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도심에 새긴 문구
'학도병 이우근의 부치지 못한 편지' 조형물 제막식
"우리 동작구에 전쟁과 관련한 장소가 굉장히 많아요. 그래서 직접 제가 돌아다니면서 전쟁의 현장들을 둘러보기도 했어요. 전쟁 현장을 계속 아픔으로만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에 맞는 평화의 정신으로 기념해서 평화롭게 살아가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요."
- 강민수 키비처 동아리 회원(경문고 2학년)
제94회 학생의날을 맞은 11월 3일 오전 11시, 서울 동작구 흑석동에 있는 '학도의용병현중비 옆에서 '학도병 이우근의 부치지 못한 편지' 조형물 제막식이 열렸다.
제막식에는 조형물 제작 과정에 함께한 경문고와 수도여고, 남강고, 국사봉중 등 지역 학생들과 지역 주민, 동작관악교육지원청 관계자, 해당 학교 교사, 동작구의회 의원 등 50여 명이 참여했다.
제막식은 경문고 학생자치회 회장 최재령 학생의 사회로 진행되었다. 격려사를 한 노성철(구의원), 홍연표(경문고 교장), 임정희(동작마을넷 마음껏 공동대표) 등은 청소년이 이루어낸 의미 있는 성과라는 점을 강조하는 칭찬 릴레이를 이어갔다. 학생들이 나선 경과보고(경문고 키비처 이한율)와 사례나눔(경문고 강민수 학생)에서는 학교 교사와 지역 주민의 흔쾌한 지원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러한 훈훈한 분위기가 행사 내내 이어졌다.
'학도병 이우근의 부치지 못한 편지' 조형물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전쟁의 참혹함과 평화의 소중함에 대한 문제의식을 발판으로 지난해 경문고를 비롯한 동작·관악지역 학생들이 '꽃을 든 청소년' 프로젝트를 세워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한 서명운동이 결실을 맺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흑석동에 있는 학도의용병현충비가 어른들이 시작한 6·25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전사한 학도의용병을 전쟁 영웅으로만 부각하고 있는 것에 문제의식을 가진 학생들은 전쟁의 참혹함과 평화의 소중함을 알리기 위해 이곳에 학도병 이우근의 부치지 못한 편지 조형물을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지역주민의 동의를 받기 위한 서명운동에는 지역 시민단체 회원들이 함께 했다. 이렇게 1천여 명으로부터 받은 서명용지는 지난해 학생의날에 맞춰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에게 전달되었다. 경문고 학생들은 평화의 조형물 공모전을 거쳐 이재성 학생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조형물 건립에 필요한 예산은 학생 활동 지원 예산으로는 부족하여 지역주민과 시민단체가 함께한 모금운동으로 마련하였다. 모금운동에는 개인 162명, 16개 학생자치회와 학급자치회, 14개 지역단체가 뜻을 같이 했고, 모금액수도 당초 목표인 300만 원을 훌쩍 넘겨 500만 원에 이르렀다.
조형물은 이재성 학생의 스승인 곽재호 선생님이 맡아 완성했다. 곽재호 선생님은 "학도병 이우근은 제 작은 할머니의 남동생"이라면서 "제가 이 조형물을 제작하게 되어 더 큰 영광"이라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이우근의 부치지 못한 편지' 조형물은 이날의 제막식에도 불구하고 행정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으면서 아직 설치가 완성되지 못했다. 당분간 경문고 교정에 보관한 후, 행정 절차가 끝나면 내년 중 정식 제막식과 함께 학도의용병현충비 옆에 설치될 예정이다.
조형물이 정식으로 설치될 때에는 '학도병 이우근의 부치지 못한 편지' 전문과 '함께 만든 사람들' 명단을 새긴 받침돌 위에 세워진다.
이번 동작·관악 지역의 '학도병 이우근의 부치지 못한 편지' 조형물 설치는 지역 청소년들의 실천 활동에 지역 시민단체가 호응하여 지역주민의 참여 속에 성공리에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지역 활동의 의미 있는 사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우근의 부치지 못한 편지는?
학도병 이우근(동성중 3학년)은 1950년 6·25 한국전쟁 직후 포항지구 전투에 참전하던 중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다가 호주머니에 넣은 채 전투를 벌이던 중 그해 8월 11일 전사한 분입니다. 당시 이우근의 나이는 겨우 17세였습니다. 이후 시신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고 이우근 학도병의 호주머니에서 미처 어머니께 부치지 못한 편지가 발견되었습니다. 이우근의 부치지 못한 편지는 영화 <포화 속으로>(2010)의 소재가 되기도 했습니다.
