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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국방부 장관에게 고소당했나

'38년 사건 조작' 제보로 시작된 군진상규명위 조사...박격포 오발 사건과 신원식 장관의 과거

등록|2023.10.27 20:29 수정|2023.10.27 20:29

▲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20일 오전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부 장관과 취임 이후 첫 공조통화를 하며 역내 안보상황 점검 및 한미동맹 현안을 논의하고 있다. ⓒ 국방부 제공


2020년 9월 13일 밤 11시가 다 된 늦은 시간이었습니다. 휴대전화로 모르는 전화번호가 떴습니다. 받을까 말까 살짝 고민하다가 결국은 수신에 손가락을 댔습니다. 결국 그 일이 만 3년이 지난 지금, 제가 국방부 장관이 된 신원식씨에게 고소를 당하는 일의 출발점이 될 줄은 그때까지 정말 몰랐습니다.

38년 전, 후임 이등병의 죽음이 조작되었다는 제보
  
전화를 건 낯선 남자는 놀라운 말을 했습니다. 자기가 오늘 술집에 들어가 한 잔을 하던 중 우연히 가게에서 켜 놓은 텔레비전에서 국회의원이 나오더랍니다. 그 사람, 어딘가 낯익은 얼굴인데 가만히 더듬어 보니 자기가 38년 전 군 복무할 때 중대장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오랫동안 가슴에 묻어두었던 고통스러운 사건 하나가 떠올랐다고 했습니다.

제보자는 전화를 들어 사람들에게 수소문을 했다고 합니다. 혹시 군 복무 시절에 있었던 사망사고에 대해 도움을 요청할 만한 사람을 알고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듣게 된 이름이 바로 제 이름이었다며 그는 자신의 38년 전 사건에 대해 저에게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1985년 10월 24일. 그러니까 만 38년 전 그때 육군 8사단 21연대 모 대대에 배치된 그는 당시 소대 최고참 병장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때 공지합동훈련이 있어 그는 포천에 위치한 승진훈련장에서 3일에 걸친 훈련에 동원되었다고 합니다. 사고가 발생한 날은 그 훈련의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자기 소대에 입대한 지 불과 석 달밖에 안된 이 아무개 이등병이 훈련 중 불시에 날아온 박격포를 맞고 사망한 것을 자신과 전우들이 직접 목격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당시 중대장을 비롯한 부대 간부들이 박격포 오폭이 아니라 유탄발사기 불발탄 폭발사로 조작했다는 제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중대장이 방금 자신이 술집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본 국회의원인데 바로 당시 국민의힘 국방위 소속 신원식 씨라는 것이었습니다.

고백하건대, 솔직히 저는 처음 이 제보를 받고 믿기 어려웠습니다. 아무리 1980년대지만 그런 일이 가능할까 싶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많은 이들이 보고 있는 자리에서 박격포를 맞아 숨진 사람을 불발탄 폭발 사고로 왜곡·조작할까. 정말 그렇게 했다는 것이 믿기 어려웠습니다. 정말 '아닌 밤중에 홍두깨' 같은 생뚱 맞은 이야기 같았습니다.

여하간 일단 그 분에게 제보 방법을 안내했습니다. 정식 제보를 위해 '대통령 소속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의 진정 접수 사이트 링크를 휴대전화로 보내줬습니다. 그런데 위원회 출범 후 2년 이내 진정 접수가 마감인데 마침 내일까지가 마감이니 반드시 내일 안으로 해야 한다며 못 박아 안내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정말 마지막 날 접수된 사건, 바로 문제의 <진정 1699번 이 아무개 일병>(사망 후 이등병에서 일병으로 추서됨) 사건이었습니다.

