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장인어른과 못 지킨 약속, 아들과 함께 합니다
장인어른과 한 13년 전 약속을 이제야... 아들과의 지리산 여행이 기대되는 이유
정확히 13여 년 전이었다. 결혼한 지 2년 만에 처가살이를 결정하고 함께 산 지 1년쯤 된 어느 날이었다. 그 당시 산악회를 다닐 만큼 산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장인어른은, 처남과 나에게 2박 3일간 지리산 종주를 권했다. 지금은 기억이 잘나지 않지만 처남은 사정이 있다며 못 간다고 했다.
하필 나는 회사 체육대회와 겹쳐서 낮에 힘들게 운동을 하고 가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쉽사리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때 나 역시도 산의 매력을 조금씩 알아가던 때이기도 했다. 친구들과 종종 주말에 등산을 가곤 했으니.
결국 그날 회사에서 축구, 농구에다 마지막에는 계주까지 뛰고 뒤풀이도 빠진 채 곧바로 집으로 향했다. 간단히 씻고 옷을 갈아입고 그날 심야 버스를 타고 지리산으로 향했다. 장인어른과 만나 찜질방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성삼재를 시작으로, 산장에서 2박을 하고 중산리로 내려오는 여정을 마무리했다.
잔뜩 뭉쳤던 근육은 종일 등산을 통해 자연스레 풀렸고, 11월의 조금 추운 날씨도 더해져 잘 때 추운 것 빼고는 걷기에 딱 좋았다. 그때 걸으며 장인어른과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장인어른이 살아온 삶은 이제 그 뒤를 따라가는 나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었다.
특히 장터목 산장에서 장인어른과 일몰을 바라본 그 순간은 지금도 마치 어제 일처럼 가슴속에 살아 숨쉰다. 비록 몸은 고됐지만, 그때가 장인어른과 서로 간의 거리를 좁히고, 인간적으로 장인어른에 대해 많이 알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다.
장인어른과 나중에 처남과 아들도 데려가 넷이서 꼭 다시 오자고 약속을 했었는데, 올해 초 장인어른이 갑자기 돌아가셨다. 작년부터 급격히 몸이 안 좋아지셨을 때도, 장인어른께서는 얼른 회복할테니 곧 지리산에 꼭 다시 가자는 말씀을 하시곤 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에 다시 다녀올 것을, 뭐가 그리 바쁘다고 내내 못 갔는지 후회가 되었다(관련 기사: 단 세 편의 수필, 다음 작품은 읽을 수 없습니다 https://omn.kr/244dj ).
장인어른과 한 약속을 아들과 지키다
그리고 어느새 11월이 다가왔다. 최근에 회사일로 만난 분이 주말에 가족들과 지리산 둘레길을 간다고 했다. '지리산'이란 단어를 듣는 순간 내 안 깊숙한 곳에 묻어둔 그 무언가가 꿈틀댔다. '아 가고 싶다. 정말 가고 싶다...' 혼자 가긴 왜인지 아쉽고, 마침 아들이 그때쯤 중학교의 마지막 시험이 끝날 때였다.
아들이 이제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공부하느라 더는 시간내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이 적시였다. 아들의 기분이 몹시 좋아 보이는 날 내가 물었다.
"아들, 이번에 시험 끝나고 아빠랑 11월 11일부터 12일까지 토, 일로 1박 2일간 지리산 둘레길 갈래?"
"난 상관없어."
'좋다'도 아니고, 그렇다고 '싫다'도 아닌 상관없다는 말. 하지만 그건 아들이 습관적으로 반응하는 긍정의 메시지였다. 사춘기가 한창이던 시절보다는 나아졌지만, 아들은 여전히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가고 있었다. 이러다 언제 안 간다고 할지 모르니 나는 얼른 버스표를 예매했다. 그다음 날 곧바로 아들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아빠가 이미 버스표 예매를 다했다."
"그래? 아직 생각 중인데.... 일단 알았어."
