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성추행 피해자의 변신, 이 여성이 흥미로운 이유
[난 네게 반했어] 단순 중저예산 액션 영화? <인터셉터>의 미덕
콘텐츠가 넘쳐 나는 시대, 당신에게 딱 맞는 책이나 영화, 노래를 배달해 드립니다. 좋은 콘텐츠를 소개하면서 지금 이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난 네게 반했어 챌린지'는 다음 필자를 지목하는 릴레이 연재입니다. 글의 마지막 부분을 주목해 주세요.[편집자말]
▲ 넷플릭스 영화 <인터셉터> ⓒ 넷플릭스
다양한 종류의 액션 영화를 좋아한다. 대규모의 예산이 들어간 장르의 장인들이 만들어 낸 종류의 긴장감이 넘치는 영화들. 하지만 반대로 아주 단순한 폭력이 난무하는 영화도 꽤 선호한다. 긴장도 갈등도 없고 예고편만 봐도 결말이 훤히 보이며(심지어 주인공이 어떻게 악당을 이길지 다 보인다) 다른 어떤 요소도 신경 쓰지 않은 채 러닝타임 내내 주인공이 악당들을 두들기기만 하는 영화들 말이다. 이런 작품에는 어떠한 생각할 거리도 스트레스 유발 요소도 없다. 물론 정교하게 잘 만든 영화를 보는 건 기쁜 일이다. 하지만 365일 그런 영화만 봐야하는 건 생각보다 우울하다. 딱히 건강에 좋지 않다는 걸 알아도 인스턴트 식품이 당기는 때는 누구에게나 있지 않은가? 영화도 마찬가지다.
오늘 이야기할 영화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작품인 <인터셉터>이다. 솔직히 말해 잘 만든 작품은 아니다. 그리고 사실 이 영화를 만든 사람도 이걸 몰랐을 것 같지는 않다. 작품의 토대가 되는 설정부터 허술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주된 배경은 제목과 같은 '인터셉터'인데, 이 시설은 미국 본토로 핵미사일이 발사되면 그 이름과 같이 중간에 그 미사일을 가로채듯 요격하기 위한 곳이다. 그런데 그런 시설이 미국에 단 두 곳 밖에 없다. 심지어 둘 중 한 곳은 이미 테러리스트가 박살을 내놓은 상태. 여기에 영화의 배경이 되는 나머지 하나도 테러리스트의 습격을 받게 되고 주인공은 불가피하게 시설의 본부를 폐쇄시킨다. 그런데 테러리스트들을 몰아낼 미군이 '인터셉터'까지 오는데 한 세월이 걸린다고? 우리가 아는 그 미국이?
중저예산 액션 영화의 모범 같은 영화
▲ 넷플릭스 영화 <인터셉터>의 스틸 이미지 ⓒ 넷플릭스
가령 영화의 배경은 극도로 한정된 몇몇 공간이며 심지어 그마저도 실내 스튜디오이다. 그 흔한 외부 로케이션 촬영조차 이 영화에는 사실상 전무하다. 카메라를 들고 밖으로 나가는 순간 들어가는 제작비의 수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의 배경이 되는 '인터셉터'는 해상기지이고 주인공이 시설 밖으로 나가는 장면이 나오기는 한다. 하지만 자세히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건 배경이 모두 CG라는 것이다. 그것도 소위 말하는 '그것이 CG인지 숨길 노력조차 하지 않는 CG' 말이다. 그렇다고 세트에 공을 들였냐면 그렇지도 않다. 영화의 주된 배경이 되는 인터셉터 본부는 핵무기 방어시설 치고는 어지간한 빌딩 보안 시설보다도 허술해 보인다. 물론 그걸 신경 쓸 관객이라면 애초에 이 영화를 고르지도 않았겠지만.
영화를 추천하겠답시고 혹평을 늘어놓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는 않다. 서사, 인물, 세트 구성, 미술 등이 극도로 단순한 기성품이라는 건 그 요소들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생각을 1초도 하지 않고 주인공이 펼치는 활극을 즐길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이게 중저예산 액션 영화의 매력이 아닐까.
