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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 2천 포기 김장 해봤다는 캐나다인이 있어요

김치를 사랑하는 외국인 친구들과 벌인 신나는 '김장 잔치'

등록|2023.11.20 09:53 수정|2023.11.20 09:53

▲ 올해 김장 배추는 긴 장마와 폭우로 힘들게 키웠다. ⓒ 조계환


겨울이 시작되고 날씨가 추워졌다. 2월에 언 손을 비벼가며 파종하고 쉼 없이 달려왔는데, 어느새 농사가 끝나가고 있다. 따뜻하게 입고 밭 정리를 하고 김장을 했다.

한 해 농사의 마지막 일이기도 한 김장은 언제나 힘든 일이다. 하지만 올해는 좀 달랐다. 함께 한 사람들이 모두들 김치에 열광하는 외국인 친구들이라 힘든 김장이 즐거운 잔치가 됐다. 김장 때마다 오던 지인들이 일이 바빠 못 오는 바람에 어쩌다보니 외국인들 하고만 김치를 만들게 되었는데, 시간은 좀 더 걸렸지만 특별한 추억을 만들었다.

김치에 빠진 외국인들

"김치 담그는 법을 배우고 싶어요"라며 우리 농장에 신청 메시지를 보내는 외국인들이 많다. 한국 문화의 인기와 함께 한국 음식도 더 유명해지고 있다.

백화골에 유기농 농사 봉사하러 오는 외국인 친구들은 대부분 이미 자기 나라에 있는 한식당이나 한국 식품점을 통해 김치를 먹어본 적이 있다. 뿐만 아니라 인터넷을 보고 자신이 직접 김치를 만들어본 친구들도 꽤 많다. 이런 친구들에게 한국에서 한국인과 함께 김장을 하는 것은 오래 꿈꾸어오던 일이기도 하다.
 

▲ 배추 유기농 농사가 기후변화 때문에 갈수록 어려워진다. 그나마 한랭사로 망을 씌워 벌레를 막아 배추를 수확할 수 있었다. ⓒ 조계환


이번 김장 축제에 함께 한 친구들은 지리산에 있는 절에서 2천 포기 김장도 함께 해봤다는 '김장 고수' 키스턴(캐나다), 집에서 김치를 만들어 본 적 있는 미셸(독일), 한국에서 김장 하는 날을 꿈꾸며 우리 농장에 온 클래리스(싱가포르), 그리고 일본 대마도에서 화이트하우스라는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오랜 친구 사치, 코타네 가족(일본)이다.

일본에서는 이미 김치가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이 됐지만, 직접 만드는 사람은 많지 않고 대부분 설탕과 화학조미료가 들어간 김치를 마트에서 사서 먹는다고 한다. 사치씨가 맛있는 진짜 김치 만드는 법을 꼭 배워보고 싶다고 해서 이번 김장 시즌에 특별히 초대했다. 6살 하나와 4살 타로, 1살 지로까지 함께. 김치를 사랑하는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한 2023년 백화골 김장 풍경을 남겨 본다.
 

▲ 함께 땀을 뻘뻘 흘리며 폭염 속에 배추를 심었다. ⓒ 조계환


사실 이번 김장은 한여름 폭염 속에서 배추를 심은 이 친구들 손에서부터 시작됐다. 지난 여름은 정말 더웠는데, 땀을 뻘뻘 흘리며 함께 배추를 심어준 율리아(스위스), 파타(슬로베니아), 알렉스(영국)에게 정말 감사한 마음이다.

배추를 심고, 바로 한랭사를 씌우는 작업이 쉽지 않았지만 다들 즐겁게 일했다. 한랭사만으로 막아내지 못한 벌레들은 미생물이나 식물추출물 유기농 자재로 주기적으로 방제했다. 수확 3주 전에는 한랭사를 벗기고 햇볕을 더 쬐여주었다.
 

▲ 율리아가 마침 스위스에 돌아가 자신이 직접 만들었다며 김치 사진을 보내주었다. 우리 농장에서 배운 대로 자신만의 김치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자랑하는 모습이 귀엽다. ⓒ Julia


드디어 본격적인 김장 준비에 들어갔다. 재료는 모두 백화골에서 직접 재배한 유기농 채소다. 물론 설탕이나 화학조미료는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배추와 무 등 채소 본연의 맛이 잘 살도록 최대한 단순하게 김치를 만든다.
   

