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왜 지방 국립대 나왔어?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자녀 앞에서조차 움츠리게 하는 낙인... '김포 서울 편입' 논란 지방 열패감 더 부채질
서울 사는 지인이 건넨 '웃픈' 이야기 한 꼭지다. 얼마 전 고등학생 자녀로부터 학창 시절 왜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느냐는 조롱을 들었다며 당황스러워했다. 고향인 지방 대도시의 어엿한 국립대를 졸업했는데, 자녀의 눈엔 공부를 못해 서울로 진학하지 못했다고 보는 거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할 때까지만 해도 몰랐는데,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중·고등학교에 보내면서 시나브로 학벌에 대한 열등감이 생기더라고 했다. 지방대 출신이라는 건 자녀 앞에서조차 몸을 움츠리게 만드는 낙인이라며 가슴을 쳤다. 불과 20여 년 만에 세상은 그렇게 변했다.
"그땐 서울의 웬만한 유명 사립대보다 지방 국립대가 합격선이 훨씬 높았다"고 항변해 보지만 아이들의 비웃음만 살 뿐이다. 그들은 그 말을 사실로 받아들이기는커녕 구차한 변명쯤으로 여긴다. 당시의 대학별 지원 배치표를 어렵사리 구해 보여주려는 모습이 처절하다.
자녀 앞에서 학벌로 당시의 성적을 증명해야 하는 현실이 서글펐다는 그는 이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서라도 아이를 서울 명문대로 진학시키려는 열성 학부모가 되어 있다. 자녀에게 학벌에 대한 열등감을 물려줄 수 없다는 거다. 그에게 지방대 진학은 차라리 '유배'다.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가 급훈
요즘 아이들은 지방대를 '등록금만 내면 받아주는 곳'으로 여긴다. 그들에게 '대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대학의 마지노선은 지방 대도시의 거점 국립대다. 흔히 줄여서 '지거국'이라고 부르는데, '서울 입성'은 실패했지만 나름 입시 준비를 열심히 했다고 인정받는 기준점이다.
숫자로 치면 대다수인 지방의 사립대는 아이들의 눈높이에선 이미 대학이 아니다. 마땅히 갈 데가 없어 입학은 하지만, 언제든 기회가 닿으면 다른 데로 옮기거나 주저 없이 그만둘 수도 있다. 딱히 우리 학교라는 소속감도 없고, 남들 앞에서 학교 이름을 밝히는 것도 꺼린다.
고등학교에서 진학 실적을 소개하는 데에서도 지방의 사립대는 아예 거론조차 되지 않는다. '의치한약'과 'SKY'로부터 시작해 이른바 '서울 상위 10개 대학'과 나머지 '인 서울 대학' 그리고 '지거국'이 끝이다. 이들의 합격자 수를 합치면 전체 응시생의 얼추 30%쯤 된다.
서열화한 학벌 구조 속에서 나머지 70%는 어쩔 수 없이 지방의 사립대에 진학한다. 지방의 사립대도 위치한 도시의 규모에 따라 서열이 매겨지긴 하지만, 별다른 의미도 영향도 없다. 아이들은 그들 간의 서열 경쟁을 두고 '지잡대끼리의 도토리 키 재기'라고 비아냥거린다.
전국의 모든 수험생이 오매불망 서울로 진학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현실이다. 와중에 서울이라는 이름은 아이들에게 하나의 거대한 '상징 자본'이 됐다. 지방에 사는 아이들에게 꼭 대학 진학이 아니어도 서울살이는 로망이 됐고, 고향이 서울이거나 서울에 사는 친구는 그 자체로 부러움의 대상이다.
급기야 요즘 아이들에게 서울대는 우리나라 최고의 학부라는 관악산 아래 서울대가 아니라 '서울에 자리한 대학'으로 의미가 확장됐다. 우스갯소리일지언정 그만큼 '인 서울'하기가 힘들다는 방증이다. 덩달아 기존 '인 서울 대학'의 범주는 서울 주변 수도권으로 넓혀지고 있다.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 듣자니까, 과거 봉건 시대에나 어울릴 법한 이 말이 어느 학교 교실의 급훈이라고 한다. 교육의 당면 목표가 서울로의 대학 진학이라는 뜻이다. 서울과 지방의 경계가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기준선임을 학교가 나서서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학교가 열 명 중 두세 명에 불과한 아이들을 위해 대다수인 나머지 아이들을 대놓고 소외시키는 행태다. "서울에 가야 사람대접 받는다"는 아이들의 말은 기실 스스로 체득한 게 아니라 기성세대로부터 오랫동안 길들어 학습된 것이다. 그중에도 학교가 주범 노릇을 했다.
