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기다리게 만드는 가장 큰 이유
차(茶)와 함께하는 추운 계절이 온다
도서관 치유 글쓰기 프로그램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입니다. 20대(Z), 30대(M), 40대(X)까지 총 6명의 여성들로 이뤄진 그룹 'XMZ 여자들'은 세대간의 어긋남과 연결 그리고 공감을 목표로 사소하지만 멈칫하게 만드는 순간을 글로 씁니다.[편집자말]
흘러들어오는 한기를 버티지 못하고 창문을 닫았다. 추위를 애써 외면하고 옷장에 걸려 있는 가벼운 외투와 얇은 옷을 정리해 넣었다. 대신 코트부터 털옷, 후리스, 패딩을 옷걸이에 하나씩 걸어 놓으니 계절이 바뀌고 있음이 확 느껴졌다. 요즘 같은 환절기에는 따뜻한 음료가 제격이지. 오랜만에 찻장에 고이 모셔뒀던 티팟을 꺼냈다.
차(Tea)는 약간의 씁쓸함이 느껴지는 맛과 달리 향긋한 내음이 매력적이다. 그 때문에 오히려 호불호가 갈리기도 하지만. 나 역시 처음부터 차를 좋아했던 건 아니다. 달달한 과일차의 맛을 생각했던 나에게 차는 그저 쓴 맛이 나는 맛 없는 물에 불과했으니까. 그럼에도 이렇게 차를 좋아하게 된 것은 여행 중 가이드의 권유로 마셨던 녹차 덕분이지 않을까 싶다.
'녹차'는 발효시키지 않은 찻잎으로 만든 차로, 찻잎을 수확하고 제조하는 시기별로 부르는 이름이 조금씩 달라진다. 4월 중순(곡우 전후)에 가장 처음 딴 찻잎으로 만들어져 첫물차라고도 불리는 '우전'은 굉장히 여리고 순한 맛을 가지고 있다. 만드는 과정이 복잡해 생산량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가격대가 높은 편이지만 한 번쯤은 마셔보고 싶은 차이다.
'세작'은 여름이 시작되기 전에 수확하는 차로, 잎이 다 펴지지 않은 모양이 참새의 혀모양을 닮아 작설차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중적으로 가장 많이 알려졌으며 친숙한 맛의 녹차이다.
'중작'은 입하부터 5월 중순까지 수확한 차로, 세작보다 더 자란 잎을 따 만들어 뒷맛이 조금 떫다. 세작이나 우전보다 질이 크게 떨어지지 않고 녹차 고유의 색깔과 향기를 즐길 수 있는 차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외에도 차는 제조과정에서의 발효 여부로 여러 종류의 차로 세분화되기도 한다.
입문용으로 마시기 좋은 차는 '우롱차'이다. 찻잎은 적갈색 잎을 둥글게 말린 구슬 모양으로, 황색이나 홍색을 띠는 수색에 배나 사과의 향과 같은 향기를 가지고 있다. 녹차와 홍차의 중간인 반발효차로, 녹차보다 부드럽고 떫은 맛이 적다.
'홍차'는 찻잎을 산화발효시켜 마시는 차로, 어두운 빨간색부터 갈색 사이의 수색을 띈다. 홍차는 우롱차와 달리 맛과 향이 진해 우유나 설탕을 넣어 마시기도 한다. '백차'는 어린 잎을 따 덖지 않고 그대로 건조시켜 만든 차로, 옅은 오렌지색의 수색을 가지고 있다. 맑은 향과 산뜻한 맛이 특징이며, 여름철에는 열을 내려주기도 하여 한약재로도 많이 사용된다.
이 중 처음 마셔봤던 건 우롱차와 녹차였다. 가벼운 입문용으로 시작한 덕분일까, 크게 호불호가 갈리지 않는 맛과 향 덕분에 그때부터 차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차 덕질'은 흔히 마시는 보리차나 옥수수차, 둥굴레차부터 가향차(블렌딩티)까지 취향에 맞는 티백이나 찻잎을 수집하게 만들었다.
▲ 요즘 마시고 있는 다양한 차(茶)와 애정하는 티팟 ⓒ 한재아
홍차가 베이스인 차들은 카페인이 꽤 높게 포함되어 있어 하루의 한 잔 밖에 마시지 못한다는 점이 아쉬울 정도로 맛있는 차들을 알게 되었다. 요즘 자주 마시고 있는 건 영국 홍차의 대표 브랜드이자 영국 왕실에 차를 납품하는 블렌딩티이다.