▲ 김장 양념을 위해 고춧가루와 대파, 마늘, 생강을 준비했다. ⓒ 조계환


여름내 열심히 키워 말린 유기농 고추를 분쇄기에 갈아 고춧가루도 직접 만들었다. 마스크를 쓰고 갈아도 결국에 눈물 콧물 범벅이 됐다. 싱싱하게 잘 자란 대파와 생강도 수확했다. 향기가 좋다. 마늘과 생강, 양파는 까고 다듬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 배추를 수확해서 소금에 절였다. ⓒ 조계환


배추를 수확하고 소금에 절였다. 밤늦게야 일이 끝났다. 힘들었을 텐데 모두들 김장 전야의 기대감으로 즐겁게 일했다.

이른 아침부터 다시 일을 시작했다. 밤새 절여진 배추를 씻어서 말렸다. 마늘, 양파, 고춧가루, 풀죽, 다시마 끓인 물, 액젓, 소금 등을 넣고 양념을 만들었다. 만드는 과정과 이유를 찬찬히 설명해주며 작업했다.
 

▲ 정성스럽게 재료를 다듬어서 김장 양념을 만들었다. ⓒ 조계환


아이들도 열심히 구경하다 한국어 능통자인 엄마 아빠한테 배운 한국말로 "저도 해보고 싶어요"라며 부탁하기에 양념 젓기를 함께 했다. 김장 같은 일에 어린 아이들이 관심이 없을 것 같았는데, 어른들이 열심히 하는 모습에 궁금했나보다. 일본 아이들도 김치를 무척 좋아했다.
 

▲ 배추에 김치속을 넣어 버무렸다. ⓒ 조계환


김장의 하이라이트, 절인 배추에 김치속을 넣고 버무리는 시간이다. 비비는 일이 고된 일인데도 불구하고 모두들 자기가 직접 하고 싶어 해서 번갈아 가며 했다. 키스턴은 배추 2천 포기 김장을 해본 사람답게 엄청난 속도로 김치 속을 버무리며 예쁘게 모양까지 잡아 통에 넣었다.

클래리스는 옷에 온통 김치물이 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팜스테이 신청 이메일을 보낼 때부터 바로 이 순간을 기다렸어요"라며 흥에 겨워한다. 다들 즐거워 하니 우리도 덩달아 재미있게 김치를 만들었다.

김치통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다
 

▲ 총 10명의 다국적 팀이 함께 김치는 만드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 조계환


드디어 3일간의 김장 잔치가 끝났다. 총 10명의 다국적 팀이 함께 김치를 만든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다들 김치 만드는 과정을 제대로 익히고 배우고 싶어 해서 굉장히 열중해서 일했다. 어린 아이들 셋이 함께 하는 것이라 처음에는 조금 걱정도 되었는데, 정신없이 떠들썩한 분위기에서 무사히 김장이 끝났다. 재미있었다.

차곡차곡 쌓인 김치통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함께 뒷설거지까지 말끔히 끝냈다. 다음날 바로 대마도로 돌아가는 사치, 코타 가족에게는 김치 한 통을 선물로 주었다. 코타가 김치통을 챙기며 "집 냉장고에 한동안 맛있는 김치가 있을 거란 생각을 하니 기분 좋다"고 말한다.
  

▲ 김장을 마치고 김치를 차곡차곡 잘 저장해놓았다. ⓒ 조계환


이번에 만든 김치는 내년 한 해 동안의 소중한 양식이 될 예정이다. 보통 팜스테이로 오는 외국인 친구들이 세 명 정도씩 머무는데, 날이 갈수록 김치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아져 해마다 배추 포기 수를 늘리고 있다.

김장 마치고 겉절이로 한 접시 맛을 보았는데, 다들 자기 손맛이 들어가서인지 너무 맛있다며 좋아한다. 내년 봄이 되면 적당히 발효되어 얼마나 더 맛있어질까. 이 맛있는 김치를 먹으며 내년 한 해 동안 재미있게 농사 일 할 시간들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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