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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공화국 1년 보고서 :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이태원 참사 1주기 특집] 이상한 진단, 이어진 남탓, 뜬구름 대책

등록|2023.10.27 17:24 수정|2023.10.27 18:23
[인터랙티브 기사 - 참사공화국 1년 보고서 :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https://omn.kr/265tu]

10.29 이태원 참사 발생 사흘 뒤인 2022년 11월 1일, 윤석열 대통령은 희생자들의 영정사진 하나 걸리지 않은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 분향소를 찾아 방명록에 이렇게 썼다.

"슬픔과 비통함 가눌 길이 없습니다. 다시 이런 비극을 겪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 윤석열 대통령이 1일 서울 용산구 녹사평역 광장에 설치된 이태원 사고 사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조문록을 작성했다. ⓒ 대통령실 제공


이후에도 대통령은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모든 역량을 쏟겠다"며 약속을 이어갔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11월 7일 이전까지 정부가 썼던 "사고"라는 표현을 접고, 처음 "참사"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근본적 제도 개선을 신속히 추진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 약속은 지켜졌을까.

#1 '이상한' 진단
 

▲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18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범정부 국가안전시스템 개편 TF 1차회의를 주재하며 마스크를 벗고 있다. ⓒ 권우성


11월 18일 범정부 안전시스템개편 TF가 출범했다. TF단장은 "퇴진 요구"를 받고 있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었다. 그는 "재난안전관리 총괄 장관으로서 깊은 책임감을 느낀다"고 했다.

TF 활동으로 2023년 4월 발표된 '국가 안전시스템 개편 종합대책' 보고서. 그런데 정부의 진단이 이상했다.

"재난관리 대응 역량을 넘어선 재난·사고"
"새로운 재난"
"비정형 재난"
*비정형 : 일정한 형식이 정해지지 않음

 

▲ 10.29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2023년 4월 발표된 '국가 안전시스템 개편 종합대책' 보고서. ⓒ 국가 안전시스템 개편 종합대책


즉 이태원 참사는 아무리 잘 대비해도 발생했을 "신종 재난"이라는 것이었다. 압사 참사는 신종 재난일까. 수많은 과거가 있다.

<국내 사례>
▲ 35명 부상 / 2006년 3월 /서울 놀이공원 무료 개방 행사 ▲ 11명 사망, 162명 부상 / 2005년 10월 / 상주 자전거축제 가요콘서트 ▲ 1명 사망 / 2001년 1월 / 서울 팬클럽 모임 ▲ 1명 사망, 9명 부상 / 2000년 12월 / 서울 보신각 타종행사 ▲ 1명 사망, 8명 부상 / 2000년 3월 / 대구 종교행사 ▲ 1명 부상 / 1999년 1월 / 서울 가수 공연장 ▲ 3명 사망, 4명 부상 / 1996년 12월 / 대구 가수 공연장 ▲ 2명 부상 / 1993년 8월 / 서울 야구장 프로야구 경기 ▲ 1명 사망, 19명 부상 / 1992년 2월 / 서울 가수 공연장 ▲ 5명 사망, 20명 부상 / 1980년 2월 / 부산 초등학교 조회 참석 ▲ 4명 사망, 39명 부상 / 1974년 9월 / 용산역 명절 귀성 ▲ 12명 사망, 100여 명 부상 / 1965년 10월 / 광주 전국체전 경기장 ▲ 31명 사망, 41명 부상 / 1960년 1월 / 서울역 명절 귀성 ▲ 67명 사망, 150명 부상 / 1959년 7월 / 부산 시민 축제
*출처 : 군중집회 시의 인명피해 및 군중 눌림 현상의 고찰 (2011, 왕순주·변현주)
 

▲ 2005년 10월 경북 상주에서 벌어진 압사 참사. ⓒ 상주인터넷방송 제공

    

지난 2010년 물축제 당시 참혹했던 압사사고 현장의 모습. 물축제 축하공연이 열린 수도 프놈펜 다이아몬드섬 다리에 한꺼번에 사람들이 몰리며 무려 시민 354명이 압사하는 바람에 그 이듬해 물축제가 최소됐다. ⓒ 박정연