위 사진에 있는 '패션프룻, 망고 앤 오렌지 티'는 열대과일만의 달콤함을 느낄 수 있는데 신기하게도 세 가지 과일의 향이 모두 느껴진다. 단맛이 빠진 과일맛 아이스크림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피치 티'는 박스를 열자마자 강렬하게 느껴지는 복숭아향이 기억에 남는다.
티백을 우리면 나는 은은한 복숭아 향 때문에 익숙한 복숭아 아이스티에서 단맛이 빠진 맛이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과일향이 가볍고 산뜻해서인지 두 가지 티백 모두 따뜻하게 마시거나 냉침(뜨거운 물을 사용하지 않고 차를 우리는 방법, 시간이 오래 걸린다)해서 마셔도 맛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좋아하고 있는 차 브랜드는 당연 '오OO'이다. 호텔에서 제공한 웰컴티로 처음 맛을 본 뒤 사랑에 빠져 지금까지 꾸준히 찾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건 '달빛OO'. 팩을 열자마자 훅 끼치는 달큰한 배향이 사탕을 떠오르게 한다. 티백에 함께 들어 있는 여러 개의 별사탕이 달달한 맛을 내어 처음 차를 접하는 사람도 부담없이 즐길 수 있다.
'동백이 피는 OOO'은 동백꽃의 향을 그대로 담고 있다. 가볍고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향과 맛을 가지고 있지만 조금이라도 오래 우려내면 쓴 맛이 확 올라온다(다른 차도 마찬가지지만 이 차가 유독 그렇다). 투명한 오렌지빛의 수색이 예뻐 투명한 찻잔과도 잘 어울린다. 따뜻하게 마시면 가향홍차의 맛이, 차갑게 마시면 꽃향이 더 잘 느껴지니 취향에 맞게 마시면 된다.
▲ 제주도에서 본 오설록 녹차밭 ⓒ 한재아
차(Tea)와 관련된 이야기에서 빠질 수 없는 게 바로 티 푸드다. 오늘날 티 푸드하면 떠오르는 건 케이크지만, 차 문화의 초창기부터 케이크가 애용되었던 건 아니다. 18세기 영국 당시에는 버터를 바른 빵이나 토스트, 티 샌드위치만 존재했는데, 설탕의 가격이 내려가면서부터 케이크가 티 테이블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모든 사람들이 제대로 된 영국식 케이크를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귀족들은 정통 케이크 중 하나인 값비싼 플럼 케이크(이스트를 넣은 발효반죽에 럼으로 향을 내고 세 가지 종류의 건포도를 넣어 만든 케이크)를 먹었지만, 서민들은 쇼트케이크(비스킷 반죽으로 만든 작은 케이크, 부서지기 쉽다는 뜻을 담고 있다)나 비스킷을 주로 먹었다고 한다.
지금은 케이크, 비스킷, 브레드 앤 버터(버터 바른 빵) 외에도 롤빵, 번, 스콘, 마들렌 등도 차와 함께 즐기는 대표적인 티 푸드가 되었다. 스콘은 속을 넣지 않고 구운 밀가루 빵으로, 초기에는 딱딱하고 얇은 형태였으나 시대가 지나면서 지금의 모양을 갖추게 되었다. 마들렌은 밀가루, 달걀, 설탕, 버터 등을 배합한 말랑말랑한 반죽을 마들렌 틀에 흘려 넣어 구운 과자로, 연하고 가볍게 만든다는 특징이 있다.
▲ 나가기 귀찮아서 만든 스콘 ⓒ 한재아
최근 몇 년 사이, 사람들이 예전보다 차(茶)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SNS에서 유명 찻집을 소개하는 빈도가 늘었고, 차 전문점이 많아지면서 티하우스와 티마카세 같은 단어들이 자주 사용되기도 했고. 덕분에 나는 괜찮은 찻집을 찾아다니는 재미를 즐기고 있다.
요즘은 애프터눈 티를 많이 찾아본다. 애프터눈 티는 2, 3단으로 된 트레이에 다양한 디저트가 담겨져 나오는 것을 말한다(주로 홍차 전문점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위로 갈수록 달달한 티 푸드를 배치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먹는 순서 역시 밑에서부터 위로 올라간다. 물론 가격대가 꽤 있는 편이라 아직 먹어본 적은 없다. 월급이 들어오면 이것부터 먹어보러 갈 생각이다.
덧붙이는 글
브런치 스토리에도 같은 내용의 글이 올라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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