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우리 소원은 '가족이 무사히 퇴근해 함께 저녁 먹기'입니다

[김용균 5주기③] 모두의 안녕을 빌며 김용균에게 보내는 편지

등록|2023.11.23 14:47 수정|2023.11.23 14:48
김용균 노동자의 죽음 이후 5년이 흘렀습니다. 5주기를 맞아, 각자의 자리에서 기억하는 김용균과 안전한 일터에 대한 고민을 담았습니다. 다시 5년 뒤에는 모두가 안녕하기를 바라며, 김용균에게 보내는 편지를 싣습니다.[기자말]

추모의 글 남기는 시민2022년 10월 20일 오후 서울 양재동 SPC 본사 앞에서 열린 평택 SPC 계열사 SPL의 제빵공장 사망 사고 희생자 서울 추모행사에서 한 시민이 추모의 글을 남기고 있다. ⓒ 연합뉴스


오늘 내가 퇴근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출근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상상조차 하고 싶지도 않은 일입니다. 더군다나 저는 빵을 만드는 사람인데 빵을 만들다 내가 죽을 수도 있다고? 상상되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와 상관없는 일로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산재사망사고 뉴스를 접해도 "아이고.. 쯧쯧..." 하고 안타까워 하는 게 전부였지, 어느 한 사람이 어떻게 집에 돌아가지 못한 건지, 집에 돌아가지 못하게 만든 그 노동환경은 어떠했던건지, 유가족들이 어떤 투쟁을 해야 하는지 그 죽음 이후 관심가질 생각도 없었고 경험도 없었습니다.

노동조합 활동을 하게 되면서 산재 관련 1인 시위 피켓도 들고 집회도 참가했지만 여전히 산재 사망사고는 저에게 막연한 숫자였지 '사람'으로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인 2018년 12월, 한 발전소에서 젊은 노동자가 끼임사를 당했다는 뉴스를 보았고 늘 그랬듯 "아이고... 쯧쯧..." 하고 넘어갔습니다. 그러던 중 까만 분진이 미친 듯이 날려 앞이 보이지 않는 작업장 모습을 뉴스에서 보게 되었는데, 너무 충격적이었습니다.

사람이 저런 환경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숨은 쉴 수 있나? 앞도 안보이는 저 캄캄한 곳을 혼자 들어가다니 무섭지 않나? 그리고 그 퇴근하지 못한 젊은 노동자가 회사에 입사하며 부모님과 축하하는 모습, 쑥스러워하며 다짐을 이야기하는 모습, 그런 자식이 집으로 돌아오지 못해 추운날 길거리로 나와 자식을 앗아간 회사를 상대로 처절하게 싸움을 시작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그저 숫자가 아닌 한 사람의 인생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업종은 달라도 우린 다 똑같구나...

김용균씨 사고 이후 여러 자료와 기사들을 찾아보며 든 생각이 있습니다. 외주화 되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일자리, 같은 노동을 하지만 하청, 파견이란 딱지를 붙여 차별하고 자존감을 끌어내리는 일자리, 그로 인해 같은 일을 해도 제대로 돈도 못 받는 일자리, 인력 부족으로 둘이 해야 할 일을 혼자 해야하는 일자리, 그래서 다치고 아파도 쉬지 못하는 일자리, 동료가 일하다 사고를 당해도 회사 눈치를 보며 문제 제기도 제대로 할 수 없는 불안정한 일자리...

처음 회사에 입사할 때가 생각났습니다. 파리바게뜨에 입사하는 줄 알고 근로계약서를 쓰러 간 사무실은 양재에 있는 SPC본사가 아닌 신도림역 뒤편 아주 오래된 건물의 낡은 사무실이었습니다. 큰 회사 사무실이 왜 이리 후줄근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근로계약서를 쓰면서도 내가 하청 용역회사에 입사하는 것이라는 자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직업이 뭐냐, 어디서 일하냐고 물어보면 자랑스럽게 '파리바게뜨 제빵사예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와 파리바게뜨? 그럼 대기업 다니는 거네요?'라는 질문이 꼭 따라 붙었고 그때마다 SPC소속이 아닌 협력사 소속이라고 대답하면 백이면 백 그 특유의 뉘앙스로 '아아~ 용역?'이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파리바게뜨에서 일하고 있지만 SPC파리바게뜨 소속이 아니라는 게 뭐가 문제인 건지 잘 모르겠지만 점점 소속 회사를 이야기 하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졌습니다. 그땐 불법파견이 뭔지도 모르고 원하청 구조도 잘 몰랐지만, 사람들의 반응만으로 '내 일자리가 그리 좋은 게 아니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10년을 일하고 그 안에서 어느 정도 진급도 했습니다. 아파도 쉬지 못하고, 주휴가 뭔지도 모르고 2주 연속 일을 하고, 연장수당은 커녕 점심 밥도 못 먹고 일해도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사회생활 원래 이런 거지, 다들 이렇게 사는 거지'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2022년 10월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SPC그룹 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경기 평택시 소재 SPL 제빵공장에서 발생한 사망 사고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있다. ⓒ 유성호


