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지 야영의 끝판왕, 모든 게 허용되는 땅
식수 찾아 삼만보, 알틴아라샨 가는 길
이메일이 디지털 사진이라면 필름 사진은 손편지 정도로 여기며 천천히 세상을 담습니다. 여정 후 느린 사진 작업은 또 한 번의 여행이 됩니다. 수평 조절 등 최소한의 보정만으로 여행 당시의 공기와 필름의 질감을 소박하게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Kodak Ektar100 필름을 사용하였습니다.[기자말]
드디어 카라콜(Каракол)에 도착했다. 키르기스스탄에 발을 내린 지 7일째 되는 날이었다. 가장 큰 도시인 비쉬케크는 서쪽에 치우쳐있고 카라콜은 동쪽에 치우쳐있다. 찻길을 기준으로 400km 정도 떨어져 있고, 직행으로 가면 7시간쯤 걸린다. 우리는 6일 동안 코치코르를 거쳐 송쿨에서 2박 3일을 보내고 다시 코치코르 – 발릭치 – 촐폰아타 – 카라콜의 여정을 밟았다.
▲ 회색 물줄기산 속 뿐 아니라 시내 숙소의 수돗물도 석회수가 나온다. ⓒ 안사을
이번 여행에서 가장 커다란 여정이자 궁극적 도전은 카라콜을 기점으로 하여 알틴아라샨(Алтын-арашан) 마을과 알라쿨(Ала-көл, '쿨'은 호수를 뜻함)에 다녀오는 것이었다. 배낭에 취사도구와 취침 짐을 넣어서 3박 4일 동안 걷는 만만치 않은 여정이었다. 악수 마을에서 알틴아라샨 마을까지 15km, 또다시 알라쿨까지 10km를 걷는데 이를 왕복해야 하니 총 50km의 길이었다.
등산을 전문으로 하지 않는 우리에게 이는 실로 엄청난 도전이었다. 무거운 짐을 메고 걸은 적이 없진 않았지만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긴 거리를 걸어본 적은 없었다. 게다가 해발 3300m 지점부터 찾아왔던 고산증은 지금까지 겪었던 증세를 초월한 가장 힘든 경험이었다.
카라콜 시내에서 이틀을 묵었다. 하룻밤에 한화로 6만5천 원 정도 하는 곳으로, 그동안 묵었던 숙소 중 가장 비싼 곳이었다. 여독을 잘 풀어주어야 할 것 같아서였다. 4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젊은 사람이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주방에서부터 복도, 객실 내부까지 꼼꼼하고 세밀한 손길이 안 닿아 있는 곳이 없는 아기자기한 곳이었다.
▲ 호텔 조식(휴대폰)모습만큼이나 맛있었던 아침식사 ⓒ 안사을
우리의 여정을 설명하고 약 5분의 1에 해당하는 짐을 호텔에 맡겼다. 그는 우리에게 엄지를 척 내밀며 행운을 빌어주었다. 이소 가스를 판매하는 곳도 그에게 물어 알 수 있었다. 현지인들은 잘 사용하지 않고 등산객들만 쓰는 용품이니만큼, 마트가 아닌 등산용품을 파는 곳이나 여행객이 많이 오는 카페에서 판매하고 있었다.
며칠 전 송쿨에 갈 때는 그 가스를 구하지 못해 취사도구가 무용지물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밥을 사 먹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있었기 때문에 오히려 짐을 줄일 수 있었다면, 알틴아라샨에 이르는 길의 중간에는 음식점이 없으므로 반드시 가스를 구비해야 했다.
악수 마을에서 출발하는 알틴아라샨 경로
아침이 밝자마자 짐과 함께 용기를 북돋운 마음도 배낭 한편에 넣고 호텔을 나섰다. 350번 마슈르카(미니버스)를 타고 종점인 악수 마을까지 갔다. 여행객들의 후기에 따르면 보통 악수 마을과 등산로의 갈림길에서 하차한다고 했는데, 우리가 탄 버스 기사는 생뚱맞은 곳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현지인 주택 몇 채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길에 덩그러니 놓인 채 잠깐 당황했다. 휴대폰 신호도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다행히 지도 데이터를 미리 내려받아 둔 지도 앱이 있어서 우리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었다. 보통 내려준다는 곳에서 1km 정도 덜 미친 곳이었다. 앱에서 보니 공식적인 마지막 정류소는 이곳이 맞는 것 같았다.