역시 미리 끊길 잘했다. 다음엔 코스와 숙소를 정해야 했다. 가장 유명한 지리산 1,2,3코스를 모두 가고 싶었지만 일요일 저녁에 아들이 학원 일정이 있어서 서둘러 돌아와야 했다. 일단 토요일 오후에 도착해서 주천을 시작으로 운봉에서 마무리하는 1코스를 완주하는 게 목표다. 이렇게 하면 대략 15km 길이로, 약 6시간이 걸릴 것이다. 부지런히 가면 저녁때까지 종착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숙소는 검색 끝에 운봉에 인접한 민박집으로 정했다. 크게 유명하지는 않지만 후기를 꼼꼼히 읽어보니 내부도 정갈하고 저녁부터 아침 조식까지 시골밥상으로 푸짐하게 챙겨주었다. 곧바로 전화해서 예약을 잡았다. 도착 전에 미리 연락하면 식사를 준비해 놓기로 했다. 사장님의 목소리도 온화하고 정감이 넘쳤다.
일요일은 아침 일찍 일어나 운봉에서 인월까지 이어지는 둘레길 2코스를 완주하는 할 예정이다. 대략 4시간 정도 걸리니 서둘러 정오 전까지는 도착해서 오후 1시에 출발하는 고속버스를 타야 한다. 일단 계획은 이렇게 세웠는데 상황을 보고 중간에 변경하면 될 듯싶다.
비록 장인어른도 없고, 처남도 빠졌지만 아들과 둘이서 함께하며 끝내 못 이룬 약속을 반이라도 지키고 싶다. 하늘에 계신 장인어른도 기뻐하겠지. 분명 마음만은 함께 하리라 믿는다.
각자 바빴던 나날들...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무엇보다 아들과 걸으며 나눌 이야기가 기대된다. 그간 나는 회사일로, 아들은 학교와 학원 다니느라 깊게 대화 나눌 시간이 부족했다. 아들이 초등학교 때 둘이서 군산 여행을 갔었는데 참 좋았던 기억이 있다. 어느새 이렇게 커서 고등학교에 간다니. 장인어른이 나에게 그랬듯, 인생의 선배로서 들려주고픈 이야기가 참 많다.
이번 주는 틈틈이 둘레길 정보도 검색하고, 챙길 준비물도 정리하고 있다. 매일 저녁에 공원을 뛰며 체력도 키우는 중이다. 도서관에서 지리산 둘레길 관련 책도 신청해 놓았다. 금요일쯤에 아들과 함께 보며 대략의 분위기도 익히고, 계획도 구체화시켜야겠다.
솔직히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 벅차오르는 설렘을 주체할 수 없다. 이미 마음은 저 멀리 지리산 둘레길을 걷고 있는 듯하다. 시간이 얼른 흘러 토요일에 다다르기를. 내 진한 추억을 한가득 만들어 가져올 테니.
하필 나는 회사 체육대회와 겹쳐서 낮에 힘들게 운동을 하고 가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쉽사리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때 나 역시도 산의 매력을 조금씩 알아가던 때이기도 했다. 친구들과 종종 주말에 등산을 가곤 했으니.
▲ 평소 산을 좋아했던 장인어른살아 생전 꾸준히 산악회 활동을 할 정도로 산을 좋아했던 장인어른 ⓒ 신재호
결국 그날 회사에서 축구, 농구에다 마지막에는 계주까지 뛰고 뒤풀이도 빠진 채 곧바로 집으로 향했다. 간단히 씻고 옷을 갈아입고 그날 심야 버스를 타고 지리산으로 향했다. 장인어른과 만나 찜질방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성삼재를 시작으로, 산장에서 2박을 하고 중산리로 내려오는 여정을 마무리했다.
특히 장터목 산장에서 장인어른과 일몰을 바라본 그 순간은 지금도 마치 어제 일처럼 가슴속에 살아 숨쉰다. 비록 몸은 고됐지만, 그때가 장인어른과 서로 간의 거리를 좁히고, 인간적으로 장인어른에 대해 많이 알게 된 소중한 시간이었다.
▲ 13년 전 지리산 장터목 산장에서 장인어른과 둘이 바라보았던 일몰이 아직도 기억난다. (자료사진). ⓒ Unsplash
장인어른과 나중에 처남과 아들도 데려가 넷이서 꼭 다시 오자고 약속을 했었는데, 올해 초 장인어른이 갑자기 돌아가셨다. 작년부터 급격히 몸이 안 좋아지셨을 때도, 장인어른께서는 얼른 회복할테니 곧 지리산에 꼭 다시 가자는 말씀을 하시곤 했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에 다시 다녀올 것을, 뭐가 그리 바쁘다고 내내 못 갔는지 후회가 되었다(관련 기사: 단 세 편의 수필, 다음 작품은 읽을 수 없습니다 https://omn.kr/244dj ).