서울 사는 아이들은 지방을 '유배지'로 여기고, 지방에 사는 아이들은 모두 해바라기처럼 서울만 쳐다보는 현실이 완화하기는커녕 나날이 심각해지는 양상이다. 서울은 모든 걸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됐고, 지방은 소멸을 우려할 정도로 무력해졌다. 이제는 지방의 대도시마저 위험하다.
서울의 식민지, 그 열패감
인구와 소득, 생활 인프라 등 모든 방면의 격차가 커지면서 지방은 서울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대학만 서울로 가는 게 아니다. 공연을 보려고 서울에 가고, 몸이 아파도 서울로 간다. 심지어 고등학교 수학여행조차 서울로 간다. 사통팔달의 KTX 노선과 고속도로는 지방의 서울 종속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지방마다 특유의 '지방색'을 잃은 지 이미 오래고, 되레 아이들을 서울로 진학시키는 데 혈안이 된 지방정부가 숱하다. '고향을 빛낸' 그들을 위해 서울 내 기숙사를 제공하고 등록금 등 유학 비용을 지원하는 건 지방마다 불문율이다. 졸업 후 서울에 눌러앉게 될 텐데도 말이다.
지금의 학벌 구조 아래에서는 성적이 우수하고 장래가 촉망되는 아이들은 죄다 서울로 모이게 돼 있다. 일찌감치 좌절을 맛보고 열패감에 시달려 온 아이들도 지방대에 진학할지언정 졸업 후엔 '사람 대접을 받기 위해' 서울로 향한다. 일단 서울살이가 시작되면 내려와서도 안 되고 내려올 수도 없다. 악착같이 버티고 견디는 일만 남게 된다.
'개똥밭에 굴러도 서울이 낫다.' 서울살이 7년 차인 한 제자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는 말이다. 그는 학창 시절 열심히 공부해서 '인 서울 대학'에 진학했고, 군대 다녀온 기간만 빼면 줄곧 서울에서 살았다. 턱없이 비싼 월세와 물가고에 허덕이지만, 고향에 내려와 살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아직 20대 청년인 그가 굳이 서울을 '제2의 고향'으로 삼으려는 이유는 물어보나 마나다. 지방에선 누릴 수 없는 게 서울엔 지천이다. 당장 지방엔 일자리가 없다. 일자리가 부족하니 청년이 떠나고, 일할 청년이 없으니 그들을 위한 몇 안 되는 일자리가 사라지는 악순환이다.
사람이 많은 곳에 돈이 모이고, 돈이 모이는 곳에 일자리가 생기는 건 당연지사다. 정치권이 손을 놓은 채 시장 논리로만 접근하면 우리나라엔 서울 한 곳만 덩그러니 남게 된다. 이른바 '벚꽃 피는 순서대로 문을 닫게 된다'는 도미노식 지방대의 붕괴 조짐은 신호탄이다.
삼수, 사수를 하는 한이 있어도 '인 서울'하고 말겠다는 아이들과 진학 상담하는 와중에 김포시를 서울에 편입하겠다는 여당발 뉴스가 떴다. 실현 가능성은 차치하고, 그러잖아도 비대한 서울의 덩치를 더 키우겠다는 발상에 아연할 따름이다. 덩치만 키운다고 도시의 경쟁력이 올라가는 게 아닐 텐데, 명색이 집권 여당의 대표가 여전히 과거 개발 광풍이 몰아치던 시대의 가치관에 매몰돼 있다는 사실이 절망스럽다.
