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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예사 자산"이라는 이 작가 전시, 추천합니다

심재완 '부전자전 유묵전', 대구 모산학술재단 문화예술공간서 12월 20일까지

등록|2023.11.27 09:59 수정|2023.11.29 08:58

▲ 한학자이자 서예가로 명성이 높았던 퇴산 심장환에 대한 해설(사진 왼쪽), 그의 아들로 "역대시조전서" 편찬자로서 학술원 저술상을 받은 영남대 명예교수 모산 심재완(가운데 사진, 그가 붓글씨를 쓰는 모습), 심재완에 대한 해설(오른쪽 사진) ⓒ 모산학술재단


만약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청구영언>(김천택, 1728년), <해동가요>(김수장, 1762년), <가곡원류(박효관·안민영, 1876년)가 언급될 때 <역대 시조 전서>를 함께 배웠다면 그는 1975년 대학에 입학했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심재완(1918~2011)의 <역대 시조 전서>는 1972년에 처음 출간돼 그 이후 고등학교에서 가르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3대 시조집으로 일컬어지는 청구영언, 해동가요, 가곡원류와 어깨를 겨룬다는 점만 보아도 <역대 시조 전서>는 대단한 저술이다. 하지만 어떤 국민들에게는 <역대 시조 전서>가 생소할 수도 있다. <역대 시조 전서>가 어떤 책인지 알아보기 위해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설명을 들어본다.

"종전까지 있어온 시조집들이 작가 내용 곡목(曲目) 등에 따라 작품을 열거함에 따라, 한 작품이 가집마다 통일되지 못하고 각양의 유사한 노래로 변이되어 그 원작의 추정이 곤란한 것을 문헌의 대교(對校)를 통하여 작품 연구에 앞선 기초 작업을 행했다.

1972년 세종문화사에서 초간하였고, (중략) 3335수를 그 첫글자의 ㄱ, ㄴ, ㄷ, ㄹ 순에 따라 배열하고, 그 아래 이본·곡목·출전을 기록하였다. 작품 연구에 필요한 이본의 대교를 보여주며, 이때까지 정리된 시조집 중 가장 많은 작품을 수록하고 있다."


'서예가 심재완'은 아직도 덜 알려졌다

<역대 시조 전서>를 기억하는 국민들도 모산 심재완 박사가 출중한 서예가라는 사실은 잘 알지 못한다. 평생을 영남대 국문과 교수로 재직한 심 박사가, 계명대 서예과가 창설되었을 때 그곳에서 후학을 양성한 이력은 그의 서예가로서의 위상을 말해준다.

책에 따르면 모산 심 박사가 서예의 길로 들어선 것은 "한학자요 서예가인 부친 슬하에서 글씨에 대한 교양을 받으며 안진경, 하소기를 알게 된 것은 초등학교 시절"이 시초이고, 그 이후 "성제 김태석 선생을 사사하게 되어 안노공제의 진수를 듣고 법첩 보는 안목을 길렀다"고 한다(심재완, '나와 서도', 2002).
 

▲ 심재완 교수의 부친 퇴산 심장환 선생의 글씨로 만들어진 대구 '팔공산 파계사 사적비' 탁본 ⓒ 모산학술재단


앞에 인용한 모산의 회고는 그의 부친 퇴산 심장환 또한 대단한 서예가라는 사실을 알게 해준다. '팔공산 파계사 사적비' 등 많은 작품을 남긴 심장환과 그 아들 심재완 '부전자전(父傳子傳) 유묵전(遺墨展)'이 대구 수성구 동대구로 15길 34 모산학술재단 문화예술공간에서 열리고 있다.

'부전자전 유묵전'은 지난 11월 24일부터 시작되어 오는 12월 20일까지 계속된다(일요일-월요일에는 휴관). 개막 행사에는 이홍재·오철수 서예가, 정기숙 계명대 명예교수, 홍우흠 영남대 명예교수, 심정규 모산심재완선생기념사업회 회장, 이인숙·전일주 미술학자 등 40여 명이 참석하여 환담을 나누었다.

초대장을 통해 "모산 선생의 서학(書學)은 서예사, 금석학, 서지학, 법첩과 서예 수장, 서예 평론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러한 연구는 한국서예사의 이론적 자산이자 그가 자신의 글씨를 이룰 수 있었던 바탕이기도 하다"라는 견해를 밝힌 이인숙 미술사학자는 "귀한 전시회인 만큼 많은 시민들이 방문해 감상의 기회를 누렸으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 부전자전 유묵전 전경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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