장인어른과 한 약속을 아들과 지키다
그리고 어느새 11월이 다가왔다. 최근에 회사일로 만난 분이 주말에 가족들과 지리산 둘레길을 간다고 했다. '지리산'이란 단어를 듣는 순간 내 안 깊숙한 곳에 묻어둔 그 무언가가 꿈틀댔다. '아 가고 싶다. 정말 가고 싶다...' 혼자 가긴 왜인지 아쉽고, 마침 아들이 그때쯤 중학교의 마지막 시험이 끝날 때였다.
아들이 이제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공부하느라 더는 시간내기 어려울 것이다. 지금이 적시였다. 아들의 기분이 몹시 좋아 보이는 날 내가 물었다.
"아들, 이번에 시험 끝나고 아빠랑 11월 11일부터 12일까지 토, 일로 1박 2일간 지리산 둘레길 갈래?"
"난 상관없어."
'좋다'도 아니고, 그렇다고 '싫다'도 아닌 상관없다는 말. 하지만 그건 아들이 습관적으로 반응하는 긍정의 메시지였다. 사춘기가 한창이던 시절보다는 나아졌지만, 아들은 여전히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가고 있었다. 이러다 언제 안 간다고 할지 모르니 나는 얼른 버스표를 예매했다. 그다음 날 곧바로 아들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아빠가 이미 버스표 예매를 다했다."
"그래? 아직 생각 중인데.... 일단 알았어."
역시 미리 끊길 잘했다. 다음엔 코스와 숙소를 정해야 했다. 가장 유명한 지리산 1,2,3코스를 모두 가고 싶었지만 일요일 저녁에 아들이 학원 일정이 있어서 서둘러 돌아와야 했다. 일단 토요일 오후에 도착해서 주천을 시작으로 운봉에서 마무리하는 1코스를 완주하는 게 목표다. 이렇게 하면 대략 15km 길이로, 약 6시간이 걸릴 것이다. 부지런히 가면 저녁때까지 종착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 지리산 둘레길 1코스주천에서 운봉까지 지리산 둘레길 1코스 ⓒ 네이버지도
숙소는 검색 끝에 운봉에 인접한 민박집으로 정했다. 크게 유명하지는 않지만 후기를 꼼꼼히 읽어보니 내부도 정갈하고 저녁부터 아침 조식까지 시골밥상으로 푸짐하게 챙겨주었다. 곧바로 전화해서 예약을 잡았다. 도착 전에 미리 연락하면 식사를 준비해 놓기로 했다. 사장님의 목소리도 온화하고 정감이 넘쳤다.
일요일은 아침 일찍 일어나 운봉에서 인월까지 이어지는 둘레길 2코스를 완주하는 할 예정이다. 대략 4시간 정도 걸리니 서둘러 정오 전까지는 도착해서 오후 1시에 출발하는 고속버스를 타야 한다. 일단 계획은 이렇게 세웠는데 상황을 보고 중간에 변경하면 될 듯싶다.
비록 장인어른도 없고, 처남도 빠졌지만 아들과 둘이서 함께하며 끝내 못 이룬 약속을 반이라도 지키고 싶다. 하늘에 계신 장인어른도 기뻐하겠지. 분명 마음만은 함께 하리라 믿는다.
각자 바빴던 나날들... 어떤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무엇보다 아들과 걸으며 나눌 이야기가 기대된다. 그간 나는 회사일로, 아들은 학교와 학원 다니느라 깊게 대화 나눌 시간이 부족했다. 아들이 초등학교 때 둘이서 군산 여행을 갔었는데 참 좋았던 기억이 있다. 어느새 이렇게 커서 고등학교에 간다니. 장인어른이 나에게 그랬듯, 인생의 선배로서 들려주고픈 이야기가 참 많다.
이번 주는 틈틈이 둘레길 정보도 검색하고, 챙길 준비물도 정리하고 있다. 매일 저녁에 공원을 뛰며 체력도 키우는 중이다. 도서관에서 지리산 둘레길 관련 책도 신청해 놓았다. 금요일쯤에 아들과 함께 보며 대략의 분위기도 익히고, 계획도 구체화시켜야겠다.
솔직히 일이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 벅차오르는 설렘을 주체할 수 없다. 이미 마음은 저 멀리 지리산 둘레길을 걷고 있는 듯하다. 시간이 얼른 흘러 토요일에 다다르기를. 내 진한 추억을 한가득 만들어 가져올 테니.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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