서울이라는 이름에 빌붙어 부동산 가격을 띄워보려는 일부 투기꾼을 제외하고 이런 구태의연한 시도를 반길 이가 또 있을까. 총선을 앞두고 불로소득의 기대 심리를 자극하는 얄팍한 술수에 현혹될 유권자도 많지 않아 보인다. 다만, 이번 사달로 '사람대접받는' 서울과 '유배지' 지방이라는 인식이 아이들에게 더욱 뚜렷하게 각인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할 때까지만 해도 몰랐는데,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중·고등학교에 보내면서 시나브로 학벌에 대한 열등감이 생기더라고 했다. 지방대 출신이라는 건 자녀 앞에서조차 몸을 움츠리게 만드는 낙인이라며 가슴을 쳤다. 불과 20여 년 만에 세상은 그렇게 변했다.
자녀 앞에서 학벌로 당시의 성적을 증명해야 하는 현실이 서글펐다는 그는 이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서라도 아이를 서울 명문대로 진학시키려는 열성 학부모가 되어 있다. 자녀에게 학벌에 대한 열등감을 물려줄 수 없다는 거다. 그에게 지방대 진학은 차라리 '유배'다.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가 급훈
▲ 책 <어느 대학 출신이세요?>는 대학 이름이 '계급장'이 되고 '차별의 도구'가 되는 사회를 '지방대'라는 시선으로 분석한 책이다. ⓒ 오월의봄
요즘 아이들은 지방대를 '등록금만 내면 받아주는 곳'으로 여긴다. 그들에게 '대학이라고 부를 수 있는' 대학의 마지노선은 지방 대도시의 거점 국립대다. 흔히 줄여서 '지거국'이라고 부르는데, '서울 입성'은 실패했지만 나름 입시 준비를 열심히 했다고 인정받는 기준점이다.
숫자로 치면 대다수인 지방의 사립대는 아이들의 눈높이에선 이미 대학이 아니다. 마땅히 갈 데가 없어 입학은 하지만, 언제든 기회가 닿으면 다른 데로 옮기거나 주저 없이 그만둘 수도 있다. 딱히 우리 학교라는 소속감도 없고, 남들 앞에서 학교 이름을 밝히는 것도 꺼린다.
고등학교에서 진학 실적을 소개하는 데에서도 지방의 사립대는 아예 거론조차 되지 않는다. '의치한약'과 'SKY'로부터 시작해 이른바 '서울 상위 10개 대학'과 나머지 '인 서울 대학' 그리고 '지거국'이 끝이다. 이들의 합격자 수를 합치면 전체 응시생의 얼추 30%쯤 된다.
서열화한 학벌 구조 속에서 나머지 70%는 어쩔 수 없이 지방의 사립대에 진학한다. 지방의 사립대도 위치한 도시의 규모에 따라 서열이 매겨지긴 하지만, 별다른 의미도 영향도 없다. 아이들은 그들 간의 서열 경쟁을 두고 '지잡대끼리의 도토리 키 재기'라고 비아냥거린다.
전국의 모든 수험생이 오매불망 서울로 진학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현실이다. 와중에 서울이라는 이름은 아이들에게 하나의 거대한 '상징 자본'이 됐다. 지방에 사는 아이들에게 꼭 대학 진학이 아니어도 서울살이는 로망이 됐고, 고향이 서울이거나 서울에 사는 친구는 그 자체로 부러움의 대상이다.
급기야 요즘 아이들에게 서울대는 우리나라 최고의 학부라는 관악산 아래 서울대가 아니라 '서울에 자리한 대학'으로 의미가 확장됐다. 우스갯소리일지언정 그만큼 '인 서울'하기가 힘들다는 방증이다. 덩달아 기존 '인 서울 대학'의 범주는 서울 주변 수도권으로 넓혀지고 있다.
'말은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 듣자니까, 과거 봉건 시대에나 어울릴 법한 이 말이 어느 학교 교실의 급훈이라고 한다. 교육의 당면 목표가 서울로의 대학 진학이라는 뜻이다. 서울과 지방의 경계가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기준선임을 학교가 나서서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학교가 열 명 중 두세 명에 불과한 아이들을 위해 대다수인 나머지 아이들을 대놓고 소외시키는 행태다. "서울에 가야 사람대접 받는다"는 아이들의 말은 기실 스스로 체득한 게 아니라 기성세대로부터 오랫동안 길들어 학습된 것이다. 그중에도 학교가 주범 노릇을 했다.