밝혀진 진실, 그러나 부인하는 신원식 장관
  

▲ 이 사건 제보자 조평훈씨가 위원회로부터 진상규명 결정을 받은 후 망인이 안장된 대전현충원을 찾아 참배했다. ⓒ 조평훈


하지만 믿을 수 없던 그 제보는 근 3년에 걸친 위원회 조사를 통해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대표적인 군 의문사로 알려진 1984년 4월 2일 허원근 일병 사건의 목격자는 1명이었습니다. 1998년 2월 24일 판문점 김훈 중위 의문사 사건 역시 남북을 넘나들던 이른바 '적과의 내통'을 하던 중사의 존재를 증언했던 이가 1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에 결정적 제보를 해 준 참고인만 현재까지 최소한 6명입니다.

그들은 모두 한결같이 지금의 신원식 국방부 장관을 위시한 당시 부대 연대장, 대대장 그리고 헌병 수사관이 '절대 박격포 오폭 사고는 없었다'고 하는 주장을 적극 반박합니다.

한편 지난 10월 10일 이 의혹을 방송한 MBC PD수첩 제작진에게 신원식 장관은 "박격포 사격은 훈련 당일 오후 1시에 끝났기에 사망 사고가 일어난 오후 3시 35분에는 박격포 사고가 절대 일어날 수 없다"며 강력히 반박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신원식 장관의 주장이야말로 터무니없는 엉터리입니다. 그냥 간단하게 무너집니다. 당시 중대장이었던 신원식 장관의 무전 명령을 받아 그날 그 시각에 박격포를 쐈다는 화기 소대장과 포반장 진술을 이미 위원회 조사에서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PD 수첩 방송에서도 "내 박격포로 한 발이 발포되고 10여 분이 지난 후 훈련이 종료되었습니다"며 사고 시각인 3시 35분에 박격포 사격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이처럼 명백한 박격포 사고 사실을 부인하는 신원식 장관의 태도에 그동안 위원회 조사에도 협조하지 않았던 당시 신원식 중대장의 무전병이 새롭게 나타나 "그 양반 해도 너무 합디다"라며 "60MM(박격포)에 화기 소대가 쏜 것에 맞아서 (이등병이) 사망한 것은 확실하다고 그것만 말씀드릴게요"라고 증언하고 나섰습니다. 이러한 증언자가 계속 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더 무엇을 증명해야 할까요.
  

▲ 사고 당시 중대장 무전병이 새롭게 나타나 박격포 사고를 부인하는 신원식 장관의 주장을 반박했다. ⓒ 피디수첩


제보자를 고소하는 신원식 장관
 

하지만 신원식 장관은 사실을 부인하며 계속해서 제보자와 이를 알리는 사람들에게 고소장을 쓰고 있습니다. 처음 이 사실을 보도한 <오마이뉴스> 기자들과 대표, 그리고 제보자를 직접 고소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함께 근무했던 대대장과 헌병 수사관이 이 사건을 조사한 위원회 조사관을 상대로 3000만 원의 민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이게 과연 옳은가요?

지난 9월 13일이었습니다. 그날 저는 대통령 소속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에 마지막 출근을 했습니다. 2018년 9월 출범한 위원회에 그해 12월 3일 조사총괄과장으로 임명된 후 다시 사무국장으로 내부 승진하여 5년 가까이 근무하다가 직을 내려놓는 날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시원섭섭한 날이었습니다.

그날 제가 운영지원과 직원에게 마지막으로 보고 받은 문서가 바로 이들에 대한 고소장과 민사 소송 이야기였습니다. 위원회는 끝나서 다들 집으로 돌아가는데 열심히 조사하여 진실을 밝힌 죄로 해당 조사관은 사법적 시달림을 받는다는 것이 기가 막혔습니다.

더구나 국가 기관이 국민에게 군 사망사고를 제보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진실을 바로 잡아준다고 약속했습니다. 확인해 보니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면 상을 줘도 부족할 판에 그때나 지금이나 힘이 센 가해자가 또 제보자를 고소한다는 것이 말이 되나요?

정말이지 부끄러웠습니다. 9월 13일 대통령 소속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 대국민 보고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후 며칠을 부산과 광양 그리고 순천으로 군 사망사고 피해 유족을 만나러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봤습니다.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았습니다. 내 입만 침묵하면 나는 안전하겠지요. 하지만 누구라도 이들의 편을 들어야겠다고 저는 결심했습니다.
  