편지 전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이우근의 부치지 못한 편지
어머니,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것도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10여 명은 될 것입니다. 나는 4명의 특공대원과 함께 수류탄이라는 무서운 폭발 무기를 던져 일순간에 죽이고 말았습니다. 수류탄의 폭음은 나의 고막을 찢어버렸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귓속에는 무서운 굉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어머니, 적은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팔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너무나 가혹한 죽음이었습니다. 아무리 적이지만 그들도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더욱이 같은 언어와 같은 피를 나눈 동족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무겁습니다.
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이 복잡하고 괴로운 심정을 어머님께 알려드려야 내 마음이 가라앉을 것 같습니다. 저는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지금 내 옆에서는 수많은 학우들이 죽음을 기다리는 듯 적이 덤벼들 것을 기다리며 뜨거운 햇빛 아래 엎드려있습니다. 적은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언제 다시 덤벼들지 모릅니다. 적병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겨우 71명입니다.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면 무섭습니다.
어머니, 어서 전쟁이 끝나고 어머니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어제 저는 내복을 손수 빨아 입었습니다. 물내 나는 청결한 내복을 입으면서 저는 두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어머님이 빨아주시던 백옥 같은 내복과 내가 빨아 입은 내복을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청결한 내복을 갈아입으며 왜 壽衣(수의)를 생각해냈는지 모릅니다. 죽은 사람에게 갈아입히는 수의 말입니다.
어머니,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저 많은 적들이 그냥 물러갈 것 같지는 않으니까 말입니다. 어머니, 죽음이 무서운 게 아니라, 어머님도 형제들도 못 만난다고 생각하니 무서워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가겠습니다. 꼭 살아서 가겠습니다. 어머니, 이제 겨우 마음이 안정이 되는군요.
어머니, 저는 꼭 살아서 다시 어머님 곁으로 가겠습니다.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찬 옹달샘에서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한없이 들이키고 싶습니다.
아! 놈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시 또 쓰겠습니다.
어머니 안녕! 안녕!
아, 안녕은 아닙니다. 다시 쓸 테니까요…
그럼 … .
- 강민수 키비처 동아리 회원(경문고 2학년)
▲ 이우근의 부치지 못한 편지 조형물 제막식참석자들이 청소년을 중심으로 제막식을 위해 양쪽으로 늘어서 있다. ⓒ 김학규
▲ 이우근의 부치지 못한 편지 조형물학도병 이우근의 부치지 못한 편지를 평화의 비둘기가 어머니에게 전달하기 위해 날아가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 한 작품이다. ⓒ 김학규
제94회 학생의날을 맞은 11월 3일 오전 11시, 서울 동작구 흑석동에 있는 '학도의용병현중비 옆에서 '학도병 이우근의 부치지 못한 편지' 조형물 제막식이 열렸다.
제막식에는 조형물 제작 과정에 함께한 경문고와 수도여고, 남강고, 국사봉중 등 지역 학생들과 지역 주민, 동작관악교육지원청 관계자, 해당 학교 교사, 동작구의회 의원 등 50여 명이 참여했다.
▲ 제막식 축하공연 장면학도병 이우근의 부치지 못한 편지 제막식에서 경문고 음악 선생님과 학생이 축하공연을 하고 있다. ⓒ 김학규
'학도병 이우근의 부치지 못한 편지' 조형물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전쟁의 참혹함과 평화의 소중함에 대한 문제의식을 발판으로 지난해 경문고를 비롯한 동작·관악지역 학생들이 '꽃을 든 청소년' 프로젝트를 세워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한 서명운동이 결실을 맺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흑석동에 있는 학도의용병현충비가 어른들이 시작한 6·25 한국전쟁에 참전하여 전사한 학도의용병을 전쟁 영웅으로만 부각하고 있는 것에 문제의식을 가진 학생들은 전쟁의 참혹함과 평화의 소중함을 알리기 위해 이곳에 학도병 이우근의 부치지 못한 편지 조형물을 설치하자고 제안했다. 지역주민의 동의를 받기 위한 서명운동에는 지역 시민단체 회원들이 함께 했다. 이렇게 1천여 명으로부터 받은 서명용지는 지난해 학생의날에 맞춰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에게 전달되었다. 경문고 학생들은 평화의 조형물 공모전을 거쳐 이재성 학생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조형물 건립에 필요한 예산은 학생 활동 지원 예산으로는 부족하여 지역주민과 시민단체가 함께한 모금운동으로 마련하였다. 모금운동에는 개인 162명, 16개 학생자치회와 학급자치회, 14개 지역단체가 뜻을 같이 했고, 모금액수도 당초 목표인 300만 원을 훌쩍 넘겨 500만 원에 이르렀다.