갈 길이 막막했다. 알틴아라샨까지는 15km인데 짐을 메고 오르막을 올라야 하니 중간에 숙영지를 마련해야 할 것 같았다. 안내자도 없는 초행길에서 정해둔 기착지도 없이 오프라인 앱에만 의지하여 천천히 걸었다. 입구에서부터 전파가 끊기니 날씨 예보는 이제부터 하늘을 바라보며 눈과 피부로 가늠해야 했다.
▲ 알틴아라샨 가는 길가장 멀리 보이는 곳에만 다다르면 알틴아라샨인 줄만 알았다. ⓒ 안사을
다행히 올라가는 내내 날씨가 맑았다. 알라쿨에서 큰 비가 예보된 것은 다음날인 8월 2일이었다. 해발 3800미터인 그곳에서 비를 견디는 것은, 힘든 것은 둘째치고 위험한 상황이기에 일부러 시내에서 하루를 더 묵었던 것이다. 만약 날씨를 확인하지 않고 하루 일찍 출발했다면 알틴아라샨에서의 이틀은 매우 쾌적했겠지만, 막상 가장 힘든 산행을 해야 했던 세 번째 날은 악천후 때문에 올라가지 못했을 수도 있다.
막상 우리를 괴롭힌 것은 매연과 흙먼지였다. 푸르공이라 불리는 미니버스나 군용 차량을 승객용으로 개조한 버스 등이 우리를 지나갈 때마다 한국에서 맡기 힘들었던 역한 매연이 코를 찔렀다. 매연저감장치를 통과하지 않은 디젤 엔진의 배기가스였다. 비포장도로의 흙먼지는 냄새는 없었지만 매연보다 공기 중에 오래 머물며 앞을 가렸다.
▲ 푸르공(휴대폰)귀여운 외모와는 달리 엄청난 방구쟁이였던 자동차 ⓒ 안사을
말을 타고 가는 사람들도 심심찮게 보였다. 대기오염을 생성하는 자동차보단 똥과 방귀가 친환경적일 테니, 관광객의 수송은 차량 대신 말을 이용하게 하는 것이 어떨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지인의 생계 수단이 걸려있고 해당 도시나 국가의 세밀한 상황을 모르니 동행인과 이에 대해 수다를 떠는 것으로 매연에 지친 폐를 달랬다.
또 하나의 어려움은 식수였다. 배낭을 메본 사람들은 물이 가장 무거운 짐이라는 것을 안다. 그런데 여기서 딜레마가 발생한다. 식수를 충분히 챙기지 않으면 여정이 위험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물을 한 병 더 챙기기엔 무게 때문에 지치는 상황이 발생한다. 그래서 먼 길을 걸어야 하는 여행객은 보통 '정수 빨대'를 구입한다.
플라스틱 대롱 내부에 필터가 내장되어 있어서 자연 그대로의 물을 정수하여 먹는 방식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필터가 석회수를 걸러내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체질적으로 적응되어 있는 유럽 등지의 사람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팔도 어디에나 투명한 물이 흐르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익숙해질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설사를 해댈지 모르는 일이다.
▲ 골짜기와 계곡이 많은 물 중 우리가 먹을 수 있는 물은 없었다. ⓒ 안사을
평소 '변비보단 설사가 낫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는 나로서도 힘차게 흐르는 석회수 계곡은 절대 식수로 보이지 않았다. 시멘트를 녹인 물처럼 보이는 회색빛 유체는 멀리서 감상하는 풍경에 지나지 않았다. 앱에 샘터로 표시되어있는 곳까지는 13km 정도 떨어져 있었다. 정해진 야영지가 없었기 때문에 물을 아껴야 했다.
중간에 도랑처럼 흐르는 맑은 물이 멀리서 보이면 반가운 마음으로 속도를 높였다. 그런데 대부분 흙탕물과 합류하거나 맑은 상태라 하더라도 수위가 너무 낮아서 컵에 담을 수 없었다. 그러다 7km 정도 걸었을 즈음 바위 틈에서 흐르는 맑은 물을 발견했다. 약 5cm 정도의 낙차도 있어서 컵에 꾸역꾸역 물을 담을 수 있었다.
