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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물질 유출돼 대피했더니 정직 3개월"... 대법 판단은?

2016년 콘티넨탈 작업중지권 사건, 9일 대법 선고... 전문가들 "최악의 경우 상정하고 사고대응해야"

등록|2023.11.08 18:36 수정|2023.11.08 18:38
지난 2016년 7월 26일 오전 7시 56분께 세종시 부강산업단지 내의 한 안경 렌즈재료 제조업체 KOC솔루션 창고에서 '티오비스'라는 위험 물질 200리터가 가스 형태로 유출됐다. 이로 인해 인근에서 일하던 노동자 10여 명이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고, 주변 마을 주민 수백 명도 대피했다. 티오비스 자체가 유해화학물질로 분류되진 않지만, 공기와 만나 반응하게 되면 독성이 강한 유해화학물질인 황화수소로 변해 호흡곤란이나 마비까지 일으킬 수 있다.

사고가 난 업체로부터 불과 200미터 떨어진 곳에 자동차 계기판 등을 만드는 컨티넨탈오토모티브일렉트로닉스(콘티넨탈)가 있었다. 오전 9시께, 이 공장 노조 간부였던 조남덕 금속노조 콘티넨탈 지회장은 주변 회사에서 사고가 났다는 걸 알게 됐다. 밖에 소방차는 물론 경찰, 방독면을 쓴 군인들까지 오가고 있었다. "매스껍다"며 어지러움을 느끼는 동료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오전 9시 30분께, 100리터의 티오비스가 한번 더 유출됐다. 조 지회장은 오전 9시 40분께 고용노동부에 전화해 조치를 요구했고, 오전 10시께 회사 안전관리자에게 대책을 촉구했다. 그럼에도 구체적인 대피 안내가 없자, 조 지회장은 오전 10시 30분께 작업중지권을 행사하며 조합원들에게 공장에서 대피하라고 지시했다. 다행히 이곳 노동자들의 인명 피해는 없었다.

그런데 조 지회장은 어떻게 됐을까?

"이럴 때도 못 쓰면 언제 작업중지하나요"… 대법원 판단은?
  

▲ 8일 국회에서 '콘티넨탈 작업중지권 사건의 쟁점과 문제' 토론회가 열렸다. 오는 9일 대법원 선고를 앞두고 있다. ⓒ 김성욱


조남덕 지회장은 회사로부터 '3개월 정직'이라는 해고 직전의 중징계를 받았다. 회사가 그날 오전 11시께 조 지회장 등 노조 조합원들에게 공장에 돌아와 다시 일을 하라고 시키자, 이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조 지회장은 회사의 징계가 부당하다며 취소소송을 냈다. 그러나 1심과 2심에서 법원은 모두 회사 쪽 손을 들어줬다. 사후 조사 결과, 누출 지점 10미터 이상의 거리에서 황화수소가 검출되지 않았다는 점 등을 들어 '급박한 위험'이 없었다고 판단했다. 산업안전보건법 52조엔 '근로자는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한 위험이 있는 경우에는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다'고 돼있다.

"그땐 정말 뭔 일이 날 것 같았어요. 바로 앞에 있는 공장에서 뭔지도 모르는 가스가 흘러나와서 난리가 났는데, 그래서 내가 속한 공장 동료들이 매캐하다고, 어지럽다고 하는데도 우리는 계속 참고 일을 하란 소리예요?"

조 지회장은 8일 국회에서 열린 '콘티넨탈 작업중지권 사건의 쟁점과 문제' 토론회에 참석해 이렇게 토로했다. 조 지회장은 "이런 상황에서도 노동자가 대피를 못하면, 도대체 어떤 상황에서 작업중지권을 쓰라는 건가요?"라고 거듭 되물었다.

전문가들은 법원의 판단이 "넌센스"라고 답했다. 권오성 성신여자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노동자가 거부할 권리를 논하기 이전에, 애초에 회사가 위험한 상황에서 일을 시킬 권한이 없는 것"이라며 "만약 노동자가 죽었다면 누가 책임질 건가"라고 했다. 권 교수는 "자신의 안전과 생명을 위해 거부할 권리는 노동자와 노예를 구분하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라며 "미국과 일본에선 50년 전에 끝난 얘기를 21세기에 하고 있는 게 대한민국의 노동 현실"이라고 했다.

윤성용 순천향대학교 구미병원 직업환경전문의는 "사고는 예측이 안 되기 때문에 대응 시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고 움직이는 게 맞다"라며 "적극적으로 움직인 근로자가 도리어 징계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경총 등 경영계가 작업중지권을 필사적으로 반대할 만큼 제조업 기업들은 공장라인 세우는 것을 꺼린다"라며 "가뜩이나 현장에서 쓰기 어려운 작업중지권이 법원 판례로 더욱 형해화돼선 안 된다"고 했다.

조 지회장 징계 사건은 내일 9일 대법원 선고를 앞두고 있다. 취소 소송을 제기한 지 5년여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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