조형물은 이재성 학생의 스승인 곽재호 선생님이 맡아 완성했다. 곽재호 선생님은 "학도병 이우근은 제 작은 할머니의 남동생"이라면서 "제가 이 조형물을 제작하게 되어 더 큰 영광"이라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 이우근의 부치지 못한 편지 작품을 소개하고 있는 곽재호 선생님과 이재성 학생곽재호 선생님과 이재성 학생이 이우근의 부치지 못한 편지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 김학규
'이우근의 부치지 못한 편지' 조형물은 이날의 제막식에도 불구하고 행정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으면서 아직 설치가 완성되지 못했다. 당분간 경문고 교정에 보관한 후, 행정 절차가 끝나면 내년 중 정식 제막식과 함께 학도의용병현충비 옆에 설치될 예정이다.
조형물이 정식으로 설치될 때에는 '학도병 이우근의 부치지 못한 편지' 전문과 '함께 만든 사람들' 명단을 새긴 받침돌 위에 세워진다.
이번 동작·관악 지역의 '학도병 이우근의 부치지 못한 편지' 조형물 설치는 지역 청소년들의 실천 활동에 지역 시민단체가 호응하여 지역주민의 참여 속에 성공리에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지역 활동의 의미 있는 사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우근의 부치지 못한 편지는?
▲ 영화 <포화 속으로> 포스터영화 <포화 속으로>(2010)은 포항지구 전투에서 전사한 학도병 이우근의 부치지 못한 편지를 소재로 하고 있다. ⓒ 태원엔터테인먼트
학도병 이우근(동성중 3학년)은 1950년 6·25 한국전쟁 직후 포항지구 전투에 참전하던 중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다가 호주머니에 넣은 채 전투를 벌이던 중 그해 8월 11일 전사한 분입니다. 당시 이우근의 나이는 겨우 17세였습니다. 이후 시신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고 이우근 학도병의 호주머니에서 미처 어머니께 부치지 못한 편지가 발견되었습니다. 이우근의 부치지 못한 편지는 영화 <포화 속으로>(2010)의 소재가 되기도 했습니다.
편지 전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이우근의 부치지 못한 편지
어머니,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것도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10여 명은 될 것입니다. 나는 4명의 특공대원과 함께 수류탄이라는 무서운 폭발 무기를 던져 일순간에 죽이고 말았습니다. 수류탄의 폭음은 나의 고막을 찢어버렸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귓속에는 무서운 굉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어머니, 적은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팔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너무나 가혹한 죽음이었습니다. 아무리 적이지만 그들도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더욱이 같은 언어와 같은 피를 나눈 동족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무겁습니다.
어머니, 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
이 복잡하고 괴로운 심정을 어머님께 알려드려야 내 마음이 가라앉을 것 같습니다. 저는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지금 내 옆에서는 수많은 학우들이 죽음을 기다리는 듯 적이 덤벼들 것을 기다리며 뜨거운 햇빛 아래 엎드려있습니다. 적은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언제 다시 덤벼들지 모릅니다. 적병은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는 겨우 71명입니다.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면 무섭습니다.
어머니, 어서 전쟁이 끝나고 어머니 품에 안기고 싶습니다.
어제 저는 내복을 손수 빨아 입었습니다. 물내 나는 청결한 내복을 입으면서 저는 두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어머님이 빨아주시던 백옥 같은 내복과 내가 빨아 입은 내복을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청결한 내복을 갈아입으며 왜 壽衣(수의)를 생각해냈는지 모릅니다. 죽은 사람에게 갈아입히는 수의 말입니다.
어머니, 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저 많은 적들이 그냥 물러갈 것 같지는 않으니까 말입니다. 어머니, 죽음이 무서운 게 아니라, 어머님도 형제들도 못 만난다고 생각하니 무서워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가겠습니다. 꼭 살아서 가겠습니다. 어머니, 이제 겨우 마음이 안정이 되는군요.
어머니, 저는 꼭 살아서 다시 어머님 곁으로 가겠습니다.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찬 옹달샘에서 이가 시리도록 차가운 냉수를 한없이 들이키고 싶습니다.
아! 놈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시 또 쓰겠습니다.
어머니 안녕! 안녕!
아, 안녕은 아닙니다. 다시 쓸 테니까요…
그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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