔져 있는 추모공원의 일부이다. ⓒ 곽규현


성묘와 고향 방문으로 추모의 의미를 찾다

성묘를 하고, 고향 마을을 방문하고, 만나지 못한 친척들과는 전화로 안부를 묻고, 외가를 찾아 외삼촌을 만나는 일정을 모두 마쳤다. 우리 삼형제 가족은 마을 인근의 한적한 음식점에서 다소 늦은 점심을 먹으며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몸은 좀 피로했지만 마음은 가볍고 편안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아버지의 기일에는 기존의 관습대로 본가에서 제사를 지냈다. 그때는 아버지의 손때 묻은 자취가 남은 본가가 있었고,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려서 그렇게 했다.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부모님과 함께했던 본가마저 없어져서 우리 형제는 부모님의 기일에 성묘와 고향, 친척 방문으로 추모하고 있다.

공교롭게 아버지 기일은 설 명절 얼마 지나지 않아서, 어머니 기일은 추석 명절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매년 두 번씩 우리 형제는 이런 방식으로 부모님을 추모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어머니도 기뻐하지 않으실까.
덧붙이는 글 이 글은 개인 블로그에 실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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