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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마디가 저를 움직이게 하네요"

[인터뷰] 20여 명 생명 구한 한국 심폐소생술의 대부, 심명섭 단장

등록|2023.11.24 11:34 수정|2023.11.24 14:18

▲ 사진=춘천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자신이 수상한 ‘강원도 자원봉사명장’ 상을 가리키며 설명해 주는 심명섭씨 모습 ⓒ 서다희


강원도 춘천시 후평동에는 조금 특별한 봉사를 하는 사람이 있다. 1995년도부터 지금까지 27년째 심폐소생술(CPR)을 실시하는 심명섭(69) 한국 CPR 봉사단장이 그 주인공이다. 기운이 뚝 떨어져 날씨가 부쩍 쌀쌀해진 10월 중순의 어느 날, 그를 만나 생명을 살리는 봉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어봤다.

심명섭 단장은 이날 마라톤 대회에서 사고를 회상하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마라톤 대회에 CPR 지원 활동을 나갔다가 남자 한 분이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달려가서 응급처치하는 도중이었어요. 그렇게 쓰러진 남성분의 숨을 되찾아 주는 사이에 이번에는 여자 한 분이 화장실에서 쓰러지셨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희 부스로 데리고 와 안정을 취하게 도와드렸는데 알고 보니 그날 쓰러진 두 사람이 부녀 사이였습니다."

심 단장과 봉사 단원들의 도움 속에 생명을 건진 부녀는 "살려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수도 없이 했다고 한다.

"그때 제가 '너무 무리하게 운동하지 말라'고 답해 주고 같이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나요."
 

▲ 사진= 한국 CPR 봉사 단원들과 해수욕장에서의 구조 훈련일 실시 중인 모습. 제공=심명섭 단장. ⓒ 심명섭


현재 계절과 관계없이 1년 내내 심폐소생술 봉사를 하고 있다는 심 단장은 여름에는 바다와 계곡에서, 겨울에는 스키장에서 구조 활동을 돕고 있다. 그러면서 "요즘에는 마라톤 등의 달리기 행사가 많아서 경기 시작 전에 간단한 심폐소생술을 알려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심폐소생술과 관련돼 가장 힘든 구조 활동은 무엇일까? 심 단장은 "육상에서 일어나는 사고는 바로 알아차릴 수 있지만, 물놀이 사고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자칫하다 놓칠 수도 있어서 대단히 신경이 쓰인다"고 귀띔했다.

이어 "물놀이의 경우 행사 주관처에서 지원 요청을 하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해변과 계곡에는 자발적으로 가서 마네킹을 눕혀 놓고 CPR 체험 교실도 연다"고 설명했다.

한순간만 놓쳐도 인명 사고로 직결될 수 있는 것이 물놀이인지라 물과 관련해 아픈 기억도 생생하게 남아있는 심 단장이다.

"1990년도 초반의 일이었어요. 당시 바다와 연결된 강릉의 한 하천에서 초등학생 아이 두 명이 공놀이하다가 강에 빠진 공을 가지러 갔는데 결국 한 명이 물에서 못 나왔어요.

다른 한 아이가 겁에 질려 말도 못 하고 있다가 나중에 울면서 친구가 물에 빠졌다고 신고를 해 부랴부랴 아이를 건지기는 했지만, 이미 너무 늦은 뒤였어요."


그럼에도 지금까지 심 단장이 구한 생명은 20여 명이다. "분초를 다투는 상황에서 구했던 한 명 한 명의 상황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난다"는 심명섭 단장은 "짧게는 5~10분 정도의 가슴 압박과 인공호흡으로 숨을 틔운 적도 있지만, 봉사단원과 번갈아 가면서 30여 분 간이나 인공호흡을 하며 의식을 잃고 숨결이 잦아들던 사람을 살린 기억도 있다"고 전했다.

그렇게 자신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아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는 심단장은 최근 타지키스탄으로도 심폐소생술 봉사 활동을 다녀왔다.

"작년 8월에 9박 10일 일정으로 타지키스탄의 수도 두샨베를 방문해 타지키스탄의 재난본부와 보건부 등에서 심폐소생술 특강을 하고 두샨베에 있는 '아이니 공원'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심폐소생술 체험 교실도 운영했어요."

문득 심폐소생술과 관련된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 비용 충당은 어떻게 이뤄지는지가 궁금해졌다. "봉사를 요청하는 곳에서 숙식을 지원해 주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자비로 해결하고 있어요"라고 알려준 그는 "복지관에 계신 어르신들이 관광을 다닐 경우, 복지관 측의 요청으로 같이 갈 때가 있는데 이럴 때면 숙박비로만 30~40만 원 정도 소요된다"고 설명했다.

"그러고 보니 타지키스탄에 봉사를 하러 갔을 때도 여비로 400만 원이 들었어요. 그래도 정부나 공공기관의 도움 없이 우리의 힘으로만 봉사 단체를 운영하고 싶어 교육 기관과 기업 등에서 심폐소생술과 관련된 강의를 하며 받는 강의비 등으로 봉사 비용을 마련하고 있다."
 

▲ 사진=지난해 여름 타지키스탄의 수도 두샨베에서 심폐소생술 체험 교실을 마치고 사진 찍은 심명섭 단장과 봉사단원들. 제공=심명섭 단장 ⓒ 심명섭


그렇다면 심 단장은 어떻게 심폐소생술과 관련된 봉사 활동을 시작하게 됐을까?

"오래전에 스쿠버다이빙 전문 강사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심폐소생술에 대한 강의를 필수로 들어야 했어요"라며 봉사 활동을 시작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한 심 단장은 "마침 한국에 CPR을 알려줄 전문가가 없어서 일본의 심폐소생술 강사가 한국으로 건너와 지도를 했기에 '한국 CPR 봉사단'을 세워서 심폐소생술에 대해 알리고 싶다고 생각한 거죠"라며 지난날을 떠올렸다.

그렇게 CPR에 대해서 알리고 의료 봉사를 시작한 지 27년. 이러한 선행을 인정받아 심명섭 단장은 2013년에 춘천시 자원봉사센터에서 '봉사왕' 칭호를 받았고, 지난해에는 1만 시간을 채워야 등재되는 강원도 자원봉사센터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심폐소생술 봉사단을 설립했던 1995년만 해도 사람들이 CPR에 잘 모르고 관심도 없었는데 지금은 인식이 많이 바뀌어서 강의 요청도 많고 현장 반응도 대단히 뜨거워요. 제 아내도 심폐소생술 봉사단원인데 저에게 항상 '오늘도 무사히'라는 말을 되뇌어요. 아내 말처럼 '오늘도 무사히' 오랫동안 봉사하고 싶어요."
덧붙이는 글 서다희 대학생기자의 인터뷰 기사입니다. 이 기사는 한림대학교 미디어스쿨 <인터뷰 실습> 과목의 결과물로, 자체적으로 운영되는 한림미디어랩 The H(http://www.hallymmedialab.com/)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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