<해외 사례>
▲ 12명 사망, 500여 명 부상 / 2023년 5월 / 엘살바도르 축구장 ▲ 1명 사망, 37명 부상 / 2018년 9월 / 마다가스카르 축구장 ▲ 2000여 명 사망 / 2015년 9월 / 사우디아라비아 성지순례 ▲ 36명 사망, 49명 부상 / 2014년 12월 / 중국 새해맞이 ▲ 378명 사망, 700여 명 부상 / 2010년 11월 / 캄보디아 물 축제 ▲ 21명 사망, 수백 명 부상 / 2010년 7월 / 독일 퍼레이드 축제 ▲ 11명 사망, 200여 명 부상 / 2001년 7월 / 일본 불꽃축제 ▲ 96명 사망, 수백 명 부상 / 1989년 4월 / 영국 축구장 ▲ 수백 명 사망 / 1982년 10월 / 러시아 축구장 ▲ 173명 사망 / 1943년 3월 / 영국 지하 대피시설 ▲ 73명 사망 / 1913년 12월 / 미국 크리스마스이브 파티 ▲ 183명 사망 / 1883년 6월 / 영국 공연장
*출처 : 고밀도 군중집회 시 안전대응 방안 연구 (2018, 김동준)

"이태원 참사는 관리할 수 있었고 예방할 수 있었던 참사였다. 다중 인파에 대한 관리 부재, 다양한 기관의 책임, 불법 건축물에 따른 병목 현상이 원인이었다. 국가 안전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이유를 파악해야 한다." - 최희천 아시아안전교육진흥원 연구소장

#2 이어진 '남 탓'
 

▲ 윤석열 대통령이 3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이태원 핼러윈 압사사고 현장을 찾아 수습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신종 재난"이란 정부의 '이상한' 진단은 곧 '남 탓'으로 이어졌다.

"원인을 제대로 진단하지 않았는데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오겠나? - 전주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연구원

정부는 참사의 원인으로 "지자체"와 "현장공무원"을 겨냥했고 심지어 "국민 의식"을 걸고 넘어졌다.

"지자체 등 현장공무원의 역량 부족", "안전에 대한 국민 의식과 재난 시 행동요령 숙지 부족" - 국가 안전시스템 개편 종합대책 중 (2023년 4월)
 

▲ 10.29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2023년 4월 발표된 '국가 안전시스템 개편 종합대책' 보고서. ⓒ 국가 안전시스템 개편 종합대책


그리고 49쪽짜리 종합대책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말이 있다. '정부의 책임.'

정부는 정말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까. 참사 후 끝내 설치되지 않은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 4시간 후에야 가동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이를 떠올려보면, 국가 안전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다.

"이태원 참사 때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시스템 중 하나가 중대본·중수본 등이다. 문제점 전반에 대한 검토 없이 나온 대책을 개선책이라고 볼 수 있나?" - 이동규 동아대 재난관리학과 교수(긴급대응기술정책연구센터 소장)
 

▲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1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서울공항에서 아세안 정상회의가 열리는 캄보디아 프놈펜으로 출국하기 도착하고 있다. 차에서 내린 윤석열 대통령이 인사하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어깨를 두 번 툭툭치고 있다. ⓒ 권우성


다시금 떠오르는 이태원 참사 직후 윤 대통령의 발언.

"막연하게 다 책임지라는 건 현대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이야기다." - 11월 7일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

윤 대통령은 나흘 뒤 해외 순방을 떠나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안전 주무부처의 수장인 이 장관은 그 두드림에 깊이 숙인 허리로 화답했다. 그때 행정안전부 장관도 지금 행정안전부 장관도 '이상민'이다.

"지난 1년간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사회적 회복력은 상실됐고 유족·생존자의 피해만 가중되고 있다." - 전주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연구원

#3 뜬구름 대책
 

▲ 윤석열 대통령이 30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열린 이태원 핼러윈 사고 긴급상황점검회의에 참석해 보고받고 있다. ⓒ 대통령실 제공


꼬여버린 진단은 '뜬구름' 대책으로 이어졌다.

