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스산 바위에 묶였다는 프로메테우스의 결말
[카프카스 기행, 카스피해 바쿠에서 흑해 바투미까지 (25)] 카즈베기산과 성당
▲ 게르게티 츠민다 사메바 성당(왼쪽 산위)과 카즈베기산(오른쪽) ⓒ 이상기
버스로 스테판 츠민다에 도착한 우리 일행은 북쪽 산을 바라본다. 가까이 그리고 멀리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가까운 산 위에는 두 개의 건물이 자리 잡고 있다. 이 건물이 게르게티 츠민다 사메바 성당이다. 여기서 게르게티는 지명이고, 츠민다 사메바는 성 삼위일체를 말한다. 멀리 있는 산 정상에는 만년설로 보이는 흰 눈이 덮여 있다. 이 산이 엘브루스산(Mt. Elbrus: 5,642m)과 함께 카프카스 산맥에서 가장 유명한 카즈베기산(Mt. Kazbegi: 5,054m)이다. 카즈베기산은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준 프로메테우스가 쇠사슬에 묶여있던 산으로 알려져 있다.
츠민다 사메바 성당에 오르기 위해서는 주차장에서 사륜구동 택시로 갈아타야 한다. 츠민다 사메바 성당에 가는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성당을 살펴보고 스테판 츠민다와 주변 산을 조망하기 위해서다. 다른 하나는 카즈베기산을 좀 더 가까이 보기 위해서다. 우리는 한 차에 네 명씩 분승해 해발 2,170m의 산 위로 올라간다. 산길은 구불구불 이어지고, 풍화와 침식으로 부서진 화산암과 그 위에 자라고 있는 고산식물들을 볼 수 있다. 해발이 높아지면서 나무들은 줄어들고 초원지대가 이어진다. 여름이어서 식물의 성장이 왕성해 보인다.
▲ 말 타고 오르기 ⓒ 이상기
주차장에서 택시를 내리면 츠민다 사메바 성당으로 걸어 올라가야 한다. 이곳 주차장에서 말을 타고 올라가는 사람도 보인다. 성당은 주변을 돌로 쌓아 성벽처럼 차단되어 있다. 그것은 전쟁시 이곳으로 들어가 외적과 맞서야 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츠민다 사메바 성당은 종교적인 성지일 뿐 아니라 군사적인 요새 역할을 했다. 성벽이라는 척박한 환경에서도 일부 식물이 여름을 맞아 꽃을 활짝 피우고 있다. 이곳 성벽에서 카즈베기산을 가장 잘 조망할 수 있다. 마침 구름 한 점 없이 날씨가 맑아 카즈베기산과 정상의 만년설이 선명하게 보인다. 카즈베기산 정상부에는 빙하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츠민다 사메바 성당 ⓒ 이상기
츠민다 사메바는 조지아어로 성 삼위일체를 뜻한다. 그러므로 츠민다 사메바 성당은 성 삼위일체 성당이 된다. 성당은 두 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에 성당이 처음 지어진 것은 14세기다. 그 후 종탑이 따로 지어져 두 개의 건물이 되었다. 종탑이 성당보다 조금 낮은 곳에 위치한다. 그리고 우뚝한 두 개의 건물이 높은 산 위에 신성한 모습으로 서 있어, 순식간에 조지아의 명소가 되었다. 더욱이 오른쪽으로 펼쳐진 카즈베기 설산이 성당과 대비를 이뤄 멋진 풍경을 만들어낸다. 18세기 조지아 왕족이자 역사학자인 바토니슈빌리(Vakhushti Batonishvili)는 유사시에 므츠헤타 스베티츠호벨리 성당의 귀중한 유물들이 이곳으로 이전 보관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츠민다 사메바 성당은 제대가 있는 성소 부분은 반원형으로 되어 있고, 나머지 삼면은 사각형을 이루고 있다. 성당으로 들어가는 출입구는 서쪽과 남쪽에 있다. 서쪽 출입구 양쪽 벽은 갈색과 회색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장식이라고는 전혀 없고, 출입문과 창문에 단순 소박한 문양을 볼 수 있다. 성당 상부의 돔은 열 개의 창을 가지고 있으며, 그중 다섯 개는 벽으로 나머지 다섯 개는 유리창으로 되어 있다. 그 유리창을 통해 성당 안으로 빛이 들어오게 설계되었다.
