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악의 악> 스틸컷 ⓒ 디즈니+
2022년 <너와 나의 경찰수업>을 시작으로 한국 오리지널 시리즈를 선보인 디즈니+는 차가운 겨울과도 같은 동면의 시간을 경험해야 했다. 넷플릭스의 한국 시장 성공이 오리지널 시리즈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에서 디즈니+의 연달은 실패는 그 부진으로 이어졌다. <형사록>, <카지노>가 대중적인 관심을 받으며 웰메이드 시리즈로 주목받았지만 글로벌 OTT에 어울리는 성과를 내지 못하며 2023년에도 부진은 이어졌다.
그간 언더커버 장르가 집중해 왔던 건 크게 두 가지였다. 주변 상황으로 인해 이어지는 위기에 수동적으로 대처하는 주인공의 모습과 잠입한 경찰과 그를 믿는 조직보스 사이의 브로맨스가 그것이다.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던 이 판을 바꾼 <최악의 악>만의 무기는 언더커버 형사의 부인이 조직보스의 첫사랑이라는 설정이다.
▲ <최악의 악> 스틸컷 ⓒ 디즈니+
작품은 세 명의 최악의 악을 만들기 위해 세 가지를 붕괴시킨다. 먼저 작품의 메인이라 할 수 있는 한중일을 엮는 마약사업을 벌이는 조직, 강남연합이다. 이곳의 보스인 정기철은 권승호라는 이름으로 잠입한 언더커버 경찰 준모에 의해 일망타진당할 위기에 처한다. 이 설계에 기철 본인을 가담시키는 인물은 준모의 아내이자 경찰, 그리고 기철의 첫사랑으로 여전히 마음에 품고 있는 의정이다.
남편을 보호하기 위해 작전에 참여한 의정은 기철을 감정적으로 흔든다. 그 근저에는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인해 사랑을 이루지 못했던 청년 기철의 순정이 담겨있다. 이 감정을 잊지 못한 그는 남편과 이혼했다는 의정의 거짓말에 어쩌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여기며 자신이 이뤄낸 기존의 것들을 부정하기 시작한다. 승호와 의정을 지키기 위해 기철은 자신을 지켜온 이들을 하나씩 밀어낸다. 그리고 배신이라는 최악의 악과 마주하게 된다.
<도니 브레스코>, <폭풍 속으로>, <신세계> 등 언더커버 장르가 내세웠던 브로맨스 대신 보스와 경찰 그리고 그 아내의 아찔한 삼각관계가 자리를 대신한다. 정체가 들통 날 위기 속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수동적으로 움직여 왔던 언더커버 경찰들과 달리 준모는 자신의 욕망을 바탕으로 판에서 우위에 서고자 한다. 그 동력은 열등감이라 할 수 있다.
▲ <최악의 악> 스틸컷 ⓒ 디즈니+
마약중독자 아버지 때문에 경찰조직 내에서 변두리를 맴도는 준모는 엘리트 경찰집안 딸인 의정에게 어울리지 않는 남자라는 생각에 자격지심을 지니고 있다. 언더커버 임무는 이 열등감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로 다가온다. 문제는 이 임무에 의정이 가세하면서 벌어진다. 의정에 대한 기철의 애정을 확인한 순간 관계에 대한 의심은 물론 남자로 느끼는 경쟁 심리에 점점 더 광기에 휩싸여 가는 준모다.
그 정점을 보여준 장면이 조직 간의 혈투에서 점점 야차로 변해가는 그의 모습이다. 피칠갑이 되어 경찰의 임무를 벗어난 폭력성을 선보이는 그의 모습은 욕망에 잠식당한 영혼의 붕괴를 보여준다. 이 시점부터 준모의 행위는 임무를 위한 선택인지, 남자로 기철을 이기기 위한 분투인지 알 수 없다. 그런 준모와 마주한 의정은 과연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의문을 품게 된다.
장르의 변주를 위한 캐릭터라 할 수 있는 의정은 어쩌면 기철과 준모 두 남자 모두에게 최악의 악으로 인식될 수 있는 인물이다. 기철의 순정과 준모의 열등감을 모두 알고 있는 의정은 이들을 감정적으로 가장 괴롭히는 역할을 한다. 준모를 돕기 위해 기철의 순정을 이용하고, 임무를 돕기 위해서라지만 기철과 사랑을 나누며 준모의 광기에 불을 지핀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이런 독과 같은 성향의 의정이 두 사람에게 구원의 의미가 된다는 점이다.
▲ <최악의 악> 스틸컷 ⓒ 디즈니+
영화 <남자가 사랑할 때>의 한동욱 감독은 남성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로맨스를, <의형제>의 장민석 감독은 의심과 우정을 넘나드는 남자들의 세계를 담아내며 사나이픽처스의 역사에 남을 시리즈를 완성하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 준모를 향한 사약 로맨스를 보여준 해련, 냉혈한 칼잡이 서부장, 판을 뒤흔든 폭력형사 황민구, 조직을 위한 충정으로 기철을 배신한 정배까지 신스틸러를 다수 등장시키며 변화를 줬다.
<무빙>과 <비질란테> 사이 예상치 못한 비밀병기로 등장한 <최악의 악>의 시즌 2 제작이 자못 궁금해진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키노라이츠 매거진과 김준모 기자의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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