▲ 신원식 국방부장관 후보자가 청문회를 이틀 앞둔 날, 유튜브 서울의소리와 박격포 오폭 사건과 관련한 인터뷰를 했다. 이 건에 대해 신원식 장관에게 고소를 당했다. ⓒ 인터넷 갈무리


그래서 그랬습니다. 지난 9월 25일. 신원식씨가 국방부 장관 후보자로 27일 인사청문회를 이틀 앞둔 그날, 저는 유튜브 <서울의소리> 아침 시사프로 방송에 나가서 말했습니다.

"제보자인 저들의 말이 맞습니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지금 전 국민을 속이고 장관이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38년 전 이등병을 박격포 오폭으로 숨지게 하고 실수에 의한 불발탄 폭발로 사망했다고 왜곡·조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38년 전 사고가 난 그날 밤 중대장인 신원식씨가 어느 참모에게 불발탄 사고라고 보고하는 것을 보고 화가 났다는 중대원의 진술도 위원회 조사에서 확보했습니다. 본인은 설령 박격포 오폭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사안을 왜곡·조작하는데 관여한 적이 없다는 주장 역시 사실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같은 전우였던 제보자를 비롯하여 기자들을 고소하면서 또다시 그때처럼 다시 입막음을 통해 진실을 목 조르고 있습니다. 이게 어떻게 민주주의입니까? 그는 국방부 장관 자격이 없습니다."

정의의 법정에 공소시효는 없습니다

그리고 10월 18일이었습니다.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촉이 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용산경찰서라고 하더군요. 고소인 신원식씨로부터 고소장이 접수되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몇 번을 다시 물었습니다. "정말 신원식씨가 직접 고소했느냐"고. 맞다고 경찰이 답했습니다. "아니, 무슨 장관이 시민을 고소하냐?"고 하니 그도 웃더군요.
  

▲ 신원식 장관이 고상만 전 국장을 명예휘손 등의 혐의로 고소한 사실을 알리는 뉴스 ⓒ 인터넷 갈무리


결국 그렇게 해서 저도 이 사건 제보자와 피고소인이라는 '한 배'를 탔습니다. 만 3년 전 어쩌면 그 늦은 밤 제보 전화를 받으면서 준비된 운명이었을까요.

사람들이 "인권운동가는 어떤 사람이냐"고 종종 묻습니다. 그러면 저는 이렇게 답합니다.

'남의 일에 끼어드는 사람'

그렇습니다. 인권운동가는 운명적으로 남의 일에 끼어듭니다. 그로 인해 같이 사는 가족은 얼마나 힘들까요. 하지만 이번 일에도 아내는 그저 묵묵히 감당합니다. 그런 아내가 있어 고맙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입니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합니다. 박정훈 대령은 숨진 채 상병 앞에서 '너의 죽음이 헛되이 되지 않도록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합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다가 박 단장은 지금 모진 수모와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정말 존경과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저 역시 그런 마음입니다. 이 사건 피해자인 이 일병은 사망 당시 스무 살이었습니다. 입대 전엔 사회에서 음악 디제이를 했다고 합니다. 노래를 잘해서 사망 당일 점심때 고참들이 노래를 시켰더니 혼자 3곡이나 불렀다고 합니다. 그리고 잠시 후 끔찍한 사고로 목숨을 잃은 것입니다. 그 죽음을 잊을 수 없어 죄책감 속에 살아온 전우들이 38년 만에 용기를 내어 밝힌 이 진실이 권력의 힘으로 묻히지 않도록 제가 함께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들은 공소시효가 끝났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니 설령 잘못되어도 그만이고, 잘하면 '또 그냥 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것이 있습니다. '정의에는 공소시효가 없다는 것'입니다. 정의는 38년이 아니라 '380년이 지나도 반드시 세워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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