내 주변 동료들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만 '살아' 남았습니다. 내 주변에 온통 여성 제빵사들만 있었지만 "여자 월급 치고는 나쁘지 않지만 남자 월급으로는 너무 낮아서 안돼. 그리고 여자는 어차피 결혼해서 애 낳으면 육아휴직하고 애 보느라 진급에 관심 없잖아"라며 남성 제빵사들만 관리자로 진급시킬 때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우리 회사는 원래 이런 곳이니까 하고 수긍하고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찮게 노동상담을 받으면서 내가 일하는 곳이 불법구조로 이뤄져 있고, 불법파견을 하면서 임금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면서 노동조합 설립으로 이어졌습니다. 알고보니 10년간 회사를 다니면서 불합리하고 이상하다고 느꼈던 대부분의 문제들은 불법적인 구조였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파리바게뜨에서 일하는 제빵, 카페기사들의 노동문제에 대해 알려내고 열악한 환경과 위법적인 구조를 해결해나기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 SPC내 다른 계열사의 노동자들과도 연결되었고 비알코리아 던킨도너츠지회와 평택SPL지회 설립으로 이어졌습니다.

공장도 관리자는 전부 남성이었지만 현장엔 여성 노동자들이 더 많았고, 그래서인지 노동강도는 높았지만 저임금이었고 작업환경도 열악했습니다. 화상, 베임, 끼임 사고도 빈번히 발생했지만 산재 신고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쉬지 못하고 일해야 했고 부상이 심각한 경우엔 본인 휴가를 써 쉬고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해 10월, 3개월 단기 계약직으로 들어온 신입직원의 손이 기계에 끼이는 사고가 났습니다. 천만다행으로 부러지거나 찢어지진 않았지만 통증과 함께 손이 부어올랐습니다. 끼인 손을 빼기 위해 공무팀이 와서 기계를 분해하는 30여분의 시간 동안 관리자는 그 앞에 동료 작업자들을 모은 뒤 혼을 냈고, 손이 끼인 재해자는 정신없는 와중에 자기 때문에 동료들이 혼나는 것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재해자는 의무실로 이동해서 본인이 3개월 계약직임을 알리자 의무실에 함께 간 관리자들이 안도의 표정을 지었고, 그 모습에 큰 상처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사측은 얼음주머니를 하나 주며 단기계약직은 회사에서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했다 합니다. 처음엔 무서웠으나 사측의 태도에 점점 분노가 치밀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길 바라며 노동조합의 도움으로 언론 인터뷰 약속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인터뷰 약속을 이틀을 앞둔 10월 15일, 빵 만들다 사람 죽을 일이 뭐가 있나? 하고 웃어 넘겼던 일이 벌어졌습니다.

밀려드는 작업물량에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야간근무를 계속하며 피곤에 절어 있는 상태에서 둘이 해야 할 일을 혼자 하다가 사고가 났습니다. 계속해서 기계를 돌리기 위해 뚜껑 안전장치인 인터록을 다 제거한 그 공장에선 평소 관리자들이 무서운 속도로 도는 회전날보다 더 빨리 움직일 것을 지시했다고 합니다.

반복되는 크고 작은 끼임사고, 안전불감증의 관리자들... 예견된 사고였고 그 누구가 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사고였습니다. SPL산재 사망사고에 대응하기 위해 SPL노동자들과 소통하며 가장 가슴이 아팠을 때는 "내가 이 사고를 당했을 수도 있었다. 내일은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게 너무 불안하다"라고 말하는 노동자들을 만났을 적입니다.
 

SPL 제빵공장 사망 사고 희생자 추모하며2022년 10월 20일 오후 서울 양재동 SPC 본사 앞에서 열린 평택 SPC 계열사 SPL의 제빵공장 사망 사고 희생자 서울 추모행사에서 참가자들이 헌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동안 산재가 비일비재했고 안전하지 않은 환경이라는걸 그 안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 다음은 내가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만연했던 것입니다. 산재사망사고에 대해 SPC의 비인간적인 대응으로 불매운동이 거세지자 허영인 회장은 대국민사과를 하며 안전에 1000억을 투자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그 약속은 1년도 지나지 않아 샤니에서의 또 다른 산재 사망사고로 노동자에게 돌아왔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생겼지만 많은 허점과 구멍으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그저 사고가 나지 않길 바라며 오늘도 운이 따르길 바라며 출근을 해야 하는걸까요?

김용균씨의 5주기를 앞둔 지금, 우리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노동자를 숫자가 아닌 사람으로 보기, 아침에 웃으면서 나간 가족이 무사히 돌아와 같이 저녁 먹기,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사사로운 대화 나누기... 이 평범한 일상을 위해 우리는 이 겨울 또다시 거리로 나가 중대재해처벌법 개악을 막아내기 위해, 노조법 2·3조 개정하기 위해 투쟁합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 지회장입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