서울 사는 아이들은 지방을 '유배지'로 여기고, 지방에 사는 아이들은 모두 해바라기처럼 서울만 쳐다보는 현실이 완화하기는커녕 나날이 심각해지는 양상이다. 서울은 모든 걸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됐고, 지방은 소멸을 우려할 정도로 무력해졌다. 이제는 지방의 대도시마저 위험하다.
서울의 식민지, 그 열패감
▲ 서울 ⓒ 권우성
인구와 소득, 생활 인프라 등 모든 방면의 격차가 커지면서 지방은 서울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대학만 서울로 가는 게 아니다. 공연을 보려고 서울에 가고, 몸이 아파도 서울로 간다. 심지어 고등학교 수학여행조차 서울로 간다. 사통팔달의 KTX 노선과 고속도로는 지방의 서울 종속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지방마다 특유의 '지방색'을 잃은 지 이미 오래고, 되레 아이들을 서울로 진학시키는 데 혈안이 된 지방정부가 숱하다. '고향을 빛낸' 그들을 위해 서울 내 기숙사를 제공하고 등록금 등 유학 비용을 지원하는 건 지방마다 불문율이다. 졸업 후 서울에 눌러앉게 될 텐데도 말이다.
지금의 학벌 구조 아래에서는 성적이 우수하고 장래가 촉망되는 아이들은 죄다 서울로 모이게 돼 있다. 일찌감치 좌절을 맛보고 열패감에 시달려 온 아이들도 지방대에 진학할지언정 졸업 후엔 '사람 대접을 받기 위해' 서울로 향한다. 일단 서울살이가 시작되면 내려와서도 안 되고 내려올 수도 없다. 악착같이 버티고 견디는 일만 남게 된다.
'개똥밭에 굴러도 서울이 낫다.' 서울살이 7년 차인 한 제자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는 말이다. 그는 학창 시절 열심히 공부해서 '인 서울 대학'에 진학했고, 군대 다녀온 기간만 빼면 줄곧 서울에서 살았다. 턱없이 비싼 월세와 물가고에 허덕이지만, 고향에 내려와 살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아직 20대 청년인 그가 굳이 서울을 '제2의 고향'으로 삼으려는 이유는 물어보나 마나다. 지방에선 누릴 수 없는 게 서울엔 지천이다. 당장 지방엔 일자리가 없다. 일자리가 부족하니 청년이 떠나고, 일할 청년이 없으니 그들을 위한 몇 안 되는 일자리가 사라지는 악순환이다.
사람이 많은 곳에 돈이 모이고, 돈이 모이는 곳에 일자리가 생기는 건 당연지사다. 정치권이 손을 놓은 채 시장 논리로만 접근하면 우리나라엔 서울 한 곳만 덩그러니 남게 된다. 이른바 '벚꽃 피는 순서대로 문을 닫게 된다'는 도미노식 지방대의 붕괴 조짐은 신호탄이다.
삼수, 사수를 하는 한이 있어도 '인 서울'하고 말겠다는 아이들과 진학 상담하는 와중에 김포시를 서울에 편입하겠다는 여당발 뉴스가 떴다. 실현 가능성은 차치하고, 그러잖아도 비대한 서울의 덩치를 더 키우겠다는 발상에 아연할 따름이다. 덩치만 키운다고 도시의 경쟁력이 올라가는 게 아닐 텐데, 명색이 집권 여당의 대표가 여전히 과거 개발 광풍이 몰아치던 시대의 가치관에 매몰돼 있다는 사실이 절망스럽다.
서울이라는 이름에 빌붙어 부동산 가격을 띄워보려는 일부 투기꾼을 제외하고 이런 구태의연한 시도를 반길 이가 또 있을까. 총선을 앞두고 불로소득의 기대 심리를 자극하는 얄팍한 술수에 현혹될 유권자도 많지 않아 보인다. 다만, 이번 사달로 '사람대접받는' 서울과 '유배지' 지방이라는 인식이 아이들에게 더욱 뚜렷하게 각인되는 것 같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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