▲ 츠민다 사메바 성당의 이코노스타시스 ⓒ 이상기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동쪽 제대 앞에 이코노스타시스가 있다. 가운데 문이 있고, 양쪽은 벽으로 되어 있다. 문에는 상하로 나눠 성화가 그려져 있다. 윗부분에서는 가브리엘이 성모에게 예수를 가지게 되었음을 알려준다(수태고지). 아랫부분에는 복음사가들이 예수의 생애와 말씀을 기록하고 있다. 문 위쪽 벽화에서는 십자가를 들고 승천하는 예수를 하느님이 맞이하고 있다.
양쪽 벽은 벽감 형태로 되어 그 안에 성화를 그려 넣었다. 예수의 삶과 죽음을 보여주는 그림 같은데, 일부가 훼손되어 내용을 정확히 알기가 쉽지 않다. 제대 위에서 돔에 이르는 벽에는 그림이나 장식이 전혀 없다. 그 때문에 종교적 신성함보다는 인간적 친근함이 느껴진다.
▲ 성당의 돔에서 흘러나오는 빛 ⓒ 이상기
성당 안에는 벽화와 조각 형태의 성화가 더 많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 성모자, 천사, 12사도 등이 보인다. 이들 성화는 만들어진 시대가 달라 화풍이 여러 가지다. 성당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종탑은 2층으로 되어 있다. 아래층은 사각형으로 문이 동쪽으로 나 있다. 위층은 6각형으로 6개의 창을 가지고 있다.
성당과 종탑 모두 문이 아주 작게 만들어져 유사시 문을 폐쇄해 외부로부터의 침입을 막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벽도 성벽 느낌이 날 정도로 단순하면서도 견고하게 만들어졌다.
프로메테우스 신화는 어떻게 변화되었나
▲ 실재 카즈베기산 ⓒ 이상기
프로메테우스 신화는 문학 속에서 수도 없이 변화되어 왔다. 그리스 신화에서 프로메테우스는 불의 신이다. 프로메테우스는 올림푸스 신들로부터 불을 훔쳐 인간에게 전해주었다. 불은 문명의 이기로써 그때부터 인간 세상에 문명이 싹트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프로메테우스는 불을 훔친 대가로 올림푸스산으로부터 추방되어 바위에 묶인 채 제우스신이 보낸 독수리에게 간을 파먹히는 형벌을 받는다. 그것은 매일 밤 간이 재생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신화에 나오는 바위산이 차츰 카프카스 산맥의 엘브루스산이나 카즈베기산으로 구체화된다. 그 이유는 문명화된 그리스와 대비되는 미개한 지역으로 카프카스 지역이 설정되었기 때문이다.
조지아 영웅서사시에서 주인공 아미라니(Amirani)는 프로메테우스처럼 신에게 도전했다가 쇠사슬에 묶인채 카프카스 산맥 높은 산으로 추방된다. 그곳에서 새로부터 자신의 기관을 파먹히는 고통을 당한다. 르네상스 이후 유럽의 문학과 예술에서 프로메테우스는 저항과 반란의 상징으로 묘사된다.
괴테의 서사시 <프로메테우스>에서 프로메테우스는 신의 뜻에 따르지 않고 희로애락의 감정에 따르는 인간을 만들 것을 다짐한다. 20세기 초 카프카는 그의 짧은 단편 <프로메테우스>에서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다음과 같은 네 가지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 낭만주의 시대 토마스 콜이 그린 '바위산에 묶인 프로메테우스'(1847): 카즈베기산과 유사하다. ⓒ public domain
프로메테우스는 신들의 비밀을 인간에게 알려준 대가로 카프카스산의 바위에 묶여 신들이 보낸 독수리에 의해 간을 파먹혔다고 알려져있다. 간은 끊임없이 재생된다.
다음으로 프로메테우스는 새의 부리에 쪼이는 고통으로 괴로워하면서 자신을 바위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들어가게 해 바위와 하나가 된다. 이제 신에 대한 그의 반역행위는 수천 년의 세월이 흐르며 점점 잊혀 간다. 신도 잊고 독수리도 잊고 프로메테우스도 잊는다. 마지막에는 신이고 독수리고 상처를 받은 프로메테우스고 모두가 그 의미 없는 사건에 대해 싫증을 낸다.
이제는 더 이상 이야기할 것도 없이 바위만 남는다. 그동안 신화와 전설은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려고 노력해 왔다. 그것이 진실의 토양에서 나온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설명할 수 없는 것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카프카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전범(典範)을 다르게 해석한다. 그는 어떤 결론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상상력을 동원해 암시하는 형태로 끝을 맺는다. 이게 열린 결말이다. 우리에게 남는 것은 카프카의 <프로메테우스>와 카프카스의 프로메테우스다. 그 카프카스 산맥에 카즈베기산이 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