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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이 본 이태원 참사 1주기 "한국은 변한 것이 없다"

유족들 아픔 다룬 <타임>, 행정 책임 꼬집은 <로이터>... "누구도 책임지지 않아"

등록|2023.10.29 10:47 수정|2023.10.29 20:21

▲ 10·29 이태원 참사가 1주기를 보도하는 영국 <타임> ⓒ 타임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159명의 목숨을 앗아간 10·29 이태원 참사가 1주기를 맞이하며 외신도 생존자 및 유가족의 고통, 그리고 한국 정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전했다.

영국 <타임>은 한국시각 26일 '변한 것이 없다 : 이태원 참사 유족들은 아직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특집 기사에서 이태원 참사로 딸 최유진씨를 잃은 최정주씨의 아픔을 조명했다.

미국 뉴욕에서 공연 예술을 공부하던 대학생 유진씨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학업을 미루고 한국으로 돌아왔고, 핼러윈을 즐기기 위해 이태원에 갔다가 숨을 거뒀다. <타임>은 "아이러니하게도 유진씨는 한국에 있으면 안전하다고 믿었을 것"이라고 짚었다.

최씨는 "정부 당국자들은 이태원 참사를 피해자들의 잘못으로 만들려고 한다"라며 "피해자들은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고위 관료들, 책임 회피는 너무 흔한 일"

<타임>은 "슬프게도 한국에서는 고위 관료들이 공적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 너무 흔한 일"이라며 이태원 참사 외에도 지난 7월 오송 지하차도 참사, 8월 새만금 잼버리 파행 등을 예로 들었다.

이어 "한국의 정치인과 기업인들은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며 블랙핑크부터 오징어 게임까지 전 세계를 휩쓰는 'K컬처'를 활용해 2027년까지 외국인 관광객 3천만 명 유치를 목표로 세웠다"라며 "(정부는) 이런 분위기에서 이태원 참사에 연연하지 않으려고 한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최씨는 한국 정부가 필사적으로 잊고 싶어하는 참사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한다"라고 전했다. 최씨는 "(한국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라며 "한국에서는 비슷한 재난이 반복해서 벌어진다"라고 강조했다.

션 오말리 부산 동서대 교수는 <타임>에 "정의는 신속하게 이뤄지지 않았다"라며 "정부가 대규모 행사를 다루는 안전 방식에 대한 실질적인 변화를 원하는 유족들로서는 매우 당황스러울 것"이라고 비판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로 아들을 잃은 박모씨도 "정부가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 전까지는 정상적인 삶을 살아갈 수 없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박 씨는 "정부 기관이 참사에 대해 극도로 무책임하고 성의 없는 태도로 일관했다"라며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려는 우리의 노력을 정부가 방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로이터통신>은 "이태원 참사 이후 대대적인 수사가 벌어졌지만, 사임하거나 해임당한 정부 고위 관료는 한 명도 없었다"라고 꼬집었다.

"이태원 참사 교훈 삼아"... 해외 대도시, 핼러윈 안전 강화 
 

▲ 10·29 이태원 참사가 1주기를 보도하는 영국 <타임> ⓒ CNN


미국 CNN방송은 28일 이태원 참사를 교훈 삼아 아시아 주요 도시들이 올해 핼러윈을 맞아 안전 강화에 나선 것을 소개하기도 했다.

일본 당국은 핼러윈을 즐기는 명소인 도쿄 시부야에 젊은이들이 되도록 오지 말 것을 권고하고 있다. 또한 핼러윈 당일에 경찰력 배치를 강화하고, 주류 판매와 노상 음주를 단속하기로 했다.

하세베 겐 시부야구청장은 "이태원 참사가 재발할 수 있다는 점을 극도로 우려한다"라며 "작년에도 핼러윈 때 사람들이 오지 말 것을 요청했으나, 올해는 더 과감하게 오지 말라고 요청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그는 "매년 핼러윈 때마다 시부야역 주변이 너무 혼잡해 사람들이 다니기 불가능할 정도"라면서 "시부야 거리는 축제를 하는 곳이 아닐뿐더러, 과잉 관광으로 인한 피해가 너무 심각하다"라고 호소했다.

CNN방송은 "핼러윈은 도쿄, 홍콩, 상하이, 싱가포르 등 주요 도시에서 보편화된 축제"라며 "이태원 참사로 인해 인기가 한풀 꺾일지는 알 수 없지만, 도시 당국은 비슷한 참사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 조치를 강화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서울에 대해서도 "거리의 혼잡도를 모니터링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비롯해 많은 예방 조치를 내놓았다"라며 현장 상황실 운영, 응급 의료지원 체계, 지하철 무정차 운행 등을 소개했다.

또한 "세월호 참사와 마찬가지로 이태원 참사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에 관심이 쏠렸다"라며 "전문가들은 정부의 대응이 너무 느리고,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비판한다"라는 지적을 잊지 않았다.

영국 BBC "한국 정부 기관들, 인터뷰 요청 다 거절"
 

▲ 10·29 이태원 참사가 1주기를 보도하는 영국 BBC방송 ⓒ BBC


영국 BBC방송도 전날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수많은 고위 정치인과 공직자가 거론됐지만, 벌을 받지 않았다"라고 전했다.

또한 "한국 정부의 서울시의회, 경찰청, 용산구청 등에 이태원 참사로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 올해는 사람들의 안전을 어떻게 지킬 계획인지에 대한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모두 거절당했다"라고 덧붙였다.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을 돕기 위한 심리 상담을 하는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참사의 정치화, 책임 부재 등으로 인해 유족과 생존자의 회복이 더 힘들어졌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 사회가 피해자들을 돌보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 보여줄 필요가 있다"라며 "그래야 (이태원 참사로) 사라진 목숨이 헛되지 않고, 우리 사회를 더 안전하게 만들었다는 믿음에서 위안을 얻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BBC는 이태원 참사에서 살아 남은 이주현씨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올해도 핼러윈 때 이태원에 갈 것이라는 이씨는 "우리가 핼러윈을 즐기려고 이태원에 온 것이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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