▲ 숲과 산과 계곡'전망 좋은 곳'으로 앱에 표시되어있는 곳. ⓒ 안사을
샘터를 약 2km 남기고 갑자기 눈앞이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귓가에 바로 들리는 것 같은 힘찬 물소리와 함께 침엽수림과 하늘이 어우러진 풍경이 나타났다. 22mm 정도의 환산 화각을 지닌 광각 렌즈이기에 사진에서는 잘 보이지 않지만, 멀리 만년설이 쌓인 삼각형의 봉우리도 눈에 들어왔다.
샘터에 다다르자 저녁 6시 55분이 되었다. 알틴아라샨 마을까지 진행하기엔 늦은 시각이었다. 위도 특성상 하늘은 아직 밝았지만 숙영지를 고르고, 텐트를 치고, 저녁을 해 먹으려면 땅거미가 내리기 두 시간 전에는 자리를 잡아야 했다. 조금 더 올라가면 샘터가 또 하나 있었기에 어디에서 머무를지 동행인과 제법 긴 시간 동안 논쟁하기도 했다.
도착한 샘터의 뒤쪽 작은 숲이 아늑해 보였다. 산재한 소똥과 말똥을 조금 치우자 평평하고 푹신한 자리가 마련되었다. 잘 마른 똥은 연료로 사용하기 위해 모아두었다. 송쿨에서 사용한 후 4일 만에 다시 텐트를 꺼내어 집을 지었다. 한국에서 사 온 라면의 봉지를 9일 만에 드디어 뜯고 코펠에 물을 부었다. 면발을 입에 넣자마자 동행인은 눈물을 글썽거리면서 말했다.
"너무 맛있어. 눈물 날 것 같아."
▲ 샘터 위 작은 공간말 그대로 '야영'지 ⓒ 안사을
산림법이나 자연공원법이 엄격한 우리나라에서는 항상 반쪽짜리 야영을 하는 느낌이었다. 취사는 물론 아무 곳에서나 불을 피울 수 없으며, 허락된 곳도 화로대를 이용하거나 장작 대신 숯만 사용해야 하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야생에서의 적응이라기보단 일종의 '숙박 놀이'에 가깝다고나 할까.
이곳에선 모든 불편함이 곧 낭만으로 바뀌어 다가온다. 바람과 습기가 들이치지 않을 곳을 찾고, 자갈이 군데군데 박힌 땅을 직접 골라야 하며, 배낭에 넣어올 수 있는 작고 가벼운 도구들만 쓸 수 있다. 하지만 아무도 없는 숲속에서 모닥불과 별빛 사이에 오롯이 한 인간으로 존재할 수 있는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모든 행위는 여행자의 권리이자 책임이다. 자연 그대로를 즐길 수 있으니 상식선 안에서 만끽하면 된다. 바닥에 모닥불을 피워도 좋고 아무 데서나 취사도 가능하다. 하지만 오히려 더 '엄격한 무법자'가 되어야 한다. 법의 테두리가 없으니 자연에 해를 끼치지 않는 선을 스스로 찾아 지켜야 한다.
▲ 우리 나라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휴대폰)오래 전 누군가 만들어놓은 자연석 화덕 안에 고운 재가 있었다. ⓒ 안사을
▲ 숲에서(휴대폰)잠들기 직전 졸린 눈을 비비고 꾸역꾸역 담은 사진 ⓒ 안사을
고단함을 몸이 감지하기도 전에 눈꺼풀이 곤두박질쳤다. 오래 걸으면 밤이 기다려진다. 어떤 오락보다 달콤하고 벅찬 잠 속으로 빠져들기 때문이다. 동행인과 좁은 텐트에 나란히 누워 비몽사몽간 나누던 대화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 아름다운 이야기였을 것이다.
아침이 되자 놓아먹이는 소 십수 마리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텐트를 살펴보고 있었다. 낯선 여행자와 이 땅에 적응한 현지인, 그 중간 정도의 존재가 된 듯했다. 알틴아라샨 마을은 3km만 걸으면 되었다. 푹 잤기에 마지막 오르막도 금세 올랐다. 이틀 밤을 더 머무를 따뜻한 풍경의 마을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 알틴아라샨 마을마을의 초입. 빗방울이 하나씩 내리고 있었다. ⓒ 안사을
* 마지막 여정인 해발 3800미터 알라쿨 등산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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