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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 만나러 가는 길, 교통편 쉽지 않네

[인문학자와 함께하는 말랑말랑 유럽여행 2] 유로스타와 유레일 패스 구입

등록|2023.10.30 14:03 수정|2023.10.30 15:05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37년 짧은 생애 동안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벨기에 4개국의 21개 도시와 시골을 넘나들며 우리가 사랑하는 많은 그림을 남겼습니다. 마침 올해는 그가 태어난 지 17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의 흔적을 찾아 지난 1월 3주간 유럽의 여러 도시와 시골을 둘러보았습니다. 그 이야기를 기록한 여행기를 연재하여 독자들과 나누고자 합니다.[기자말]
"토요일 오후에는 해가 다 저물도록 갑판 위에 있었습니다. 끝없이 푸르른 바다, 하얗게 부서지며 일렁이는 파도... 바다 위의 해가 지는 풍경은 웅장하고 화려했습니다. 하지만, 조용하고 단순한 것들이 사람의 마음을 훨씬 더 감동시키기도 하지요."
- 1876년 4월, 런던으로 건너간 후, 아버지 어머니에게 고흐가 쓴 편지 중에서

고흐가 태어난 지 딱 17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러니, 사랑해마지않는 화가의 자취를 따라 걷는 멋진 여행을 우리도 이참에 한번 해 봐야 하지 않겠나,라고 결정한 것은 물론 아니었다. 이런저런 상황과 우연한 영감과 농담 같은 결심들이 이렇게 저렇게 교차하다가 마침내 어느 순간 '고흐'라는 한 지점에 툭, 도달하게 된 것.

100주년도 아니고 200주년도 아닌 조금 애매한 숫자이긴 하지만,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마음먹기 쉽지 않은 긴 여행길에, 뭐 하나라도 그럴듯한 이유를 갖다 붙이고 싶어하는, 그래서 이 장대한 여행길을 조금이라도 가볍고 떳떳하게 나서고 싶은 소심한 마음이 발동한 것이다.

그런데 사람 마음이 참으로 이상도 한 것이, 일단 빈센트가 마음에 들어오고 나니 그다음엔 갑자기 이 여행이 어떤 운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여행의 당위성을 확보하고 나니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다. 여러 가지 일정들을 조정하고 여행 기간을 확보했다.
 

▲ 프랑스 파리 북역 ⓒ 김윤주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해결해야 할 현실의 문제는 생각보다 많았다. 나라와 도시를 결정하고 숙소나 미술관 관람 일정을 잡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일단 유레일, 유로스타, 떼제베, 탈리스 등 장소와 장소를 잇고 잇는 교통편을 알아보는 일부터 보통 일이 아니었다.

지금만 해도 검색을 하면 많은 정보가 나오는데 당시엔 코로나로 오랜 기간 여행이 막혔다가 이제 막 좀 풀리기 시작하던 시점이라 최신 정보도 적었고, 무엇보다 그사이 우리의 일상이 온통 다 디지털화되어 버려 여행의 상황이 너무나 많이 달라져 있었던 것이다.

유레일 패스는 일단 글로벌 플렉시 티켓으로 구입을 해 두었다. 일정 기간 동안 유연하게 탑승 날짜를 결정해 사용할 수 있는 티켓이다. 패스 활성화를 위해 다운 받아야 하는 어플들을 휴대폰에 장착하고, 여행자 등록도 하고, 레일 플래너로 이것저것 눌러보며 여행 계획을 세워보고 있으려니 마음은 이미 그곳에 가 있었다.

유레일 패스를 마련했다고 끝난 것은 물론 아니었다. 각 도시별 체류 일정을 고려해 숙소를 예약하고, 머무는 기간에 맞추어 주요 미술관도 예약해 두어야 했다. 팬데믹 이후로 관람 인원이며 시간에 제한이 있는 곳이 많았기 때문이다.
    

▲ 런던 세인트 판크라스 역 ⓒ 김윤주


유로스타 예약이 이번 여행 계획의 가장 큰 허들이었다. 애초의 계획에는 런던이 빠져 있었다. 게다가 처음엔 자동차로 멋지게 유럽을 달릴 계획이었기 때문에 기차표 따위는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기차 여행으로 계획이 바뀌고, 거기에 또 여차저차 런던이 포함되면서 바다를 건너는 교통편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런던을 일정에 넣어 경로를 짜기로 한다면 대개의 경우, 런던 히드로 공항으로 들어갔다가 대륙으로 넘어와 여행을 하고 어디 다른 나라 도시에서 나오든지, 아니면 그 반대로 대륙에 있는 어느 나라 한 도시로 입국을 했다가 런던에서 출국을 하는 편이 경제적이다.

그런데 우리는 벨기에 브뤼셀로 들어가고 그곳에서 나오는 항공편을 고정해 두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이 길지 않은 여행길에 영국 땅을 밟고 다시 또 나와야 하는, 바다를 두 번 건너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무엇보다 금쪽 같은 시간을 이틀이나 이동에 소모해야 하는 마뜩치 않은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 벨기에 브뤼셀 중앙역 ⓒ 김윤주


영국과 프랑스를 연결하는 교통편에 대한 나의 기억은 고흐처럼 배를 타고 바다와 파도와 하늘을 바라보며 도버해협을 건넌 것이 전부인데, 그나마도 내 나이 스물다섯 시절 일이었다. 그사이 세기가 바뀐 것을 미처 생각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여행 노트에 애초에 몇 개의 노선을 가안으로 짜 두면서 계획을 이렇게 저렇게 수정해 갔는데, 런던을 일정에 포함시키기로 결정한 뒤에는, 나로선 당연하게도, 파리-칼레-도버-런던으로 입국했다가, 나올 때도 거슬러 바다를 건너 벨기에나 네덜란드 어딘가로 나온다,로 적어둔 것이다.

물론 이번에도 고흐처럼 배를 타고 건널 생각은 아니었다. 유로스타쯤이야 당연히 알고 있었으니 멋진 해저터널로 도버를 건너게 될 것이라고 기대야 했지만, 어찌 되었든 배 타러 항구에 가듯이 유로스타 타러 바닷가 어느 도시로 이동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만 했던 것이다.
 

▲ 런던 세인트 판크라스 역 ⓒ 김윤주


그동안 이런저런 여행을 제법 해 왔던 터라 나름 여행 고수라 자부하고 있었는데, 이렇게도 한심할 수가! 20세기 유럽 배낭여행 경험 기억으로 21세기 유럽을 접수하려 했다니! 와우! 인간의 사고라는 것이 얼마나 편협하고 자기 경험에 자신을 가두고 사는 것인지 새삼 또 느낀다.

수많은 웹사이트들을 뒤적거리고 수많은 정보를 종합한 끝에 결국 유로스타 티켓을 할인가로 결제했다. 파리 북역(Paris Nord)에서 런던 세인트 판크라스 역(London St.Pancras Int'l)으로 들어가는 것, 그리고, 런던에서 브뤼셀 미디역(Brusselle Midi)으로 나오는 것까지. 이것이 과연 제대로 작동할 것인가는 유럽 땅에 넘어간 뒤에나 확인해 보는 수밖에.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저의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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