"이른바 '크라우드 매니지먼트'라는 인파 사고의 관리 통제 중요성을...", "드론 등 첨단 디지털 역량을 활용하고 기술을 개발하라." - 윤석열 대통령 (2022년 11월 1일 국무회의)

그마저도 깃털 같은 약속이었다. 2023년 디지털 공공서비스 혁신 프로젝트 공모사업에서 이태원 참사 관련 다중밀집도 사업은 한 건도 선정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145억 원 혈세가 들어간 공모사업인데 회의록도 없었"다(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 2023년 10월 11일 국정감사).

'남 탓' 진단에 걸맞은 '남 탓' 대책이 쏟아졌다.

"ICT 기술 활용 선제적 예측·감지 체계 구축", "디지털플랫폼 기반 재난관리 및 대응역량 강화", "신종재난 위험요소 발굴센터", "심폐소생술(CPR) 등 안전교육 내실화", "국민운동 3단체(새마을운동중앙회·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한국자유총연맹)와 협력해 안전문화 캠페인" - 국가 안전시스템 개편 종합대책 중 (2023년 4월)

아들을 잃은 유족 송해진(고 이재현씨 어머니)씨는 "국민들이 심폐소생술(CPR)을 못해 이런 참사가 벌어졌나?"라고 고개를 내저었다. 전문가들도 마찬가지였다.
 

▲ 10.29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2023년 4월 발표된 '국가 안전시스템 개편 종합대책' 보고서. ⓒ 국가 안전시스템 개편 종합대책


"재난 대응 시스템 무너졌는데 보조적 기술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 최희천 아시아안전교육진흥원 연구소장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는 매뉴얼을 아래로 하달하는 상황이다." - 전주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연구원


이런 기조 속에 나온 5대 전략, 97개 대책 중 이행된 건 21개(2023년 10월 24일 기준). 그나마 이행했다는 과제 중 '퇴짜'를 맞은 사례도 있었다. "수도권 전철 혼잡 완화방안 마련"은 '완료'됐다고 한 과제였으나 승객 호흡곤란 사례가 잇따르며 결국 '재추진'하기로 했다.

"그저 나열만 돼 있는 대책이다. 무엇이 좋은 대책인지 나쁜 대책인지 알 수가 없다. 과거를 덮는 대책이자 반성이 없는 대책이다." - 전주희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연구원
 

▲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 촉구 및 300일 추모 4대 종교, 유가족, 시민 삼보일배가 지난 8월 22일 오전 서울시청앞 합동분향소에서 진행됐다. ⓒ 권우성


'이상한' 진단과 '뜬구름' 대책에 갇힌 국가 안전시스템으로 인해 유족과 시민들은 지금도 거리로 나간다.

"지난 1년간 '제2의 이태원 참사를 막겠다고 홍대 길거리에 빨간 페인트를 4억 원을 들여 칠했다는 기사를 봤다. 이게 후속 대책인가. 하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자리를 유지하는 것부터 행정의 참사 아닌가." - 유족 송해진(고 이재현씨 어머니)씨

#4 9년 전 경고
 

▲ 10.29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2023년 4월 발표된 '국가 안전시스템 개편 종합대책' 보고서. ⓒ '국가 안전시스템 개편 종합대책


정부 종합대책 보고서 첫 페이지엔 난데없이 독일의 사회학자 한 명이 등장한다. <위험사회>의 저자 울리히 벡(Ulich Beck, 1944~2015).

그런데 그가 세월호 참사 세 달 후인 2014년 7월 한국을 찾아 했던 말이 있다. 그리고 그 말은 이태원 참사 1년 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국민들은 분노했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참사 후 조용해지면 정치인은 과거의 관행을 답습하겠지만 위험은 사라진 게 아니다." - 울리히 벡(Ulich Beck, 1944~2015)
 

▲ '위험사회'의 저자 울리히 벡 독일 뮌헨대 교수 겸 코스모폴리탄 연구소장이 8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중민사회이론연구재단, 서울대사회과학연구원, 국회기후변화포럼 등이 주최한 국제학술회의에서 '해방적 파국, 기후변화와 위험사회에 던지는 함의'라는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2014.7.8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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