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치유 글쓰기 프로그램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입니다. 20대(Z), 30대(M), 40대(X)까지 총 6명의 여성들로 이뤄진 그룹 'XMZ 여자들'은 세대간의 어긋남과 연결 그리고 공감을 목표로 사소하지만 멈칫하게 만드는 순간을 글로 씁니다.[편집자말]
▲ 혼란스러운 은행나무 ⓒ 이수현
그러나 올 가을은 유독 돌아갈 길을 잃은 듯 나무들이 혼란스러워 보였다. 서울 서촌의 효자로. 10월 말이면 모두 샛노랗게 옷을 갈아입었던 작년과 다르게 이미 노랗게 물들어 이파리를 다 떨군 나무, 노란색으로 절정을 이룬 나무, 그리고 춘추복 입는 날 하복을 입고 온 학생처럼 초록빛을 간직하고 있는 나무까지 한데 서 있다.
아무리 저마다의 속도대로 변하는 계절이라지만 지역별 편차도 아닌, 같은 거리 바로 옆에 서 있는 나무들끼리 이리도 다를 수가 있던가.
올해 10월의 끄트머리에도 어김없이 하늘이 높아진 것을 느끼며 덕수궁 산책을 하였는데, 작년보다 확연히 단풍이 늦는 것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이파리들은 더 많이 떨어져 있었고. 덕수궁은 어김없이 고상하게 아름다웠지만 내심 아쉬움을 느끼며 발걸음을 뒤로 했다.
생각보다 더웠던 올 가을, 나뭇잎이 늦게 물들거나 낙엽으로 변한 후 바로 떨어졌던 이유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 때문이다. "단풍나무는 기온 1도 상승에 4일씩, 은행나무는 5.7일씩"(김현석, 서울대 산림과학부 교수) 단풍이 늦어진다고 한다. 울긋불긋 감탄을 자아내었던 산등성이는 이도 저도 아닌 누르스름한 색을 띠다 금방 힘없이 앙상해졌다.
앞으로 날씨는 점점 더 예측하기 어려워질 것이며, 우리는 그 변화를 모두 몸소 체감하고 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11월이라 꺼내 입은 울 재킷은 하루 종일 무거운 짐이 되어 덥고 지치는 하루에 일조했다.
지하철은 반팔과 니트와 트렌치코트와 맨 다리와 검은 스타킹이 뒤죽박죽 섞인, 혼란스러움의 패션쇼가 열리는 현장이었다. 그러다 하루 만에 기온이 10도 이상 급격하게 떨어져 두터운 겨울 코트에 겨울 스타킹을 신고 패딩을 입은 사람들 사이에 끼여 출근한 날도 있었다.
그런가하면 퇴근길에는 갑자기 강한 폭우가 내려 급히 사무실에 장우산을 챙기러 다시 올라가야 했다. 2분 정도 걸려서 다시 1층으로 내려왔을 때 폭우는 언제 내렸는냐는 듯이 그쳐 있었다. 장우산을 챙기라며 팀 동료들에게 호들갑을 떨다 내려온 터라, 다시 카톡으로 실시간 날씨를 중계했다.
비는 점점 더 스콜성으로 내릴 것이며 봄과 가을은 사라지고, 여름은 1년의 반을 차지하게 될 것이며 겨울은 짧아질 것이다. 제일 좋아하는 계절 가을이 변해가는 것을 목격하는 것이 괴롭다. 산불조심 기간이 계속해서 늘어나는 것이 무섭다. 서울 같은 대도시를 물바다로 만드는 폭우가 두렵다.
"세상 대부분의 일이 '어차피'와 '최소한'의 싸움이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어차피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이들과 그래도 최소한 이것만은 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이들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말들이 흘러나왔다." - <날씨와 얼굴> 이슬아
이런 급격한 변화 속에서 '어차피'보다는 '최소한'의 정신으로 함께 조금씩 나아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텀블러 사용이나 재활용을 철저히 하기는 많은 사람들이 실천하고 있는 방법일 것이다.
올여름부터는 대나무 칫솔과 고체 샴푸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머리에 비누를 문지르는 것이 어색했지만, 지금은 다 사용하고 나면 쓰레기가 0이 되는 제로 웨이스트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다.
될 수 있는 모든 것은 리필형으로 사고, 파스타 소스통 같은 유리병들은 어떻게든 수제피클이나 잼을 담는 용도로 재활용된다.
이사를 하며 우리집 짐의 양에 질려버린 이후에는 하나를 사서 오래 쓰는, 지속 가능한 소비를 하려고 계속해서 노력 중이다. 그런 와중에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 폐지 같은 뉴스를 보면 안타깝고 당황스럽기도 하다.
내가 60대 할머니가 될 2050년 쯤에도 단풍이 초록을 벗고 자신의 색으로 돌아가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할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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