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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마무리, 박석민의 '롤러코스터 야구인생'

찬란한 커리어 뒤 오점 남기고 은퇴... "존중받는 사람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등록|2023.10.30 18:37 수정|2023.10.30 18:37

▲ 프로야구 NC 다이노스 내야수 박석민 ⓒ NC 다이노스


한국시리즈 우승 6회(2005, 2011~2014, 2020), 3루수 부문 골든글러브 2회(2014, 2015) 플레이오프 MVP(2016), '삼성 왕조'의 프랜차이즈 스타, FA 총액 130억으로 역대 탑 11위, 유쾌하고 친근한 이미지와 팬들의 열렬한 사랑까지, 핵심만 요약했는데도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이상적인 야구인생의 표본이다.

하지만 2021년의 '그날' 이후로 이전의 커리어는 빛이 바래게 되었다. 모두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는 레전드로 남을 수도 있었던 선수는, 말년의 흑역사로 더 기억되는 오점을 극복하지 못한 채 쓸쓸하게 유니폼을 벗게 되었다. 최근 은퇴를 선언한 NC 다이노스의 베테랑 내야수 박석민의 이야기다.

NC 구단은 지난 10월 30일 '박석민이 구단에 20년간의 프로야구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밝혔다. 박석민은 30경기 타율 1할 9푼 3리(88타수 17안타) 1홈런 8타점 OPS .560의 성적으로 올 시즌을 마감했다. 지난 7월 25일 KIA 타이거즈전이 올해 정규시즌 마지막 경기가 됐다. 이미 박석민은 정규시즌 막바지 현역 은퇴에 대한 의사를 전달했고 구단도 이를 받아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석민은 KBO리그에 손꼽히는 족적을 남긴 레전드 3루수였다. 대구고를 졸업하고 2004년 1차 지명으로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한 박석민은, 일약 사자군단 세대교체의 주역으로 떠오르며 2000년대 중반-2010년대 전반기를 호령한 '삼성 왕조'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2014년과 2015년에는 3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석권했다.

2015 시즌 후에는 4년 총액 96억이라는 대박 계약을 터뜨리며 NC 다이노스로 이적했다. 박석민은 NC에서도 중심타선의 한 축으로 좋은 활약을 보여줬고, 2019년 시즌이 끝난 뒤 2+1년 36억 원에 2차 FA 계약을 맺고 NC에 잔류했다. 그리고 2020년에는 마침내 NC의 창단 첫 우승에 기여하면서 두 팀에 걸쳐 '우승청부사'로 등극했다.

박석민의 1군 개인 통산 누적 기록은 총 1697경기 출전, 타율 .287, 269홈런, 1041타점이다. 출루율 .402, 장타율 .491, OPS .893을 기록했다. 홈런 부문은 3루수 통산 4위에 해당한다.

박석민은 야구만 잘한 게 아니라 이미지도 좋은 선수였다. 삼성 시절엔 독특한 브로콜리 헤어스타일과 발레리나를 연상시키는 헛스윙 포즈, 류중일 감독과의 만담 에피소드 등으로 친근하고 코믹한 이미지가 강했다.

밝은 성격으로 동료와 팬의 사랑을 받았고, 유소넌 야구재단-후배 야구선수들-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선행과 기부를 통하여 사회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면서 박수를 받기도 했다. 2020년에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사회공헌도가 높은 선수에게 수여하는 '사랑의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바 있다.

하지만 완벽해보였던 박석민의 커리어와 이미지에 지울 수 없는 오점을 남긴 것은, 2021년 7월 벌어진 코로나 방역수칙 위반과 술판 논란이었다. 박석민은 당시 원정 숙소에서 박민우, 권희동, 이명기 등과 함께, 5인 이상 집합금지였던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위반한 사실이 드러나며 파문을 일으켰다. 이후 NC 및 당시 상대팀이었던 두산에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발생했고 밀접접촉자들까지 대거 나오면서 시즌이 중단되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졌다.