그리고 <인터셉터>가 마음에 든 다른 이유도 있다. 이 작품이 여성 주인공이 단독으로 극을 이끌어 나가는 액션 활극이란 점이다. 이게 왜 중요하냐고? 주로 '백인 남성'으로 대표되는 사회에서 기득권을 가진 주인공들의 액션 영화는 이입하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이들이 현실 세계에서 저지르는 폭력이 스크린 위에 지나치게 고스란히 겹쳐 보인다. 물론 현실에 있을 거 같지 않은 근사한 이미지의 스타급 배우가 연기를 한다면 이 기시감이 중화가 되겠지만 B급 영화에 그런 배우들이 출연할 리가 있나.
그런데 문제가 있다. 여성 인물들이 서사를 이끄는 영화는 지금 시대에서까지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아시다시피 여성 배우에게 보조적인 역할만 맡기려는 경향은 오래 이어진 역사이고 결국 여성 배우들이 직접 제작자로 나서서 여성 인물 중심의 작품을 만드는 흐름은 비교적 최근에서야 이어지기 시작했다. 때문에 여성 주인공이 단독으로 등장하는 작품들을 찾기가 힘든데 장르를 구체적으로 좁혀서 들어가면 난이도가 더욱 올라간다. 말하자면 여성이 단독으로 극을 이끄는 B급 액션 활극은 결코 흔하지가 않다(아니면 한국의 관객이 만날 수 없는 플랫폼에 있거나).
▲ 넷플릭스 영화 <인터셉터> ⓒ 넷플릭스
단순한 액션 영화? <인터셉터>를 흥미롭게 만든 부분
또 한가지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다. <인터셉터>의 주인공 콜린스는 존경받는 상사의 성추행 가해 사실을 고발했다 군대에서 배신자로 몰린다. 이 때문에 벼랑으로 몰린 콜린스는 좌절을 겪고 자살까지 시도하지만 결국 아버지의 조언을 듣고 다시 부대로 복귀한다. 악당인 테러리스트는 정확히 이 지점을 노려 주인공의 배신을 유도한다. 콜린스가 얼마나 억울하고 험한 꼴을 당했는지 계속 이야기하며 그런 군대에 충성할 필요가 없다고 회유한다. 하지만 정의로운 주인공은 핵미사일로 무고한 시민을 위협하는 테러리스트를 내버려 두지 않는다.
즉 <인터셉터>의 주인공은 여성이자 직장 내 성추행과 구조적인 2차 가해의 피해자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건 이 영화의 접근 방식이다. '조직에서 한번 부당하게 버림받았지만 결국 무고한 시민을 지키는 충직한 군인'은 매우 흔한 캐릭터다. 그리고 이 '부당한 버림'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강요된 희생, 구조 포기, 억울한 간첩 누명 등등. 그렇다면 여기에 직장 내 성추행과 집단적인 2차 가해도 포함될 수 있을까. <인터셉터>는 이렇게 답한다. 그럴 수 있지.
어쩌면 이 영화가 젠더 폭력을 너무 가볍게 다룬 건 아닌지 의심을 할 수도 있다. 물론 깊이 있게 다루지 않은 건 맞다. 하지만 그건 가볍게 다룬 것과 매우 다른 태도이다. 영화의 제작진들은 직장 내 성추행과 2차 가해가 명백히 개인에 대한 조직의 부조리이자 폭력임을 확실히 한다. 그렇기에 주인공을 변호하기 위한 여벌의 설득과 서사도 필요가 없다. 그냥 그것만으로도 주인공이 '배신을 해도 비난할 수 없는 위치에 있지만 무고한 시민을 위해 계속해서 싸우는 인물'임을 관객들에게 매우 직관적으로 설득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그 판단은 맞다. 우리는 제작진의 태도가 상식인 시대로 넘어왔거나 혹은 이미 넘어왔어야 했다.
구조적인 차별과 폭력 그리고 혐오는 많은 고민이 필요한 주제다. 하지만 때로 그것은 당연히 부조리이자 사회적 문제라 단호한 태도를 취하는 것도 가능하다. <인터셉터>는 이를 전제로 놓고 남아 있는 러닝타임 동안 차별과 폭력을 딛고 이겨낸 주인공들의 다양한 활약상들을 보여주는 길을 선택했다. 나는 모든 장르를 걸쳐서 <인터셉터>와 같은 영화가 많아지기를 바란다. 남자들이 전유물처럼 거느렸던 장르들에서 활약하는 자기만의 사연을 가진 여성 주인공들을 더욱 많이 보고 싶다.
*다음 필자는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의 리나 활동가입니다. 나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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