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크리스마스 나무로 감사를 전하는 핼리팩스 사람들

보스턴에서 베푼 온정을 백년이 넘도록 감사하는 행사

등록|2023.11.16 15:10 수정|2023.11.16 15:10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아직 한 달도 더 남았지만, 우리 동네에도 벌써 장식을 내건 집들이 꽤 보인다. 캐나다의 가장 큰 축제의 날이니만큼, 쇼핑몰들은 크리스마스 용품으로 넘쳐나고, 사람들도 선물을 사느라 상점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그리고 현지시각 11월 15일, 티브이에는 핼리팩스에서 보스턴으로 보낼 크리스마스트리를 베는 모습이 중계되었다. 이게 무슨 황당한 소리인가 싶을 것이다. 보스턴에는 크리스마스트리가 없는 걸까? 어째서 그리 먼 곳까지 크리스마스트리를 배에 실어서 보내는 것일까?

그 이야기는 백 년도 더 전인 1917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전쟁에 이용할 폭탄을 가득 실은 프랑스 화물선이 캐나다 노바스코샤주 핼리팩스로 들어가다가 베드포드 만의 해협에서 노르웨이 화물선과 충돌을 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인해 프랑스 화물선 갑판에서 화재가 발생하였고, 결국 이 화제가 폭탄에 점화되어 엄청난 대폭발이 일어나고 말았다.

이 폭발은 핼리팩스 대폭발이라고 이름 붙었으며, 핵무기를 제외한 폭발 중 가장 큰 폭발로 기록되고 있는 만큼 그 피해 규모가 엄청났다. 히로시마 리틀 보이 핵폭탄의 10분의 1 정도의 화력이라고 하니 얼마나 넓은 지역이 초토화되었을지 상상할 수 있다.

이 사고로 핼리팩스 리치먼드 지역이 완전히 폐허가 되어 아무것도 남지 않았으며, 바다 건너편 다트무스까지 파편이 튀었다고 했다. 2000명 이상의 사람이 사망하고, 90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지만, 인명피해 이외에도 핼리팩스가 입은 피해는 어마어마했다.

한겨울에 발생한 이 사고로 2만5000명의 사람들이 거리로 나앉았다. 이때 그들에게 즉각적으로 도움을 준 도시가 바로 보스턴이었다. 사고소식을 들은 보스턴 시장은 구호물자와 약품, 의료인들을 꾸려 기차를 바로 그날 밤 출발시켰다. 눈보라와 악천후로 인해 기차가 지연되었으나 결국 이틀뒤인 2월 8일 새벽에 핼리팩스에 도착했다. 그들은 핼리팩스 사람들에게 생명의 은인이었다.

그들은 몇 달, 심지어 일 년 이상 핼리팩스에서 머물며 폐허 복구를 도왔다.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도움 물자가 많이 왔지만, 보스턴은 단연코 첫 번째로 도착하여, 가장 힘든 순간에 그들을 구해준 도시였다.

그리고 그다음 해 1918년, 핼리팩스는 감사하는 뜻으로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를 베어 보스턴에 선물했다.

이 감사의 인사가 여기서 끝나나 싶었는데, 1971년 조셉 슬로엔화이트(Joseph Slauenwhite)라는 사람이 나무를 기부하면서 다시 이 행사에 불을 붙였다. 그는 2년 연달아 나무를 기부했다.

그 이후 2006년부터 매년 이 기부행사가 진행된다. 나무 선정을 위해 전문가가 6월부터 찾아다니고, 나무 기부는 개인 소유의 땅에서 나는 나무라고 한다. 기부자들은 자기들의 나무가 선정되면 영광으로 여기고 즐겁게 기부를 한다고 한다.

나무는 기부되지만 그 외의 비용은 엄청나다. 나무 선정과 홍보와 커팅, 배송 이외에 마케팅 비용까지 다 해서 2억 원 이상이 소요된다. 일각에서는 비판적인 반응도 있지만, 그때의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글썽이는 캐나다인과 마주하고 앉아 이야기를 해본다면, 이것은 여전히 많은 캐나다인의 가슴속을 울리는 행사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기자의 브런치에도 비슷한 내용이 실립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