관련자들은 결국 KBO로부터 72경기 출장 정지 및 벌금 1000만 원의 징계를 받았다. NC 구단도 자체 징계를 내렸고, 가장 최고참이었던 박석민은 모범을 보이지 못했다는 이유로 후배들보다 두 배가 더 많은 50경기 출장 징계를 받았다. 설상가상으로 박석민은 허위진술을 했다는 했다는 혐의로 고발까지 당했지만 무혐의 불기소 처분이 내려지며 그나마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

하지만 이 사건 이후로 박석민의 프로 선수로서의 이미지는 180도 뒤바뀌면서 완전히 망가졌다. 가뜩이나 프로 선수들의 사회적 책임감과 일탈, 음주 문제 등에 민감해진 팬들의 금기를 건드린 사건이었기에 여론의 반응은 싸늘했다.

'술판 논란' 이후 커리어도 내리막길

선수로서의 커리어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박석민은 2016년 3할-30홈런-100타점 이상(,307, 32홈런 104타점)을 기록한 커리어 하이 시즌 이후, 부상이 잦아지며 하락세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꾸준히 주전급으로 활약할 정도의 기량은 되었고 2020년에는 3할 타율을 회복하며 부활하는 듯했다.

하지만 방역수칙 위반 논란이 터진 2021년 박석민은 징계로 시즌을 조기마감하며 59경기 출전에 그쳤다. 2차 FA 당시 2년 계약 후 연장 옵션이 있었던 박석민은 이미 2022년 연장 계약 옵션을 이미 달성한 상태였기에 징계 후 논란 속에서에도 그나마 선수생활을 이어가는 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이 사건 이후 그동안 완만하게 진행되는 '에이징 커브'가 급격히 가속화되면서 박석민은 부상과 하락세가 겹치며 두 번 다시 주전 자리를 되찾지 못했다.

박석민은 한때 7억 원이었던 연봉이 대폭 삭감된 끝에 93%나 삭감된 5000만 원에 도장을 찍어가면서도 선수생활 연장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NC 역시 그동안 팀에 기여도를 인정하여 박석민을 개막 엔트리에 포함시키는 등 어떻게든 어떻게든 기회를 주려고 했다.

하지만 건강이 따라주지 못했다. 잔부상에 시달린 박석민은 2022년 16경기, 2023년에는 30경기 출전에 그쳤고 타율은 모두 1할대에 머무르며 공수 모두 낙제점을 받았다. 대타와 백업요원으로서도 활용도를 인정받지 못한 박석민은, 일찌감치 포스트시즌(PS) 전력에서도 제외돼 와일드카드(WC) 결정전과 준플레이오프(준PO), 플레이오프(PO) 엔트리에 모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박석민과 동시대에 삼성 왕조의 주역이었던 윤성환, 박한이, 안지만, 임창용 등은 모두 프로야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을 만한 레전드들이었지만, 선수생활 말년에 하나같이 불미스러운 사건사고(음주운전, 도박 등)에 휘말리며 커리어를 망치고 은퇴 후까지도 오점을 남겼다는 공통점이 있다. 박석민과 프로야구 데뷔이자 은퇴 동기가 된 장원준(두산)이 말년의 극심한 부침을 딛고 올해 짧고 굵게나마 부활하며 '유종의 미'를 거둔 것과도 비교된다.

박석민 역시 한때의 잘못된 판단과 실수만 아니었다면 더 많은 팬들의 박수와 존중을 받으며 명예롭게 선수생활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이를 염두에 둔 것인지 몰라도 박석민은 "20년간 프로야구선수로 뛸 수 있게 도움을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 더 이상 팬 여러분께 유니폼을 입은 선수 박석민의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하지만, 사람 박석민으로 존중받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의미심장한 은퇴 소감을 전했다.

모든 사람은 흥망성쇠의 시간을 겪기 마련이고 찬란하게 빛나는 순간도 중요하지만, 석양이 지고 내려올 때일수록 더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 박석민의 안타까운 마무리가 후배들에게 교훈을 남기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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