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소년들의 밴드 결성, 내 대학시절이 떠오른 이유
[리뷰] 영화 <블루 자이언트>
▲ 영화 <블루 자이언트> 스틸 ⓒ 판씨네마㈜
<블루 자이언트>는 애니메이션의 한계를 뛰어넘어 음악이 공명하는 공간의 뜨거움까지 한 번에 감당하고 있다. 인간의 욕망이 들끓다 못해 푸른빛을 발산하는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엘리멘탈>의 푸른 불꽃처럼 밝게 타오르는 열정이 전염되는 순간이다. 애니메이션이라 가능했던 한계 없는 표현이 재즈와 잘 어울렸다. 영화를 본 것뿐인데 고품격 재즈 공연을 들은 것 같은 감개무량함이 스친다. 농구 애니메이션 <슬램덩크> 때의 기분이 되살아났다.
노력형 수재 다이와 재능만 믿고 안주해 버린 천재 유키노리, 재즈 문외한이었지만 진심을 다해 실력을 쌓아가는 슌지까지. 실력, 재능, 열정으로 뭉친 재즈계 샛별이 거성(巨星)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응원하는 흐뭇함이 동반된다. 순수하게 무언가를 좋아하고 몰입했던 즐거움을 잊고 지냈나 보다. 어느 순간 리듬을 타고 있었다. 압도적인 선율에 매료되어 나도 모르게 손가락을 튕기고 발바닥을 쿵쿵거리고 있었다.
간절히 원하면 어떤 형태로든 결실이
▲ 영화 <블루 자이언트> 스틸 ⓒ 판씨네마㈜
중3에 재즈에 감동받아 3년 동안 강변에서 홀로 색소폰을 불며 연습하던 고등학생 다이(야마다 유키)는 최고의 재즈 플레이어가 되기로 결심한다. 대학이 무슨 소용인가, 하고 싶은 일이 생겼는데. 그 길로 무조건 도쿄로 상경한다. 잘 곳이 마땅치 않았지만 고등학교 동창 슌지(오카야마 아마네)의 자취방에 얹혀살며 꿈을 키워나간다.
재즈 클럽에 라이브 연주를 들으러 갔던 어느 날. 다이는 동갑인 천재 피아니스트 유키노리(마미야 쇼타)를 만나 영감받는다. 그의 연주를 듣고는 즉흥적으로 밴드 결성을 제안한다. 꾼은 꾼을 알아보는 걸까. 유키노리는 다이의 실력을 의심하지 않았지만 색소폰과 피아노만으로는 부족해 드러머를 물색하게 된다.
하지만 드럼 실력자를 구하기 쉽지 않자, 음악을 해본 적 없던 슌지의 부족한 실력에 만족해야 했다. 슌지는 이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임시 드러머라도 폐 끼치면 안 되겠다 생각해 실력을 다져간다. 열심히 노력한 결과 꽤 쓸만한 경지에 오르고, 우여곡절 끝에 십 대 밴드 'JASS(재스)'가 결성된다.
재스는 격렬하고 치열한 재즈의 매력을 알리기에 주력한다. 세상을 다 씹어 먹어버리겠다는 신념으로 똘똘 뭉쳤지만 과유불급. 첫 공연의 관객은 주인을 포함한 세 명이었다. 첫술에 배부를 리 없던 재스는 차근차근 스텝을 밟아가기로 한다. 십 대가 끝나기 전 최고의 재즈 클럽 '쏘 블루' 무대에 서기로 말이다!
타오르는 푸른 불꽃의 정열 가득
▲ 영화 <블루 자이언트> 스틸컷 ⓒ 판씨네마㈜
<블루 자이언트>는 이시즈카 신이치의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만들어졌다. 미국 유학 중 접한 충격적인 재즈의 매력을 한 사람이라도 더 알리고 싶어 귀국 후 만화로 그려 인기를 끌었다. 제목 '블루 자이언트'란 온도가 너무 뜨겁게 올라 붉은빛을 넘어 푸르게 빛나는 별을 의미한다. 엄청난 무대를 펼친 재즈 플레이어를 일컫는 말이도 하다. 대작도 줄줄이 고배를 마시고 있는 동안, 극장계 다크호스로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는 영화다.
대체 왜일까. 한 목표에 매진하다 뜻에 닿는 결말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인기 장르 중 하나다. <블루 자이언트>도 <슬램덩크>나 <미스터 초밥왕>처럼 마스터가 되어가는 성공 신화가 기본이다.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가치를 중심으로 하며, 후회와 실패를 반복하고 똑같은 일상에 지쳐 버리는 인간인 까닭이다. 그 어떤 자기계발서 보다, 유튜브의 성공 강의 보다 가슴팍에 훅 들어온 열정에 기름 붓기가 특징이다.
다이, 유키노리, 슌지 중 유독 슌지에게 공감된 이유는 내 모습과 가장 닮았기 때문일 거다. 슌지는 대학에 진학했지만 공부나 진로에 가닥을 잡지 못한 청년이었다. 졸업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방황하다가 두 사람을 만나 꿈이라는 것을 꾼다. 재즈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동해 어제보다 나은 드럼 실력을 천천히 보여준다.
여기서 잊고 있던 1만 시간의 법칙이 떠올랐다.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더>를 통해 대중화된 개념으로, 최소 하루 3시간씩 10년을 노력하면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법칙이다. 1만 시간만 투자하면 누구나 성공한다는 허황된 논리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 분야에 매진하면 전문가가 된다는 가치를 현대적으로 재정립한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 영화 <블루 자이언트> 스틸컷 ⓒ 판씨네마㈜
다이는 불과 3년 만에 엄지손가락에 굳은살이 생길 만큼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4살 때부터 피아노를 시작한 유키노리는 손가락 테크닉만 남발하는 기교라며 혹평을 받고 좌절한다. 최고라고 생각했던 자만심이 착오였다는 씁쓸한 평가를 듣는다. 역시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 법이다. 천재라고 해서 연습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는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말도 사치처럼 느껴지기도 할 것이다. 노력도 재능 있는 사람, 돈과 백이 있는 사람에게나 적용되는 거란 씁쓸함이 동반되기 때문일 거다. 그렇다고 시작조차 하지 않는다면 비겁한 자기 위안으로 끝난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근다는 말처럼 어차피 안 될 건데 사서 고생하냐는 쉬운 자포자기다. 다이와 유키노리처럼은 어렵겠지만 슌지만큼은 해보고 그만두어도 늦지 않다. 꾸준히 하는 게 어렵다면 그냥 한번 해보는 거다. 늦지 않았다.
"야, 나도 했어! 너도 한 번 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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