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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지하철 게시물... '관동대학살' 언급은 없었다

[1923 관동대학살 100주기 추모제 동행기 12]

등록|2023.11.22 10:07 수정|2023.11.22 10:07
저는 지난 9월 2~7일, 씨알재단(이사장 김원호)이 주관한 '일본 관동대학살 100주기 추모제'에 참석하고 왔습니다. 관동대학살은 1923년 일본 관동대지진 때 일본 관헌과 민간인들이 재일조선인을 무참히 살해한 사건을 말합니다. 학살 당한 대부분이 먹고 살 길을 찾아 현해탄을 건넌 일용직 노동자에, 부두 하역 잡부들, 그리고 그 식솔들이었다고 하니 그야말로 씨알(민초)이었을 뿐인데... 가슴이 아리고 눈물이 납니다. 그 원혼들을 달래기 위해 치른 5박 6일간의 추모제 동행기를 쓰고자 합니다.[기자말]
(* 지난 기사 "집요한 사람, 이창희"에서 이어집니다)
 

▲ 지하철 역사에 걸린 관동대지진 100주기 포스터 ⓒ 신아연


씨알재단 이창희 사무국장은 아라카와 강변 공원에서 17개 넋전 박스를 지키기로 하고, 나머지 일행은 국회의사당으로 향합니다.

그날 날씨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정말이지 죽음이었습니다.

33~35도 선의 기온과 습식 사우나를 방불케 하는 습도로 온 몸이 땀에 저려지고, 그 땀이 후텁지근한 강바람에 꾸덕꾸덕 말랐다가, 다시 끈적끈적 땀 세례를 받는, 각자 자기 체력의 한계를 체험하는 날이었다고 할까요.

편의점에서 사온 차가운 물을 바로 마시지 않고 일행의 목덜미에 번갈아 가며 대어주시던 씨알재단 김원호 이사장님의 자상한 손길이 떠오르네요. 우리의 체온으로 물은 이내 미지근해졌기에 이사장님은 결국 더운물을 마셔야했지요.

▲ 지하철 내부에 걸려있는 관동대지진 100주기를 맞아 안전을 경고하는 게시물. 관동대학살에 대한 언급은 없다. ⓒ 신아연

    아라카와 강변의 야히로역에서 국회의사당역이 얼마나 먼 길인지, 국회가 어디에 붙어있는지 알 턱이 없는 저는 이번에도 인솔자의 꽁무니만 따라갑니다. 김원호 이사장님과 함인숙 목사님이 인솔합니다.

김 이사장님은 현업 때 업무차 일본을 자주 오가셨기에 정기승차권을 갖고 계시지만, 일행을 위해 매번 표를 사 주셔야 했는데요. 우리처럼 한 번만 표를 사면 환승을 통해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바로 도착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일본은 국유와 민자 노선이 따로 운영되는 시스템이라 5박 6일 동안 열차표를 따로따로 몇 번이나 사야했는지 몰라요.

지하철 역사 내에도 관동대지진 100주년을 맞아 소방에 만전을 기하자는 포스터가 게시되어 있네요. 그러나 관동대학살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지하철 내에도 같은 게시물을 볼 수 있습니다.
 

▲ 알록달록 이동 유치원 같은 동경 지하철 내부. ⓒ 신아연


우리가 탔던 일본 지하철 내부입니다. 우울하고 어두운 국민 정서를 보완하려는 걸까요? 지하철이나 열차 몸체 색도 그렇고 특히 내부는 밝고 알록달록한 것이 마치 이동 유치원 같았습니다. 또한 좌석의 색상과 재질이 고급스럽고 세련되었고요.

국회의사당을 찾아가는 길, 그만 엉뚱한 역에서 내렸습니다. 일본이 우리보다 큰 나라라는 걸 그때 실감했습니다. 내려서 출구까지가 엄청나게 멀었던 거죠. 그렇게 엉뚱한 곳에서 내려 출구까지 한참을 걸어 지상으로 올라와 엉뚱한 방향으로 얼마간 가다가

"여기가 아닌가 벼~~"

하고 돌아서서 지하철을 새로 타러갑니다. 표를 또다시 다 새로 사고, 국영철도인지 민영노선인지에 따라 중간에 또 표를 사야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잘못 든 길에서 동경스카이트리 타워를 바로 눈 앞에서 보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우리는 관광객처럼 일제히 작은 탄성을 질렀습니다. 길을 잘못 든 게 아니라 국회의사당 가는 길에 타워를 잠깐 보고 가는 코스가 된 것이죠.

삶의 길도 그렇지 않을까요? 잘못 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길에서 다른 것을 보는 뜻밖의 행운을 누리는 중은 아닐까요? 잘못 든 길이라고 잘못 간 건 아니라는 거죠.
 

▲ 잘못 든 길에서 동경스카이트리 타워를 만나 환성을 터뜨리다. ⓒ 신아연


​(* 다음 기사에 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제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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